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는 팬심이란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나란 여자, 팬심 같은 거 없는 여자로구나, 하고. 무엇이 계기가 된건지 모르겠는데, 팬심이란 것에 대해 점심먹고난 후 회사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나는 팬심이란 게 없는 사람 같어."
"음..그러고보니 차장님은 누구 좋아해서 덕후가 되고 그러진 않는 것 같아요."
"응. 나는 요즘 헨리 좋아하지만, 보면 좋다는 거지 안보면 생각나고 그러진 않아."
"차장님 다니엘 헤니도 그랬었죠, 한 때."
"응, 만나자고 하면 만나겠지만 내가 막 좋아 죽고 그러진 않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가 들으면 클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응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차장님 그 덕의 기질이 칠봉이한테 있어서 다른 데 안간 것 같아요. 칠봉이 덕후였잖아요."
"아 맞네. 칠봉이 빠였지."
"네, 이미 거기 덕후인데 뭐 다른 거야..."
"맞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난 번에 <비긴 어게인>을 친구의 추천으로 시청하다가 헨리한테 완전 반했었다. 뭐랄까, 그 천재적임이 뒤에서 빛을 뿜었달까. 한 번 들은 음악도 연주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연주할 수 있고.. 너무 최고인 것이다. 그 후에 헨리가 보이면 '으앗, 헨리네! 이뻐, 좋아!' 이렇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헨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찾아서 보고싶다던가, 헨리를 만나고 싶다던가..하는 팬심 같은 건 없는 것이야? 게다가 에피톤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음악 좋다고 앨범 사긴 했었지만, 책 읽고 돌아서버리는 냉철함.... 나는 역시 팬심 같은 거 없고, 홀리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는 것인가... 세상 냉정한 여자, 차가운 도시여자...
오래전에 읽은 '엘리자베스 게이지'의 <스타킹 훔쳐보기> 시리즈에 보면, 위에 내가 설명한 감정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러니까, 보면 좋지만 안보고 있을 때는 딱히 생각나지 않는 것. 당시에 그 책 읽을 때는 도대체 그게 무슨 감정인지 알 수는 없으면서 '그러나 사랑은 아니다'라고 스스로 결론 내렸는데,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주인공 남자(이름이 조나단 이었는지 조단 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이젠 너무 오래되었어.)는 '레슬리 챔버레인'을 사랑했고, 그래서 뜨겁게 사랑을 나누었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다. 부와 명예를 가진 그에게 '질 플레밍'이라는 여자가 다가오는데, 남자는 질 플레밍을 보고 훅 빠져들지만, 그녀를 만나고 있지 않을 때는, 즉 일을 하거나 할 때는 그녀의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그녀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 조차 없었던 것. 전화를 받고서야 비로소 '아, 그녀!' 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도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를 왜 평소에 나는 생각하지 않지?'에 의문을 잠깐 갖긴 하지만, 어쨌든 그는 질 플레밍과 결혼을 한다. 결혼하고 나서 그녀와 다정하게 지내고 그녀에게 관심을 많이 보이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자신이 그리워했던 레슬리의 모습을 질 플레밍에게서 자신도 모르는 채 기대했다는 것.....
남자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내와 사이좋게 지내면서도, 내내 레슬리를 생각했다. 티나지 않게, 조용히, 자신이 혼자 있을 때. 그 생각은 애써 생각했다기 보다도, 어떤 강한 그리움 이라기 보다도 뭐랄까, 그냥 마음 한 곳에, 이를테면 마음 속 성소라고 해야할까, 그냥 같이 있고 살았다는 것. 무엇이 사랑이고 사랑이 아닌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지만, 왜 그렇게 계속 마음에 두는 상대와 함께 살 수 없는걸까?
아, 저건 팬심 생각하다 떠오른 책에 대한 얘기였고, 팬심 얘기를 왜 하게 됐냐면, 나에게 팬심이란 게 드디어 생긴 게 아닐까 싶어졌기 때문이다.
주말에 부산에 가 윤김지영 샘의 강연을 듣고 왔다. <백래시와 남근선망>이라는 강연이었다. 몇차례 윤김쌤 강연을 들었던 적이 있고, 멀리 움직여 들으러 간 적도 있었고,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보내기도 했어서, 이제 선생님과는 인사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강연 시작 전에 친구들이 '저기 선생님 계셔' 하고 알려주어(내 친구들은 진짜 짱이야) 가서 선생님께 인사를 했다. 이 멀리까지 오셨냐며 선생님은 반가워 하셨고, 나 역시 선생님 응원한다고 말씀드리며 간단히 안부를 전했는데, 아 선생님 너무 좋아..
그렇게 강연을 들었는데, 강연 너무 좋았다! 나를 포함해 여자 다섯명이 들었는데, 다들 강연 너무 좋다고 돌아가는 길에 후기를 나누었다. 무엇보다 질의응답 시간이 좋았다. 나와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10-20대의 여성들이었는데 게다가 백프로 탈코한 여성들이었어. 와, 다들 어린 사람들이구나, 싶었는데, 질문을 얼마나 근사하게들 하던지. 첫질문은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인상깊었는데, 학계에서의 래디컬의 입지에 관련된 것이었다. 이에 선생님은, 자신 말고도 분명히 래디컬 학자들은 있다 하셨다.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분명히 더 있지만, 학생들이 더 많이 들어와 학계에 있어주어야 한다고. 수가 중요한데, 한 명이 래디컬 주제를 연구한다고 하면 무시될 가능성도 있지만, 여러 명이 래디컬 주제를 연구한다고 하면, '왜들 이걸 하려고 하는거지?' 하며 그렇지 않았던 교수들 까지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자꾸자꾸 더 들어와야 한다고 하신 거다. 질문과 대답이 너무 좋아서 감탄을 했고, 친구들과도 와 질문 진짜 너무 똑똑하다 얘기했다. 같은 강연을 들었지만 나는 이런 질문 생각도 못했는데. 아마도 내가 이미 학교에선 멀어진 사람이라 그랬던 게 아닐까.
그래서 아쉽고 후회가 됐다.
내가 학생이었다면, 내가 앞으로 대학에 가거나 혹은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러면 내가 기꺼이 그 수를 늘려줄 수 있을텐데. 아아, 나는 너무 멀어져 버렸구나 싶어진 거다. 공부할 수 있고 연구할 수 있고, 그렇게 학자 한 명에 더 래디컬을 늘려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나는 왜 여기까지 와버렸는가... 왜 이제서야, 이렇게 늦은 나이에서야 후회하고 있는가.
너무 아쉬웠지만, 어쩌면 그것도 내 운명의 흐름 가운데 지금이 가장 맞는 때여서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나이에 이렇게 되어버리고야 만 것. 여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인생의 지금 이 시점에서 래디컬이어야만 했던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야. 아마 내가 인생의 지금 이 시점에서 래디컬에 어울리는 무언가를 가장 잘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 이야기가 갑자기 또 새버렸는데, 그러니까 팬심, 팬심!
강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친구들이 이 얘기 저 얘기 하는데, 나는 돌연 크게 말했다.
"나 윤김지영 선생님 사랑하는 것 같아!"
친구들은 그걸 이제 알았냐고 했어.. 아, 몰라, 나 사랑하는 것 같아! 그렇게 나에게 팬심이 생겨버린 것 ♡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 나로서는 약간 고개 갸웃해지는 대답이긴 했다. 그런식으로 생각해볼 만하다, 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뭐랄까 속시원하지 않은 느낌. 씅에 차지 않는 느낌이었는데, 어쨌든. 학자로서의 언어로 더 많은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여지면, 쓰여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팬심 같은 거 갖지 않는, 팬심 욕망 없는 나이지만, 사주볼 때 사주 선생님은 내게 '골수팬'을 늘상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골수팬이라니, 으음, 좋군, 했는데, 막상 골수팬이란 단어를 대입해보니, 아아, 나 팬심은 비로소 생겨났지만 골수팬이 될 지는 잘 모르겠다. 골수팬은 역시 내가 될 수 없는 어떤 성질의 것....
- 지금 읽고 있는 책은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다. 사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이니만큼 내가 큰 관심을 안가지고 있었고, 뭔가 내가 딱 싫어하는 어떤 힐링서중 하나일 것 같아 흐음- 했었는데, 얼마전 도서관에 갔다 표지를 보고는, 한 번 봐볼까? 하고는 빌려왔더랬다. 아, 그런데 너무 좋은 거다!
그러니까 김승섭이 하려는 얘기가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것이다. 책의 이 소제목만 봤을 때도 감이 잘 안잡혔는데, 본문을 읽으며 비로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사회역학은 그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몸에 질병으로 남긴 상처를 해독하는 학문입니다. (p.14)
허리가 아파도 병가를 쓸 수 없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바로 옆 건물 병원의 의료기술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는지요. (p.7)
결과적으로 그는, 차별받는 곳에 있는 약한 사람들, 소수자들에게 연대하고자 한다. 그들의 편에서 질병을 연구하고자 하는 거다. 그렇게 여러 사례들이 나오는데,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어서, 그러니까 내가 신경쓰지 않았고 또 내가 보지 않았던 곳을 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큰 다행으로 느껴지는 거다.
2009년 제가 미국에서 박사과정 학생이던 때 쌍용자동차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유병률을 기사를 통해 처음 확인했고, 무엇인가 잘못된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몇 년 뒤 연구를 시작하면서 분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다시 원데이터를 받아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그대로였습니다. 2009년 파업에 참여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 20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05명(50.5%)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것으로 분류된 것입니다. (p.87)
내가 감탄한 건 바로 이 부분이었다. 같은 기사를 내가 봤다면, 아마 그 아픔에 공감은 했을지언정 그 데이터를 보고 '무엇인게 잘못된 게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는 것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을 거라는 것. 그런데 김승섭은 그걸 보고 생각했다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관심있게 보는 분야가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이 이 세상이 유지될 수 있다는 거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분명 따로 있지만, 이런 내가 관심 갖지 않는, 이런 내 신경이 미치지 않는 여러 부분에서도 당연히 중요한 문제들이 있고 사회적 문제, 현상들이 있다. '나'라는 한 개인이 관심을 쏟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내가 기본적으로 어떤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을 지언정, 그 모두에 시선을 고루 뿌리며 행동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자신이 가진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 그래서 세상은 돌아가고 있는 것. 일전에 '엘린 켈지'의 <거인을 바라보다> 읽으면서, '와, 세상에 고래를 연구하기 위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어!' 라고 감탄했는데, 김승섭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자 한다. <랩 걸>의 '호프 자렌'은 온갖 식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고, 누군가는 펭귄에, 누군가는 동물보호에, 누군가는 육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얘기를 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가진다는 건, 정말이지 근사하지 않은가!
여동생과 남동생에게 이 책을 선물하기 위해 오늘 두 권을 주문했다.
- 출근시간이 평소보다 좀 더 빨라졌다.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고 평소보다 일찍 라디오를 켜두었다. 출근 준비를 하며 듣는 라디오에서는 '귀여운 공격성'에 대해 얘기했다. 귀여운 공격성?
그러니까
이를테면 이런 것이란다. 너무 귀여운 존재에 대해 '으악 귀여워~' 하다가 '깨물어주고 싶다' 혹은 '꼬집어주고 싶다' 라고
생각하고 발화하는 것, 그것은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이라는 것. 귀여운 것에 홀릴까봐 다시 이성을 끌어모으기 위한 반사작용이라는
거다. 오?!
너무 귀여우면 깨물어주고 싶고 꼬집어 주고 싶은 거 몰라? 라고 누군가 내게 말했을 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했었다.
귀여우면 예뻐해줘야지, 왜 꼬집어? 꼬집으면 아프잖아.
나는
내가 가진 생각이 당연한거라 여겼지만, 오늘 라디오에서 귀여운 공격성에 대해 듣고는, '귀여워서 꼬집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내 생각보다 더 많으며, 그들의 무의식에는 어쩌면 '귀여움에 홀려버려 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 같은 게 있었던
것이겠구나, 싶었다. 반면, 아아, 나란 여자는 얼마나 대단한가. 나는 귀여움 앞에 이성을 잃는 사람이 아니었어. 나는 홀리지
않아.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무엇도 나를 홀릴 수 없다.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었어. 귀엽다고해서 공격성이 나타나진
않는다. 나란 여자, 멋진 여자. 진짜 세상 최고다. 홀리지 않아, 나는 그 무엇에도 홀리지 않아. 나는 귀여움과 다정함이 세상을
구원할거라 생각하지만, 그렇다해도 귀여움에 홀리지는 않는 사람이야. 세상 냉철한 여자, 칼같은 여자, 차가운 도시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