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한국의 글쟁이들/(19) 건축저술가 임석재 교수 ‘글쟁이 팔자’란 것이 있다면 건축사학자 임석재(46·이화여대 건축과) 교수가 꼭 거기 해당되지 않을까. 1995년 첫 책 <추상과 감흥>을 낸 뒤 지금까지 12년 동안 임교수는 번역한 책을 빼고도 모두 28권의 책을 썼다. 지금 우리 출판계에서 건축책을 주기적으로 쓰는 필자는 많이 잡아야 서너명 수준. 건축에 대한 우리 저자의 책을 읽고자 한다면 임 교수의 책을 피해가기란 쉽지 않다. 이런 성과가 모두 임 교수 특유의 글쟁이 기질의 소산이다. 미국 유학시절 스승들이 대부분 건축저술가인 것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살기로 결심한 뒤로 임 교수는 마치 글쓰는 기계를 연상시키듯 책을 쓰는데 매진하고 있다.

임 교수처럼 학문적 글을 쓰는 저술가들은 자신이 직접 분류, 정리한 자료라야 자료로서 활용할 수 있는 어려움 때문에 자신만의 도서관을 홀로 만들게 된다. 임 교수는 특히나 그런 학자들의 숙명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이다. 임교수가 서울 근교에 따로 마련한 자료실 겸 집필실인 방 다섯개짜리 아파트는 부엌과 자는 방을 뺀 모든 공간을 책들이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벽면을 모두 책이 둘러싼 마루 가운데에는 소파 대신 큼직한 책상이 자리잡고 있다. 슬라이드 사진 필름도 방 하나를 차지한다. 거의 원서가 대부분인 책들이 약 1만권, 슬라이드필름이 20만장이다. 역사자료는 시대순으로, 인물자료는 알파벳순으로 정리해 놓았다. 본인 스스로도 “모은 책이 아까워서 딸에게 건축을 전공해보라고 꾀고 있다”고 할 정도다. 바보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자료가 많이 필요하냐고.

“건축 자체가 종합학문이에요. 그래서 책을 쓰는 것도 종합적인 시각을 필요로 합니다. 건축현상의 사회문화적 맥락은 물론 배경역사와 철학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경제와 공학기술도 알아야 하구요. 그리고 예술적 심미안이 있어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건축책은 글과 이미지를 함께 다룰 수 있어야 쓸 수가 있어요. 필자가 직접 이미지를 해결하지 못하면 글과 이미지가 잘 조화를 이루는 책을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건축은 종합학문…자료 불을 수밖에 자료가 많아야 하는 이유는 고스란히 건축책 쓰는 어려움에도 해당된다. 다른 인문학과 달리 노트에 볼펜만 들고 책을 쓸 수 없어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나가야 하고, 수많은 관련지식과 시각 가운데 무엇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머리에서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도록 평소 많은 것을 읽고 생각해놓는 수밖에 없다. “자료란 눈덩어리 같아서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야 굴러가요. 물론 사놓고 평생 안볼 책도 있지요. 그런데 그걸 버리면 나머지 자료들도 같이 죽어요. 경영효율로는 설명이 안되는데 학문적으로는 그래요. 자료가 많아지면 생각이 넓어지는 효과도 있어요. 자료가 오히려 연구주제를 넓혀주기도 하는거죠.” 하지만 그런 당위성과 의무감보다도 오히려 자료정리를 취미처럼 즐기는 ‘체질’이 더 필요해보였다. 실제 임 교수의 자료정리를 보면 거의 ‘애정’ 수준이다. 슬라이드 20만장을 따로 보관한 방에는 필름 보호를 위해 곳곳에 습기제거용품이 놓여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슬라이드철 사이에 끼우려고 크기를 맞춰 자른 신문지 1만장을 따로 준비해놓았다. “습기 제거에는 신문지가 최고거든요. 제가 동네 돌아다니면서 신문지를 모아와 제자들 도움받아 자른 겁니다.” 그 말을 듣고나니 자료철 하나하나 손글씨로 써붙인 항목 인덱스와 책장에 붙인 자료 구분표는 차라리 대단치도 않아 보였다.

임 교수의 일상은 모든 것이 글쓰기에 맞춰져 있다. 방학이면 해외로 취재를 가고, 평상시에는 전국 답사를 한다. 요즘처럼 방학을 맞아 집중적으로 책을 쓸 때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오후 6시까지 운동시간 1시간과 낮잠 20분을 빼고 오로지 글을 쓴다. 대신 글쓰는 장소는 자주 바뀐다. 노트북들고 거리로 나가 카페에서, 다른 대학 식당에서, 때론 패스트푸드점에서 혼자 원고를 쓴다. 약간 트이고 약간 소음이 웅웅거리는 공간이 머리에 더 자극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도 멋적은듯 웃는다. “저도 왜 이러고 사나 싶을 때가 있어요.” 10여년만에 28권의 책을 써서 독자들과 건축을 이어줄 수 있었던 비결은 실로 단순했지만 대신 확실했다. 이렇게 생활하면서 고급학술지부터 서민들 골목길 풍경까지 훑고 다니다 보면 생각이 범벅이 되면서 책 쓸 주제는 절로 떠오른다고 한다. 일단 주제를 정하면 2~3일 다른 작업을 쉬고 기획을 한다. 그 다음 항목별로 노트북에 바로 풀어쓰면서 인용도 집어넣은 다음에 정밀한 자료를 가지고 와서 처음부터 다시 손을 본다. 그 다음 사진자료를 가져와 내용을 고치는 3단계를 거쳐 책을 쓴다.

임 교수는 “교수라는 직업과 학술저술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학술저술을 고를 것”이라고 잘라 말하지만, 그가 이렇게 책을 많이 쓸 수 있는 것은 물론 교수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덕이 크다. 해외취재만해도 경비 600만~700만원에 필름현상비만 300만원 넘게 든다. 이를 포함한 1년 연구비는 대략 2000만~3000만원 선. 반면 들어오는 수입은 훨씬 못미친다. 건축책은 대중적인 것이라도 1만부는커녕 3천~4천부를 넘기기도 힘들다. 이런 어려움속에서도 임 교수는 더욱 쓰는 책의 종류와 폭을 넓히고 있다. 초기 정통 학술서에서 시작했지만 대중건축서로도 <건축 우리의 자화상>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등을 냈고, 전통건축책도 7권을 냈다. 서울 달동네 골목길들을 답사한 <서울 골목길 풍경>같은 독특한 책도 있다.

독특한 사관 깃든 ‘서양건축사’ 그렇지만 역시 가장 주가 되는 작업은 역시 전공인 서양건축사 책들이다. ‘임석재 서양건축사’란 부제를 달고 있는 5권짜리 시리즈가 현재 <땅과 인간> 등 3권까지 나와 있다. 한국학자가 서양건축사 통사를 쓴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는 노작이다. 여기에 모두 30여권으로 기획해 9권까지 펴낸 ‘서양근현대건축사 시리즈’가 있다. 그의 건축사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사학자인 그의 독특한 ‘사관’이다. 그는 건축사를 ‘중층변증법’이란 자기만의 개념으로 풀이한다. 해양성과 대륙성, 남성성과 여성성, 정주성과 유목성 등 대립되는 수백가지의 쌍개념들의 복합작용으로 건축을 분석하고 이를 겹겹이 교직해 특성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건축가 주인공인 소설도 계획중 앞으로 쓸 책 계획에는 사진집 같은 예상 가능한 것들과 함께 뜻밖에도 ‘미스터리 소설’이 들어 있다. 이탈리아의 천재 건축가로 라이벌 관계였던 베르니니와 보로미니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17세기 이탈리아 가톨릭 문명을 총괄해 알려주는 책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거의 건축을 소재로 하면서 책의 십진분류법 모두에 저자 이름을 올리겠다는 태세다. 글쟁이 팔자를 누가 말릴 수 있으랴. 새로운 건축책을 기다리는 독자들은 임 교수의 새 시도를 더욱 부추길 듯하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임석재가 말하는 내 책은… <추상과 감흥> (절판) 문예마당(1995) 20세기 서양 모더니즘의 문을 연 사조인 비엔나 아르누보를 다룬 건축이론책이다. 당시 건축들의 내용 속에 20세기 현대 서양건축이 지닌 고민의 단초들이 들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 현대 건축의 고민이 어디서 출발했고 어떤 연장선상에 있는지 설명하고자 했다. 이후 쓴 책들보다 학문적 완성도가 더 높았다고 보는데 너무 안팔려 절판됐다.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대원사(1999) 알기 쉬운 대중건축책으로 우리 전통건축을 서양건축에까지 접목시켜 보는 비교건축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건축 개념이 대부분 서양 개념인 점을 감안해 전통건축을 현대적 시각으로 풀이해봤다. 그동안 건축책들은 전통건축을 전통시각만으로 보고 단순하게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역사 정보로 다뤄왔는데, 이 책은 전통건축을 현대적 분석을 통해 지금 우리의 생각으로 보고자 했다.

<임석재 서양건축사 시리즈>북하우스(전5권·3권까지 나옴) 인간을 매개로 서양문명을 크게 5단계로 나눠 기술한 서양건축통사. 땅-기독교-하늘-인간-기술 등 다섯가지 문명단계별로 건축물을 중심에 놓고 인간에 대한 서양문명의 시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려 했다. 건축책으로서는 드물게 서양어와 우리말 대응사전 등 인덱스와 부록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이 특징이다.

<한국전통건축과 동양사상> 북하우스(2005) 대표적인 동양사상이자 지금 우리 기본정서를 이루고 있는 유·불·도 3대 사상의 관점에서 전통건축이 갖는 의미와 철학, 미학 등을 해석한 책. 우리가 자신을 봤을 때 우리의 특징으로 제시할 수 있는 국민성, 민족감성, 전통정서 등이 건축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분석했다.

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397901&year=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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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이후로 두번 째. 카프카도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기대치를 만족시켜준 책은 아니었다. 난 사실 무라키미 하루키의 글이 어떤 점이 좋은지, 잘 모르겠다. 못 쓰는 작가 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점에 많은 사람들이 이끌려 그의 글을 탐독하게 되는지를 말이다. 감상이란 것이 객관화된 정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 테니, 하나의 똑같은 작품을 봐도 사람마다 느끼는 게 이렇게 다른가 보다. 그때의 감상과 이번 감성도 큰 차이는 없이 비슷한 느낌의 감상이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어둠의 저편이 좀더 나았던 것 같다. 사실 이런 내용의 이야기는 줄거리로 간략하게 소개하는 게 쉽지 않다. 하루키의 책을 꾸준히 여러 권을 섭렵했더라면 나름 기존의 소설들과 비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는 점.

영화를 보여주듯이 소설을 표현한다. 밤과 낮, 빛과 어둠, 인간의 삶과 사회의 실존적 의미, 욕망의 대상과 욕망의 주체 그리고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만드는 '기억'이라는 원동력을 생각해본다. 특히 기억에 관해서 표현한 글귀는 인상 깊었다. 마리처럼 욕망의 주체가 되어서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 이런 유의 소설은 확실히 나와는 안 맞는 것 같다.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이야기 안에 담긴 깊은 의미를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이 소설은. 난 그런 안목 아직은 없는 것 같아 이해도가 떨어지는 모양이다. 쩝.

비교적 많은 의미가 담긴 많은 이야기였다. 뒤의 해설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해하기 힘들었을 듯 싶다. 하루키라는 작가를 좋아하시는 독자 같으면 나름 괜찮은 독서가 될 테지만, 작가 이름만 알았지 하루키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시고 이 책으로 하루키의 글을 만나신다면 아마도 좀 회의적인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너무 회의적인 멘트를 날리고 있는 걸까. 다른 사람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문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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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소설가 조세희씨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이 드라마로 제작·방영된다. 한국방송 1텔레비전은 다음달 3일 <에이치디(HD) 티브이 문학관-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극본 박진숙, 연출 김형일· 밤 10시20분)을 내보낸다.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지만 드라마로 제작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난쏘공>은 주인공 난쟁이네 가족을 통해 1970년대 도시 빈민층의 좌절과 애환을 그린다. 12편의 연작 소설로 이루어진 원작의 네번째 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원작과 달리 난쟁이가 죽은 뒤 가족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가고 큰 아들이 살인죄로 사형 선고를 받는 등 뒷이야기를 덧붙인다. 작가 박진숙씨 “70년대 시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2007년 현재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그 시대 사람들의 얘기를 어떻게 전달할지를 고민했다”며 “노동운동 측면보다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력한 가장이 가족을 위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족애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고 말했다. 원작 소설에서 단연 백미로 꼽히는, 난쟁이네 가족들이 집이 헐리는데도 식사를 하는 가슴 뭉클한 장면을 보여주는데 공을 들였다고 한다.

드라마는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원작의 분위기를 충실히 담는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사는 낙원구 행복동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고자 했다. 김형일 피디는 “원작에 나오는 것처럼 방둑이 있고 공장이 있는 산동네를 찾기 힘들었다”며 “한 공간에 다 담을 수 없어 서울 상도동과 하월곡동, 부산의 물망골 등 세곳을 오가며 촬영했다”고 전했다. 이미 산동네 대부분이 재개발이 된 터라 마지막으로 남은 산동네를 어렵게 찾아 찍은 것이란다. 사실적 묘사보다는 비유적인 표현이 많은 원작의 느낌도 담아냈다. 박 작가는 “난쟁이가 달을 향해 쇠공을 던지는 모습 등 상징적인 의미를 띠는 장면을 살렸다”고 했다.

연극배우 강성해가 주인공 난쟁이 역을, 중견배우 고두심이 난쟁이의 아내 역을 맡았다. 그룹 인디고 출신의 신인배우 서한과 영화 <다세포소녀>에 나온 유주희가 각각 난쟁이의 둘째아들 영호와 막내딸 영희 역으로 출연한다.

<… 티브이 문학관>에서는 <난쏘공> 이외에도 다음달 2일에는 방현석 원작의 <랍스터를 먹는 시간>(밤 10시), 4일에는 박민규 원작의 <카스테라>(밤 10시20분)를 방송한다. <… 티브이 문학관> 100선 프로젝트 홍성덕 팀장은 “9월쯤에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김훈의 <언니의 폐경>, 정미경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원작으로 한 작품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한국방송 제공

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1916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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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책은 이번이 두번 째였다.
해별의 카프카 보다는 어둠의 저편이 더 나았던 것 같은데.
어렵지는 않았는데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내용이었다.

리뷰는 내일로 미루고 싶다.
생각이 정리가 안 돼서...
상실의 시대도 못 읽어봤는데...

필독서로 꼽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소설.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읽는 책은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하루키의 명성 만큼 난 큰 의미나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나의 이해도가 부족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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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강 지음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우선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조금 의외라는 느낌이 먼저였던 것 같다. 약간의 놀라움도 덧붙여서 말이다. 독자로서 멀리서나마 작가를 바라보고 생각해왔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기에. 한강이 직접 만들고 부른 노래라. 예전에 라디오 주파수를 여기저기 움직이다가 목소리에 끌려서 듣게 된 프로그램이 있었다. 진행자가 누굴까 했는데 바로 한강이었다. 목소리를 들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뭐랄까....크게 말하지 않고 소곤소곤 말하는 소리에 온몸이 귀기울이게 되는 목소리랄까. 한마디로 끌리는 음성의 소유자 같다. 이런 책과 음반을 낼 것이라고는 본인 자신도 놀랐다는 말이 맞는 말 같다. 우연하게 이루어지는 일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는 것 같다.

책은 작가가 어느 시절, 어떤 시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준으로 그 노래와 이야기를 함께 싣는 식이다.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책을 읽었다. 사실 난 노래를 자주 흥얼거리는 편이 아니다. 재미없지만 그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듣는 편이다. 내 삶의 어떤 부분을 떠올릴 때, 기억의 저편을 떠올릴 때, 그때 나와 함께한 내 노래들이 어떤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퍽 의미 있는 작업 같다. 작가의 이야기를 눈으로 읽는 것. 작가의 육성으로 부른 노래들. 얌전하게 차분한 느낌을 주는 글귀들. 모두 마음에 들었다. 어느새 가만가만히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를 찾았다. 섣부른 기교 없이 담담하게 수수하게 부르는 노래들- 어쩐지 한번 같이 불러보라고 기회를 주는 듯하다. 작가가 꼽은 노래 중 모르는 노래는 모르는 대로, 좋아하는 노래는 좋아하는 이유로 담겨 있어서 좋았다. 겹치는 노래들은 왠지 통하는 느낌에 기분 좋았다는. ^^

노래가 없다면 얼마나 세상이 삭막할까. 생각해본다. 노래는 꼭 필요한 것이니까. 그런데 난 요 며칠 삭막하게 지냈다. 음악 없이 노래 없이 말이다. 내 안에 잠시 멈춰있는 기억과 음표를 살포시 되살려준 노래 이야기. 겸손하고 조용한 재주 많은 작가가 부러워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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