내가 여성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냥 태어날 때부터 여성이었다. 여성으로 태어나다보니 십대의 어느 시절에는 말로만 듣던 생리를 시작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쭉, 그러니까 이십년 이상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하고 있으며, 그렇게 며칠씩 내 몸밖으로 피를 내보내고 있다. 일회용 생리대를 한 시간이 길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몸이 일회용생리대를 받질 않아 면생리대를 사용했었고, 면생리대는 그 사용의 불편함 때문에 몇 해전부터는 탐폰을 사용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탐폰을 편하게 사용하고 무리없이 사용하고는 있지만, 탐폰은 오랜 시간 사용하면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산드라 블럭'과 '멜리사 매카시'주연의 영화 《히트》를 보면 여성혐오를 일삼는 남자 경찰이 그런 말을 한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태어났는데, 그걸 가지고 비하를 하면 어떡해' 라고. 그는 백색증을 앓고 있었고, 그 상태에 대해 멜리사가 약올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자신이 선택한 병이 아님에도 그것에 대해 놀리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지 않은가. 그는 바로 그걸 지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역시 상대가 여성인 사람들을 여자라는 이유로 계속해 혐오하고 비하했다.
생리는 내 선택이 아니었고 내 의지도 아니었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생리대를 사는 데 많은 돈을 쓰는 것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생리전마다 이러저러한 여러가지 통증들을 겪으면서 약을 먹는 것 역시도 내가 선택한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의 <신화> 편에서 생리에 대해 얘기한다. 정확히는, 생리에 대해 그동안 세상이 얼마나 많은 부조리한 증상을 보였었는지. 얼마나 구린 태도로 여성과 여성의 생리를 저급하게 취급했는지를.
특히 <레위기>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자기 몸에서 피가 흐르는 여자는 7일 동안 부정하다. 여자에게 손을 대는 사람도 누구나 하루 종일 부정하다. 그녀가 눕는 침대나, 그녀가 앉는 자리는 모두 부정하다. 그녀의 침대를 만진 사람은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어야 하며, 그날 하루 종일 자신도 부정하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이 글은 임질(淋疾)에 걸린 남자의 부정을 다룬 내용과 똑같다. (p.199)
어떻게 생리를 임질과 똑같이 다룰 수가 있는가. 태어날 때부터 어쩔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부정하다고 말할 수가 있어. 부정한 거라면 인간의 몸이 왜 그런 시스템으로 되어 있겠냐고. 부정하다면 그걸 없앨 수 있어야 하잖아.
가부장제 사회가 출현한 뒤로는 여성의 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그 수상한 액체에서 불길한 효능만 인정하게 되었다. 플리나우스(로마의 장군, 관리, 저술가.)는 《박물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월경이 시작된 여자는 농작물을 못 쓰게 만들고 밭을 황폐화시키며, 싹을 죽이고 과일을 떨어뜨리며, 꿀벌을 죽인다. 만일 그녀가 술에 손을 대면 포도주는 식초가 되고 우유는 시큼해진다 ……." (p.199)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니 그러면 내 집 와인 냉장고에 있는 와인들에 내가 생리 때 손을 대면 그것들 다 식초 되는 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세상의 절반이 여자고 여자들은 한달에 한번씩 며칠간 피를 흘리는데, 그렇다면 세상은 진작에 망해 없어져버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농작물도 밭도 성치 못하다는데, 싹도 죽인다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여성으로 '태어난' 것, 흑인으로 '태어난' 것이 어떻게 놀림감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혐오와 비하의 대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보부아르가 이 책을 쓴 것은 1940년대의 일이고, 생리에 대한 구절을 가져온 것이 성경의 레위기에 대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생리에 대해 비웃고 농담하고 약올리는 것이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렇지 않은가?
'레일라 슬리마니'의 책 《섹스와 거짓말》은 최근에 나온 책이다. 모로코의 여성들이 직접 얘기하는 것을 듣고 쓴 책인데, 여기에서도 생리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마하 사노' 라는 여성이 들려주는 이야기.
모임 중 한 여성으로부터 들은, 믿기 힘든 한 이야기가 기억나는군요. "해방이 뭐 있나. 만일 처녀막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다면 그게 곧 해방이지." 이런 종류의 여성 모임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저소득층 사회에선 여성들은 오후만 되면 서로서로 모여 가족, 아이들 그리고 ……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털어 놓습니다. 간혹 성적인 이야기를 아주 공공연하게 노래하는 가수를 초청하는 일도 있지요. 성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억압된 나라에서 이러한 시간은 숨쉴 수 있는 시간이자 동시에 여가 시간인 것이죠. 여성들에게 그들의 섹스에 대해 말을 건넬 때 우리는 "그들의 문제"를 감추라거나 생리에 대해 지극히 폭력적으로 말합니다. 생리는 이렇게 뭔가 불순하고 더러운 것, 원초적인 저주의 형태와 연결되는 거죠. (섹스와 거짓말, p.159)
그렇다면 이것이 모로코이게 가능한걸까? 아니,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심지어 대통령이 되어도 생리에 대해 함부로 입을 턴다.
2015년에 진행된 공화당 대선 후보 토론을 보면서도 피가 끓어올랐다. 사회자였던 메긴 켈리가 당시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에게 여성을 상대로 여성혐오 및 성차별적 발언을 한 적이 없느냐고 추궁했다. 트럼프가 여성을 두고 "뒤룩뒤룩 살찐 돼지들"이라는 둥 "역겨운 동물들"이라는 등 했다고 그녀가 지적하자 트럼프는 불필요하고 "우스꽝스러운"질문이라고 응수했다. 자신의 여성혐오적 발언에 대한 해명을 이끌어내려는 켈리의 결연한 의지를 두고 트럼프는 훗날 이렇게 발언했다. "그 여자 눈에서 피가 나오는 것 같았지 …… 아마 몸 어디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을걸." 몸 어디라고? 트럼프는 정당한 질문을 던지며 사회자로서의 역할을 다한 켈리를 조롱했을 뿐만 아니라 월경중일지도 모른다며 그녀의 질문을 폄하했던 것이다!
물론 트럼프의 발언은 첨예하게 비판받았다. 트럼프가 월경을 여성의 지나치게 감정적인 이상 행동의 원인으로 언급한 일도 처음은 아니었다. 나중에 트럼프는 자신은 켈리의 코피를 말한 거였다며 미국의 소위 '정치적 올바름' 앵무새들을 트위터에서 강력히 비판했다. "우리 모두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누구보다도 권력을 많이 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발언하거나 생리에 대해 '농담'한다. 월경이 마치 감정이나 지성을 저하시키기라도 하는 양 미국 대통령 집무실에서부터 초등학교 복도에 이르기까지 월경중인 사람들은 혹시 그날이냐며 놀림받아왔다. (생리의 힘, p.20)
여성은 월경을 하니까 남성처럼 권력을 쥐거나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참여할 역량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에 월경에 대한 문화적 시각을 바꿔놓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지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도 이를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힐러리 클린턴은 생리를 하기 때문에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했다.(힐러리는 예순아홉 살이라 이미 완경했을 텐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힐러리는 믿을 수 없어. 그녀가 생리할 때 전쟁을 일으키면 어떡해?" 물론 정치인은 여러 가지 이유로 비판받지만, 생리를 한다는 이유(비록 가상의 생리라 해도)는 그 근거가 될 수 없다. (p.19)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여자들은 매달 생리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고 직장을 다니고 있다. 생리는 여자가 어떤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할 거라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의 레위기에서부터 생리 하는 여자는 부정한 존재이며 뭘 해도 잘 못할 존재일거라는 생각이 너무 뿌리박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트럼프는 정당한 지적에 대해 여성혐오로 응답했다. 생리 중이라 저런 걸거라며 상대를 오히려 비약하는데, 그것은 자신이 받은 질문에 대해 논리적으로 답할 수 없기에 나온 멍청한 대응이다.
이 일은 영화 《롱 샷》에서도 지적해주고 있다.
젊은 여성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앞에 여자 아나운서를 앉혀두고 남자 패널 둘이서 생리 중에도 업무를 잘 처리할 수 있겠느냐며 비약하는 거다. 심지어 여자가 대통령인데도 그랬어. 최고 권력의 자리에 앉아있는데도 방송에서 생리로 농담을 하고 ㅣ있다니. 영화속에서는 이에 발끈한 아나운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생리를 놀리고 혐오하는 것은 너무 오래된 역사인지라 어디에서나 뿌리깊이 박혀있는가 보다. 모로코에서도 미국에서도 그랬는데, 프랑스 작가가 쓴 소설 《루거 총을 든 할머니》에서도 여지없이 생리에 대한 발언은 나온다.
베르트가 목제 식탁에 포크를 꽂았다. 열이 올랐다.
˝아, 젠장! 나한테 생리 핑계 갖다 붙이지 마. 당신만은 제발!˝
˝그게 당신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인정해.˝
˝내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신의 너절함이야.˝
˝천박하게 굴어서 이로울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여자가 권리만 주장했다 하면 그 즉시 생리대를 들고 나오니, 이거 원. 저질에, 비루하고, 생산적이지 못하기 짝이 없네.˝
˝생산적이지 못한 건, 당신이 잘 알겠구나.˝
궁지에 몰렸다고 느낀 노르베르가 비겁한 무기를 선택했다.
˝그 부분은 건드리지 마, 노르베르, 특히 그건 하지 마.˝
˝난
그저 당신이 보부아르를 읽고서 들떴을지 모르겠지만, 단신은 크게 불평할 처지가 아니란 얘기를 하는 거야. 이렇게 아늑한 집도
있고, 가게도 잘 굴러가잖아. 난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며 내 예술을 팔고 있어. 누가 더 불평을 해야겠어? 이건 남자,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생존자와 그 밖의 사람들의 문제야.˝
˝왜, 당신이 보기에 난 생존자가 아닌 것 같아서?˝
방 안의 온도가 핵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당신은 그리 고생스러워 보이지 않는데?˝
˝내가 어떤 길을 지나왔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해.˝ (루거 총을 든 할머니, p.285)
이 책에서도 베르트가 얘기하는 것처럼 여자가 화난 건 '남자들의 너절함'인데, 남자들은 이에 대응할 때 '그건 니가 생리중이라서 그래' 라는 거다.
아, 우리 여자들은 정말이지 '너 생리중이야?'라는 말을 얼마나 한심하게 들어왔던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 역시도 '아, 내가 생리중이라 이렇게 화가 나나'하는 자기반성을 얼마나 했던가.
일전에 여자동료랑 밥을 먹다가 여자동료가 얘기했다.
"그 일이 너무 화가 나서 미치겠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혹시 생리중이라 그런가 곰곰 생각해봤거든요. 생리중이라 예민한건가. 그런데 생각해보니까요, 차장님, 그건 제가 생리중이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이에요. 그건 제가 생리중이든 아니든 화가 날 일이 맞아요."
정말 그러하다. '너 생리중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의 그 상황, 그러니까 '너 왜이렇게 예민해' 라는 말을 들을 때의 그 상황은, 내가 예민해서 화가 나는 게 아니라 화가 날 상황이라 화가난 거였다. 《루거 총을 든 할머니》속의 베르트도 남편이 돈은 안벌어오고 가사노동도 하지 않으니 빡이 쳐서 따졌더니 남편은 생리중이냐고 물었던 거다. 너는 왜 여성비하를 하느냐는 질문에 트럼프는 그 여자 생리중인가보다, 라고 대응하는 거다. 정확히 대답해야 할 질문을 받아놓고서는 그런 식으로 넘어가는 거다. 너절한 행동을 한 당사자는 자신의 너절함을 들여다보는 대신 상대의 생리를 보고 있는 거다. 진짜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이것은 대체 얼마나 오래된 역사인지!
여성으로 '태어나' 생리를 하는 것을 두고 놀리는 것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어디서나 계속되고 있지만, 그러나 사회가 변하고 있음은 틀림이 없다. 생리를 두고 놀리는 것은 잘못됐다고 모로코의 여성이 얘기하고 프랑스의 소설가가 얘기하고, 그리고 미국의 젊은 월경권운동가가 얘기하고 있으니까.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아지면 점점 달라지지 않겠는가. 생리로 모든 것을 여자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됐다. 생리를 부정하게 보는 것도 잘못됐다. 보부아르가 이미 1940년대에 얘기했고 그리고 지금은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다. 심지어 《생리의 힘》을 쓴 젊은 운동가 '네이디아 오카모토'는 전세계의 월경빈곤층들을 위해 생리대를 공급해주고 있다.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다른 출판사의 책을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너무 글자가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해서 으윽, 이 책 읽을 때마다 보부아르가 랩하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야. 나는 랩음악을 싫어한다. 나는 발라드 좋아해... 랩 싫어..... 내가 들을 수 있는 신해철의 <안녕>까지가 적당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읽는다,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남성들이 장악한 경제적인 특권, 그들의 사회적 가치, 결혼의 영예, 남성의 후원 효과, 이 모든 것이 여성들로 하여금 남자의 마음에 들기를 열렬히 원하게 만든다. 여성들은 전체적으로 아직도 종속상태에 놓여있다. 그 결과 여성은 자기 자신으로서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정의하는 대로 자기를 인식하고 선택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남자가 꿈에 그리는 여자를 묘사해볼 필요가 있다. ‘남자의 눈에 비친 여자의 존재방식‘이 여자의 구체적 조건이 되는 기본요소들 가운데 하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P187
여자는 그 출생부터가 자주적이 아니었다. 신이 자발적으로 여자를 만든 것도 아니고, 여자를 만드는 대가로 여자로부터 직접 숭배를 받기 위해 여자를 창조한 것도 아니었다. 신은 남자를 위해 여자를 만들었으며, 이는 아담을 고독에서 구하기 위해서였다. 여자의 기원과 목적은 자기 남편 속에 있다. 여자는 비본질적인 존재로 남자의 보충물이다. - P190
장식품의 기능은 매우 복잡해서 일부 미개인들 사이에서는 종교적 성격까지 지닌다. 그러나 일반적인 역할은 여자를 우상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모호한 우상이다. 남자는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기를 바란다. 그 아름다움은 꽃이나 과일 같은 아름다움이기를 바라면서도, 그것은 또 조약돌처럼 매끄럽고 단단하며 오래 가야 한다. 장식품의 역할은 여자를 보다 자연과 닮게 하는 동시에 자연에서 떼어놓는 것이다. - P211
단장한 여자에게는 ‘자연‘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이미 남자가 원하는 대로 인간의 의지에 의해 개조된 것이다. - P212
생명이 아무리 매력적인 외형으로 꾸며져 있더라도, 그 생명에는 언제나 늙음과 죽음의 씨앗이 살고 있다. 남자가 여자를 부리는 그 자체가 여자의 가장 고귀한 정절을 파괴하는 것이다. 즉 임신으로 몸이 무거워지면 여자는 성적 매력을 상실한다.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갱년기에 이르면 매력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병이 잦고 추해지고, 늙은 여자는 배척당한다. 그런 여자를 두고 마치 식물처럼 시들었다거나 퇴색했다고들 말한다. - P213
원시인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남성의 성기는 세속적인 데 반해, 여자의 성기는 종교적·마술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보다 더 근대적인 사회에서도 남자의 성적인 잘못은 죄가 없는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흔히 너그럽게 봐준다. 남자는 사회법규를 따르지 않더라도 여전히 사회의 일원이다. 그는 집단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짓궂은 아이에 불과하다. 반대로 사회에서 탈선한 여자는 ‘자연‘과 악마에게 돌아가 제어할 수 없는 마력을 집단에 풀어 놓는다. - P249
그는(몽테를랑) 니체로부터 ‘여자는 영웅의 노리개다‘라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여자를 노리개로 삼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이 이런 식이다. 코스탈이 말하듯이 ‘결국 이 얼마나 장난 같은 짓인가!‘ - P278
가부장제 사회에서 최고의 창조주는 남성이기 때문에 여자는 먼저 아내로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인류의 어머니이기 전에 이브는 아담의 배우자이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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