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시리즈 3권의 초반까지 읽었다. 이 책 들고 다니기 너무 무겁고 사이즈도 큰데다가 하드커버도 아니라 가방에서 빼고 또 넣을 때 표지가 망가져... 해서 3권은 전자책으로 사봤는데, 1,2권을 읽어왔기 때문인지 예상보다 잘 읽히고 있다.


엘레나 페란테는 아주 영리하게 여자들이 어릴적부터 성인이 되어가면서 어떤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있는지를 말한다. 결국 그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다는 걸 알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책속에 등장하는 남자들을 보는 건 너무 불쾌하다. 제대로된 놈이 하나도 없어. 결혼한 첫날 아내를 때리는 폭력 남편이 나오는데, 그전에는 딸과 여동생을 때리는 아빠랑 오빠도 나온다. 아 너무 해로워..아빠랑 오빠한테도 맞고 살았는데 결혼하니까 신랑도 때려. 너무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런데 왜 자기를 이렇게 화나게 하냐면서 때려... 야... 세상 쓰레기들이구먼. 매너 좋은 남자들만 있는 천국인줄 알았던 이탈리아도, 뭐 여기랑 다를 바가 없어. 지구상에 남자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 마찬가지인가보다.


때리는 놈, 성적대상화 오지는 놈만 나쁜 놈인줄 알았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갈수록 점점 더 쓰레기 면모를 보이는 새끼가 나온다. 사실 1권에서도 그 새끼는 신경쓰였다. 그 새끼 씬에서 나는 크게 상처받고 우울했더랬다. 그런데 2권에서는 아예 후벼파는데, 단순히 사랑이 어긋나서 후벼파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한 여자에게도 개쓰레기가 된다. 여자들 후리고 다니는 지 아버지 너무 싫다고 경멸하고, 공부를 많이 하고, 세상 불의를 참을 수 없어하고, 책을 읽고 토론하고...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해야 한다고 혁명을 부르짖는 새끼가, 이미 남편 있는 여자에게 끈질기게 구애해 '너를 위해 내 모든걸 버릴거야' 하고서는, 여자가 임신하고나자 도망가버려... 야.... 세상 쓰레기.....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이자식한테 빡쳐하자, 나보다 먼저 읽은 친구들이 내게 조언해주었다. 읽지마라, 그 새끼 점점 더 심해진다, 하고. 두 명의 친구가 그 새끼 더 심해진다고 말하는데, 나는 아니, 어떻게 이보다 더 심할 수가 있지? 하고 3권을 잡았다가 뒷목잡고 쓰러짐...



모든 여자들이 원하는 남자, 부드럽고 다정하고 사랑해줄줄 아는 남자......라는 이 남자가, 임신시켜놓고 도망친 게 한 번이 아닌거다. 지역마다 아이 낳고 도망다니는 새끼인건가... 아 너무 딥빡이 와서...



여러분 이 책 어떻게 끝까지 다 읽었나요? 그런데 이보다 더 심해진다고요???


줌파 라히리는 자신의 책 [저지대]에서 늘 혁명을 부르짖는 남자,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남자가, 집에서는 엄마가 밥 차릴 때 손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지적했는데, 하하하하, 엘레나 페란테는 이 여자 저 여자한테 자기 애를 낳게 하고 도망가는 남자를 보여주고 있다. 히융-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레누는 그에 대한 마음을 접지를 못하네. 이 여자한테 애 낳고 도망치고 저 여자 임신시키고 도망친 그 남자를.... 진짜 내가 양 어깨를 붙들고 흔들면서 '정신 똑바로 차려, 그 새끼 쓰레기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나. 레누는 이 모든 것들을 알면서도 자기 좋을대로 해석해버리는데...



누구나 나쁜 사랑에 빠진다. 나 역시 어리석은 사랑을 했던 적이 있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러운 기억도 갖고 있다. 내 인생에서 그 때를 확 지워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그 전과 후에 내가 내 행동의 어리석음을 몰랐던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를 합리화 하면서, '나는 달라'라고 하면서 그 길을 갔다.



나는 레누가 이 어리석은 마음을 접길 바라지만, 어떤 사람들은 꼭 자기가 해봐야만 '아, 이게 안되는 거였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는다. 나도 이런 부류의 사람이고. 레누도 그런 것 같다.

이 책의 남자 등장인물들은 죄다 싫고 여자 인물들에게도 공감이 안되지만, 레누가 가장 어리석을 때, 나는 레누를 이해한다. 판단이 흐려질 때, 자기 합리화를 할 때, 결정적으로 사랑에 실패했을 때, 나는 레누가 되어서 속상하다.



아무튼 온갖 착한척 신사다운 척 다 하면서 임신과 출산과 양육을 여자에게 내팽개치고 돌아댕기는 저 새끼 때문에 나는 오늘 대단히 빡이쳤다.....



아, 이 책에는 시리즈 내내 쓰레기같은 남자,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었던 그런 남자들이 계속 나온다. 그리고 여자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당한 성추행들은, 나의 무엇 때문일까?'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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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4-05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는 동안엔 빡침의 연속입니다..;;;;; 레누의 갈팡질팡이 정말 맘에 안 들고 그러면서도 이해는 되기도 하고.. 그 주변 남자들의 행태는... 으악. 그래도 좋은 소설이었어요...

다락방 2018-04-06 10:02   좋아요 1 | URL
저도 레누 너무 짜증나고 바보같고 그런데 그러다가 이해가 돼요. 특히나 바보같은,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의 레누를 보노라면 너무나 답답하면서도, 그런데 나라면? 하고 스스로 되묻게 되더라고요. 나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하고요...

저는 이 책이 이탈리아에서 사는 여성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탈리아판 82년생 김지영이랄까요... 아무튼 완독하도록 하겠습니다!

비연 2018-04-06 20:00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이 이탈리아 보통 여성들의 삶을 대변한다고 느끼며, 어쩜 어느 나라나 여성들이 처한 상황, 주변의 인식, 인생 등이 이리 비슷한 모양새일까 싶어 슬프기도 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세요, 다락방님.

단발머리 2018-04-0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락방님의 ˝저 새끼 때문에 나는 오늘 대단히 빡이쳤다.˝ 이 글을 기다렸다고 말하면, 저는 나쁜 사람이지요. ㅎㅎㅎㅎㅎㅎㅎ
사실, 저도 읽고 나서, 이 노무의 ㅅㄲ 때문에 딥빡친다, 이렇게 쓰고 싶었는데, 아....
이 딥빡침이란 다락방님 전용이 아닌가 싶어 사용을 자제했더랬죠.

음... 이런 대목 있잖아요. 레누가 ‘Chabod‘ 읽어봤냐 했더니 그 놈이 안 읽어봤다, 하면서 그 반응이요.
내내 듣기만 하던 레누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할 때, 그 놈의 반응 말이예요. 저는 그 장면이 아주 딱 떨어지더라구요.
그래, 너는 니 얘기만 중요하지. 네가 아는 것만 의미있는 거야. 그래서 다른 사람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지. 너는 너만 중요해.....
(이건.... 2권에 나오는 얘기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

굳이 알려드리고 싶어요. 앞으로도 빡칠 일이 계속 나올것이며, 그 하이라이트는 비닐 포장 4권에 있습니다.
그대의 완독과 더블빡침 페이퍼를 기다리며.....^^

다락방 2018-04-06 10:0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께는 ‘딥빡침‘을 사용할 수 있는 쿠폰 다섯개를 드리겠습니다. 원하실 때 사용하세요. 단발님께만 특별히 드리는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말씀하신 대목 기억나요. 2권이었어요.
저도 그 부분 읽으면서 ‘아 이 새끼 맨스플레인 오지는 새끼구나‘ 싶었어요. 자기가 아는 거 잘난척 하기는 좋아하면서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여자가‘ 말을 하면 그걸 견딜 수가 없는거죠. 자기가 더 아는척 해야하는데! 제대로 듣는 자세를 갖추지 못한, 그 특유의 ‘내가 똑똑하고 내가 잘났지‘ 하는 맨스플레인 남자의 전형인 놈.. 아오 빡쳐. 그러면서 세상 불의를 못참는 듯하고 혁명을 해야 한다고 하고 세상 정의로움을 자기 몸에 쳐바른듯 하지만, 결국 임신시켜놓고 도망다니는 새끼죠... 아오-


4권까지 저는 대체 얼마나 빡치게 될까요...

유부만두 2018-04-05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경고했어요.

단발머리 2018-04-05 16:5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단호하신데 죄송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4-06 10:06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 최근에 글 쓸 의욕도 없고 다 지겹고 무기력하고 의욕 없었는데, 와, 이 책을 읽으니 분노가 또 저를 건드려서 이렇게 페이퍼를 쓸 수 있게 되었어요. 분노! 빡침! 그것은 대단한 힘인 것입니다.

시작한 이상 끝을 보겠습니다. 화이팅!

moonnight 2018-04-05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요 사놓고 당연히 아직 안 읽었거든요. 읽기 두렵네요. ㅠㅠ 저역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다니기에 타인의 연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수는 없지만... 저런 파렴치한 ㅅㅋ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바퀴벌레보다 질겨-_-

다락방 2018-04-06 10:08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말씀이 정답입니다.

제가 저기서 말한 저 새끼도, 자기가 한 번 그런 짓을 저질렀으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다음부터는 그 잘못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잖아요? 그런데 그런 면조차 갖고 있지 않은 어마어마한 쓰레기인 것입니다. 자기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같은 죄를 계속 짓는 비열한 .... 하아- 저런 놈들이 지구상에서 아주 질기게 살아남아 자기 씨를 뿌리고 있어요....

hellas 2018-04-05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숨.... 다락방님 빡치신 지점에 저도 매우 민감한데 왜 여러사람들은 이 책을 아름답다고만 한걸까요. 저도 책장에 있는데. 아주 나중에 읽게 되던지... 안읽던지 할 것만 같아 우울합니다

다락방 2018-04-06 10:11   좋아요 0 | URL
제게 이책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제가 위의 댓글에서도 썼지만, 이 책은 아름답다기 보다는 <이탈리아판 82년생 김지영>같은 책이에요. 나폴리의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무수히 맞닥뜨리는 비열한 남자들을 수시로 보여주고, 그 안에서 여자로 살아가면서 자꾸 자기 검열을 하는 여자를 보여줍니다. 여기나 저기나 남자들 있는 곳은 지옥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아마도 그런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리베카 솔닛도 자신의 책에서 페란테를 언급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저는 시작을 하였으니 끝을 보겠습니다. 이들의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요.

헬라스님, 저런 식으로 빡치는 부분은 계속 나옵니다.....

clavis 2018-04-08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이 부분이 제일 좋네요

˝레누가 가장 어리석을 때 나는 레누를 이해한다˝저는 태어나서 어제가 세상 가장 어리석었었는데 그 때 락방님은 저를 이해하셨을겁니다.레누도 이해하셨으니까요

세상의 누님과 같은 우리의 락방님
오늘은 제가 여기서 좀 머물다 갑니다

다락방 2018-04-09 14:22   좋아요 0 | URL
저는 제가 되게 똑똑한 줄 알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손가락질하던 어리석은 짓을 제가 늘상 하면서 살더라고요. 아, 다른 사람 욕할 게 못되는구나. 사람은 언제든지 어리석어질 수가 있어...
저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그 순간 만큼은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어쩌겠습니다, 그러고 말았는걸...

원하시는 만큼 머물다 가세요, 클래비스님.

purenarsis 2018-05-0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딥 빡침... 궁금해서 서평을 읽어보게 됐어요.
ㅎ.... 너무너무 빡칠까봐서.... 책에는 손이 안갈 거 같아요. 하지만 서평 잘 읽었어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읽고 싶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구요....
애 책을 읽는다면 우울하고 그늘진 내 일상에 또다른 위로로 힘을 주기도 하겠지만..... 다락방님 서평만으로도
책을 이미 빡친 기분으로 읽은 느낌입니다.
알라딘 서평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좋은 서평 부탁드려요.

다락방 2019-04-05 11:58   좋아요 0 | URL
아 이 댓글을 이제야 봤네요. 일 년이 지난 후에... 일 년 사이에 82년생 김지영은 읽으셨는지, 엘레나 페란테는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종종 알라딘 서재에서 뵙도록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