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상은, 그러니까, 아주 간단히 말해, 출판사가 매우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출판부수가 1,000,000권이네 40,000권이네 하는 얘기에서 단 하나의(0‘ 자도 믿지 마세요! 아니 400권 찍었다는 말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사기예요! 저런... 저런! 오직 〈프레스 뒤 쾨르) 정도가... 쳇!... 그 정도가 그럭저럭 팔리고... 그 외에는 〈세리 누아르〉,
세리 블렘므 정도가 근근이 팔리지요... 사실, 더는 책 한 권이안 팔립니다... 이건 심각한 상황이에요! 영화, 텔레비전, 생활용품, 스쿠터, 그리고 자가용! 2마력, 4마력, 6마력짜리 자가용들이,
책에 대하여 어마어마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할부" 판매되는 모든 것들, 그렇지! 그리고 "주말, 여행 상품들! 한 달에두세 번씩 있는 그놈의 바캉스며... 룰루랄라 떠나는 크루즈 여행까지! 안녕, 쥐꼬리만 한 예산이여!... 보세요 이게 다 빚이라고요!... 더는 동전 한 푼 없어요!... 그러고서 이제, 책을 한 권 산다고요!... 캠핑카 한 대를 더 사요? 또 삽니까!... 그런데 한 권의 책은요? 그건 빌리면 되는 물건이었지요.... 한 권의 책은, 다들 아는 얘기죠, 적어도 스물에서 스물다섯 명 정도의 독자들에게 읽힙니다... 아, 그런데 만약, 빵 한 덩이나 햄 한 쪼가리기, 책과 마찬가지로, 스물에서 스물다섯의 소비자를 먹인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게 무슨 횡제인가 하겠죠.... 빵이 불어나는 기적은 여러분을 황홀하게 합니다. 그런데 책이 불어나는 기적은, 그러니결국 무상으로 제공되는 작가의 노고라는 기적은, 기정사실처럼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이 기적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게, 어느 "아수라장"에서, 아니면 좀 더 점잖게는, 곳곳에 있는 서재에서, 그리고 기타 등등의, 기타 등등의 장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적이 어디서 일어나는 간에 작가들은 빈 깡통만 차요. 이게 요점입니다! 사람들은 작가라는 사람이, 모르긴 몰라도상당한 자신가이거나, 풍족한 연금 혜택을 받고 있거나, (사실이라면 이건 핵융합 반응의 발견보다도 더욱 대단한 일인데) 먹지 않고도 살아가는 비법을 알아낸 사림이겠거니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런데지체 높으신 분들은 선취권을 가진 채권자시며, 파산자들의 재산으로 배가 부른 양민들 얘기입니다) 모두 당신에게 다음 이야기를,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처럼, 어떤 악의도 없이 설파할 것입니다.

2
"오직 비참만이 천재를 개화시키며... 예술가에게는 고통이 어울린다오... 그것도 아주 많이 고통스러워야 하오!... 아주 많이, 그리고 더, 더욱 괴롭게!... 왜냐하면 예술가들은 오직 고통 속에서만작품을 낳기 때문에!... ‘고통‘이란 예술가의 ‘스승‘ 이지요....(소클씨가 이렇게 말합디다)"... 더군다나, 사람들은 모두 감옥이 예술가에게 어떤 악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오히려 그 반대지요!...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진정한 예술가의 진정한 인생이란 짧든 길든 감옥과의 숨바꼭질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그리고 단두대야말로, 겉보기에는 흉측한 물건이지만, 단두대야말로 완벽하게 예술가를 대접한다는 사실을... 말하자면단두대가 예술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단두대를 피해간 모든 예술가들은(원하신다면 처형용 말뚝을 피해갔다고 합시다), 사십여 년쯤 지난 뒤에는, 한낱 재담가로 간주될 수가 있지요... 예술가는, 대중으로부터 부각된 존재고, 혼자 튀었기 때문에, 그가 본보기로 처벌받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창문이란 창문은 전부 고가에 임대되었습니다, 예술가의 처형을 구경하기 위해서지요. 그가 마침내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것을, 진심으로 찌푸리는 것을 보기 위해서지요! 또 예를 들면... 군중들은 일찌감치 콩코르드 광장의 나무들을 몽땅 뽑아놓습니다. 그러면 튈르리에는 널찍한 공터가 생긴단 말입니다!

3
"자네는 일하는 법을 몰라!"라고 그는 결론 내립니다... 그는 조금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어쨌거나!... 그는 예술의 후원자입니다. 다들 알지요, 가스통은 예술의 후원자라고... 하지만 그는 장사꾼이기도 합니다. 가스통은 장사꾼이에요... 나는 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부랴부랴,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고, "일하는 법"을 따를 만한 재능이 내게 있는지 살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나처럼 학구적인 사람이, "일하다"라는 표현의 저의를 살피게 되었을 때!... 나는 즉시 한 가지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을!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라디오에 출연하는 것이었어요...
만사 제쳐두고!... 라디오에서 횡설수설하는 일! 저런! 무슨 내용이라도 상관없어요!... 다만 라디오에서 자기 이름이, 정확한 발음으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흘러나오게끔 하는 거예요! 당신 자신을 "거품이 잘 나는 비누나... "날 없는 가투이야(Gatouillat)면도기, 또는 "천재 작가 일리지(Illisy)‘처럼 만드는 거죠! 같은 소스를 쳐서, 같은 방식으로 요리하면 되는 일이에요! 마이크를 내려놓으면 바로 영상 촬영에 들어가야 합니다! 구구절절 찍어야 해요! 당신의 유년기, 당신의 사춘기, 당신의 중년, 당신 인생의 가장 사소한 우여곡절까지 촬영을 하는 것이죠... 그리고 촬영이 끝나면, 전화 돌리기입니다! 모든 기자들이 다시 한번 당신에게 주의를 기울이게끔 해야 돼요. 그러면 당신은, 왜 당신이 당신의 유년기, 당신의 사춘기, 당신의 중년을 찍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그리고 나서 당신 사진을 또다시 찍어가게 해야 하고... 그게 잡지에, 더 많은 잡지에 게재되게끔 하는거죠!... 나는, 그죠, 내 얘기를 하자면 난 이미 한번 지 끔찍하게 혼란스러운 과정 속에 참여해봤습니다!... 내 인생의 이런 부분은 정당화해야 하지 않나?... 저런 부분은 찬양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우리의 저널리스트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완전히 낙담케 했지요.
"자네는 자기 얼굴도 안 보나, 페르디낭? 미친 겐가? 어째서텔레비전에 나가지 않지? 자네 얼굴을 갖고? 자네 목소리를 갖고? 자네는 자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나?... 거울에 스스로비춰본 적이 없어? 자네 모습이 얼마나 웃긴데!"
(중략)
내 목소리에 대해서는, 나도 내 목소리를 알지요... "불이야!" 하고 외치기에는 내 목소리도 쓸 만합니다!

4
잊지 마세요! 분노에 사로잡힌 이는 바보짓을 저지르고 답니다! 그런 뒤에 갖가지 분노가 그의 몸을 꿰뚫지요! 그를 찍어발기지요! 그게 정의입니다!... 나는, 그렇지 않습니까, Y 교수님, 나는 다시는 그런 실수를 안 할 겁니다! 맹세코! 절대로!"
"그렇다면 철학적 토론 같은 건 어떻게 생각합니까?.... 할 수있겠어요?... 가령, "자아(soi)‘의 변모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져오는 변화들에 관하여 토론한다거나..."
"아, 선생님, 나는 물론 당신을 존중해드리고 싶고,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존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거 한마디는 분명히 말씀드라죠, 그런 건 내 관심 밖입니다!... 내게는 관념이라는 게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내 생각에, 관념이란 것보다 더 천박하고, 진부하고, 역겨운 것도 없습니다! 도서관마다, 그리고 카페테라스마다, 관념들로 꼭 차 있어요!... 무력한사람들이... 그리고 철학자들이!... 관념을 곱씹어대지요... 관념이란 거... 그게 그들의 산업입니다!... 그들은 관념을 갖고 젊은이들에게 허세를 부리지요! 그들은 젊은이들의 포주 노릇을 하려 들어요!... 젊은이들은, 아시다시피 뭐든 마구 삼킬 준비가 되어 있으며.. 무엇을 보더라도 이거 "주우우욱이는데!"를 외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철학자들이 젊은이들을 창녀처럼 다루는 것이 얼마나 용이하겠어요! 정열 어린 청춘기가 저 "관녀어엄"들 앞에서, 그리고 더 정확하게 짚자면 ‘철학‘ 앞에서 흥분하느라, 열광하느라 바쳐지는 것입니다 선생님!... 젊은이들이 사기꾼을 사랑한다는 것은 꼭 강아지들이 나뭇조각을, 사람들이 이건 뼈다귀야 하면서 흔들어대는 나뭇조각들을 쫓아 달리고,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내달리고, 짖어대다가, 자기 시간을 잃고 말지요, 이것이 요점입니다!... 이제 그들이 젊은이들과 놀아주는 데 여념이 없는 저 모든 삼류 작가들을 봐보세요... 그들이 끊임없이 젊은이들에게, 속이 텅 빈, 그리고 ‘철학적‘인 가짜 뼈다귀들을 던져주는 모습을... 아, 청년들이 목이 쉬어라 짖어대는 모습을!... 포주들음 젊은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어요! 관념들!... 더 많은 관념들! 결론을! 지적 변화를!

5
나는 우리 지구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요! 난 그저 작은 발명가일 뿐이에요, 그것도 아주 사소한 기법을 발명한! 당연히 언젠가는 잊힐! 다른 모든 것처럼! 토글 단추처럼! 난 내가 별거 아니라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 ‘관녀엄‘들보다는 낫다 이겁니다!... 관념들은 관념의 보부상들에게나 맡기지요! 모든 관녀엄들을!
포주들에게, 사문난적들에게!..."
내 말이 우습나 봅니다... 그가 히죽거리고 있습니다, 허 참!
오래는 못 웃게 할 겁니다!!
"그런데 이보세요, 말해봐요. 당신은 무슨 일을 합니까?...
Y 교수님?... 당신은 학생들을 놀래주는 사람, 숨죽이게 만드는사람이 아닙니까, 젊은이들을 정신없게 하는 사람 맞죠? 그들에게 "메시지들을 보내곤 하지 않습니까... 이제... 나도 좀 놀라봅시다!..."
"당신은 무엇인가를 발명해냈다고 하셨죠?... 그게 뭡니까?"
그가 묻는다.
"문어에서의 감정 구현이죠!... 문어는 바싹 말라 있었어요, 거기에 감정을 되돌려준 것은 바로 나란 말입니다!... 말씀드리는것처럼!... 내 맹세컨대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에요!!.. 이제부터는어떤 머저리라도 "글을 써서 당신을 감동시킬 수 있다니까요, 그런 기법이고, 마법입니다!... "구어"의 감정을 글쓰기를 통해 되찾는 일이에요! 의미가 없지 않습니다!... 보잘것없긴 하지만, 그래도 업적은 업적이에요!..."
"그로테스크한 우쭐함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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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작품은 삶이 끝장났다고 여길 때 깊고 텅 빈 우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라는 메시지가 늘 있다. 그러므로 하루키에게 지하세계(우물, 구덩이, 굴, 죽음의 강)는 빠질 수 없는 메타포.
이 소설에서는 앨리스의 토끼굴에 단테의 신곡까지 가미된 구덩이일세ㅎ 『우게쓰 이야기』처럼 일본 회화 풍으로.



하루키는 떡볶이나 돈까스 같은 작가. 내겐 진정 힐링이 된다.
이 책을 다 읽으면 방울을 흔들고 싶어진다. 그래, 여기 있다고.




1.
사실 그전에 이미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리려는 의욕이 식었던 것 같다. 결혼생활은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청년이라 할 수 없는 나이였고, 갈수록 무언가가—가슴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던 불길 같은 것이—내 안에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 열기가 온몸을 덥히던 감촉이 점차 잊혀갔다.
어느 시점에서 그런 나 자신을 깨끗이 인정하고 단념했어야 옳다. 무언가 수단을 강구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계속 미루기만 했다. 결국 나보다 아내가 먼저 단념했다. 그때 나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 「1. 혹시 표면이 뿌옇다면」,『기사단장 죽이기 1 』

2.
나는 천장의 불을 켜고 다시 스툴에 앉아 그림을 새삼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그림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는 난폭하게 용솟음치는 무언가가 있고, 그 일종의 폭력성이 무엇보다 강하게 내 마음을 자극했다.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놓쳤던 난폭함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떼 지어 나타난 그 난폭함을 다스리고 달래어 이끄는 어떤 중심요소가 필요했다. 정념을 통합하는 이데아 같은 것. 

- 「16. 비교적 좋은 하루」,『기사단장 죽이기 1 』

3.
아마다 도모히코가 일본화용 붓과 안료로 그려낸 가상의 인물이 실체를 지니고 현실(혹은 현실 비슷한 것)에 나타나서 제 의지에 따라 입체적으로 돌아다닌다는 건 분명 놀랄 일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그림을 보는 사이 점점 그것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만큼 아마다 도모히코의 필치가 선명한 생명력을 발한다는 뜻이리라. 현실과 비현실, 평면과 입체, 실체와 표상의 틈새가 보면 볼수록 흐릿해져갔다. 반 고흐가 그린 우편배달부가 결코 실체가 아닌데도 보면 볼수록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듯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가 단지 검은 선 하나로 거칠게 표현한 까마귀가 정말로 하늘을 날아가는 듯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감상하며 나는 새삼 아마다 도모히코라는 화가의 재능과 역량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 기사단장도(아니, 그 이데아도) 이 그림이 얼마나 훌륭하고 강렬한지 알아보았기에 그림 속 기사단장의 모습을 ‘차용’한 것이리라. 소라게가 되도록 아름답고 튼튼한 조개껍데기를 제집으로 선택하는 것처럼.

- 「22. 초대는 아직 유효합니다」,『기사단장 죽이기 1 』

4.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에서 자신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권총 자살하는 남자 있지? 이름이 뭐더라? 너한테 물어보면 알 것 같아서."
"키릴로프." 내가 말했다.
"맞아, 키릴로프. 지난번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안 떠올라서 말이지."
"그게 어쨌는데?"
아마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어쩌고 말고 할 것도 없어. 그냥 어쩌다가 그 인물이 떠올랐는데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어. 그래서 좀 신경이 쓰였지. 작은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그나저나 러시아인은 발상이 참 희한하단 말이야."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는 자신이 신이나 통속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임을 증명하려고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는 인간이 많이 나와. 하긴 당시 러시아에서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이 아니었는지도 모르지만."

- 「43. 그것이 그저 꿈으로 끝날 리 없다」,『기사단장 죽이기 2 』

5.
생각해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만 그림을 그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그림에 나타내는 것.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나 자신의 비밀신호를 그 안쪽에 은밀히 그려넣는 것.

- 「44.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해주는 특징 같은 것」,『기사단장 죽이기 2 』

6.
"나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인간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스콧 피츠제럴드가 무슨 소설에 썼지."

- 「48. 스페인인은 아일랜드 앞바다를 항해하는 법을 몰랐으므로」,『기사단장 죽이기 2 』

7.
돈나 안나가 말했다. "그 강은 무와 유의 틈새를 흐릅니다. 그리고 훌륭한 메타포는 모든 현상에 감춰진 가능성의 물줄기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훌륭한 시인이 하나의 광경 속에 또다른 새로운 광경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당연한 말이지만, 최고의 메타포는 곧 최고의 시가 되죠. 당신은 그 또다른 새로운 광경에서 눈을 돌리시면 안 됩니다."

(중략)

"마음을 다잡으세요." 돈나 안나가 말했다. "마음이 멋대로 움직이게 둬서는 안 돼요. 마음을 놓쳐버리면 이중 메타포의 먹이가 됩니다."
"이중 메타포가 대체 뭐죠?" 내가 물었다.
"당신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그걸 알고 있다고요?"
"그것은 당신 안에 있으니까요." 돈나 안나가 말했다. "당신 안에서, 당신이 하는 올바른 생각을 붙들어 하나하나 먹어치우는 것, 그렇게 몸집을 불려나가는 것. 그것이 이중 메타포입니다. 그것은 옛날부터 쭉 당신 안의 깊은 어둠에 살고 있었어요."

- 「55. 그것은 명백히 원리에 어긋난 일이다」,『기사단장 죽이기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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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3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3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3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3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22598 2020-11-04 0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떡뽁기 같은 작가라니 ㅋㅋ 기가막힌 표현인데요. 20대 초에 하루키를 탐닉하고 있었던 그때가 딱 그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읽지 않고 있는데 AA님의 리뷰들을 보니 다시 또 하루키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

AgalmA 2020-11-06 06:29   좋아요 2 | URL
20대 때 읽는 하루키는 인생에서 중요하고 소중한 순간이라 생각해요^^ 나이 들어 읽으면 그때의 나, 지금의 나를 반추하는 시간도 되고요.
다시 맘 가는 작품 읽어보세요. 다른 감회가 밀려 오실 거예요.
 
명랑하라 팜 파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0
김이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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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의 제목은 시집이 보여주는 풍경과 오히려 상반된다. 우울과 폭력 속에 휩쓸리고 있는 그녀들은 “여자라기엔 애매한 실존”이자 “아무래도 절반 죽은” 듯이 “둘 중 하나는 유령”같은 존재이다. 누구를 해치기는커녕 부지불식간에 몰락하고 있다. 이 시집 곳곳에 등장하는 ‘세이렌’은 대표적인 ‘팜 파탈’(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치명적 고통으로 이끄는 존재)이다. 이광호 평론가는 이 시집의 ‘세이렌-팜 파탈’을 일반적 정의가 아니라 시적 에너지로 볼 것을 권한다.

 

 

“그러면 김이듬의 세이렌은 팜 파탈인가? 그 노래가 어떤 치명적인 위험을 동반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세이렌은 팜 파탈의 측면을 보유한다. 특히 성적인 모티브의 노출 역시 팜 파탈로서의 세이렌의 존재를 수긍하게 한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이미지로서의 팜 파탈은 이성애 가부장제의 상징질서가 만들어낸 판타지이기도 하다. 팜 파탈의 표상은 남성 권력이 만들어낸 과도한 공포와 불안이 역설적으로 투사된 것이다. 그것은 팜파탈의 매혹이 남성의 욕망이 만들어낸 매혹임을 의미한다. 팜 파탈은 남성들의 순수한 욕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그 욕망 자체를 욕망하게 만드는 표상이다.

그렇다면, 김이듬 시의 세이렌은 어떠한가? 그녀, 혹은 그녀들은 하나의 성적, 실존적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시집에서 ‘세이렌-팜 파탈’은 상징질서 내부의 주체화를 거부하는 혼종적 주체이다. 다시 한 번, 문제적인 것은 이 시집의 팜 파탈이 노래하는 세이렌으로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세이렌은 꿈속에서 꿈꾸는, 무의식에 대한 무의식의 기술이라는 방식으로, 상징질서를 뒤흔들어놓는 시적 언어를 발설한다. 그 언어는 남자를 유혹하여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리는 언어가 아니라, ‘남성/여성’ ‘현실/꿈’ ‘삶/죽음’의 경계가 갖는 상징적 권위를 혼란으로 몰아가는 언어이다. 여기서 시적 주체로서의 의미 생성 과정과 관련된 역동적인 세미오틱, 혹은 본능적 언어의 작동을 볼 수 있다. 김이듬의 시에서 팜 파탈은 이 세계의 상징질서에 깊고 날카로운 틈을 파고드는 이상한 나라에서 온 세이렌의 움직이는 초상이다. 그 ‘팜 파탈-세이렌’의 ‘명랑’은, 그래서 그녀들의 우울, 강박, 히스테리, 분열증 너머의 시적 에너지를 암시한다. 그것은 그녀들의 정신적 외상의 번역이 아니다. 자기 몸 깊은 구멍과 얼룩에서부터 고통을 다른 쾌락으로 만드는 시적 체위이다.”

(이광호 해설 「세이렌의 유령 놀이」, 166~168페이지)

 

 

 

이광호 평론가의 해설은 그 논리 체계에서는 매우 설득력 있다. 그러나 애초에 시인이 왜 유령과 꿈의 극장을 만들어 발화를 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는 아쉽다. 정신적 외상 없이 고통을 다른 쾌락으로 만드는 건 태생적 사이코패스여야 가능한 것 아닌가. 모든 인간은 자신의 정신적 욕구와 외상을 이미지든 영상이든 글이든 대화든 범죄든 일의 성취든 무엇을 이용해서라도 풀고자 한다. 김이듬 시인은 여성이라는 틀에서 평가되고 유린당하며 고통받는 현실 세계의 여성들이 현실에서 변신할 수 없으므로 비현실적 공간에서 자유롭게 발화할 수 있도록 설정하고, 그녀들에게 모욕과 폭력을 휘두르는 대상들을 노골적이고 위악적으로 전시한다.

 

 

“유치하게 할아버지는 내가 너무 잘해서 처음이 아니지? 좋아라 하다가 입 닥쳐 뭐가 되려고 이러니 집안일은 밖에 나가서 말하는 게 아닌 법이야 기껏 키워놓았더니 경찰서나 들락거리냐 나는 할아버지의 입을 막으며 뱀으로 변하가네 사자 물불보다 변신이 쉬운 걸로 흡혈귀가 되는 방법은 마법 책에 없었네”

(「유니폼은 싫어요」)

 

“저런,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남자가 비틀비틀 걷다 꺽꺽 우네요

잠바를 말아 쥐고 바닥을 힘껏 때리더니

이게 뭐냐고, 너 나한테 뭐라고 그랬냐, 다시 말해봐

깜짝 놀라서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려요”

(「헬렐레할래」)

 

 

“교통사고와 연애는 후유증이 더 무섭다고

내일은 병원에 가보라며 남자가 아픈 데를 주물러준다

호호 불어주다가 애도 아닌데 침을 발라대기 시작한다

한 세트의 유리병들이 위태롭게 부딪히는 소리를 내고

십이 간지 꾸러기 수비대와 몬스터 만화책이 자빠지고

과일을 하라며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행상인이 지나가고

얼떨결에 심드렁한 개처럼 남자는 내 치마 아래로 기어들어간다”

(「여드름투성이 안장(鞍裝)」)

 

“자자! 시작할까요? 나는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제안한다 지긋지긋하고 구태의연한 진술은 들을 필요도 없으니 내버려두는 게 제일이다 제 그림자와 결투하는 놈한텐 이만한 질액도 생리액도 잘 안 들을뿐더러 내가 홀리아 할아버지와 결혼할 때처럼 처음부터 그의 고환을 긴장시킬 필욘 없다 나는 그들을 분석하려는 재미없는 짓거리를 그만두고 임종의 옷들을 전시할 작정이다 날아다니는 가죽 밸트도 있고 걸치면 죽게 되는 방탄복도 있다 한꺼번에 나는 수백 벌의 원피스를 껴입고 수천 켤레의 구두 위에 장갑을 겹쳐 끼우고 깊은 모자를 눌러쓸 것이다 자 그럼 천천히 똥구멍을 벌리세요 어어어 귀는 펄럭거리지 말고 혓바닥을 깨물고 최대한 불행했던 때를 생각하세요 아니 웃으면 어떡합니까!

(중략)

그가 내 혀를 잘라 먹으며 똥구멍을 과도하게 벌리는 바람에 통쾌하게 어릴 적을 떠올린다. 나는 발가벗겨진 채 죽은 지 오래되어 나는 흰 티셔츠를 찾아 커다란 옷장 안에서 나는 어딨어? 나는 더듬더듬 큰 소리로 무언극 대사를 주고받는다 몇 차례 경련이 일어나더라도 모자 따위가 일그러지는 건 피해야 한다 그는 모든 연기를 다음으로 연기하자고 나를 설득한다 나를 찾아온 것을 후회하며 자신을 자신의 옷으로부터 추방하지 않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고 울부짖는다 마침내 오 하느님 나의 새침한 여신이여 그는 무릎을 꿇으며 나를 파고든다 그가 미쳐서 값비싼 신발과 모자를 찢어버리지 못하도록 나는 나를 내버려둔다”

(「망한 정신병원 자리에 마리 수선집을 개업하기 전날 밤」)

 

“몇 사람이 놋쇠 그릇을 긁고 있었다

식탁 위로 올라가 발을 구르다

소녀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풍성한 머리칼이 자라는 그릇은 울기 시작했다

그릇된 노래는 부르지 마라

막대기로 때리고 문지를수록

소녀는 진동했고 발작에 가까웠다

다시 생겨날 당시의 용도로 돌아갈 수 없었다.”

(「드러머와 나」)

 

 

“군인이 사흘 먼저 사라졌고 세 명의 형제들은 순차적으로 죽었다

철공소 골목 국숫집을 나와 학원 가는 길 불똥을 피해 벽에 붙었다 계집앨 붙들어 매고 이튿날 대낮까지 절단 낸 낯익은 용접공 형제들과 그들의 군복 입은 친구는 찬물을 끼얹어가며 쪼가리를 공평하게 분배했다 누군가 계집애를 구성했던 이마 위로 눈부신 망치를 쳐들었을 때 내리깔리는 흰자위에 천공의 쇠공이 불을 뿜으며 재빨리 날아와 박혔다”

(「침묵의 복원」)

 

 

 

 

1부에서만 가져온 것인데도 대단한 양이다. 어떤가, 이 일련의 인용들이. 불편한가. 불쾌한가. 작위적인가. 그로테스크의 작용처럼 리얼함이 지나쳐서 히스테릭한 웃음이 터져 나오지는 않는지. 이 시적 정황 속 그녀들은 사라지기 직전이자 돌이킬 수 없는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화장을 하든 안 하든 스스로를 꾸미고 원피스를 차려입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여성들은 전무하다. 이 시집 속 그녀들은 개의 혓바닥에 앉는 기분이거나 밥상 아래로 기어들어가고 천장에 붙어 있는 기분으로 편안함도 안전함도 느낄 수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곳 현지 시각으로 지금 상황으로 나는 맞춰지지”(「부치지 않은 편지」) 않는다. 자학과 히스테릭 속에 침울함이 가득한데 과연 이런 존재가 ‘세이렌-팜 파탈’인가. 이 시집의 ‘세이렌-팜 파탈’은 유혹자가 아니라 핍박당하고 고립되는 배척자이자 외톨이다.

 

 

“길가의 나무가 섬세하고 창백한 뿌리를 침통해한다면, 시선을 돌리고 난 후에 남아 있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 후에 뭔가가 되고 싶지 않은,

나무나 나나 나무였던 것의 이후에 관해 아는 바가 없고, 나는 하나를 결정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던 시절을 넘어왔다, 미루였는지 양버들이었는지 몇 그루의 나무들 속에서 폭우 속에서 장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적 있으니 이 부질없는 시여, 벌레들의 집과 흘러내리는 수액이 성가신,

비스듬히 서서 품종과 자생지를 모르는 나무에 붙은 종이 한 장, 잃어버린 개를 찾습니다, 나무만 이 자리에 두고 가는 게 미안하지만 잃어버리는 방식이 다른 우리가 사는 길이라면, 나무나 나나.”

(「나무나 나나」)

 

 

 

자연스러움, 평범함 자체가 이상적 허구일 뿐이지만 감정적인 토로만큼이나 위악적인 표현도 사실 연민을 일으킨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있기에 치르는 재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시집의 시들은 사랑한 적은 있으나 받은 기억 없이 한 번도 구출되었다고도 보호받았다고도 생각한 적 없이 살았고 종국엔 실종 처리된 사람에게서 찾아낸 마지막 기록처럼 아프다. 그 다이어리 앞에는 명랑할 수도 없고 팜 파탈이지도 않아서 더 단호히 ‘명랑하라 팜 파탈’이라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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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0-31 17: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다이어리 앞에는 명랑할 수도 없고 팜 파탈이지도 않아서 더 단호히 ‘명랑하라 팜 파탈’이라고 쓰여있다.˝ 와, 난리났다. 병이 도지네요... 저 돌아온 첫달에 아갈마님 따라서 본가에 있는 책 엄청 샀는데.. ㅋㅋㅋㅋ 그래서 덕분에 좋아하는 책 컬렉션을 손 닿는 곳에 다시 갖추게 되었어요. 오늘 엄청 신나요. 그동안 읽으셨던 거 막 풀어주신다!! 이맘 때 밖에서 책 읽기 좋은 계절이에요. ^^ 저도 더 추워지기 전에 한적한 곳 찾아서 책 읽으러 가야겠어요!

AgalmA 2020-10-31 17:44   좋아요 2 | URL
본가에 있는데도 또 사셨단 소리ㅎㄷㄷ;;;
제가 좋아하는 책이 우리 집에 가득이라 어지간한 도서전, 서점 나들이에 흥미가 안 생기는 단점이ㅎㅎ; 방안에서 개척 활동😂>
볕 좋을 때 밖에서 책 읽는 거 너무 좋은데 이번 겨울은 길 거 같아 그 기간이 짧아 아쉬워요.

하나 2020-10-31 17:48   좋아요 2 | URL
요즘 여러 핑계로 본가 간지도 오래 되기도 했고.. 그리고 저 책 좀 난폭하게 보거든요. 원래 되게 아껴서 보다가, 책이 되게 안 읽힐 즈음에 어떤 독서가가 책은 원래 난폭하게 보는 거라 그래서 수험서처럼 막 밑줄도 막 치고 그래요. 그래서 아갈마님 포스트에서 언급하셨던 책들 중 아 나 이거 진짜 좋아했지.. 싶었던 거 하나씩 갖춰놨는데 든든하고 좋았어요. 새롭고 ^^
 
[eBook] 흑백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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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년이 넘는 미야베 미유키는 '미미 여사'라는 호칭으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추리소설로 데뷔했지만 긴 시간 많은 작품을 선보인 만큼 그의 소설은 다채롭다.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로 분류되는 『화차』, 『이유』, 『모방범』 등 걸출한 베스트셀러도 있지만, 에도 시대 괴담을 다룬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는 그의 필생의 작업이 될 거 같다. 미미 여사는 자기만의 '괴담 대회'를 완성하려 하기 때문이다. '괴담 대회'는 백 명의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한 명씩 괴담을 들려주는 일본 전승으로 많은 작품의 모티프가 되었다. 이야기를 마칠 때 각자 들고 있던 초를 꺼 100번째의 초를 끄면 귀신이 나온다는 전설 때문에 99편에서 그치지 않을까 싶지만 변조 괴담 자리이니 괜찮겠지. 아직 갈 길은 멀다.

풍물이 번성한 상업 전성기였던 에도 시대, 도락과 풍류의 시대를 보여주면서도 인간 내면의 상징 같기도 한 장신구 주머니를 파는 미시마야 가게에 오치카라는 소녀가 등장한다. 그녀가 큰 슬픔을 안고 숙부 이헤에 가게에서 힘든 하녀 일을 자처하며 머무르게 된 사연과 '흑백의 방' 탄생 배경이 『흑백』의 주요 줄기다. 나는 오치카가 혼례를 치르고 미시마야 가게를 떠난 뒤 도미지로가 2대 이야기를 듣는 자가 된 『눈물점』부터 읽고 역주행했지만 각 권마다 도입 설명을 찬찬히 하면서 각각의 완결성이 있어 어떤 책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흑백의 방'은 원래 주인 이헤에가 손님들과 바둑을 두는 공간이었다. 어느 날 이헤에는 급한 용무로 자리를 비우며 트라우마로 대인기피증이 있던 오치카에게 손님을 맞도록 당부한다. '감추고 있는 슬픔은 서로 통하는 법'이라 손님 도키치는 오치카를 만난 순간 공명했다. 살인을 한 형에 대한 미움과 그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죄책감으로 평생 괴로워했던 그의 이야기가 이 책의 첫 이야기 「만주사화」이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처럼 도키치의 이야기를 듣던 오치카는 ‘세상에는 온갖 불행이 있다. 갖가지 종류의 죄와 벌이 있다. 각각의 속죄가 있다. 어둠을 껴안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문학을 읽는 기능처럼 이야기를 들으며 오치카도 자신뿐 아니라 인간 삶을 성찰하게 된다. 도키치 일화를 들은 이헤에는 ‘흑백의 방’의 성격을 바꿔 이야깃거리를 가진 손님을 초대하는 괴담 대회(백물어百物語) 공간으로 만든다.

 

영혼이 부서질 정도로 비극적인 일을 겪은 젊은 처녀에게 어지간한 위로나 격려는 별 소용이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오치카가 이런 식으로 항간의 신기한 이야기, 업보 이야기, 온갖 인생담을 듣고 그런 이야기들에서 실을 자아내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꿰매어 수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해서 한 번에 손님 한 명만 초대하여 유일한 청자 오치카 앞에서 기이한 이야기를 풀어 놓게 하는 변조 괴담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이 괴담 자리에 엄격한 규칙은 없다. 화자는 내키는 대로 말하되 감추고 싶은 내용은 감추어도 상관없다. 사람 이름이나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가명으로 바꾸어도 좋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면 미시마야를 떠날 뿐. 듣는 역할인 오치카도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들었노라고 숙부 내외에게 전하고 나면 다시는 거론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진위도 아무렴 상관없다.

화자는 말하고 버린다.

청자는 듣고 버린다.

그것만이 규칙이다.

- 미야베 미유키 『피리술사』, 「다미토리 연못」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오치카 한 사람,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한 사람이라 비밀스러우면서도 집중하게 만드는 구도는 '천일야화'와도 겹친다. 흑백의 승부로 판가름되지 않는 이야기라는 성격도 그렇지만, 에도 시대라고 해도 인간의 본성과 사회 문제를 들여다보는 미미 여사 소설의 특성과 인간애는 의미 있는 현대적 풀이이다.

수리를 의뢰받은 곳간 자물쇠를 계기로 아름답지만 사람을 삼키는 저택인 줄도 모르고 천 냥을 받고 1년간 머물기로 한 자물쇠 장수 일가 이야기, 요양을 위해 오랜 세월을 떨어져 자란 아름다운 누이와 남동생의 사랑 그리고 온 가족이 불운에 처한 이야기 등은 각각의 이야기였지만 마지막 「이에나리」에서 그것들이 한데 맞물려 피날레를 이룬다. 마지막 에피소드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교하고 박진감이 넘쳐 다음 책에 대한 흥미를 더욱 돋운다. 이래서 미미 여사, 미미 여사 하나 보군했다.

그리스 비극에서도 볼 수 있듯 그의 소설을 읽으며, 인간은 행복이 아니라 비극에서만 '운명'을 말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행복은 가변적이지만 죽음은 고정불변이기에 그러하리라. 우리의 소실점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다. 우리의 털어놓고 싶은 마음, 듣고 싶은 마음도 거기서 나온다.

 

 

 

결국 눈앞에서 요시스케를 죽였는데도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욕하지도 않는다. 이유를 캐묻지도 않고, 울면서 사과한 것도 아니다. 건넨 말이라고는 단 한 마디. 살려 주세요.

그렇게 자신이 소중한가. 착한 아이인 채로 남고 싶고, 마쓰타로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은 것인가. 살려 달라고 매달리면 마쓰타로가 용서해 줄 거라고, 그게 통할 거라고 생각한다.

죽일 만한 가치도 없다. 마쓰타로는 그 점을 깨달았다. 이런 여자 때문에 미친 듯이 질투하고, 분노로 이성을 잃고, 요시스케를 죽인 자기 자신이 가련해졌다. 이런 여자에게 인생을 걸고 마루센에서 견뎌온 나날을 헛수고로 만든 것이 한심해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 미야베 미유키 『흑백』, 「마경」

 

 

 

 예전에 만주사화(피안화, 상사화, 죽음의 꽃)를 배경으로 그린 내 그림.

그러고 보니 왼쪽 뺨에 눈물점도 그려놨으니 우연히도 매우 미야베 미유키스럽다

 

 

 

ps) 작품 수가 많아 되려 그 때문에 미미 여사의 소설에 입문하기 요원했는데, 이번에 전자책이 대거 등장해 매일 즐겁게 읽고 있다.

나는 오치카 전개보다 이야기를 그림으로 남기는 도미지로 전개가 더 맘에 든다. 여유가 된다면 매 일화마다 도미지로가 남기는 소설 속 그림을 실제 그림으로도 그려보고 싶다. 바빠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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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0-31 17: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혼이 부서질 정도로 비극적인 일을 겪은 젊은 처녀에게 어지간한 위로나 격려는 별 소용이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오치카가 이런 식으로 항간의 신기한 이야기, 업보 이야기, 온갖 인생담을 듣고 그런 이야기들에서 실을 자아내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꿰매어 수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아아아 ㅋㅋㅋㅋㅋㅋ 좋네요. 이야기들에서 실을 자아내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꿰매어 수선할 수 있도록, 지나고 보니까 모든 독서가 그런 거 같기도 하고요 ^^ 오랜만에 아갈마님 그림 보니 좋네요. 미미여사 책 시청각자료를 오래전에 그려두셨어!

AgalmA 2020-10-31 17:53   좋아요 2 | URL
시청각자료ㅋㅋ;;
이야기는 많고 많지만 마음을 들어주고 나누는 건 참 부족한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게 옳고 좋은지는 알지만 스스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도 많고요. 그래서 이 소설들 읽는 게 꽤 위안이 되어서 내리쳐 계속 읽어나갔지요. 너무 쉽게 사람이 죽고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없는 시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데, 우리는 지금의 삶이 제일 고통스럽다고 아우성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말씀처럼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잘 수선해서 입고 다녀야 다른 사람들도 보살펴 줄 수 있겠죠. 하나 님이 제게 건네는 따스한 말씀도 그런 역할이고요-.<)/

페크(pek0501) 2020-10-31 2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림 그리고 싶은데 참고 살아요. 더 바빠지는 게 겁나서요...ㅋㅋ

AgalmA 2020-11-02 23:48   좋아요 2 | URL
발레는 어찌 되셨는지. 나이드니 운동이 1순위 취미가 되어야 할 거 같더라고요^.ㅜ

2020-11-05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척하는 삶 - 개정판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좋은 소설은 가시권이 매우 넓다. 이 소설은 가족, 민족, 국적, 인종, 세대 갈등, 노년, 위안부, 양심 문제 등 인간 실존에 대해 많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한국인이었으나 일본인 부부에게 입양되었고 천황을 위해 일본군으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그는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가 미국인으로 살았고 한국인 소녀를 입양했다. 우리가 어떻게 보든 그는 한국인의 정체성이 전혀 없다. 입양되어 미국에서 자란 서니(내 귀에는 자꾸만 '선희'로 들리던) 또한 그렇다. 애국심이나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가지는 자긍심은 '상상의 공동체주의'다. 생존본능에 가까워 그 땅에서 태어나 살아왔다면 사실상 벗어던지기 어렵다.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회에서 내 피부 색깔과 성별, 언어로 인해 규정되는 틀은 타국에서 쉽사리 공격 거리가 된다. 숨기고픈 과거는 함묵하며 인정받기 위해 어딘가에 속하기 위해 우리는 평생 '척하기'에 골몰한다. 우리는 정말 당당하게 살고 있을까.

 

 

중산층의 노년에 대한 성찰은 필립 로스 『에브리맨』과 비슷하면서, 로스가 유대인이자 미국인의 삶을 그렸듯이 이창래는 동양인이자 미국인의 삶을 그렸다.

전쟁 중에 군의관 역할을 했고 전쟁이 끝나면 의사가 될 꿈을 꿨지만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프랭클린이 되었다. Doc(doctor 약자) 하타로 불리며 평생 의료기기 판매상을 했고 은퇴했다. 위안부 K와의 일 때문이었으리라 짐작되는데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굳이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두 사람은 원하는 가족이 되지 못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도 잘 살든 어렵게 살든 자신이 원했던 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없다. 더 비참하게는 열심히 살고자 하고 사랑하려 하는 사람에게 죽음이 불운이 닥친다. 전쟁에서도 살아남았고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프랭클린이 지금껏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일본인 부모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고 싶었던 일본인의 삶을 떠나 미국에 왔어도 프랭클린은 지역에서 인정받는 주민으로 평생 체제에 순응해온 사람이었다. 그의 그런 모습에서 서니는 더 반항적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프랭클린과 서니의 어긋난 관계도 그들의 남은 생의 결과도 각자의 선택이나 잘못 때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삶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것들과 얽히게 되고 궤도가 달라지고 마니까. 삶을 '언제나 지금부터'라고 말하며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것은 지난 삶의 변명이나 핑계가 아니라 다시 바꿀 용기와 각오를 위해서일 것이다. 프랭클린의 삶과 의지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노력이 아니었고 앞으로의 선택은 더 그렇지 않을 거라는 방향성은 이 소설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데, 둘러보면 그런 삶을 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과 개인의 영달만 꾀하는 요즘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 소설은 매우 올곧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 소설이 다루는 문제, 그것을 담은 문장들은 변함없이 현실적이고 현재와 닿아있다.

 

 

ps) 가혹한 피해자였기에 그랬을 테지만 위안부 k, 여성을 너무 신성시 다룬 게 아닌가 싶다.

 

 

 

 

 

 

1. 어떤 사람이 왜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어떻게 해서 이런 행동은 하고 저런 행동은 하지 않게 되었는지, 과거를 기쁜 마음으로 돌아보는지, 아니면 평정한 마음 또는 후회하는 마음으로 돌아보는지, 내 생각에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성공이나 실패를 생각할 때조차 완벽한 진실성을 추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다 아는 일이지만, 과거란 결국 매우 불안정한 거울이어서 너무 가혹하면서도 동시에 지나치게 비위를 맞추어 주기 십상이며, 따라서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과는 달리 절대 진실을 비추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2. 히키 부인은 좋게 봐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뭐라고 토를 달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게 봐 준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이해였다.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비뚤어진 태도를 보일 수 있고, 심지어 충격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보여 주는 모습 중 무엇이 진정하고 핵심적인 것인지, 또 무엇이 어느 모로 보나 비정상적인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입장에서도 쓸데없이 되풀이해 생각하기보다는 빨리 잊어버리는 편이 좋은) 순간적인 실수인지 아닌지를 분별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나 나름의 경험을 통해 그래야 함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3. 은퇴를 하게 될 때 부딪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리브 크로퍼드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 줄 수 없다. 설사 그녀가 그녀 표현대로, ‘전방 180도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신경 쓸 것 전혀 없는 최고 수준의 콘도’를 찾아 준다 해도 그녀의 일은 거기서 끝이 난다. 내가 괜찮은 거처를 가지게 된다 해도, 거기서 어떻게 살지, 그리고 거기서 왜 살아야 하는지는 나 혼자 궁리해야 할 문제다. 흔히 말하는 은퇴 후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에는 쉽게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는 낚시를 하지 않고, 브리지도 하지 않는다. 작은 인형이나 이국적인 새나 골동품 장난감을 수집하지도 않는다. (중략) 전문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침대에서 책을 읽는 것 정도는 해 볼 수 있겠지만, 내가 그런 데서 듣고 보게 되는 것들 대부분은 나처럼 늙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냥 영원히 잠들어 버리는 것이 속 편한 일이라고 말해 주는 것 같다.

4. 떠난다는 생각을 할 때 내가 가장 크게 우려했던 것은 모두가 이따금씩 느낄 수 있는 어색함이었다. 예를 들어, 매일 다니는 거리나 가게에서, 또는 다른 경우라면 은은하고 푸릇푸릇한 공원 그 이상일 수 없는 곳에서 주변 환경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저 사람은 누구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대부분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그리한다)에 대해 의식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일까 궁리하는 것. 내 생각이든 남의 생각이든 나는 정말이지 이런 식의 생각을 좋아한 적이 없으며, 그래서 내가 이 타운에서 나 자신을 위해 꾸준하게 조성해 온 그런 상황 속에 들어가 있기를 늘 원해 왔다.

5. 우리는 그 말에 마음껏 웃음을 터뜨린다. 기침이 자꾸 나왔지만, 레니 바네르지 같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이상적인 환경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인생의 순간들이라는 것이 꼭 적확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느낌, 그렇게 ‘가치’가 충만하고 묵직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그 순간, 있는 그대로이면 된다. 이 경우에는 나와 레니가 다시 한 번 농담을 하고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가벼운 시간을 보내는 순간일 뿐이다.

6. 사람의 유년기가 놀랄 만큼 취약한 시절이라는 것에 대하여 공적인 논의와 토론이 많다. 시기와 상황이 사람의 성격과 관점, 심지어 행동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멋대로인 아이가 공동체의 생산적인 구성원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도와야 하며, 이것을 무시하면, 기본적으로 훌륭한 본성을 가진 아이라도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적 상호 작용에서 곤란을 겪을 수 있고, 심지어 병적이 되고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이 근래의 통념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아버지 없이, 낙인찍힌 가족으로 살아야 했던 베로니카는 어떻게 이렇게 나름 훌륭하게 성장한 것일까? 아이의 어머니 코모 경관은 어떻게 했길래 딸의 마음에서 타고난 기품과 선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베로니카든 다른 사람들이든 실제로는 신의 뜻에 따라, 또는 약간의 우연에 따라 한 가지 기질, 딱 한 가지 기질만 지니고 있을 뿐이고, 겉보기에 변종으로 보이는 것들은 각각의 윤곽, 일상적인 장식물에 불과한 것일까?

7. 은퇴하고 나서 몇 년 동안 이곳의 집단 기억이 내가 믿고 싶어 하는 것보다 짧다는 것, (중략) 나는 선량한 닥 하타에서 괜찮은 노인네에서 저 늙은 동양인이 누구냐로 바뀌었다. 그 질문(지난 여름 처치 스트리트의 새 식당에서 점심 값을 치르다 그런 소리를 들었다)에는 심각한 악의나 편견은 담겨 있지 않다. (중략) 이런 식으로 처량하게 자신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나이 든 사람들이라면 모두 겪는 일, 심지어 한창 때는 적당한 위치를 확보했던 사람들조차 겪는 일이 틀림없다. 그러나 내 경우는 시간으로 인해 흐릿해지는 것과도 다르고 현대 생활에서 늙어 가면서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일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은 둘째 치고, 내가 어떤 인종에 속한 사람이냐 하는 것이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사실로 남기 때문이다. 내 얼굴이라는 단순한 항상성. 따라서 나와 같은 사람은 사소한 손실들은 받아들이면서, 삶에서 생기는 위안들에 행복해해야 하는 것일까?

8. 서니 의료 기기도 지금처럼 속이 반쯤 빈 채 문을 닫는 대신, 활기로 인해 눈부신 곳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환상적인 상상이 펼쳐지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너무 복에 겨운 상상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무슨 명예나 부의 측면에서 복을 누리는 상상은 아니다. 그저 매일 밤 가게를 나오면서 슬쩍 돌아보았을 때, 그곳이 우리를 담아 줄 만한 그릇이구나 하고 느끼는 것에 대한 상상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평생 동안 얻으려고 노력했던 것이 아닐까? 어렸을 때 일본인 부부의 손을 잡고 정규 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영광스러운 전쟁으로 일컬어지던 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하기까지, 그리고 이 나라에, 그것도 매우 품위 있는 타운에 정착하기까지. 그것이 내 오랜 어리석음, 나의 연이어 온 실패는 아닐까?

9. …… 내 집으로 돌아와 그 애의 아들과 함께 보낸 편하고 즐거운 시간들의 여파 속에서 내 집이 훨씬 더 거대하게 자라 버렸음을,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훨씬 더 작아졌음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그와 더불어 내 인생이 갑자기 다시 잠정적인 것이 되었음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실제로 나는 마치 젊은이처럼 내 인생이 가능성과 선택을 향해 열려 있다는 느낌, 그만큼 취약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늘 내가 진실로 두려워하던 존재 상태였다. 사람들의 취약한 상태는 오랫동안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물론 나는 전쟁 중에 임무를 수행하면서 죽음과 연약함을 목격할 때마다 경악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전쟁을 맞아 무딜 대로 무디어진 남자들의 의지는 어떤 종속적 상태를 피해 가지 못했다. 들을 귀와 볼 눈만 있으면 무력하게 빠져들고 마는 그 비인간적인 행위들.

10. 우리는 좀 더 전방으로 이동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랑군 여행은 짧은 마지막 위로 휴가였다. 빛이 사그라지지 않는 해변의 어스름 속에서 묘하게도 전쟁이 그렇게 끔찍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한 젊은 남자라 해도 공동의 목적을 앞에 두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동료 의식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사실 이보다 더 진정한 증명의 시간은 바랄 수 없는 것이라고. 그러나 오노 대위가 나를 부를 때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세심하게 쌓아 올린 모든 인식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런 안쓰러운 고갈 상태에서는 순수한 증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솟구쳐 오르며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그대로 표현한 적이 없다. 그때 오노 대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1. 그는 위안부를 생경하게 ‘조센삐’라고 불렀다. 여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다가 천한 해부학적 욕설을 덧붙인 말이었다. 물론 나는 그가 동료들에게 허세를 부리려고 그런다는 것을 잘 알았다. (중략) 마치 우리 안에 있는 짐승 이야기를 하듯. 때문에 나는 잠시 몸이 얼어붙었다. 물론 나는 그 여자들을 짐승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그때 내 시야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다고 말할 수도 없겠다. 내 생각은 부자의 생각과 비슷했을 것이다. 자기 집이나 소유지에서 일하는 수많은 하인들을, 그들의 노력과 몸부림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부자. 그들을 그의 삶이라는 메커니즘의 부품으로만, 매일 밤낮없이 꾸준히 돌아가는 기계로만 보는 부자.

(중략) 나 역시 생각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아마 여자들을 그런 식으로 대했을 것이다. 부드러운 살덩어리들로. 사라지기 전에 얼른 가져야 할 짧고 따뜻한 쾌락으로. 그것이 전시의 기본적인 방식이다.

12. "자, 그 아이를 위하여 뭘 할까?"

내가 생각하고 의도하는 바는 먼 미래다. 그 아이의 교육, 훈련, 직업. 내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을 것들.

그러나 서니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이 애가 얼마나 자제하고 있는지 깨닫는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흔히 하는 말로 ‘신앙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이 아이 내부에서 용서의 비밀 창고 같은 것을 발견한 것 같다. 내 창고는 이미 오래전에 바닥이 났는데. 어쩌면 용서는 고갈되지 않는다는 것, 현재 어떻게 되었다 해도, 아무리 찌꺼기만 남고 빈약하다 해도, 원하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가없이 늘 새로워진다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서니가 마침내 입을 연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워요. 만일 첫 아이를 낳았다면, 아마 토머스는 낳지 못했을 거예요. 토머스고 누구고 아무런 존재도 없었겠죠.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그래, 물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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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09-09 0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랭클린이 궁금해서 읽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것들과 얽히게 되고 궤도가 달라지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지금부터”라고 말하며 삶을 바꿀 용기를 내는 삶. 그리고 그 용기를 내기 위한 노력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여러번 추천 받았는데 제일 읽고싶어지네요.

AgalmA 2020-09-12 21:14   좋아요 1 | URL
프랭클린이라는 중년 남성에게 감정 이입이 되느냐 안 되는냐가 이 책의 호불호를 나눌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읽다가 분량이 많아 덮었다가 잊고 말았는데 이번에 갑자기 마저 읽어보고 싶었어요.
다 읽고나니 이창래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