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우효경 칼럼 '2050 여성살이' 중에서)
즐겁게 수다를 떨며 돌아오던 중 갑자기 그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효경씨, K선생님 있잖아, 영어 때문에 외국인(?) 남자 사귄대. 순전히 영어 배우려고. 저렇게 예쁘고 날씬한 여자가 못생긴 영국 남자 사귀면 의심해 봐야 되는 거지’라고 하셨다. 자, 그 자리에서 상대방의 체면과 앞으로의 관계를 생각해서 꾹 참은 내 질문을 이제 한번 물어보자. 영어 때문에 영국인 사귀면 무슨 큰일이 나는데?
연애를 시작하는 데는 누구나 목적이 있다. 당장 그 선생님도 조건 맞춰서 선보고 결혼하지 않았던가. 거기 대체 어디 ‘순수한 사랑’이 있단 말인가. 그놈의 순수한 사랑은 드라마에 있고 영화에 있고 소설에 있지만, 유일하게 현실에만 없는 것이다. 동포 사회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여전히 젊은 여자들이 외국 사람과 돌아다니거나 사귀는 걸 보면 양놈에게 안기는 ‘걸레’라느니, 목적이 있어서 그렇다느니,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저속한 말을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한심하다.
당신들의 연애는 얼마나 지고지순하고 아름답기에? 원래 연애란 상대방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발견하는 것이다. 조건 따져 선을 보는 것은 순수한 사랑이고 외국인과 사귀는 것은 흑심이라는 그 잣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왜 외국까지 나와서 죽어도 한국밥, 한국사람 고집하며 남의 연애에 간섭하며 판단하려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솔직히 나는 한국 남자 뒷바라지하러 여기까지 온 그 선생님이 영국 남자 잘 만나 연애하는 다른 선생님보다 훨씬 불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