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 있는가? - 코로나 사태와 격리가 지구생활자들에게 주는 교훈
브뤼노 라투르 지음, 김예령 옮김 / 이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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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어디? 나는누구? 내 별점은 의미가 없습니다. 코로나19라는 주제에도, 얄팍한 책두께에도 속으면 안 됨.. 이해 안 되는 프랑스 영화 보고난 뒤의 느낌... 역자해제가 필요함.. 라투르 읽기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단지 나의 착각였음.. 당분간 라투르 안 볼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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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과 함께하기 -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도나 해러웨이 지음, 최유미 옮김 / 마농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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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해러웨이의 책이다. 라투르와 마찬가지로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안 읽었는데, 지금 안 읽으면 아예 기회가 없겠구나 싶어서 읽었다. 재미있었다. 매료되었다. 그러나 설득된 것 같지는 않다. 나처럼 해러웨이를 처음 읽는 독자라면, 그녀의 독창적인 vocabulary, colloquial terms, idioms에 익숙해지는데 꽤 애를 먹기 마련이다. 따라서 원래 영어로 쓰여진 이 글이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의 문제는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영어로 읽을 때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일단 내용을 그녀의 독특한 개념 몇 개를 택하여 실뜨기하는 식으로 리뷰하고, 번역에 대한 의문과 지적은 맨 마지막에 하겠다.

 

1. (대문자)역사 속 (대문자)인간의 막대기 이야기 Vs. 캐리어백 이론

서양의 신화들에는 태초의 도구, 무기, 말로 무언가를 하는 천상의 신들 - 말씀으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한 유대-기독교 하느님, 포세이돈의 삼지창, 아폴론의 활, 토르의 망치, 로키의 홀(scepter) - 과 필멸의 인간이지만 무언가 말하고 무기나 도구를 사용하다 비극적 삶을 살게 되는 영웅들이 나온다. 어슐러 르 귄은 막대기, , 칼처럼 딱딱하고 긴 것을 휘두르고 그것으로 때리고, 찌르는 이야기들을 우리들이 지금껏 들어왔다고 말한다. (https://stillmoving.org/resources/the-carrier-bag-theory-of-fiction) 르 귄은 이를 비판하는 대안()적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캐리어백 이론을 제시한다. 막대기, , 창 등이 아니라, 잎사귀, , 조개껍질, 그물, 가방, 밧줄, 배낭, , 단지, 상자, ()잡이/받침(holder), 용기(容器, recipient) 등의 캐리어백 역할을 하는 것이 문명의 이야기에서 더 중요하다는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73). 사냥꾼이나 영웅이 들고 설치는 길고 단단한 막대기류보다 무언가를 받고, 담고, 운반할 수 있는 오목하고 움푹 파인 것들(74)이 더 중요한 것이다.

 

르 귄이 우리가 원하지 않았지만 지금껏 들어왔다고 한 이 길고 단단한 것들의 이야기를 해러웨이는 역사 속 인간의 막대기 이야기(the prick tale of Humans in History)”라고 부른다. 역자는 이를 역사 속 인간들의 음경 이야기라고 번역하였다(73, 74, 85, 252). 해러웨이가 참조한 르 귄의 원래 글에는 prick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안 나오는데, 해러웨이는 이것들을 찌르다”, “뾰족하게 세우다등의 뜻을 갖고 있는, 그리고 이로부터 음경”, 곧 남성의 성기가 유추되는 prick으로 표현하면서 음란마귀 농담의 뉘앙스를 첨가한다. (따라서 나는 이 뉘앙스 감지와 그것의 연상에 필요한 짧은 시간적 간격을 생략한 채 바로 음경 이야기로 번역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보편적인 것으로 제시되는 대문자 역사(History)와 대문자 인간(Human)은 그것이 놓여져 있는 상황을 무시하는 신의 트릭일 뿐이라는 해러웨이의 오래된 문제의식이 짓궂은 유머로 표현된 것이다.

 

해러웨이는 라투르와 르 귄 모두 (자신이 하는 이야기가 보편적인 - 그 어떤 상황적 맥락이 소거된 채 제시되는 - 어떤 것의 이야기라는) 신의 트릭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며, 이들에게 공감한다. 그러면서도, 라투르가 칼 슈미트의 힘의 대결에 관한 물질-기호론적 수사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78-81).

 

2. 인류세/자본세

해러웨이는 유진 스토머와 파울 크뤼천의 연구 속에서 탄생한 층서학적인 개념인 인류세(Anthropocene)”를 검토하면서, 그것이 제기되는 상황의 정당성에는 공감하지만, 그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을 비판한다. 그것 역시 우리가 들어왔던 최초와 최후의 아름다운 말과 무기의 위대한 막대기 이야기와 똑같이 전개되기 때문이다(85-90). 해러웨이는 인류(Anthropos)라는 보편적 행위자의 이름이 붙는 인류세를 사람들이 많이 쓰니까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그 말보다는 자본세(Capitalocene)가 더 적절해 보인다고 생각한다(258). 그녀는 맑스주의를 포함한 다른 근대적 서사와 달리, 맑스가 결정론, 목적론, 계획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큰 이야기를 잘 해내었던 것처럼, 자본세도 그럴 수 있는 개념으로 본다. 자본세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관계적으로 만들어졌고, 관계성에 의해 파괴되어야 하는 것이다(91-92). 해러웨이는 인류세를 하나의 시대(epoch)가 아니라, “경계(boundary)”라고, 또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173). 인류세는 단지 극심한 불연속을 표현하는 선이어야지, 두터운 층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수행적(performative) 개념인 쑬루세(Chthulucene)가 출현하는 배경이다.

 

3. 쑬루세

쑬루세 개념은 서론, 2, 4장에서 각각 조금은 다른 이론적 맥락에서 도입되고, 5장에서는 그에 대한 본격 SF 글쓰기가 시전된다. 서론에서는 어원이 추적되면서, 땅 속의 것들이 함께 살고 죽는 시공간으로서 쑬루세가 소개된다(9). 2장에서는 카오스에서 발생한 가이아가 뾰족한 무기들을 휘두르는 인류세의 형상보다는, 그 어떤 형상화, 연대 추정, 단 하나의 이름을 거부하는 두터운 현재진행형의 시간성인 쑬루세라는 상황 속에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시된다(93-94). 4장에서 쑬루세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그 지속성이 위기에 처한 역동적이고 진행 중인 공-지하적 힘들과 권력들을 위한 새로운 이름(173)이다. 5(영어판에서는 8)은 해러웨이의 SF 소설 카밀 이야기의 플롯이 제시된다. 이 소설은 2025년부터 2425년까지 400년 동안의 미래를 살고 죽은 카밀 5세대에 관한 픽션이다. 202580억 명였던 세계 인구가 2100년에는 100억 명으로 정점을 찍고, 차츰 감소하여 2425년에는 30억 명으로 감소되면서 어떤 균형과 공생을 회복해가는 이야기이다. 242530억 명 중 10억 명은 인간-크리터 공생자들이다. 카밀과 같은 미래 세대는 15세에 성인이 되어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갖게 되고, 그 전에는 세 명의 부모(parents)를 가지며, 부모와 아이의 결정에 따라 비인간 크리터들과 공생의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또 공생자로부터의 감염으로 인해, 공생동물의 무늬가 나타나기도 하고 남녀양성의 특징을 띠기도 한다(205). 읽는 내내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미래소년 코난>이 떠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우시카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208-210). “죽은 자의 날이야기가 나오는 끝부분은 <코코> 이야기였고.. ㅋㅋ

 

인간과 비인간 크리터가 공생하면서 서로 감염시키고, 사이보그처럼 나비 더듬이를 아래턱에 심기도 하면서, 다섯 세대 동안 진화하는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서로를 감염시키면서 진화하고, 사람들끼리만이 아니라, 다른 종들과도 함께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결국에는 죽은 자들, 죽은 크리터들의 영혼들도 함께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에 과학적 사실들이 결합된다. 경계가 있는 개인(개체)주의[bounded individualism]라는 관념은 경제학뿐만 아니라, 생물학에서도 당연한 것으로 가정되었지만, 그 전제의 허구성이 홀로바이온트, 홀로언트, -산 등의 개념에 의해 과학적으로 비판되면서도(108-121), 이 비판에 기반하여 새로운 픽션이 구축된다(204-207, 219-222, etc.) 카밀 이야기가 유토피아에 관한 것이 아님은 확실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예견되는 디스토피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고, 또 봐주기에 따라 있을 수도 있는 픽션임은 부인할 수 없다.

 

4. 단상: SF, 실뜨기, 함께-하기, 함께-되기, -

처음에는 SF가 도대체 무엇인가, fiction이면서 fact인 것이 가능한가, scientific fabulation은 모순형용(oxymoron) 아닌가, 실뜨기가 뭐 대수인가 등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는데, 몇몇 의문들을 남기면서도 전체의 스토리가 들어오는 영화처럼 흥미롭게 읽었다. 그 이유는 해러웨이의 대안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이라 할 수 있는 캐리어백 이론의 힘 때문일 것이다. 대문자 역사 안에서의 대문자 인간, 그 바깥에 있지만 특정 상황 안에서 함께-존재하며, 무언가 함께-되어가는 인간과 비인간 크리터들의 공생-공산의 세계의 재현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쑬루세가 단지 인류세/자본세를 끝내고 도래해야 할 어떤 시점 이후의 목적론적 미래가 아니라, 어떤 지속성의 시간대로서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으면서도, 지금은 위협에 처해있지만 앞으로도 존속해야할 어떤 진행형의 시간성이라는 아이디어 또한 재미있었다.

 

해러웨이가 그리는 세상은 어떠한 문제 - 예컨대, 자본주의적 착취와 전유, 가부장적 지배, 기후변화 등 -가 종식된 평화로운 세계가 아니다. 착한 사람들만이 사는 무구한(innocent)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 곳에서도 죽음, 죽이기, 잡아먹기, 감염 등이 여전히 존재하는 세계이다. 따라서 미래 시제의 해방된 세계가 아니라, 위협받고 있는 지속성을 지속하기 위한 함께 세계 만들기(worlding), 함께 되기(becoming-with), -(sympoiesis)이다. 이것은 여러 시제에 걸쳐있으며 그 시제를 관통하는 수행적 실천이다. 곧 의지가 개입된 실천이고, 때로는 적과 대면해야 하는 싸움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선언은 슬로건을 갖고 있는데, 그 슬로건이 바로 책의 부제에 들어가 있다. “킨을 만들어라, 아기 말고! (Make Kin Not Babies!)”(176)

 

난 해러웨이가 여기에서 모두가 (이해하고) 따라야 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뾰족한 것에 의해 찔려 아프게 죽어 마땅한)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지 않아서 좋다. 공상적이면서도 충분히 비판적이고, 현실적이고, 과학적이고, 윤리적이고, 탈식민지적이고, 생태적인 이야기라서 좋았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여러 물음표들과 함께 이야기를 따라가는 와중에 루시드 폴의 <사람이었네>, <안녕> 등의 노래들이 떠올랐다. 에디 베더의 노래가 인상적이었던 영화 <Into the Wild>. 그러다 보면 내 주변의 비인간 크리터들을 다시 보게 되고, 내가 트러블을 겪고 있던 인간관계들도 조금은 작게 보여지는 것 같아 좋았다. (내용에 대해서 할 말이 더 많은데, 마음이 차분하지 않아 더 못 쓰겠다.)

 

5. 번역

위에서도 썼지만, 해러웨이의 글은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라 해도 쉽게 따라가기 힘들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구어체와 학술논문 문어체가 짬뽕된(muddled) 그녀의 스타일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 특유의 어휘들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러웨이의 저작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신어(Newspeak)들로 가득 차 있다 할 수 있는데, 오웰과는 다소 다른 의미에서 새로운 세상을 함께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봐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옮긴이 해제에서도 밝히듯, 이 책의 번역은 옮긴이에게 트러블이며(384-385), 독자들에게도 트러블이다. 오역도 있고, 논의의 여지가 있는 번역어도 있다. 어떤 번역어에 대해서는 완전한 오역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떤 번역어에 대해서는 그것보다는 이것이 더 나은 번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다른 것에 대해서는 딱히 대안은 없는데,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옮긴이는 하나의 영단어를 맥락에 따라 다르게 옮기는 경우도 있고, 하나의 우리말로 일관하여 옮기는 경우도 있다. 일관적으로 옮기는 경우 보통 그것은 그 저작 안에서 개념의 지위를 지니고 있는 단어이거나 저자 특유의 수사인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어디까지를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또는 저자에게 특유한 수사로서 일관되게 번역해야 할 단어는 무엇이고 맥락에 따라 다르게 번역해도 되는 단어는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어떤 단어들은 한국어로 옮기지 않고 음차를 하여 영어 그대로 표기하는 반면, 어떤 것들은 어색한 한국어로 옮겨지기도 한다. 몇 가지로 나눠 정리해 본다.

 

1) 역자가 택한 번역어가 부적절하거나 부자연스럽다고 생각되는 경우

- 대표적인 것은 위에서도 언급한 prick의 번역어로 음경을 택한 것이다(73, 74, 85, 252). 그냥 프릭 테일이라고 음차하는 것도 음경 이야기보다는 나을 것 같다.

- 서론 첫 장부터 나오는 트러블의 어원에 대한 설명으로 불러일으키다”(7, 375)로 번역되는 stir up은 그보다는 뒤집어 섞다헤집어 놓다가 나아 보인다. 이는 젓가락으로 재료들을 뒤집어 볶을 때도 쓸 수 있고, 맑은 냇물에서 물장구치면서 흙탕물을 일으킬 때도 쓸 수 있는 단어이다. “불러일으키다는 이로부터 유추된 말로 훨씬 더 부차적이다.

- “오만한”(97, 167, 171, 185)으로 일관되게 옮겨지는 bumptious의 경우 그 문장들을 읽어보면, “오만한이라는 번역어가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반면, “오만이 문맥 속에서 자연스러운 경우(102, 172)arrogant를 옮긴 경우이다. bumptious의 어원이 bumpfractious이고, 그것이 젊은이의 특성을 주로 서술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좌충우돌하는정도로 번역했을 때 훨씬 자연스러운 것 같다.

- involution안으로 말림”(121, 152, 166, 166-7)으로 일관적으로 번역되는데, 이것의 동사 involve참여하다”(123, 127)로 번역된다. 썩 좋은 대안은 아닌 것 같지만, involution연루, involved연루되다로 옮기면 어떨까?

- 라투르의 개념 Earthbound 또는 earth-bound땅에 뿌리박은 것들”(75), “땅에 붙박인 것”(177)으로 직역하는데, “어스바운드라고 음차하기는 그렇지만, 저 한국말은 너무 부자연스럽다. “지박체또는 땅붙이어떤가?

- “합리적()”(152, 156, 300)으로 옮긴 sensible감각가능한으로 옮겨야 한다. 여기에서 sense“It makes sense.” 또는 “That’s a nonsense.” 등에서 쓰는 말이 되는이라는 뜻이 전혀 아니다. 명사로는 감각”, 동사로는 감각하다의 뜻을 갖는 경우이다. 그래서 믿음의 대상과 반대되는 것인 실재의 감각가능한 대상을 목적어로 취할 때 쓰는 말이다.

- babies아기가 아니라 자식”(176, 295, 298, 299)으로 번역한 이유가 무엇일까? 카밀 이야기를 보면 한 아이는 세 명의 부모(parents)를 갖는데(297), 그 부모에게 이 아이들이 자식이 아니면 무엇인가? “아기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2) 한국어로 옮기지 않고, 음차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 경우

- kin친척”(9, 177-9, 293, 295, 296, 298, 299)으로 Oddkin기이한 친척”(9, 11, 13, 209)으로 번역하는데, 그냥 아드킨이라고 음차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싶다. 옮긴이 해제(385)에서 친척으로 번역한 이유를 드는데, 별로 설득력이 없다. 해러웨이의 ”, “아드킨은 핏줄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지속적이고 밀접한 관계를 뜻하는 것으로, 우리가 친척이라고 쓰는 말과 정반대의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말로 풀어서 오래된 가까운 지인”,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막역지우"라고 번역하는 것도 이상하다.

- “정결한”(163)이라고 번역된 kosher유대교 율법에 맞는 음식에 쓰이는 말인데, 그냥 코셔로 음차하는 것이 맞다.

 

3) 개념의 지위를 부여하여 일관적으로 번역되어야 하면서 다른 개념과 구분되어야 하는 경우

- 설명하기가 좀 힘든 경우인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원서의 상이한 두 단어 – assemblage(71, 77, 80, 108, 109, 174, 178, 302)와 라투르의 개념인 collective(75, 77, 93)가 모두 집합체로 동일하게 번역되어 있는데, 서로 다른 말로 구분해줘야 할 것 같다. 특히 assemblage는 영어책의 색인에도 올라가 있는 엄연한 개념이다. 그런데 옮긴이는 이를 집합체로도 번역하고, “무리”(68, 100, 172, 174), “배치”(247), “군집”(270, 271), “결합(하면서)”(109) 등으로 다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한국말로 번역하기 힘들면 아상블라쥬라고 음차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6. 기타 오역 및 어색한 번역

:

원서 쪽

최유미 국역 (마농지)

대안적 번역 제안

28: 3-4

12

파트너들이 어떻게 유능하게 되느냐에 달려 있다.

파트너들이 유능하게 되는 방법이다.

33: 3

16

행동가

행위자 (agents)

44: 6

23

덜 합법적인가?

덜 정당한가?

51: 17-18

28

낙태 반대

생명 존중 (prolife)

51: 19

29

불공평한

불평등

73: 11

39

병 하나 상자 하나 통 하나. 소유자 하나. 수취자 하나.“

병 하나 단지 하나 (누락) 상자 하나 통 하나. 손잡이(holder) 하나, 용기(容器, recipient) 하나.

73: 5

40

안 좋은 것으로,

더 안 좋은 것으로,

74: 10-11

40

약간의 물과 거저 ... 껍질의 사소한 굴곡이

아주 조금의 물, 누군가에게 전해주거나 누군가로부터 받은 한 줌의 씨앗들을 담을 수 있는 조개껍질의 약간의 굴곡이

74: 14

40

껍질과

조개껍질과

77: 10

41

귀중한 비유

풍부한 비유

77: 15

42

지저분한 살기와 죽기가 뒤죽박죽된

살기와 죽기가 어지럽혀진 채 뒤죽박죽된

77: 19-20

42

사건이어야

(affair)이어야

78: 2

42

합법적

정당한

79: 11-12

43

않지만 다른 것을 제안하지는 ... 분명히 한다.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지만 다른 것을 제안하지는 않는다.

79: 16

43

주요부에서

뼛속까지

81: 4-6

43-44

가이아는 자율-생산적이다. ... 안정돼 있지만

가이아는 어떤 조건에서는 자율-생산적이어서, 자기-형성적이고, 경계가 유지되고, 역동적이면서도 안정적이지만,

81: 13

44

사고를

통상적 사고를

88: 9-10

48

16~17세기의

장기 16~17세기의

89: 3

49

필연적인

결과적인

92: 9

50

효과가 없었거나,

효과가 없었다고, 만약 그것이 효과적였다면

93: 8

51

우리에게 인정된 무질서는

기존에 확립된 무질서가

93: 16-17

51

인류세를 상징한다.

인류세의 형상을 띤다.

98: 22

55

그들은 식사 중이며, 빵과 함께 있고, 땅의 반려종이다.

그들은 식탁에서 빵을 함께 먹는 지구의 반려종이다.

99: 11

55

찌르며 삼키는

쏘며 빨아대는

100: 16

56

자기충족적인 예측

자기실현적인 예언

102: 18

57

개체주의를

개인주의를

108: 10

60

안전하고 온전한 존재

안전하고 건강한(sound) 존재

109: 19

60

소유욕 강한

소유적

110: 4

60

그녀가 가장 중요시하고 강렬히 사랑한 것은

그녀의 첫 사랑이자 가장 강렬했던 사랑은

113: 20

62

발생학, 발달,

발생학과 발달,

121: 8

67

이 크리터들은

비판자들(The critics)

122: 10-11

68

세계의 캐리커처이다.

세계의 어떤 일면성을 과장한 캐리커처일 뿐이다. [부연 의역]

122: 16

68

포획으로 인해 얽힘이 풀릴 수 없다.

포획으로 인한 얽힘을 풀 수 없다.

123: 19

69

덧없는

순간적인(fleeting)

137: 15

78

DNA

DNA라도 이보다

160: 3

93

초래했고, 애초의

초래했고, 1차 휄티의 결과로 생긴 애초의

163: 3-4

95

정결한 나바호-추로 양 육포

나바호 추로 양 코셔 육포

173: 11

100

뒤에 오는 것은

뒤에 오는 것이

177: 15

102

-지하적인 문제가

-지하적 존재들의 관심이

196: 8

143

부모는

양육 부모는 (child-bearing parent)

208: 5-6

150

유토피아가 담보하는 것을 차단하면서

유토피아의 상실을 방지함으로써

212: 9

153

공생을

-(sympoiesis)

222: 5-6

160

격정적이고 ... 세계였다.

인정은 격정적이고 짜릿하면서도 위험하였다.

225: 1

162

2340

퇴비주의자들의 서고에 있는 카밀4의 일기를 보면,(번역 누락) 2340

250: 8

179

낡은 이야기라고

오래된 이야기라고

250: 29

180

까다로웠다

간지러웠다

255: 9

183

가끔

때로는

258: 13

185

Capitalism and the Web

Capitalism in the Web [원서의 오류]

259: 22

185

그들의 세속주의가 방황하긴 하지만,

그들의 확고한 세속주의가 이를 방해하긴 하지만,

259: 27

185

서양 마르크스주의자의

서구 마르크스주의자의

277: 25

197

전통적으로 산아 제한을

전통적으로 대가족을 원하지 않았고(번역 누락) 산아 제한을

278: 8

197

낙차가

감소율이

283: 9

200

냉담한

러브리스(Loveless, 사람 이름 고유명사)

283: 24-25

200

멕시칸 부족 출신으로... 태어난 사람이다.

멕시코 원주민 타우어링 하우스 부족 출신이다.

291: 23

206

민족 관련

민족(Ethnos, 저널명, 고유명사)에 실린

 

 

 

7. 마치며

번역에 대한 내 생각의 기술이 뾰족한 막대기로 다가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자와 출판사, 그리고 이 책의 진지한 독자들의 캐리어백에 들어갈 수 있는 어떤 쓸모있는 선의로 받아들여지기를, 그래서 이 책에서는 누락된 원서의 세 장들까지 포함된 제대로 된 번역서의 공-산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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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해러웨이 지음, 최유미 옮김 / 마농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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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 번역의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이런 식으로 번역하면 안 된다. 번역에 관한 리뷰를 써야 하나 싶은데, 괜한 짓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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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So Far
Atlantic / 197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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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되는 8월 오후 볕에 잘 마른 빨래를 다 개고 듣는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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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브뤼노 라투르 - 하이브리드 세계의 하이브리드 사상
아네르스 블록 & 토르벤 엘고르 옌센 지음, 황장진 옮김 / 사월의책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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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회의 근대적 이분법을 넘어서는 비근대적 생태주의의 전범을 보여주는 라투르 입문의 훌륭한 길잡이. 그런데 내가 만약 메종 루이 라투르 와이너리의 자식였으면, 공부 안 하고 와이너리 물려받아 계속 경영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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