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잘하는 것은 언제나 나의 로망이었지만 그러나 외국어야말로 노력에 노력을 해야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던가. 4개국어를
하는 친구에게 '너는 어떻게 그렇게 외국어를 잘해?' 물었더니, '미친듯이 외웠어, 미친듯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바로 그거였다. 그러나 나는 미친듯이 외국어를 공부하지 않았지. 아니, 외국어가 다 뭐야. 미친듯이 뭔가 한 것도 없었던 것
같다. 미친듯이 사랑은 했지 않나, 라고 내가 나에게 물어보니, 그래, 미친듯이 사랑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미친듯이 사랑한
순간에도 나는 나를 전부 내던지진 않았어. 흐음... 아아 이야기가 또 산으로 간다.
요가,
피트니스, 방콕, 스릴러 그리고 외국어까지 총 다섯권의 아무튼 시리즈를 읽었다. 그리고 나는 이 《아무튼, 외국어》가 가장
좋다. 작가가 글을 가장 잘 쓰기도 하지만 그 글속에 자신의 외국어에 대한 사랑과 열정과 그러나 중도에 포기했던 겸손함이 그대로 다
들어있어. 읽기에 가장 부담 없었던 아무튼 시리즈가 아니었나 싶다.
'조지영'은
불어, 독어, 중국어, 일본어에 모두 도전했고 그 모두를 다 완벽히 마스터 하지는 못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학원을 찾아다니며
또 독학으로 외국어를 궁금해하고 공부한 것만큼은 자지러지게 좋다. 아마 그런 부분들이 나랑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는 조지영만큼 진도를 뽑지 못하고, 사전..그저 사전 만을 '사'둘 뿐이지만....
자, 아직 쓰기 전이니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지만 사전, 사전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어쩌면 내가 여기에서 한 번 풀어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고.. 아니야, 한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아주 오래전에 극장에서 친구랑 《더티댄싱: 하바나 나이트》를 관람했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친구와 나는 워낙 더티댄싱을 좋아했어서
개봉하자마자 달려가 본 것. 검색해보니 2004년 이라고 나오네. 영화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쿠바.. 배경은 쿠바 였던것
같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듣는데,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el beso del
final> 이라는 제목이 눈에 띤다. 어? beso... beso...내가 이걸 어디서 봤는데? 싶어서 기억을 더듬다가,
그즈음에 읽었던 '마누엘 푸익'의 《거미 여인의 키스》가 떠오른다. 오래되어서 기억이 뒤죽박죽인데, 어쩌면 책의 원제를 보다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노래를 떠올린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beso 를 봤어.
저기 초록색 부분에 원제 써있다. El Beso de La Mujer Aran"a (1976년)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던 나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노래를 들으면서 당연히 무슨 뜻인지 몰랐고, 그러나 책의 저 제목을 보면서 '어?' 하며
제목을 추측해보게 된다. 생김새로 보아 beso 는 명사일 듯한데(el 이나 de, la가 명사이진 않을 터), 그렇다면 '거미' 아니면 '키스'일 것이다. 그런데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노래 제목에 '거미'가 들어갈 확률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beso는 키스일 확률이 높다. 나는 내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서점엘 갔고, 스페인어 사전을 찾아 보았다. 그리고 beso 는 키스가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ㅋ ㅑ -
이런 기쁨, 뭔쥬 알죠?
final 은 뭐 딱히 찾아보지 않아도 '최종', '마지막'의 뜻이 될텐데, 아아아아아, 그렇다면 el beso del final 은 마지막 키스 겠구나! 이 노래 제목은 마지막 키스였어!!!!! >.<
너무 씐나서 나는 얼마 안가 스페인어 사전을 구매해버린다. 사전을 구매해서 맨 앞장을 펼치면 발음기호가 나와있다. 그래서 알게 된다. 스페인어는 발음기호 그대로 읽으면 된다는 것을. 사전을 펼쳐 알 수 있는 건 일단 여기까지. 나는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그렇게 스페인어 사전을 책장에 꽂아둔다.
사전.사전이란 무엇인가.모르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니던가. 아무리 전자사전이 나오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우리가 언제든 모르는 걸 찾아볼 수 있도록 사전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사전은 너무 중요한 거 아닌가요. 사전만 있으면 단어의 뜻을 알 수 있잖아! 그러니까 스페인어를 전혀 모른다해도 사전을 찾아보면 거기에 어떤 단어가 쓰여진 건지를 알 수 있잖아! 얼마나 근사합니까, 여러분. 사전은 너무나 필수 아니냐. 나는 모르는 게 있을 때 찾아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스페인어 사전을 시작으로 프랑스어 사전과 독일어 사전도 사버리는 것이여. 그렇다.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까지... 만세다!!
저기에 베트남어 사전을 가져다 꽂아놓는 게 현재 나의 목표여... 그러나 망설이면서 자꾸 미루는 것은, 저기에 저렇게 사전 꽂아두었지만 절대 꺼내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긴 세월을 걸쳐 알아내었기 때문이다. 박스도 안벗겨.... 하아- 스페인어 사전은 기뻐하며 첫장을 넘겨 발음기호를 보기라도 했지, 다른 사전은 그마저도 안했다.
아, 그래도, 독일어!
독일어는 그래도 일단 기본적으로 좀 알아야 하지 않겠냐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무슨 강동구청인가 에서 하는 무료방송으로 독일어 기초수강인가를 신청했다. 방송 내가 한 번 듣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아 베 체 데 .. 까지만 알고 접어버렸다.
그리고, 불어!
불어도 역시 그냥 기본이라도 발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저 사전도 구매해 두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거 구매한지 좀 오래되긴 했지. 10년도 넘었다. 아무튼. 올해였나 ... 불어 교재를 사버린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보겠다는 의지로, 분철서비스까지 신청했지! 물론, 먼지만 쌓이고 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아니 어째서, 왜 때문에..나는 꾸준히 책을 읽고 꾸준히 글을 쓰고 꾸준히 좋아했던 사람을 좋아하면서 사는데, 그렇게나 꾸준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왜, 어째서! 외국어에 있어서는 꾸준히가 발현이 안될까. 왜 일단 한번 푹- 찔러보고 뒤돌아설까. 왜, 왜그러는가 나여.. 게다가 나는 외국어의 쓸모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단 말이다. 설사 쓸모가 그리 크지 않다 한들 교양 차원에서도 외국어는 너무나 완벽한 아이템이 아닌가!!!
그래, 다 포기하고 영어, 영어 하나만 붙들고 살자. 영어도 못하면서 무슨 외국어야, 라는 생각을 나는 참으로 많이도 해왔는데, 그러나 왜 다른 외국어는 반드시 영어를 잘 한다음에 해야 한다는 이상하고 해괴망측한 생각이 드는 걸까. 영어. 영어에 대해서라면 정말이지 끝도없이 말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때는 제법 영어를 잘했던지라(아아, 찬란한 과거여...) 사회에 나와서 영어 공부를 다시 하는 것은 무리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첫 직장에 들어가 일주일에 세 번 가는 영어 학원을 동료 남자 직원하고 함께 등록하고서는 ㅋㅋㅋㅋㅋㅋㅋ 우리 둘다 첫날 수업만 가고, 그 다음 수업 시간 때부터는 함께 퇴근해서 술집으로 향했다. 우린 미쳤어... 우리가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허구헌날 그 직원하고 둘이 술마시고 .. 하아. 무척이나 땀을 잘 흘리는 남자직원이었지. 같이 외근나가면 내 가방 안을 다 정리해주는 직원이었어. 대체 너는 가방에 왜 그렇게 쑤셔넣고 다니냐며...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둘이 술마시든가 다른 직원들 불러 같이 술마시든가, 하여간 허구헌날 술을 마시면서 영어 학원에 돈지랄을 한것이다...노팅힐 대본도 스프링분철로 사두었지. 아하하하하.구몬 영어도 했다가 밀려서 죄다 버렸었지... 방통대 영문학과 들어갔다가 반학기 다니고 자퇴했었다. 영어여, 영어, 영어란 무엇인가.....Orz
"영어나 똑바로 하지" 하던 큰오빠의 말은 사실 틀리지 않았다. 업무로써 영어를 쓸 일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랄까 싶은데, 바로 그 이유로 더 잘하고 싶은 이유 또한 크지 않다. 세상에 재미있는 콘텐츠들은 대부분 영어가 많긴 하지만, 대체로 귀신같이 번역이 되어 있는 편이고, 어디 여행이라도 가서 영어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수준은 되니까.잡기는 커녕 손에 제대로 닿은 적도 없으나 영어를 이미 잡은 언어 취급하면서 그럼 다른 언어를 만나볼까 하며 이 언어 저 언어 기웃거리고 다녔다. 꼭 배우고 말겠다는 목적성이 약하고, 잘하면 좋지 싶은 정도라서, 번번이 입문과 초급 수준에서 뱅글뱅글 도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지만, 가서입 떨어지는 이 취미 아닌 취미를 앞으로도 꽤 오래 지속할 것 같다. (p.158)
내가 외국어를 못하는 까닭은, 조지영이 위의 문장에서 언급한대로, 어쩌면 뚜렷한 목적성이 없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잘하고 싶다는 뽕찬 마음만 있기 때문에 딱히 노력을 안하게 되는 것 같아. 그래도 이 책을 읽으니까 또다시 이것저것 기웃거려 보고 싶어. 이쯤하고.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꼭지가 있다. 제목만 보자마자, '에피톤??' 했는데, 아니었다.
<바람이 분다> 처럼 자주 듣지는 않았지만, 오래전에 이자람이 불렀던 <Belle> 이라는 노래도 이따금 찾아 듣는다. 처음 듣자마자 이 노래의 정서가 프랑스 같다고 느꼈다(제목부터 그렇다). 가사 중 "그대가 너무나 아파요"라는 구절이 단박에 롤랑 바르트의 책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바르트는 이십대의 내가 열병처럼 애달프게 읽어 내려갔던 『사랑의 단상』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의 유명한 달낙이 바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J' ai mal a l'autre"인데(프랑스어 표기 어케 하는지 모르겠음:다락방),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 그냥 비문이 돼버리는 이 문장이, 프랑스어로는 너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p.37)
아아,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는 나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로 알고 있는데, 롤랑 바르트와 이자람... 이었던건가. 아아.
수줍게 넌 내게 고백했지
“내리는 벚꽃 지나 겨울이 올 때 까지
언제나 너와 같이 있고 싶어“
아마, 비 오던 여름날 밤이었을거야,
추워 입술이 파랗게 질린 나, 그리고 그대
내 손을 잡으며 입술을 맞추고
떨리던 나를 꼭 안아주던 그대
이제와 솔직히 입맞춤 보다 더
떨리던 나를 안아주던 그대의 품이 더 좋았어
내가 어떻게 해야 그대를 잊을 수 있을까
우리 헤어지게 된 날부터
내가 여기 살았었고, 그대가 내게 살았었던 날들
나 솔직히 무섭다
그대 없는 생활 어떻게 버틸지
함께한 시간이 많아서였을까?
생각할수록 자꾸만 미안했던 일이 떠올라
나 솔직히 무섭다
어제처럼 그대 있을 것만 같은데
하루에도 몇 번 그대 닮은 뒷모습에
가슴 주저앉는 이런 나를 어떻게 해야 하니
그댄 다 잊었겠지
내 귓가를 속삭이면서 사랑한다던 고백
그댄 알고 있을까?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또 얼마를 그리워해야 그댈 잊을 수 있을지
난 그대가 아프다
언제나 말없이 환히 웃던 모습
못난 내 성격에 너무도 착했던 그대를 만난건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생각해
난 그대가 아프다
여리고 순해서 눈물도 많았었지
이렇게 힘든데, 이별을 말한 내가 이 정돈데
그대는 지금 얼마나 아플지...
나 그대가 아프다
나 그 사람이 미안해
나... 나 그 사람이 아프다
나는 그사람이 아프다가 불어에서 나온 얘기라면, 독일어 부분에서는 독일 소설이 진지하고 재미없다고 조지영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아, 조지영 님이여, 새벽 세시요 새벽 세시. 그 책이 독일책이고 세상 재미있습니다!! 하고 속으로 부르짖고 있는데, 아아, 조지영 님이여... 새벽 세시 읽으셨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세월이 한참 지나서, 독일에서 크게 히트했다던 소설책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읽고 왠지 웃음이 나왔다. 독일은 역시 산문의 나라인가? 남자와 여자가 만나지도 않고 기나긴 메일로 연정을 나누는 것이 꼭 <맨해튼의 선신>속 얀과 제니퍼를 연상시켰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 나라인가 보다. 말해도 말해도 못 알아들을까봐 말하고 또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기승전결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서 저렇게 결론을 내렸어. 너는 어떠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이렇게 주장해 …… 이런 얘기만 줄창 하고 있는 어떤 연애와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는 궁금해졌다. (p.50)
동기가 무엇이든 반짝 하는 순간 '아아 나도 한 번 해볼까?' 하고 외국어에 대해 흥미가 막 돋아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샹송을 불러보고 싶어서 불어를 할 수 있고 새벽 세시를 원서로 읽어보고 싶어서 독일어를 하고 싶어질 수도 있고.
지금 내가 외국어를 해보고 싶다고 사전 오래전부터 마련해두고 교재도 사서 쌓아두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긴 하지만, 혹여라도 내가 외국에서 살게 된다면, 그 때는 반드시 필요에 의해 그 외국어를 익혀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난 또 엄청 잘할거야. 나는 이 나라가 아닌 곳에서 당분간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이라, 언젠가는 얼마만큼이라도 꼭 살게 될텐데, 그럴 때 외국어 공부는 또 스트레스겠지. 면허도 있어야할지 모르지만, 나는 면허를 따놓고 이 나라에서도 운전하지 않는 사람이라, 어쩌면 외국에서도 늘상 대중교통만 이용하며 조금은 느리고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생의 어느 한 부분은 낯선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 낯선 나라에서 남은 평생을 살고 싶다는 바람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지만, 한 발은 언제나 이 땅에 두겠지만, 나는 여기를 이곳에 두고 갈 순 없겠지만,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다.
얼마전에 만난 외사촌 여동생에게도 외국어를 공부해두는 게 좋을거라고 얘기했었다. 직장생활이야 전공과 다르게 펼쳐질 수 있는 것이고 뭐가 됐든 하면 되겠지만, 결국 '내 것'일 수 있는 건 내 실력, 내 외국어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나라 언어로 쓰여진 언어라면 그 나라 언어로 읽는 것도 꽤 매력적인 일일테고. 무엇보다 '나 자신만의 능력'이라는 면에서 외국어는 으뜸이 아닌가 싶다. 이래봤자 나는 못하지만...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게으름..게으름이 문제인가? 내가 그렇게 게으른 사람은 아닌데...
아무튼, 아무튼 외국어를 읽는 시간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무튼 시리즈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외국어로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하나만 읽어보고 싶다면, 외국어를 읽는 게 좋을 것 같고. 사실 어떤 아무튼은 '이게 뭥믜..' 이렇게 되기 땜시롱 .....
집에 가면 사전 먼지 좀 털어줘야겠다.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