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이나 가족을 소재로 삼는 것을 탓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과 이념 문제를 부적절하게 뒤섞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코민테른의 적색노동조합 운동을 지도하던 동기는 친일 자본가였던 형의 죽음을 방관하며, 운혁은 조선공산당의 화폐위조 사건과 연루되어 해경과 약혼하지 못하게 되고, 친구의 아버지에게 종신노동형을 구형하며, 해경은 남쪽에서 공작을 하다가 총상을 입은 운혁을 살리려다 사형수가 됩니다.

- 물론, 이것은 당시 정황으로 충분히 가능한 설정입니다. 하지만, 설정이란 가능하고 불가능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의 기획의도에 적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좌우의 활동상을 균형있게 그리는 것'이 기획의도였다면,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하더라도 지나쳤습니다. 이 정도라면, 드라마로서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기 보다는, 이념을 드라마화했다고 봐야합니다. <서울 1945>는 '가족도 몰라보는 매정한 빨갱이'를 연민의 대상으로 바꿔놓았을 뿐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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