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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위의 여자 ㅣ Mr. Know 세계문학 11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김영하의 산문집에 언급된 글을 통해 이 책을 알게 됐다. 당연히 '존 파울즈'란 작가도 처음이다. 약간의 내용 언급은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소설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소설 쓰는 행위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사유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란 것이 새삼 색다른 재미를 준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생각해보지, 아니 느껴보지 못했었던 것 같다. 1867년.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무겁지도 가볍지만도 않다. 어쨌든 잘 읽히는 소설이다. 꼭 한 세기 전의 시대를 구현해내는 작가의 역량과 그 시대에 살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사이는 긴밀 그 자체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것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이 출판된 연도가 1969년이니까. 4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소설이다. 소설은 잘 진행되어가다가도 멈춘다. 작가가 멈춰버린다. 작가는 보란듯이 거침없이 등장해서 소설를 가로막고 소설 작법을 이야기하다가 또 어느새 소설 뒤에 숨어버리는 식이다. 세밀하게 표현된 이야기의 서술과 작가의 위트는 독자를 감탄하게 만들어버리고 현대적이면서도 동시에 옛스러운 면이 살아있는 소설은 새로운 소설 형식을 탄생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소설 자체의 내용만 짚어본다면 덜 새로울 망정, 자연스럽게 꾸며진 교모한 기발함은 이 책이 매력이 아닐까 싶다. 독자들을 쥐락펴락 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소설을 쓰지 않아도 소설 쓰기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는 면이 다분한 책이다. 적은 분량의 책이 아니었건만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책을 보기 전에 예상했던 기대치는 어느 정도 충족된 듯하다.
빅토리아 시대를 잘 모르지만 그 시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해준 소설이면서, 그 시대, 그 시간 속에서 바라보기에 납득하기가 조금은 버거운 상대였을 '사라'의 행보도, 그런 '사라'를 바라보며 점점 가까워지던 '찰스'의 모습도, 그리고 '어니스티나'의 모습도. 로맨스는 로맨스지만, 이야기는 모습 뒤에 숨겨진 시대의 억압을 생각해보게 한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기억의 저장소에 담아두고 떠올리고 싶은 구절 때문에, 아마도 이 책은 시간이 지난 후에 한번 더 꺼내 읽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떻게 이런 소설, 이런 형식으로 글을 쓸 수 있나. 난 그저 감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