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지배자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안정을 위해 중국이 필요하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 자본주의의 산물임과 동시에 꼭 필요한 버팀목이 되어가고 있다.

- 중국의 경제호황은 몇몇 남동 연안 지방들에 한정돼 있고, 대부분 유럽과 미국으로 값싼 소비재를 수출하는 데 의존하고 있다.

- (중국 초기 경제발전의) 핵심은 소비를 제한하고, 농업 집산화로 농민을 더 효과적으로 착취해서 뽑아낸 잉여를 이용해 세계 경제로부터 고립된 국가 주도 중공업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 덩샤오핑은 1978년에 4대 현대화를 시작했다. 해외 투자와 기술 이전, 농업과 많은 공업분야에 시장 도입, 중앙 정부의 경제 통제 해체, 등. 하지만, 중국 경제 호황의 첫 단계는 농업 개혁의 부산물인 향진기업의 예상치 못한 성장 덕분에 가능했다. 이미 향진기업의 생산가치는 농촌 총생산가치의 절반을 차지했고, 1992년에는 2/3에 달했다. 1988년에 이르러, 중국 전체 인구의 17%를 차지하는 연안 3성이 전체 농촌 공업 산출량의 절반을 생산했다.

- 경제가 성장할 수록, 중앙의 계획대로는 되지 않았고 이것은 권력 다툼과 연관이 있다. 부패가 없었다면 향진기업도 없었을 것이다.

- 1988년의 인플레이션 심화. 지방 정부가 식료품 보조금 삭감하자 광적인 사재기와 은행 현금 인출 시작.

- 1989년 이후에는 신규 외국인 투자 덕분. 투자 원천은 대부분 홍콩 자본. 1992년 이후 중국 경제의 부활은 조립과 소규모 제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 물결에 기초하고 있었다. 1998년까지 수입 가치가 수출 가치보다 많았고, 지금도 둘 간의 차이는 근소하다. 1990년대 중반에는 많은 국영기업들이 도산 일보직전이었다.

- 1997년. 외국인 투자와 무역이 침체했고, 동아시아 시장이 축소되었으며, 주료 식료품 가격 상승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도시 노동자들에게 식료품 보조금을 지원하든지, 아니면 물가상승에 항의하는 도시 노동자들의 반란에 직면할 위험을 감수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 그렇게 많은 것을 잃을 텐데 중국은 왜 그토록 WTO 가입을 바라는가? 중앙의 지배계급은 WTO규정을 이용해 지방 관료와 기업 경영자들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 1945년 국민당은 대만 통치권을 회복하고, 체계적으로 약탈. 본토인에 대한 분노. 1947년 가장 거대한 항쟁 발생. 1949~67년까지 본토인 카스트가 지뱋나느 군사독재 국가. 강력한 국가통제. 48%를 국영기업이 생산. 1986년 민주진보당 창당. 2000년 민진당 천수이볜이 총통에 당선. 민족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쟁점으로 선거.

- 신자유주의 경제이론대로라면, 중국과 대만의 경제적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군사적 긴장도 완화되어야 한다. 세계적 통합으로 군사적 경쟁이 자동으로 완화되리라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몽상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 중국 수출업체 중 대미 수출 상위 50위 중 7개는 미국 회사, 이들은 환율 유지에 이해관계 있다.

- 언론과 예술의 발달, 일부 농촌에서 씨족이나 혈연 조직의 부활, 토착 종교와 기독교의 부활 등 두드러지게 정치적이지 않은 형태로 나타났다. 아동결혼, 아동중매, 결혼신부값 며느리가 시어너미에게 철저하게 복종한다는 전통적 관념도 되살아났다.

- 의료비 지출은 도시에 집중.

- 1980년대 학생시위증가. 공개적인 반체제 조직이 등장. 최소한 15개 도시에서 독립노동자연맹이 창설. 1949년 이후 공개적 노동자 조직이 결성. 톈안먼 항쟁 이후 지하노조 건설을 시작하거나, 합법적 통로를 이용해 의견을 표현. 파룬궁 운동. 수만명 체포.

- 내몽고, 신장, 티베트. 반이슬람 테러에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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