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에서 발췌 편집)

“그는 허기진 개한테 밥을 주려다 손을 물리고도 다음날 그 개에게 다시 음식을 주러 가는 사람입니다. 광견병이 옮을 위험을 무릅쓰고서요. 9·11 이후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에 학교를 세우고 젊은이들이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팔을 걷어붙여 돕죠. 그는 영화와 삶이 일치하는, 감독으로서 인간으로서 존경받는 거장입니다.”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는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50) 감독을 이렇게 소개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 비해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가베> <순수의 순간> 등 20여편으로 칸국제영화제 등에서 호평을 받으며 세계적인 거장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9·11 이전 아무도 탈레반 정권 아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그는 아프간으로 넘어가 한 달 동안 난민수용소에서 울며 일했다. 그리고 그 땅의 고난을 역설적이게도 가슴 저미도록 아름답게 그린 영화 <칸다하르>를 내놓았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유일하게 디브이디로 나온 그의 작품이다.

그러나 정작 마흐말바프는 벌써 2년째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개미의 통곡>을 찍으려고 타지키스탄으로 출국한 뒤 그의 영화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정치권이 그를 감옥에 보내려 한다는 친구들의 귀띔을 전해들어 이후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허무는 그의 카메라는 가장 헐벗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비춰왔다. 이슬람근본주의자의 이율배반을 들추고 금욕 사회에서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휴머니즘이 그의 종교다. 그래서 그는 이란 혁명 전엔 부패한 팔레비 왕조에게, 그리고 혁명 뒤엔 현 이란 정부에게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됐다.

■ 나의 고통 = 좋은 영화는 고통을 받아야만 나온다고 생각해요. 제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혼하고 딱 6일 동안만 사이가 좋았어요. 그때 제가 생긴 거죠. 저를 키운 사람은 할머니였어요. 할머니는 신앙심이 너무 깊어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걸 죄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거리를 지날 때는 음악이 들릴까 봐 귀를 손으로 막아야 했죠. 무척 가난해서 13살부터 일을 해야 했어요. 어떤 때는 한번에 13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어요. 일상생활 자체가 너무 힘들었죠. 17살 때 (팔레비 왕조에 대항하는) 반정부 활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게 됐는데 체포될 때 배에 총상을 입어 100일 동안 병원 신세를 진 뒤 고문을 받았어요. 일주일에 한번 어머니가 면회를 오셨는데 벽을 사이에 두고 수십명이 떠들어대는 통에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4년 반을 감옥에서 보냈어요. 출소한 뒤 저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았어요. 요즘 감독들의 작품을 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별로 없는 거 같아요.

먼저 소설을 썼는데 그게 영화로 발전하게 됐어요. 그러니 영화가 뭔지 전혀 몰랐어요. 평론가들이 혹평을 쏟아 내더군요. 영화관련 책을 독파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감옥에서 익힌 학습법이에요. 뭐든지 한 가지 주제를 잡고 6개월 정도씩 거기에만 집중하는 거죠. 그러면 빨리 배울 수 있어요. 요즘 사람들은 정보가 너무 많은 통에 10초마다 관심사가 바뀌는 것 같아요. 처음엔 (호메이니가 주도했던 이란) 혁명을 옹호했어요. 하지만 혁명이 해방과 정의를 가져다주지는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비판적으로 변해간 거죠.

■ 나의 영화 = 가난한 사람들을 찍으려고 반드시 가난해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하지만 자기 삶에서 겪은 고통을 기반으로 예술을 해야 하죠. 고통이 없으면 영화는 희망(꿈)을 주지 않는 판타지일 뿐이에요. 저는 사람을 바꾸는 건 정치가 아니라 예술이라고 믿어요.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면 사회도 바뀌죠. 영화 <살람 시네마>에서는 파시즘이 어떻게 생활 깊숙이, 머릿속에 뿌리내리는지 보여주려고 했어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람들이 굶고 병들어가는 걸 세계가 관심 없어 할 때 그 고통을 영화로 찍어 알리고 싶었어요. <칸다하르>의 모든 장면은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고통에 대한 정보예요. 그러다보니 저도 정부의 눈 밖에 났지만. 제 딸 사미라는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최근 영화를 찍다가 폭탄 테러로 희생될 뻔하기도 했어요. 우리 영화가 사람들을 바꾸는 힘이 있기 때문이에요.

요즘 감독들 영화들을 보면 고난도 관심도 열정도 줄어든 것 같아요. 이제까지 정부가 검열로 영화계를 죽이는 시도는 많았지만 번번이 실패했죠. 그런데 이제 저질 영화가 영화계를 죽이려 하고 있어요. 집중하지 않고 빨리 만들어내는 영화들이 너무 많아 어떤 게 좋은 작품인지 골라내는 것 자체가 힘들게 돼 버렸어요. ‘머리를 위한 패스트푸드’가 난무하다고 할까요. 영화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사랑이고 대량생산으로 찍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가장 크고 중요한 고통이 뭔지 골라내 집중하세요. 누가 날 걷어차서 아프다, 그런 아픔을 이야기하면 잡음밖에 안 돼요. 공통의 고통을 찾아보세요. 영화는 사람들에게 꿈을 줘야 하니까요.

글 부산/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손홍주 <씨네21> 기자 lightson@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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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07-10-25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러고보니, 이 기사도 김소민 기자의 것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