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의 자질
(1) 상대를 압도하는 기질과 끈기 (2) 문학과는 다른 언론인으로서의 글쓰기 능력 (3) T자형 능력

- 부족한 부분
(1) 맞춤법: 한번 공부해야..
(2) 독해력: 읽고 정리해서 코멘트 다는 연습이 필요. 코멘트에는 핵심 내용과 자기 생각, 두가지가 들어갈 것.
(3) 글쓰기: 시간 정해서 쓰고, 쓰기 전에 평가요소 숙지하고, 자주 쓰는 수 밖에는.
(4) 시, 단편소설 습작: 이건 읽어야 뭘 쓰지.
(5) 시사문제: 사실을 관점으로
(6) 글 그림 그리기
(7) 작문은 펼치는 힘이다.

- 글쓰기 평가요소
(1) 단문 위주로 쓰는가
(2) 리듬을 타고 있는가
(3) 문단의 길이는 적당한가
(4) 레토릭이 있는가

- 시사문제 정리
1. 이론: 시장주의의 의미와 가치, 다수결 원리의 의미와 가치, 엘리트와 대중의 관계, 법과 윤리의 경제, 사실과 진실
2. 정치: 대통령 중임제와 내각제,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와 전망, 참여정부의 역사적 의미, 대북포용정책의 한계와 성과, 6자 회담의 의미와 한계, 한미동맹의 변화와 전망
3. 경제: 부동산 문제의 실체와 해결방안, 양극화의 원인과 해소방안, 성장과 분배의 관계, 재벌개혁론과 국민경제론, 삼성공화국, 조세정책과 빈부격차, 한국형 복지정책
4. 사회: 뉴라이트 평가와 전망, 국민들의 탈정치화, 출산 아동 노인 문제, 교육 3불 정책, 한류의 전개와 전망, 과학기술과 민주주의, 교사의 권리와 학생의 권리
5. 언론: 시민저널리즘, 인터넷과 신문, 방송의 공식성과 상업성, 신문법 위헌 논란, 언론과 정치권력, 광고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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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나 가족을 소재로 삼는 것을 탓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과 이념 문제를 부적절하게 뒤섞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코민테른의 적색노동조합 운동을 지도하던 동기는 친일 자본가였던 형의 죽음을 방관하며, 운혁은 조선공산당의 화폐위조 사건과 연루되어 해경과 약혼하지 못하게 되고, 친구의 아버지에게 종신노동형을 구형하며, 해경은 남쪽에서 공작을 하다가 총상을 입은 운혁을 살리려다 사형수가 됩니다.

- 물론, 이것은 당시 정황으로 충분히 가능한 설정입니다. 하지만, 설정이란 가능하고 불가능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의 기획의도에 적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좌우의 활동상을 균형있게 그리는 것'이 기획의도였다면,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하더라도 지나쳤습니다. 이 정도라면, 드라마로서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기 보다는, 이념을 드라마화했다고 봐야합니다. <서울 1945>는 '가족도 몰라보는 매정한 빨갱이'를 연민의 대상으로 바꿔놓았을 뿐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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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70부작 대하드라마 <서울1945>가 오늘 종영했습니다. 주인공이었던 운혁(류수영)은 인천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후에 벌어진 교전에서 죽고, 동우(김호진)와 석경(소유진)은 결혼을, 해경(한은정)은 일본을 거쳐 함흥에 도착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습니다. 운혁은 동우의 품에서 죽어가며, "전후(戰後) 조선땅의 희망을 만들어달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 여느 대하드라마가 그러하듯, <서울1945> 역시도 한차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종영과 함께 보도된 세계일보 기사에 따르면, "'건국 세력을 모함했다'는 비판과 '좌우의 활동상을 균형 있게 그렸다' 긍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고 하는군요. 전자의 비판은 이승만(1대 대통령)과 장택상(1대 외무부장관)의 후계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승만이 친일지주의 딸인 석경을 양녀로 받아들이는 내용과, 장택상의 측근이었던 친일 경찰 출신 창주(박상면)가 여운형(독립운동가, 조선인민당 당수)의 암살에 관여한다는 극중 내용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비판자들은 1억원 상당의 고소와 함께 조기종영 가처분을 신청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후자의 긍정적 평가는 극에서 여운형이 차지하는 비중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국 역사는 뿌리깊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해, 일제시대와 해방 전후 사회주의자를 비롯한 좌익 운동가들을 언급하지 않아왔습니다. 하지만, <서울1945>는 주인공 운혁이 여운형이 조직한 조선인민당의 정치위원으로 활동함에 따라 전례없는 여운형의 해방 전후 행보가 부각되었습니다. 여운형 외에도 석경의 외삼촌 동기(홍요섭)가 조선노동당 정치위원으로, 운혁의 친구 철형(이병욱)이 인민군 대좌로 등장합니다. 좌익 운동가들이 극의 중심 인물로 등장하면서, 기존의 관행, 즉 좌익에 대한 주변화 적대화 설정이 깨졌습니다. 

- 우선, 전자의 비판을 살펴보자면, 이승만과 장택상의 후계들이 제기한 소송이나 조기종영 가처분의 신청은 일종의 해프님(happening)에 불과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대하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이란 그가 속한 정치세력을 대변합니다. 드라마인 이상 존재하는 픽션(fiction)이란, 그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극중 이승만이 석경을 양녀로 받아들이는 것은, '해방과 더불어 위협받고 있는 자신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해방 후에 형성되고 있던 새로운 기득권 세력과 유착한 친일세력들의 정치적 행보'라는 사실을 드라마화 한 것이죠. 하지만, 이승만의 후계들의 인내심까지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석경을 이승만이 아닌 가상의 한민당 인물과 연결시켜도 드라마 흐름에는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을, KBS의 배려가 아쉽습니다. 장택상 후계들의 소송은 해프닝 축에도 끼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극중에서 여운형을 암살하는 것은 창주이지 장택상이 아니니까요.

- 이제 후자의 긍정적 평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전자의 비판이 소송과 가처분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좌우갈등'이라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언론의 도움을 받으며, 순식간에 <서울1945>는 좌우갈등의 격전지로 비화되었습니다. 이런 갈등은, 해경이 친구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대립하던 운혁, 동우와 삼각관계가 되면서, 동우-해경이냐 운혁-해경이냐 하는 시청자들 각각의 바램과 더해지면서 더욱 증폭되었고, 공식 홈페이지 시청소감 게시판이 전장 역할을 했습니다. 동우와 운혁의 대립구도에서, 해경은 중간자적인 역할을 맡으며 두 사람으로 대변된 정치세력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 저는 결론적으로, <서울1945>가 좌우의 활동상을 균형있게 그렸다는 긍정적인 평가에 아쉬움을 느낍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렸듯이, 기존의 관행과는 달리 사회주의자를 비롯한 좌익 운동가들이 극의 중심에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곧 '좌우의 활동상을 균형있게 그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TV라는 매체는, 관영매체이든 상업매체이든을 떠나 본질적으로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독립 매체가 아닌 이상, TV가 진정한 사회주의자, 좌익 운동가들의 활약상과 이상을 조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서울1945>는 본연의 기획의도와 매체로서의 본질적 특성 사이의 모순에서 줄타기를 했을 것입니다.

- 이런 줄타기는 처음부터, 즉 기획의도에서 부터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공식 홈페이지의 기획의도에 따르면 "좌우에 대한 선입견 없이 작은 영웅들의 숭고한 이상을 그대로 그려 낸다."라고 씌여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자유와 평등을 위해 헌신한 그들의 삶은 숭고한 것"이라는 거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작은 영웅'과 '숭고한 삶'입니다. 이것은 <서울1945>가 사건 보다 인물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방영 중 이승만 장택상 후계들의 소송 시비에 휘말리자, "<서울1945>의 핵심은 이념이 아니라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제작진의 고백으로 까지 이어집니다. 

- 실제, '사랑', '가족'이라는 소재는 70부작 내내 <서울1945>를 떠돌았습니다. 그것은 드라마의 인기 소재임과 더불어, 좌우의 활동상을 균형있게 그리고자 하는 노력이 사회적 갈등에 부딪힐 때 제작진의 쉼터가 되었을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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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9-11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혁 역을 맡은 류수영 씨를 좀 좋아하는데요..^^ 첨에는 재밌을 것 같아서 보려다가 나중엔 류수영 씨라도 보자는 마음에 보다가... 이 드라마는 보고 있으면 이내 마음이 시들해져버려서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아무리 봐도 이 드라마 주제는 "남녀간의 사랑" 맞는 것 같아요..^^

sb 2006-09-1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25로 넘어가는 후반부에 들어서 제작진의 어깨가 많이 무거웠던 것 같아요. 전 중간부터 보다가, "에이 안되겠다." 해서 처음부터 다시 봤답니다. ^^;

마노아 2006-10-17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마지막 회를 보았는데요, 동우와 석경이는 혼인하지 않았는데요. 동우가 석경이를 두고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으로 끝났어요. 외국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더라구요. 뒷편은 쓰다가 마셨는데 더 올려주세요. 궁금해요^^

sb 2006-10-19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블로그는 혼자만의 공간이자 여럿의 공간이기도 한데, 쓰다 만 글을 저리 버젓히 올려두었네요.
 

- “일반적으로 순수한 예술이라고 하는 클래식 음반도 거대 음반사의 철저한 기획을 거쳐서 나온다. 예술과 상품을 구분할 수 있는가.”
”전문성을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는가. 전문성을 기준으로 가수와 뮤지션을 구분할 수 있는가. 펑크처럼 의도적으로 비전문성을 표방하는 음악의 문화적 파급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방송을 타지 않으면 언더그라운드인가”
”취향과 신념을 같이하는 이들의 소규모 공동체 음악은 포크가 아닌가”
”대중성과 통속성은 대중가요에만 적용되는 특성인가”

- ”대중예술은 작가가 표현하는 것을 드러낸 결과물이라기 보다는, 수용자가 향유하고 싶어하는 것을 작가가 제공해주는 측면이 강하다.”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을 선호하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참신하고 난해한 것 보다는 진부한 패턴이나 손쉬운 방식을 선호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 미국 힙합의 역사

70년대: 힙합 문화는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 세대의 하위문화와 70, 80년대 세대를 통합.
80년대: B-boy(비행청소년?) 이미지와 흑인 특유의 감성을 탈색시키려는 비즈니스 전략 사이에서 다양한 변종이 파생. MTV의 힙합 전문 프로그램이 대표적.
90년대: 80년대의 비즈니스 전략의 지속으로 로린 힐의 앨범 <Mis-education>이 그래미상 수상.

- 한국 힙합의 역사

1세대: 수입래퍼 업타운, 원타임, 드렁큰타이거, 등. 이들은 영어 랩을 구사하며 자신의 전통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동시에, 한국어로는 랩이 힘들다는 논쟁을 불러일으킴.
2세대: 언더그라운드 래퍼들과 DJ DOC, 등. 한국어로 된 랩을 다양하게 구사하면서 대립구도 형성. 신총 라이브 클럽 ‘마스터플랜’의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2000 대한민국> 발표.

- 록의 역사

90년대 중반을 풍미한 록 담론은 선언적인 발언과 함께, 음악, 패션, 문화, 이데올로기로까지 승화.
록의 상업화와 함께 얼터너티브 장르가 도입.
하지만, 감각의 해방을 통한 저항은 비이성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실제 저항문화의 본령은 포크와 전투적 민중가요.
1993년 민중록밴드 천지인 등장

- 포크

70년대 초 종로와 명동을 오가던 포크 가수들은 대게 명문대에 재학 중인 학사 가수.
1975년 대마초 파동과 함께, 포크의 감성은 대학가에 머물며 민중가요라는 변이형 창출. 이들은 공동체에 의한 공동체의 음악이라는 포크의 집단적 효과에 주목.
1999년 포크 페스티벌과 함께 포크 리바이벌 운동이 시작. 이를 통해 ‘저항과 낭만의 음악’이 역사 속으로 침전.

- 뽕짝

뽕짝은 익숙한 방식을 이용하여 낯설게 하는데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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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마이뉴스)
 


"아가씨도 하지? 자위하잖아." - "그런 거 안 해요."

8월 31일 오후 3시께 성(性)산업 박람회(섹스포·sexpo)가 열리는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강남구 대치동) 앞.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박람회를 뒤로 한 채 센터 앞에서 느닷없는 '솔직대담 섹스토크⑲'가 시작됐다. 참석자는 30대의 대머리 남성 A씨, 전시장 입장을 고려 중인 40대 B씨, 박람회를 보고 나와 자위 도구로 가득 찬 팸플릿을 든 C씨 그리고 20대의 여기자.

4명의 대담은 "선생님, 안에 볼 것 좀 있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 박람회를 보고 나온 A씨가 "성인용품만 전시하고 있어요, 구로동에 다 있는 걸 왜 만원씩(입장료)이나 주고 들어갔나 몰라"고 혀를 차자 "구로동 어디요"라며 B씨와 C씨가 합류했다.

4명은 C씨가 들고 나온 팸플릿을 중심으로 둘러서서 "관람객 중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꽤 있다"(A씨), "나이가 들다보니 이제 테크닉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B씨)로 흘러갔고, 논의는 결국 "스트립쇼 같은 이벤트가 취소돼 김 샜다"로 매듭지어졌다.

적나라한 자위 도구 사진을 한참 보던 B씨가 기자에게 대뜸 "아가씨도 자위하지"라고 물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못 찾던 기자가 "안 하는데요"라고 말하자 B씨는 "왜, 어때서, 우리도 다 해, 이제 이런 건 오락이야"라며 팸플릿을 흔들었다.

4명이 땀에 젖은 손으로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던 팸플릿은 어느새 귀퉁이가 찢어졌다. 주최측인 (주)섹스포이 내걸었던 '음지의 성을 양지로'라는 행사 취지가 떠올랐다. 양지로 나온 것은 단지 너덜너덜한 자위도구 팸플릿뿐이었다. 국내 최초로 열린 성 박람회와 여기자의 성생활은 거짓말로 가려진 채 여전히 음지에 머물러 있었다.

저출산을 막기 위해 콘돔 사용 권장?
 
주최측은 애초 "국내 첫 성 박람회를 통해 성인을 위한 성교육장을 마련하고, 음지에 머물던 성을 양지로 끌어올리겠다"며 행사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센터 앞에 붙은 대형 현수막에도 '사회 문제로 부각되는 저출산, 이제 박람회를 통해 찾아보자'며 ▲에이즈(AIDS) 홍보 ▲부부 클리닉 ▲장애인의 성 ▲노인의 성 등을 행사 내용으로 꼽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 본 박람회는 이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출산을 막는다면서 형형색색의 콘돔이 즐비했고, 임신과는 거리가 먼 자위용 마네킹들만 가득했다. 에이즈 퇴치나 부부의 성생활 클리닉을 위했다면 가죽 채찍과 모형 성기 대신 의사가 있어야 한다. 외국에서는 에이즈 퇴치를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유명 연예인들이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장애인의 성이나 노인의 성 또한 마찬가지다. 이동권, 교육권, 직업선택권 등에 무심하다가 갑자기 그들의 성을 위해 박람회를 연다? 성욕 또한 인간의 기본 욕구로, 충족시켜 마땅하지만, 일반 성인용품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기구들을 굳이 박람회 형식으로 보여줘야 했을까.

여성단체를 포함한 외부의 압박으로 인해 취소됐다는 이벤트들은 과연 개최 목적과 연관이 있었나. 세미 스트립쇼, 트랜스젠더 선발대회, 즉석연인키스대회, 미스 섹스포 선발대회, 란제리 패션쇼, 누드 사진전, 유명잡지 누드모델 사인회 등은 성교육보다는 여성 모델들을 내세워 대중의 관심을 끌고 보자는 성상품화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시민단체의 비난에서 벗어나 이날 전시된 것들은 교육적이었을까. 이날 기자가 돌아본 결과, 전시장 내 부스 대부분이 자위도구와 보조기구 등을 파는 성인용품점에 불과했다. 이외에는 의류, 건강식품과 함께 잠자리를 그 위에서 하라는 뜻인지 큰 가죽 소파 매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직접 에로배우가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보여준 '애로영화 촬영장 체험전'은 눈길을 끌 만했지만, 촬영 장면이 실제 영화의 2% 수준에도 못 미쳐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주최측이 발표한 '교육적인' 박람회의 취지는 실현되지도, 애초 취지를 실현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섹스포는 거짓말만 남긴 셈이다.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성 박람회를 통해 성담론이 양지로 나오는가 싶더니, 결국 더 음지로 숨어버렸다. 외국 여성 누드모델을 앞세운 홍보나 비키니 차림의 여성 내레이터 모델을 통해 남성의 눈요깃감에 머무른 여성상을 보는 듯 했다. 이런 의미에서 섹스포는 ‘단체로’ 성에 눈뜨려고 했던 한국 성인들에게 거짓말보다 더 못할 짓만 남기고 해프닝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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