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조선일보)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Das Kapital).’  한때 그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사회주의의 바이블(성경)’을 1989년 국내 처음으로 전권을 번역·출간했던 김수행(65) 서울대 교수가 이번 학기를 끝으로 오는 22일 정년퇴임식을 갖고 강단에서 물러난다. 그는 좌파 사회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대표적 좌파 이론가였으며, 서울대 경제학부 33명 교수 중 유일하게 마르크스 경제학을 강의해왔다.

―은퇴를 앞둔 심정은?

“마음이 편치 못하다. 내가 떠나면 서울대 경제학부의 구도가 32대1에서 33대0이 되는 셈인데, 이건 심각한 문제다. 자본주의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경제학도 있고, 폐해를 지적하는 경제학도 있어야 한다.”

―‘자본론’을 번역했을 당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당시만 해도 그 책은 불온한 금서(禁書)였다. 번역작업을 진행하던 88년 9월, 한 출판사 대표가 이 책의 일부를 번역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다. 89년 2월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자마자 1권(상·하)을 내고, 5월에 2권을, 그리고 90년 3월에 3권(상·하)을 발간했다. 서울대 교수가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는 식으로 출간해 버리니 경찰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더라. 그 책 판 돈으로 아파트(경기도 산본) 분양값도 냈다. 마르크스가 아파트를 사 준 셈이다(웃음).”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데 유효한 모델인가?

“그렇다. 한국사회가 자본주의인 이상, 우리 앞에 놓인 기본 문제는 여전히 자본과 노동 간의 갈등관계다. 그것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틀을 제공하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의미 있다. 갈수록 진행되는 글로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열풍 속에서 노동자와 서민들은 궁핍한 삶을 강요 받고 있다. 근대경제학(영·미식 주류 경제학)으로는 이런 문제를 풀 수가 없다.”

―본인은 마르크스주의자인가?

“(잠시 뜸을 들인 뒤) 그렇다. 나는 자본주의가 여전히 문제가 많은 제도이고 그것을 시정하는 데 마르크스주의가 좋은 시각을 제공한다는 것을 믿는 마르크스주의자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을 각종 굴레에서 해방시키려는 것이지, 옛 소련처럼 국내총생산(GDP)을 몇 % 증강시킨다든지, 북한처럼 ‘이팝에 쇠고기 먹는’ 물질적 세상을 구현하자는 게 아니다. 그렇게 마르크스주의를 좁은 틀에서 해석하고 밀어붙이다 보니 (옛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당 관료가 자본가를 대신해 억압하는 체제를 만들었고 결국 무너진 것이다.”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바보이고, 나이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이면 더 바보라는 말도 있는데.

“그것을 마르크스주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비아냥거리듯이 하는 얘기다. 어찌 보면 나이 들어서는 타협하라는 얘기인데, 나는 그런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정작 마르크스는 말년에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당시에도 얼마나 사이비 마르크스주의가 횡행했는지 보여주는 얘기다. 그의 생각을 단선적으로 이해하고, 경제적 하부토대가 세상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식의 기계적 유물론이 판쳤다. 오죽했으면 마르크스 본인이 마르크스주의자임을 부인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겠는가?”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말인가?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 혹은 진보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냄비근성이 더 문제다. 1980~90년대 한국 사회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더니, 이제는 모두들 떠나 버렸다. 그러나 한국에 제대로 된 마르크스주의자가 있었는지 의심이다. 그저 일본 공산당이 번역한 소련 공산당의 팸플릿 수준 책자를 들여와 공부하는 꼴이었다. ‘브레즈네프(소련공산당 서기장)가 말하기를…’이라는 식의 이론이 무슨 마르크스주의인가.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진보에 역행하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주의를 배우는 서울대 학생들이 많은가?

“박사과정에 9명, 석사과정에 3명이 있고, 학부에서도 240여 명이 강의를 듣는다. 열심히 공부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경제이론뿐 아니라 철학·역사·사회학 등 폭넓은 시각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라서 기업체나 연구기관에서 활용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자녀들이 그것을 공부한다고 부모가 겁낼 필요 없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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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11-11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대 경제학부의 구도가 32대1에서 33대0이 되는 셈인데" "박사과정에 9명, 석사과정에 3명"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궁금하군요...

Koni 2007-11-1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퇴임하시는군요. 저도 그 빨갛고 두꺼운 하드커버의 자본론을 갖고 있는데.
 

근대에 들어서면서 인간은 신분 질서 등과 같은 속박에서 벗어나 ‘개인’, ‘자유’ 등의 관념을 자각하게 된다. 하지만 새롭게 얻게 된 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는 ‘무엇에로의 자유’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근대 이전까지는 자신의 신분에 맞는 삶을 영위하면서 나름대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던 인간들은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작용한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조차도 적대적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유는 얻었지만 그로 인한 불안감과 고독감은 더욱 증대된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들은 이러한 불안과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 중 하나가 복종을 전제로 하는 권위주의적인 양태이다.

이는 개인적 자아의 독립을 포기하고 자기 이외의 어떤 존재에 종속되고자 하는 것으로, 사라진 제1차적인 속박 대신에 새로운 제2차적 속박을 추구하는 양상을 띤다. 이것은 때로 상대방을 자신에게 복종시킴으로써 심리적 안정과 만족을 얻으려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일견 대립적으로 보이는 이 두 형태는 불안과 고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권위주의적 양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도피의 또 다른 심리 과정은 외부 세계에 의해서 그에게 부여된 인격을 전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스스로 중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 된다. 나와 외부 세계 간의 모순은 사라지고 그와 함께 고독과 무력감을 두려워하는 의식도 사라지게 된다. 개인적 자아를 포기해버린 자동인형이 되어 주위의 다른 자동인형과 동일하게 된 인간은 더 이상 고독과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는 자아의 상실이라는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는 부단히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행위를 함으로써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불안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의 속성상 인간은 불가피하게 새로운 속박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는가? 개인이 하나의 독립된 자아로서 존재하면서도 외부 세계와 합치되는 적극적인 자유의 상태는 없는가?
‘자발성’은 이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된다. 사람은 자발적으로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외부 세계에 새롭게 결부시키기 때문에, 자아의 완전성을 희생시키지 않고 고독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소극적인 자유는 개인을 고독한 존재로 만들며 개인과 세계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자아를 약화시켜 끊임없는 위협을 느끼게 한다.

자발성에 바탕을 둔 적극적 자유에는 다음과 같은 원리가 내포되어 있다. 개인적 자아보다 더 높은 힘은 존재하지 않고 인간은 그의 생활의 중심이자 목적이라는 원리와 인간의 개성의 성장과 실현은 그 어떤 목표보다 우선한다는 원리가 그것이다. 이러한 심리적인 측면에 더하여 인간이 사회를 지배하고 사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갖추어질 때 근대 이후 인간을 괴롭히던 고독감과 무력감은 극복될 수 있다.

(출처: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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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인간이 유년 시절 겪은 트라우마(정신적 상처)가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가 특정한 계기를 통해 변형된 형태로 전의식을 거쳐 의식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때 트라우마가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전이되는 과정에는 이를 가로막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그 결과 트라우마는 꿈, 증상, 실수, 문학작품 등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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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바로 그 개차반 인생이 그런 이야기로 작가가 되고, 그리하여 당당하게 세상에 끼어들었다는 점이었다. 문학이 그런 식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자신이 있었다. 당시 내가 이해한 문학은 내가 세상에 끼어들 수 있는 일종의 문 같은 것이었다.

친척의 서가에서 앤솔러지를 발견하고, 그리하여 차츰 시를 알기 시작했을 때, 나는 소설보다는 시를 쓰기로 작정을 하였다. 아무리 영악한 체하지만 역시 어렸던 나로서는 자신의 치부를 낱낱이 세상에 까 보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치부는 전혀 건드리지 않으면서 무엇인가 있는 듯 없는 듯 잘도 꼬리를 감추는 시 쪽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내가 똘마니 시절에 배운 세상을 속이는 방법과 시가 지닌 상징이나 은유 따위의 애매모호한 기교는 신기하게도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 얼마 후 그 여학생에게서 편지를 받았을 때 나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화장실에 버렸다. 여학생의 편지를 화장실에 버린 행위는, 단순하고 유치한 심리와는 달리, 나의 일생을 통해 두고두고 영향을 끼쳤다. 물론 당시의 나로서는 까마득히 몰랐지만 그것이 일테면 나의 위악(僞惡)의 시초였던 셈이다. 훗날 대학 시절을 거치면서 이 위악이야말로 나에게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살찌우는 자양분이 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 세상에 대한 나의 무기는 바로 위악이었을 터이다. 사회과학 식으로 말한다면 위악이 나의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이 위악은 자연스럽게 죽음이라거나 탐미주의 혹은 허무주의 등과 뒤섞여 세상에 대하여 깊게 병든 한 청년의 문학이 되어 갔다.

(송기원, <아름다운 얼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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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이영미 '야!한국사회' 중에서 일부 편집) 
 
- 몇 해 전 제주도의 교사단체에서 주최하는 자리에서 남북 문화교류와 관련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이 질문이 나왔다. 분단 반세기 동안 심화된 남북 언어의 이질성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내 대답은 이러했다. “어느 정도의 이질화는 당연한 것이며, 교류와 접촉이 늘어나면 자연히 동질화될 것입니다. 사실 남한의 말들도 모두 동질적이지 않은데도 별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저에게는 북한말보다 제주도 방언이 훨씬 어렵습니다. 제주에서 이런 질문을 받으니 참 흥미롭네요.” 제주어와 표준어의 이중언어 교육을 받는다고 할 만한 제주도민들이 하는 이런 질문은, 언론 등에 의해 학습된 질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이는 다른 문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북한 문화를 접하면서 느끼는 심각한 이질감은, 동질성에 대한 욕구가 지나치게 커서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는 반세기 갈라진 만큼 이질화되었고, 그 이전 수천 년을 함께 살아온 만큼 엄청나게 큰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

- 과연 남북문화 동질화가 정말 시급히 필요한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문화란 지역·계층·세대·성에 따라 이질적이기 마련이다. 이질성은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오류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세대 사이, 종족 사이에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다고 그것을 꼭 하나로 통일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단지 그들이 서로의 문화에 대해 너그러이 인정하는 것, 더 나아가 다른 문화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곧 지금 남북 문화교류에서 필요한 사고는, 동질성 회복이 아니라,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아가 다양한 문화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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