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만 기다리다 일생을 보낼지라도

일요일이 기다려지는 한결같은 마음



일요일이 토요일 다음이어서 참 다행이야. 토요일에 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을 일요일에 혼자 앉은 책상 앞에서 꺼내 다시 음미할 수 있으니 참 다행이야. 햇빛이 내 옆에 있고 구름의 움직임이 보이니 다행이야. 어떤 토요일이 서글펐다 해도 일요일에 다시 꺼낸 서글픔은 햇빛을 닮아 반짝거리고 투명해지니 다행이야. 헌 이불을 빨고 새 이불을 꺼내는 일요일 늦은 오후, 계획한 대로 묵은 빨래를 하고 장을 보고 돌아와 냉장고를 채우고 책상을 정돈할 수 있지. 계획하지 않은 일들로 부산해지는 일요일도 좋지. 반가운 손님이 갑작스레 찾아와도 좋을 테지. 일요일의 다음 날이 월요일이어서 참 다행이야. 바쁜 월요일을 위해서 더 바쁜 화요일을 위해서, 바빠서 우울해질 수요일을 위해서 여름날의 넓은 그늘 같은 독서를 해두는 일요일, 음악을 실컷 들어두는 일요일. 일요일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너에게 즐겁게 얘기할 수 있는 월요일이 다음 날에 있는 일요일. (p.294)


















일요일 오후에 한 글자 사전을 읽는데 이렇게 <일>이라는 단어에서 일요일에 대해 얘기해주고 있다. 나에게도 일요일은 너무나 소중하고, 무언가 밀린 일을 실컷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좋은데, 그런데 생각해두었던 많은 일을 다 해낼 수는 없을테니 초조하기도 하다. 어떤 일요일은 마냥 늘어져 쉬고 싶지만, 오늘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이수명의 시집도 읽고 싶었고, 헌책방에 들러 샀던 책도 읽고 싶었다. 한글자 사전도 얼른 다 읽어서 이 책을 읽는 중인 여동생과 즐거이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읽다가 아직 진도가 안나가고 있는 책도 책상에 꺼내두었고, 문득, 뉴욕 미술관 책을 내가 여전히 가지고 있던가, 싶어 책장으로 가 꺼내오기도 했다. 잊지 않고 챙겨두어야지. 여름에 뉴욕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읽어볼거야. 다행스럽게도 책도 있었고, 내가 체크해둔 북마크도 그대로이다. 조카에게 줄 그림책도 한 권 읽었는데, 그렇게 책상 위에 책을 한가득 쌓아두고는, 아 날이 좋아 일자산 가고 싶다, 어떡하지... 하며 초조해졌다. 일자산에 다녀오면 세시간은 그냥 통으로 없어지는데, 그러면 이렇게 쌓아둔 책들을 언제 다 읽는담? 그렇지만 걷고 싶다, 산에 가고 싶어. 나는 하는 수 없이 책상 위에 책을 가득 쌓아둔 채로 일자산에 다녀왔다. 덕분에 이렇게 늦은 오후가 되었고, 내 책상에 쌓인 책들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토요일에는 영화 [존 윅3]을 보았다. 몇 해전에 [존 윅]을 보았을 때 굉장히 폭력적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내가 존 윅3을 개봉하자마자 보러 달려다가다니.. 이 영화를 같이 보기로 한 친구는 '그거 네 타입의 영화가 아닐텐데'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의미 없이 사람 죽이는 영화는 내가 보고싶어 하는 영화는 아닌데, 그런데 나는 키에누 리브스가 너무 보고 싶었다. 신기하게 구남친은 아무도 그립지 않은데, 키에누 리브스는 그리워. 아, 너무 오랫동안 당신을 못봤어, 보고싶어, 하는 마음. 이 영화로 키에누 리브스, 당신을 만날거야. 그동안 쭉 안보고 살았다면 이렇게 그립지는 않았을텐데, 얼마전에 영화 [우리 사이 어쩌면]에서 잠깐 보는 바람에 아흑, 그리움이 커졌다. 그렇게 나는 존 윅... 아니지, 키에누 리브스를 만나러 간 것이다.



처음부터 얼마나 사람을 잔인하게 때리고 죽이는지, 나는 자꾸 윽-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몸을 떨어야 했다. 으으, 역시 아닌가, 하게 되었어. 그런데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서 이내 눈물이 고였다. 내가 이 영화의 2편을 안봐서 왜 이렇게 진행됐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존 윅을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거다. 존 윅이 살기 위해서는 존 윅 혼자서 그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데, 도망가도 누가 따라오고 도망가도 누가 따라오고... 존 윅은 녹초가 되도록 혼자 맞서 싸우는데, 너무 외로워지는 거다. 아, 얼마나 외로울까. 저 싸움은 과연 언제 끝나려나. 저 사람이 죽어야 끝날텐가, 그러나 살기 위해 저렇게나 애쓰는 사람이잖아, 그냥 좀 내버려둬, 좀 내버려두란 말이야, 왜이렇게 다들 하나가 되어서 괴롭히는거야, 왜 다른 나라에 가도 괴롭히냐고, 그렇다면 대체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느냔 말이야!!



나는 이토록 잔인한 영화가 좋아졌다. 몇 번이나 그 잔인함에 신음 소리를 내고 고통스러워 했으면서도 좋아졌다. 이 영화에 대해서라면 '개는 죽지 않는다'는 스포를 이미 당한 터라, 마굿간에서 싸움이 벌어질 때도 '말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정말로 말들은 어느 하나 상처 입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그게 좋았는데, 이건 내가 그동안 액션이라 이름 붙여진 영화에서 싫어했던 요소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싸움과 전혀 관련 없는 인물들의 살상이 없다는 것. 그 흔한 시장 과일 장사의 과일 리어커가 뒤집어지고 가게가 부서지고 하는 것들이 이 영화 속에서는 보여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아주 많은 터미널에서조차, 이 영화는 키에누 리브스와 상대에 대해서만 때리고 죽인다. 그 사람 많은 데에서 이들의 싸움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는 거다. 이것은 지독하게 영화적 설정일 것이다. 어떻게 그 사람 많은 곳에서 누군가가 칼에 찔려 쓰러지는데 아무도 놀라거나 경찰에 신고하거나 도망치지 않는단 말인가. 이것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진 않아요, 라는 것과 동시에, '바로 그들만의 싸움이다'는 것을 알리는 것일 테다. 


영화속에서 이를 드러내는 대사도 있었다. 터미널에서 키에누 리브스와 그 적이 서로에게 칼을 들고 달려가 죽이려 하는 상황, 그 상황에서 그들 사이로 아이들이 단체로 지나가는 거다. 키에누 리브스는 적에게 향해 가던 걸음을 바로 멈춘다. 적도 함께 멈춘다. 아이들은 아무 일 없이 그들 사이로 지나간다. 그 때 적이 존 윅에게 말한다.


"넌 정말 특별해. 이러잖아. 나였으면 그냥 너에게 달려들었을거야."



존 윅, 좋지 않나요... 아 좋으다. 



영화가 끝나고나서 친구는 '네가 이 영화를 보자고 해서 놀랐다' 고 했는데, 아아, 더 놀라운 건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나는 친구에게 얘기했다.


"아아, 이거 내 길티 플레져 같아. 좋아 ㅠㅠ"



내가 그냥 막 죽이고 찌르고 이런 영화의 의미 자체를 1도 모르는 사람인데, 그래서 그 주지훈하고 누구였지 .. 막 아무튼 남자들 떼거지가 초반부터 막 얼굴 때리고 이런 영화 보다가 6분 만에 보기를 포기한 사람인데, 남들 다 본 폭력 영화 볼 생각 1도 안하는 사람인데, 그런거 정말 딱 싫어하는데, 아아, 


존 윅을 좋아합니다. ㅠㅠ


길티 플레져.


누구에게도 보라고 할 수 없는 영화, 청소년들에게도 보지 말라고 할 영화, 나의 친구들에게도 '한 번 봐봐 정말 좋아' 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영화, 그러나 나 혼자서 보면서 좋아하는 영화. 이 영화의 1편은 어렴풋이 기억나고 2편은 보지 않았던 터라, 나는 1,2 편을 모두 볼 것이다. 그리고 4편이 나오면 또 볼거야.


키에누 리브스 좋아합니다...




영화를 본 후에는 잠실나루역 근처에 있는 중고책방 <책보고>를 찾았다. 친구가 이런 곳이 있다며 같이 가자 한 곳인데, 넓고 쾌적한 곳이었다. 당연히 검색대도 마련되어 있고. 이렇게 둥글게 터널처럼 되어 있는데, 전체 사진을 찍으려 하니 사람들이 자꾸 왔다갔다해서, 사람 없을 때 없는 곳만 찍으려하니 이런 사진 밖에 찍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하나의 매대마다 각기 다른 중고서점의 책들이 있었다. 그러나 신간인 중고서적은 거의 없고, 다 오래된 중고책들이더라. 한 칸 한 칸 돌아다니면서 살펴봤는데 딱히 내가 사고싶어할 만한 책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렇게 지나다가,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나는 대한민국에서 이 작가의 책은 나만 읽을 것 같다, 라고 생각했던 작가의 이름을 만난다. 오 예~

바로 '크리스티나 로런' !! 네? 

아니, 언니가 거기 왜 있어요, 내가 빼내 줄게요. 그렇게 나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책을 꺼내든다. 그리고 품에 안는다. 친구는 뭐 골랐냐고 내게 다가왔고, 나는 친구에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라고 하며 그 책을 더 품에 꼭 끌어 안았다.


아아, 노는 남자여.... 토요일의 길티 플레져 투.... 토요일, 길티 플레저의 날인가...




제가 이 나이 먹도록 그렇게나 많은 책을 읽어오면서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성인 로맨스 버리지 못했습니다. 아아, 나여. 에로틱 로맨스 제가 너무 좋아하고요, 그래서 크리스티나 로런, 안고 갑니다. 예, 예. 

[잘생긴 개자식]은 내가 방출해서 지금 가지고 있질 않고(누구에게 보낸 것 같다), 너무 갖고 싶어했지만 사지 못해 안달하던 내게 친구가 사줬던 [낯선 살냄새]는 가지고 있다. 아흑. 그렇게 내 책장에 이제 크리스티나 로런 책이 두 권이 되었다. 낯선 살냄새와 노는 남자... 누구한테 제목 말하기도 부끄러워..






그리고 친구와 보쌈을 먹으러 갔다. 내가 당분간 술을 마시지 못하는 형편이라 친구도 술을 안마시겠다고 한다. 아니, 보쌈에 소주는 환상궁합, 너무나 맛있는데 그걸 왜 안먹어!!


"너 안먹는데 너 앞에서 먹으면 고문하는 것 같잖아."


마음씨 착한 친구는 내게 말했고,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둘 다 불행할 필요가 뭐있어. 한 명이라도 행복하자. 너라도 행복해야 해.


그렇게 나는 소주를 주문했다.... 친구야, 마셔. 너라도 행복하렴. 나는.. 괜찮아............




사실 이 친구랑은 만나면 늘 술을 마셨던 터라, 술 마시지 않아도 괜찮을까, 라는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우리의 공통점이 그저 술뿐이라면, 술이 사라졌을 때 관계 유지는 힘들테니까. 그런데 술 마시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더라. 으응, 술 없어도 되는구나 싶어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 만난 건 아니지만, 이걸 확인하니 뭔가 내가 좀 더 단단해진 것 같았다.


나의 아빠는 내가 국민학교 4학년일때 그렇게나 좋아하던 술을 끊으셨다. 그 뒤로 지금까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계시는데, 그 시절에 늘상 만나던 친구들과도 관계가 끊어진거다. 그 때 아빠는 가족들에게 '술을 끊으니까 술친구와도 다 끊어져' 라고 하셨다. 아빠와 친구들을 이어주는 이유는 술, 그 단 하나였던 것 같다.


오늘 일자산에 아빠랑 다시 오르면서, 또 이 얘기를 하게 됐는데, 문득 우리에게 우리를 이어주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하나이면 안돼, 그보다는 좀 더 많아야 돼. 만약 우리를 이어주는 게 취미활동이라면, 그 활동을 계속 유지하는 이상 관계도 유지될 수 있지만, 그 활동을 어느 한 명이 그만두게 된다면 관계 유지도 힘들어진다. 술이라면 술이 없을 때 끊어지게 되고. 그러나 우리에게 그게 아닌 다른 무엇이 더 있다면, 우리는 계속 연결되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다른 무엇은 무엇보다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의지, 마음 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네 얘기를 듣고, 네가 내 얘기를 듣는 것. 우리가 서로의 일상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여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 우리는 그저 보통의 사람들이고, 이런 보통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성취라는 것은 딱히 크거나 대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상대에게 말했을 때 진심으로 박수쳐주고 기뻐해줄 수 있는 연결됨. 대화와 애정이 우리를 이어주는 또다른 끈이라면, 우리 사이에 취미가 같지 않아도, 관심사가 갖지 않아도, 같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연결될 수 있다. 우리의 관심사가 갖지 않아도 우리가 서로의 관심이라면, 그러면 그걸로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가 끊어져도 우리는 이어질 수 있어!



집에 돌아오니 다른 친구로부터 톡이 왔다. 운전 면허에 합격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꺼이 축하를 해주며 축배를 들라 말했다. 운전면허를 땄다고 말하고 싶어하고, 그 말에 기꺼이 축하를 건넬 수 있는 관계라면, 그렇다면 오늘에 이어 내일까지 관계를 이어나가기 더 쉽지 않을까. 친구는 고양이와 같이 살고 나는 아닌데, 친구는 맥주를 좋아하고 나는 소주를 좋아하는데, 친구는 페미니즘 책을 읽지 않고 나는 읽는데, 친구는 집에만 있으려 하는 사람이고 나는 자꾸 나가야 되는 사람인데. 이렇게나 다른 사람인데 우리가 연결될 수 있는 건, 친구가 운전면허를 땄따고 내게 말하고 싶어하고, 나는 기꺼이 축하를 건네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는 내가 병원에 입원하기 바로 전날, 내가 먹고 싶다는 갈비를 사주고, 내 가방에 병원비를 쑤셔 넣어주었었다.




자, 한 글자 사전을 다 읽었고, 오늘 밤에는 노는 남자를 읽을 것이다. 나는 아마도, 낮잠도 자지 않았지만, 잠을 못잘지도 몰라. 두근두근. 노는 남자.... 야할까? 야하겠지? 크리스티나 로런 이니까. 일요일 진짜 좋다!












폼을 잡는 사람한테서는 폼이 안 나고 폼이 나는 사람은 폼을 안 잡는다. - P374




해가 365번을 뜨고 나면 해가 바뀐다. - P383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놀이를 할 때 줄곧 사용하던 둥글둥글한 도구. 공을 굴리다, 공을 던지다, 공을 받다, 공을 잡다, 공을 차다, 공을 튀기다, 공을 때리다...... 어울려 쓰이는 말들을 살펴보면, 둥글둥글한 사람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가 짐작된다. - P36




‘맛있게 드세요‘라는 뜻으로 뿌려두는 것. - P48




남자, 타인, 남쪽. 이 세 가지를 모두 이 한 글자로 적는 데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멀리 두고 보아야 좋다. - P70




빛이 없으면 색도 존재하지 않는다. 색은 사물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사물에 반사되는 빛의 파장이다. 가시광선만을 색으로 인식한다. 물체가 흡수한 색이 아니라 반사한 색을 인식한다. 그러니 색을 쓰는 여자는 없다. 색을 밝히는 남자의 시선에만 있다. - P221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쪼개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심고 물을 주어 키워가며 알아내는 것. - P248




누군가의 안에 들어가려면 절차가 필요하다. 문 앞에서 노크를 한 뒤, 들어가도 되는지를 물어보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 P252




‘왜 학교를 그만두었어요?‘라는 질문에는 ‘왜 학교를 다니나요?‘라는 반문이 가장 현명하고, ‘왜 결혼을 안했어요?‘라는 질문에는 ‘왜 결혼을 했어요?‘라는 반문이 가장 현명하며, ‘왜 아이를 안 낳았어요?‘라는 질문에는 ‘왜 아이를 낳았어요?‘라는 반문이 가장 현명하다. - P278




인터넷 결제 중에 액티브액스와 맞닥뜨릴 때 우리가 혼자 내뱉는 한마디 말. - P279




편파적이어서 배가 아프곤 하지만 이것은 거품이지 거름이 아니다. 지속성이 없다. - P282




위로도 응원도 이모티콘으로 대신한다. 악수도 포옹도 이모티콘으로 대신한다. 목소리 없이, 어색해지는 뒷모습 없이, ‘잘 가‘ 하며 인사한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앉음새와 호흡과 눈빛과 표정 없이 교감을 나눈다. 정을 나눈다. 듬뿍. 실컷. 나눈 정을 가만히 떠올려볼 때 기억할 만한 목소리도 뒷모습도 눈빛과 표정도 부재한다. 허구의 영역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정. 그래도 이만큼 깊어졌다고 느껴지는 우리들의 정. - P306




계급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귀한 것은 아버지 입으로, 그다음 아들 입으로, 그다음 사위 입으로. 흔한 것은 딸 입으로. 먹다 남은 것은 어머니 입으로. - P320




첫사랑은 두 번 다시 겪을 수 없다. 첫째도 복수형이 될 수 없다. 첫인상도 첫만남도, 첫 삽도 첫 단추도 첫머리도 두 번은 없다. 하지만 첫눈은 무한히 반복된다. 해마다 기다리고 해마다 맞이한다. - P332




매일 삼키고 살면서도 뱉어지면 더러워 보인다.




좋아서 심장이 반응하는 것. 두 번 겹쳐 쓰면 당황해서 심장이 반응하는 것. - P346




생각날 틈 없이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연인. 생각할 틈 없이 핸드폰을 열람하는 살마들. 모든 틈은 핸드폰이 점령했다. - P364




가난함은 티가 나고 부유함은 티를 낸다. - P365




아이들은 함께 놀기 위해 편을 나누고 어른들은 함께 어울리지 않기 위해 편을 가른다.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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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omeone to love 는 your best friend
    from 마지막 키스 2019-07-02 09:17 
    《존 윅3》을 보고, 너무 좋아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편 다시 보자, 하고 어제 다시 보았다(내가 엊그제 일요일 페이퍼에서 다시 본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다시 봤다). 나는 진짜....아무튼 키아누 리브스(내 어린 시절엔 늘 키에누 리브스였는데...) 너무 좋고요, 이 영화 이제 2편 보려고 다운 받아놨다. 존 윅 캐릭터도 너무 좋은게, 뭐랄까, 복수의 과정에서 별로 말도 없다. 이러쿵 저러쿵 말도 없이 자기의 차를 훔치고 자기의 개를 죽인 사람에
 
 
Nussbaum 2019-06-30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남지 않은 일요일을 충실한 마음으로 잘 보내시길 !! 한글자 사전 뭔가 재밌네요 ㅎ

다락방 2019-07-01 07:39   좋아요 0 | URL
일요일이 다 가버렸어요. 벌써 월요일입니다. 우앙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공쟝쟝 2019-06-30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아누리브스가 길티플레져라니이이잌ㅋㅋ~~~~~~~~~~.... 저도 일요일 가는거 너무 싫어요... ㅜㅜ 책보고는 한번꼭 가보고! 싶군요 ㅠ0ㅠ 아, 세상엔 보고 놀게 왜이리 많죠?.. (근데 또 제 댓글은 왤케 정신이 없는 거지용???ㅋㅋ)

다락방 2019-07-01 07:40   좋아요 1 | URL
키아누 리브스가 길티 플레져인 건 아니고요!! 존 윅이 길티 플레져입니다. 이토록 잔인한 액션을 좋아한다.. 하는 데서 오는 으으으 너무 좋아요 ㅠㅠ 저 존윅 1,2 다운 받고 있어요. 존 윅의 팬이 되겠습니다!

책보고는, 제가 운좋게 책 한 권을 득템하긴 했지만, 제 경우에는 딱히 살만한 책들이 눈에 띄지는 않더라고요. 엄청 책이 많았는데 말이죠. 가족 단위로 많이 와서 책 보더라고요. 특히 아이들이 바닥에 철푸덕 주저 앉아 책들 보는데, 아이들에게는 참 좋겠구나 싶었어요.

비연 2019-07-01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보고 다녀오셨군요! 저도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아직 못 가고 있는데.
존웍은.. .너무 무의미하게 잔인하다 해서 안 보고 있는데.. 키아누 리브스... 봐야 할까요...ㅜ

다락방 2019-07-01 08:36   좋아요 1 | URL
책보고 에서 저는 살 책이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아마 앞으로 또 갈 일은 없을것 같긴 합니다만...

존 윅은, 잔인한 건 틀림없지만, 아아, 저는 좋아하는 것입니다. 흑흑 ㅠㅠ
그렇지만 그 잔인함에 다른 분들께 추천을 할 순 없어요... ㅠㅠㅠ

단발머리 2019-07-0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 타인, 남쪽. 이 세 가지를 모두 이 한 글자로 적는 데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멀리 두고 보아야 좋다.- P70


와아~~~~~ 김소연 작가 대단한대요. 저도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서두르고 싶네요, 고고!!

다락방 2019-07-02 09:41   좋아요 0 | URL
네, 깊이 생각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와 ‘남‘에 대한 글들이 특히 좋아 저는 여동생에게도 이 책을 선물했답니다. 후훗.

감은빛 2019-07-06 06:10   좋아요 0 | URL
저도 ‘남‘에 대한 내용을 읽고 정말 탁월하다 생각했어요. 멋진 책이군요.
‘여‘에 대한 내용도 궁금해서 일단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언제 주문할지는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