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루틴의 힘 -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계속하게 만드는 루틴의 힘 1
댄 애리얼리 외 지음, 정지호 옮김 / 부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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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고 있지만 내게는 일 년 중 뚜렷한 반성의 시기가 두 번 있다. 한 해의 반이 지나가는 시점인 6월과 한 해가 끝나는 12월. 6월이 오니 맘이 복잡하다. 제자리걸음 같은 내 일상을 점검하고자 이쯤에서 자기 계발서 한 권 정도 읽어도 좋겠지.

쟁쟁한 아웃라이어 20인(댄 애리얼리, 그레첸 루빈, 세스 고딘, 칼 뉴포트, 스콧 벨스키, 에린 루니 돌랜드, 토니 슈워츠, 토드 헨리, 애런 디그넌, 스티븐 프레스필드, 마크 맥기니스, 리오 바바우타, 크리스천 재럿, 스콧 맥도웰,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엘리자베스 그레이스 손더스, 로리 데센, 제임스 빅토르, 린다 스톤, 티퍼니 쉴레인)의 성공 습관과 루틴 철학을 살펴본다.

 


「좋아하는 일일수록 자주 실천하라 _그레첸 루빈」

- 루빈의 글 핵심 키워드는 "자주"

 블로그나 일기를 매일 쓰는 사람들에겐 루틴 습관이 잡혀 있다고 봐야겠지만 일의 질과 성취도가 과연 높은가가 관건이겠다.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 쉬우니 목표와 성취도를 더 면밀히 살펴야 한다. 


 *

"자주 하면, 시작이 수월해진다

항상 시작이 문제다. 일을 시작하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도중에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려면 처음에 겪었던 어려움을 또 겪어야 한다.

그러나 매일매일 하다 보면 그 감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도중에 일에서 멀어질 새가 전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할 일도, 이미 해 놓은 일을 떠올리거나 본궤도로 다시 올라서기 위해 검토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기존 프로젝트가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중단한 시점으로부터 다시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다.

 

자주 하면, 아이디어가 신선해진다.

당신의 마음이 일과 관련한 문제로 끊임없이 설렌다면 아이디어들 간의 새로운 연관성을 발견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일에 깊이 골몰해 있으면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다 연결된 것 같은 짜릿한 느낌이 든다. 세상 전체가 전보다 재미있는 곳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소재를 미치도록 갈망하여 촉각을 곤두세울 때 비로소 아이디어가 흘러들어 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일에 계속 집중하기 힘들어진다. 걸핏하면 슬럼프나 혼란에 빠지고, 딴 것에 신경을 쓰거나, 원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는 것이다.

 

자주 하면, 부담이 줄어든다

일주일 동안의 결과물이 겨우 한 페이지, 블로그 포스팅 한 건, 스케치 하나라면 당연히 ‘특출하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작업물의 질에 대해 조바심을 내게 된다. 아는 작가 중에 도무지 집필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막상 일을 하려고 노트북을 켜면 잘해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부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 먼저 일하라 _마크 맥기니스」

- 맥기니스는 자기 능력과 성향에 맞는 맞춤식 루틴을 고민하고, 창의적 업무를 우선시하는 습관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당신의 일상에도 '새로고침'이 필요하다 _토니 슈워츠」 , 2장에 나오는 「창의적인 스케줄에서 성과가 시작된다 _칼 뉴포트」도 비슷한 제안이다. 뉴포트는 집중 시간대를 확실히 지킬 것을 권고한다.

                      

*

 "업무 습관을 ‘창의적 업무 먼저, 대응적 업무는 나중에’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루 중 일정 분량의 시간을 전화와 이메일에 신경을 끈 채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른 창의적 업무에 할당하라."

"‘할 일 목록’의 증가에 주의하라: 하루의 ‘할 일 목록’에 제한을 두어라. 가로세로 7~8센티미터짜리 포스트잇이면 족하다. 할 일 목록을 이 정도 크기의 종이에 다 적지 못한다면, 하루 동안 어떻게 그 모든 일을 해낼 것인가? 목록에 계획을 계속 추가하다 보면 일은 결코 끝나지 않고, 일할 의욕은 곤두박질친다. 대부분의 일은 내일 해도 된다. 그러니 그냥 두어라.

 

약속을 기록해 둬라: 모든 약속(자신과의 약속이든 남과의 약속이든)을 잊어버릴 수 없는 곳에 습관적으로 기록하라. 이렇게 하면 어떤 요청에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더 믿을 만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모든 약속이 기록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면 당면한 과제에 집중할 수 있다.

 

일상의 틀을 단단하게 짜라: 혼자 일하는 경우라 해도 하루 일과의 시작 시간과 종료 시간을 정하라. 창의적 업무, 회의, 소통, 관리 업무 등 작업 성격이 다르면 시간대도 다르게 할당하라. 이렇게 철저하게 시간 틀을 짜 두면 필요 이상으로 작업 시간이 길어져 다른 중요한 일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일중독에서 탈피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삐삐 롱스타킹 큐브 메모지를 이러려고 샀다.

생각날 때마다 아이디어를 바로바로 적기 위해.

떼서 다른 데 옮기기도 쉬우므로 다이어리나 노트와는 다른 쓰임이다.

 

 

「(Q&A) 지금, 여기, 내가 일하는 이유 _세스 고딘」

 - 고딘은 '실천의 힘'을 강조한다. 원론적인 말이지만 이게 제일 안 되는 게 현대인의 난관. 단기적으로는 열심히 하지만 장기적 실천에는 실패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경우는 자신의 부족함과 일의 완벽 추구를 변명 삼아 도피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아, 찔려.


*

"실천이 곧 전략이지요. 실천이란 습관적 방식으로 규칙적이고 확실하게 일하는 것입니다. 실천 습관을 들이는 중이라고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실험용 흰색 가운을 입거나, 특별한 안경을 쓰거나, 특정 장소에서 작업을 하는 방법이 있죠. 이렇게 습관을 통해 자신의 기술을 전문화하는 겁니다."

"Q. 아이디어를 알리고 납득시키는 세일즈 능력을 후천적으로 개발한 사람 중 특별히 떠오르는 이가 있습니까?

 

이제까지 아이디어 세일즈 능력을 타고난 사람은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제 생각에, 이 능력을 터득한 사람들은 모두 타고난 것이 아니라 이 능력이 자신에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칭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면서도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여 본 적 없는 사람은 수없이 많이 봤습니다. 자기는 예술로 충분히 밥벌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모두가 어렵게 생각하는 아이디어 세일즈는 하지 않으려는 거죠."

 


「(Q&A) 산만함의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 _댄 애리얼리」

- 업무와 관련되지 않아 난 이메일을 잘 체크하지 않는데 이 문제가 꽤 크게 언급되어서 흥미로웠다. 애리얼리는 우리가 왜 이토록 유혹에 약한지를 면밀히 살핀다. 유혹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시간 관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일의 진전 상황을 가시화할 수 있는 장치(일기, 문서 등)를 눈에 보이도록 만든다.


*

Q. 이메일은 왜 그렇게 유혹적인 시스템인가요?

 

심리학자 B. F. 스키너B. F. Skinner는 ‘무작위 보강’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냈습니다. 쥐가 레버를 100번 누를 때마다 먹이를 준다고 칩시다. 쥐의 입장에서는 신나는 일이죠. 그러나 횟수를 1~100까지 무작위로 골라 선택하면 더욱 흥미로운 결과가 나옵니다. 보상을 전혀 하지 않아도 쥐는 계속해서 레버를 더 많이 누르는 겁니다.

이메일과 SNS도 무작위 보강의 아주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레버를 누르듯이 이메일을 확인해 보면 보통은 별 재미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은, 신나는 소식이 기다리고 있죠. 무작위 간격으로 발생하는 그런 즐거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이메일을 확인하게 되는 겁니다.

또 한 가지 이해해야 할 개념은 ‘선택 설계’인데요. 주변 환경이 우리가 내리는 최종 결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가령 뷔페에서 줄을 서서 음식을 담을 경우 음식이 진열된 방식, 즉 신선한 과일과 샐러드가 손쉽게 집을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는지, 아니면 좀 더 맛있는 음식 뒤의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등의 진열 방식에 따라 우리가 최종적으로 먹는 음식이 결정된다는 뜻이죠.

 

 

Q. 당신은 유혹을 물리치고 자제력을 발휘하는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자제력에는 두 가지 요소, ‘자제력 문제’와 ‘자제력 해법’이 있습니다. 자제력 문제는 결국 “지금 당장이냐, 아니면 나중이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죠.

듀크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랠프 키니Ralph L. Keeney의 연구에 따르면,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빚어지는 인간의 사망률을 추정해 보니 100년 전에는 그 수치가 전체 사망률의 10퍼센트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그 비중이 40퍼센트를 조금 넘습니다. 왜 그럴까요? 새로운 기술이 발명된다는 건 우리 자신을 죽이는 방법 또한 새로 발명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죠. 고칼로리 음식과 비만이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세요. 담배와 흡연도 마찬가지죠. 문자 메시지와 운전도 그렇고요. 이 모두가 자제력 문제를 야기하는 요소들입니다.

자제력 해법은 우리 스스로 더 나은 행동을 위해 시도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많은 돈을 지불하고 헬스클럽에 등록했는데 운동을 거른다면 죄책감이 들죠. 그래서 이 때문에 빠지지 않고 가게 됩니다. 밝혀진 바로는 이 죄책감이 효과는 있지만 지속 시간은 짧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사라지고 말죠. 100칼로리 짜리 작게 포장된 쿠키 팩을 사는 이유도, 단지 ‘용량이 적은 만큼 쿠키를 덜 먹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자아 고갈’이라는 현상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우리의 자아가 계속되는 유혹을 물리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혹을 물리칠 때마다 에너지가 필요하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남아 있는 에너지는 줄어듭니다. 즉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이 커지는 거죠. 

 

 

 


「(Q&A) 창작의 리듬을 유지하는 법 _스테판 사그마이스터」

- "창조란, 집중을 방해하는 크고 작은 장애물들을 포기하는 일에 불과하다"(E.B. White)라는 말처럼 창작은 자제력의 힘에서 나온다고도 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몰입, 몰두'가 이에 해당한다. 지속적인 동기 부여에 대해 사그마이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

Q. 혼자 일할 때는 어떻게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합니까?

 

안식년을 가지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점은 ‘시간’이란 공들여 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 낸 시간은 무슨 일이 생겨도 다른 문제에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 금요일은 영화의 날로 정하자.’ 이런 마음을 먹자마자 일정표를 꺼내 모든 금요일에 ‘영화의 날’이라고 표시해 뒀죠. 덕분에 무슨 일이든 네 달 전에는 미리 일정을 짜게 됐고, 혹 누군가 금요일에 만나자고 하더라도 “금요일은 안 됩니다. 목요일에 뵙죠”라고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계획 수립의 기본을 따른 거였어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미리 일정표에 표시해 두는 것 말이죠.

어느 노벨상 수상자의 멋진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는 한 기업으로부터 시간 계획에 대해 강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유리병을 하나 들고 서서 “제가 시간 계획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내용을 직접 보여드리는 데 2분이면 충분합니다”라고 말했죠. 그러고는 굵직한 돌들을 가져와서 유리병 윗부분까지 채운 다음, 이번에는 조그마한 돌들을 또 유리병에 집어넣었고, 다시 모래를 부은 다음, 마지막으로 물까지 부어 넣었습니다. 마침내 유리병이 꽉 차게 됐죠.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꽤 분명합니다. 큰 돌부터 먼저 넣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더 작은 것들도 채워 넣을 수 있으니까요. 

 

 


「스크린 무호흡증에서 탈출하라 _린다 스톤」

- 2008년 7개월의 연구 끝에 '이메일 무호흡증' 또는 '스크린 무호흡증' 현상을 명명하고 발표한 스톤은 '대상' 즉,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우리가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문제라고 한다. 테크놀로지에 매몰되지 않도록 의식적인 사용과 바른 생활 습관을 기르라고 권장한다. 


*

"스크린 무호흡증이란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 TV 등의 화면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일어나는 현상으로, 호흡이 일시적으로 정지하거나 얕게 호흡하는 것을 말한다.

스크린 무호흡증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는 사무실과 집, 카페에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200명 이상의 사람을 관찰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호흡을 참고 있거나 매우 얕은 호흡을 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특히 이메일에 답변할 때 이 증상이 두드러졌다. 더구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자세가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호흡에 더욱 악영향을 주었다.

나는 이런 행동이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자 마거릿 체스니 박사와 데이비드 앤더슨 박사, 그리고 미국국립보건원에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체스니 박사와 앤더슨 박사의 연구를 보면 일시적 호흡 정지 증상은 스트레스 관련 질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몸이 산성화되고, 신장은 나트륨을 재흡수하기 시작하며, 산소, 이산화탄소, 산화질소의 균형이 깨지면서 생리 작용에 혼선이 야기된다.

치과에서 마취제로 사용되는 아산화질소와 혼동하기 쉬운 산화질소는 우리 몸의 건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피어스 라이트는 영국왕립학회와 영국과학저술가협회를 위해 준비한 브리핑 자료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인간의 면역 체계는 바이러스, 박테리아, 기생충 감염 및 종양과 싸우는 데 산화질소를 사용한다. 산화질소는 신경 세포 간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학습, 기억, 수면, 통증 자각에 관여하며, 우울증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산화질소는 비만의 요인이 되는 염증을 가라앉히기도 한다.

일시적 호흡 정지 증상에 관해 문헌을 찾아보고 의사 및 연구진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미주 신경과의 상관관계도 알 수 있었다. 미주 신경은 주요 뇌신경 중 하나로, 기본적으로 교감(“투쟁 혹은 도주 반응”) 및 부교감(“휴식 및 소화”) 신경계를 포함하는 자율 신경계를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깊고 규칙적인 호흡, 혹은 가로막 호흡은 교감 신경계를 진정시키고 허기, 포만감, 이완 반응 등의 장기 기능을 관장하는 부교감 신경계가 보다 지배적인 역할을 하도록 도와준다. 반대로 얕은 호흡, 일시적 호흡 정지, 과호흡은 교감 신경계를 투쟁 또는 도주 상태가 되도록 자극한다. 이 상태에서는 심장 박동이 증가하고 포만감은 줄어들며, 우리 몸은 늘 해 왔던 대로 싸움 또는 도주 반응에 동반되는 신체 활동을 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서 취하게 되는 신체 활동이 고작 앉은 채 이메일에 응답하는 것뿐이라면, 우리는 ‘멋지게 차려입고도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 몸은 투쟁 혹은 도주 상태일 때 충동적이고 강박적으로 반응한다. 또한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경향에 빠지기 쉽다. 이런 상태에서는 배고픔과 포만감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대상이 음식이든 정보든 마치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양 주변의 모든 자원에 손을 뻗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을 자꾸 꺼내어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포르투갈 생명건강과학 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이에 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해 준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보다 익숙한 루틴에 의지하게 된다.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의사 결정 및 목표지향적 행동과 연관된 뇌 부위가 수축하고 습관 형성에 관련된 부위가 커지는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스티븐 프레스필드는 프로의 길이 단계가 올라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문턱을 넘을 때마다 더 많은 것을 내어줘야 한다면서, 당신이 정말 프로가 되고 싶은지 묻는다. 그렇다면 생활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다 읽으니 내용은 대체로 대동소이하다. 루틴도 비슷하다. 자기계발서가 성공 전략으로 제안하는 생활 습관을 종합하면 거의 이것이다.

1. 아침 일찍 집중할 일에 매진할 것.(올빼미과라고 해도 아침형 루틴으로 어떻게든 개조할 것). 오후가 되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치기 때문에 이게 제일 중요하다.

2. 명상, 창작 등 개인 시간을 계획에 따라 맞출 것.

3. '좀 더 지속적으로, 한층 더 수준 높게, 좀 더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신체의 주기적 리듬을 따르고 충분한 수면을 취할 것. "우리 몸은 90분 주기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역량 한계점에 도달한다."

4. 이메일, 디지털 기기, 소셜 네트워크는 정한 시간에만 접속. 수시로 들여다보지 말 것. 주말에는 디지털 안식일을 가지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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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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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현재의 느낌에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그토록 긴 과거에 대한 평가와 미래에 대한 예측을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게 끝내려 한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말)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면 웃음과 씁쓸함에 휩싸인다. 가끔은 놀랍고 끔찍하다. 우리는 이런 공통점도 가진다. 첫인상을 매우 신뢰한다는 것.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인상과 직감에 더 기운다. “감정은 만들어지는 것이지 촉발되는 게 아니”고(심리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 “얼굴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비슷한지가 아니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지만 “만약 사회가 얼굴 읽기에 근거해서 낯선 이를 이해하기 위한 규칙을 만들었다면 큰 문제가 된다.” 제대로 소통까지 못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말콤 글래드웰의 이 책 『타인의 해석』은 그런 문제점과 사례들을 전방위로 다뤘다.

 

 

 

글래드웰이 권하는 타인을 대하는 자세는 이렇다. 우리는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해석하는 것에 지독하게 서툴다는 것을 인정할 것. 낯선 사람의 말과 행동에만 집중해 곧바로 결론 내리지 말 것. 낯선 이와의 대화에서는 대화 내용보다 맥락을 고려할 것.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역사적으로도 현재까지도 이것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타인을 잘못 해석하는 첫 번째 요인은 지나친 확신이다. 우리는 코르테스가 이끈 에스파냐(스페인) 군의 멕시코 침략에서 아즈테카인이 백인을 예언된 신으로 받아들여 아즈텍 문명이 몰락했다고 알고 있지만 역사학자 매슈 레스탈은 전혀 다른 맥락을 제시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코르테스와 아즈텍 제국의 몬테수마 왕은 여러 통역자를 거치면서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 그들이 사용한 '신'이라는 단어는 파악하기 어려운 낯선 존재에게 쓰는 것이기도 했고, 몬테수마가 한 말은 항복한다는 게 아니라 에스파냐의 항복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다. 이런 상황은 2차 세계대전에서도 있었다.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인들은 히틀러를 직접 만나고도 그의 야심을 눈치채지 못했다. 글래드웰은 체임벌린이 히틀러를 만나려고 애쓰기보다 차라리 히틀러의 책 『나의 투쟁』을 읽었더라면 더 나은 판단을 내렸을 거라고 말한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하듯이 말이다. 네빌 체임벌린은 전쟁을 피하려는 자신의 계획과 행동을 확신했다. 미국 중앙정보국 쿠바 부서의 간부들은 스파이를 간파할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플로렌티노 아스피야가, 애나 몬테스에게 감쪽같이 속았다. 우리는 거짓말을 제대로 맞히는 데 우연보다 훨씬 무능하다. 심판들이 거짓말쟁이를 정확히 짚어내는 확률은 54퍼센트인데 운에 맡기는 것보다 약간 높은 수치다.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는 ‘초탐지자’들이 있다고 해도 매번 성공할 수 있을까. 사람은 모순의 함정에 빠진 사실을 낌새조차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 프로닌은 이런 현상을 ‘비대칭적 통찰의 착각illusion of asymmetric insight’이라고 규정한다. “남이 나를 아는 것보다 내가 남을 더 잘 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없는 그에 관한 통찰을 갖고 있을 수 있다(하지만 그 반대는 아니다)는 확신이 있으면, 귀를 기울여야 할 때 이야기를 하고, 또 남들이 자신이 오해를 받거나 부당한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표명할 때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것보다 인내심을 갖지 못하기 쉽다.”

 

 

타인을 잘못 해석하는 두 번째 요인은 우리가 진실을 기본값으로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고(미심쩍은 부분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는 경향),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정직하다는 가정하는 데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밀그램의 실험이다. 권위자의 지시에 따라 일반인이 실험 대상자에게 살인에 가까운 전기 충격을 주는 것에 동조했던 실험이다. 지원자의 40퍼센트 이상이 실험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심리학자 팀 러바인의 ‘진실 기본값 이론Thuth-Default Theory(TDT)’에 따르면, 우리가 “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해 아무런 의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믿음은 의심의 부재가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한 의심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버니 메이도프의 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풋불팀 코치 제리 샌더스키의 아동 성학대 피해가 더 컸다. 이들은 태도와 내면이 일치하지 않은 거짓말쟁이였기에 많은 이들을 우롱할 수 있었다. 이 불일치로 불의의 피해자도 생긴다. 아만다 녹스는 자기 룸메이트가 살해된 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평가와 언론·여론 몰이로 죄를 뒤집어쓰고 이탈리아 교도소에서 4년을 보낸 끝에 석방되었다. 한국도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제도적 심판의 결함과 부정확성을 받아들이면서 그런 실수는 무작위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팀 러바인의 연구는 그것이 무작위적인 게 아님을 시사한다. 우리는 본인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투명성에 관한 우리의 우스꽝스러운 관념에 위배되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차별하는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타인을 잘못 해석하는 세 번째 요인은 상황의 결합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점이다. 전도 유망했지만 요절한 시인으로 회자되는 실비아 플라스의 자살 요인으로 우울증이나 불우했던 가정사를 주로 언급하지만 사회적 환경도 따져볼 수 있다. 가스 오븐으로 자살한 정황이 꽤 충격적으로 거론되는데 “플라스가 자살한 1960년대 초, 영국에서 같은 연령대 여성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10명이라는 경이적인 수치에 도달했다. 비극적으로 많은 가스 중독 사망자 때문이었다. 영국 여성 자살률로 역대 최고치다. 천연가스로 전환이 완료된 1977년에 이르면 같은 연령대 여성의 자살률은 절반 정도로 떨어졌다. 플라스는 정말 운이 나빴다. 10년 뒤에 태어났더라면 그가 "달콤하게, 달콤하게 들이마실" 일산화탄소 같은 구름이 없었을 것이다.” 실비아 플라스의 친구이자 시인이었던 앤 섹스턴은 이듬해 자동차 배기가스로 자살했다. 요즘 자동차는 일산화탄소가 거의 배출되지 않아 시동을 걸고 문을 닫아 자살하기 어렵다. 한국도 연탄 사용이 줄면서 일산화탄소 사망은 많이 줄었지만 번개탄 자살은 종종 일어난다. 글래드웰이 이 사례를 가져온 것은 초점에서 좀 벗어난 것 같았다. 그들이 자살을 마음먹은 이상 그것은 방법상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금문교 예는 적합했다. 자살 명소로 유명한 금문교에 자살 방지 구조물을 설치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리가 개통하고 80년도 더 지난 2018년이었다. “존 베이트슨이 저서 『마지막 도약』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그 사이에 교량 관리 당국은 수백만 달러를 들여 다리를 건너는 자전거를 보호하기 위한 구조물을 만들었다. 금문교에서 운전자가 자전거 이용자 사망 사고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또한 ‘공공 안전’을 이유로 양방향 차로를 가르는 중앙분리대를 만드는 데 수백만 달러를 투입했다. 다리 남쪽 끝에는 다리 밑에 있는 예전 군 시설인 포트베이커에 쓰레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막는 약 2.4미터 높이의 사이클론 펜스를 세웠다. 처음에 다리를 건설하는 동안에는 노동자들의 추락사를 방지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보호 그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물 덕분에 19명이 목숨을 건졌다. 공사가 끝나자 그물은 철거되었다. 그런데 자살에 대해서는 어땠을까? 80여 년 동안 아무 조치도 없었다. 자, 왜 이렇게 된 걸까? 다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비정하고 냉혹하기 때문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이 어떤 장소와 그렇게 밀접하게 결합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게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여러 해에 걸쳐 교량 관리 당국은 자살 방지 구조물 설치를 지지하는지 정기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물었다. 답변지는 대체로 두 범주로 나뉘었다. 찬성하는 쪽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한 경험이 있어서 자살의 심리학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이들이었다. 나머지(사실상 다수)는 결합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거리에서는 다른 결합의 문제가 있었다. 미국 경찰이 민간인에게 다가가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듯 샅샅이 뒤지는 전술을 바꾼 뒤 노스캐롤라이나주 고속도로 순찰대의 차량 검문 건수는 7년 만에 40만 건에서 80만 건으로 증가했다.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 타고난 성향을 무시하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미국에서 백인 경찰이 무고한 흑인을 총격해 살해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데 시스템이 인종차별을 더 부추겼을 것이다. 래리 셔먼은 심각한 우려를 밝혔다. “우리가 담낭이 좋지 않은지를 알아보려고 의사들한테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을 절개해보라고 말하지 않잖아요. (중략) 우리는 경찰이 하는 모든 일이 어떤 면에서는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사실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경찰을 범죄 빈발 지점에 투입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범죄 안심 지점에서는 자유 침해를 딱 필요한 만큼만 하고 그 이상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책의 첫머리와 끝머리에 제시된 샌드라 블랜드의 자살 사건은 낯선 이와 이야기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대화가 틀어졌을 때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블랜드는 위에서 말한 아만다 녹스처럼 상황이 좋지 못했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교통 범칙금으로 이미 경제적인 곤란을 겪고 있었고 낯선 지역에 면접을 보러 온 상황에서 오자마자 환대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만난 것이었다. 백인 경찰 브라이언 엔시니아와 흑인이자 여성이었던 샌드라 블랜드의 만남은 인종 문제나 성차별, 위계의 문제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서로 배려하지 못했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도 못했으며 상대에게 적개심만 표출하고 말았다. 사소한 정차 지시에서 비극적인 죽음으로 치닫게 된 이 사건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이다.

 

 

글래드웰은 이 책을 3년에 걸쳐 썼다고 했다. 타인에게 조심스럽고 겸손함을 갖추는 것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변함없는 예의다. 나도 때론 실수하는 것 같지만 이런 상식을 베스트셀러 저자가 강조해야 하는 세태가 서글프다. 타인을 불신하고 소통하기 어려운 시대에 함께 고민하고 타인에 대한 자세를 재점검해 볼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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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 (Sur) - 세계 여성 작가 페미니즘 SF 걸작선 세계 여성 작가 페미니즘 SF 걸작선 오디오북
어슐러 K. 르 귄 (Ursula Kroeber Le Guin) / 아작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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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이라 기대하고 봤는데 심심했습니다.

1911년 아문센이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하기 이전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도 없는 여성 탐험대가 이미 도착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짧은 분량이라 스펙터클한 전개를 기대하기 무리였지만 다큐 같은 지루한 전개, 여성 대원의 출산 등 진부한 소재, 콩트 같은 결말로 이어져 반전의 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페미니즘적 접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소재라면 에베레스트 일반인 등반대 조난 사건을 쓴 존 크라카우어 『희박한 공기 속으로』, 난파 당해 식인 행위 등 혼란스러운 여정 끝에 설경의 미지의 세계에서 괴물을 만나던 애드거 앨런 포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를 읽는 게 훨씬 낫죠. 여름으로 넘어가는 지금 읽기에 딱이고요.

 

오디오북은 글로 볼 수 없어 낭독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요. 이 오디오북 낭독자는 많이 아쉽더군요. 문성근 같은 배우들이 낭독한 오디오북에 비하면 성량, 완급 조절, 분위기 조성 등등 아마추어 같았습니다. 최근 읽었던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오디오북에 비해서도 낭독자의 역량이 비교되더군요. 세계 여성 작가 페미니즘 SF 걸작선 오디오북 여럿 있던데 또 실망할까 봐 다른 거 살 생각을 접었어요. 한국 오디오북 시장 갈 길이 멀다 싶습니다. 글로 볼 수 없는 답답함과 더불어 리뷰 쓰려면 내용 요약하기도 쉽지 않은데 품질도 만족스럽지 않아 오디오북은 까다롭게 골라야겠어요. 종이책으로 읽었다면 더 나았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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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20-05-14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오디오북은 또 다른 영역같아요. 책이 재미없더라도, 나레이터에 따라 책이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AgalmA 2020-05-28 06:17   좋아요 0 | URL
ebook에 비해 오디오북 적응하기 너무 어렵네요^^;;
 
N.P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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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요시모토 바나나를 처음 만나게 됐는데, 이 작가를 왜 좋아하는지 왜 비판하는지 알겠다. 비판에 대해서는 하루키에게 그러하듯 비슷한 지점이 있다. 짧고 가볍게 밀고 나가는 필치. 그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일본 어투와 결합된 일본 문화 특유의 휘발적인 단상조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들이 자주 담는 기담과 공포까지 포함해서.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이 소설에 대해 자세히 말하진 않겠다. 이 소설이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는 [작가의 말]이 다 전하고 있다. 재능이나 결손에 얽매여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고 한 것과 작가가 선호하는 테마들을 최대한 실험해보고 싶었다는 것.

 

시원치 않은 작가 생활과 삶을 산 다카세 사라오라는 작가가 마흔여덟 살에 자살하고 그가 미국에서 낸 단 한 권의 단편집을 둘러싸고 이 소설의 인물들이 엮인다. 작가의 자녀들인 쌍둥이 남매 사키와 오토히코, 스이, 다카세 사라오의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다가 자살한 쇼지, 쇼지의 어린 연인이었던 가노. 이들의 삶도 비슷비슷하다. 부모의 이혼으로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겪었고 여전히 그 영향 속에서 살고 있는 사키, 오토히코, 스이, 가노. 재능은 있었지만 삶 속에서 무너진 다카세와 쇼지. 이들은 "미행당하고 있다는 망상에 젖어 있는 분열증 환자처럼은 아니라 해도 무언가에 홀려 있지 않은 때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해는 할 수 있어도 시간의 무게는 나눌 수 없는" 사람 삶이 대체로 그렇지 않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삶은 흘러가지만 그 자체로도 사실 버겁다. 작가였던 다카세, 번역가였던 쇼지의 처지와 심정도 비슷했던 것 같다.

 

*

「엄마가 웃었다.

"쇼지 씨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하겠어. 수십 년을 하다 보면, 지칠 때도 있는걸. 번역이란 거, 지치는 양상도 좀 독특하거든."

디저트와 에스프레소가 나와 얘기가 중단되었다. 엄마의 생각을 요즘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어, 신기했다. 엄마가 하는 일도.

"다른 사람의 문장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더듬어 가야 하잖아. 하루에 몇 시간이나, 마치 자신의 글을 쓰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사고회로에 동조한다는 거, 그거 참 묘한 일이야. 거부감이 없는 선까지 들어갈 때도 있잖아. 그러면 어디까지가 자신의 생각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타인의 사고가 일상생활에까지 파고들기도 하고. 영향력이 강한 사람의 글을 번역하다 보면, 그냥 읽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끌려 들어가게 돼."

"……엄마 정도의 베테랑도?"

"최근에는 엄마도 터득하게 되었지만, 번역 일을 시작했을 처음에는, 그게 아마 이혼한 그쯤일 거야. 잘 안됐어. 일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고 할까. 아이를 키우면서 혼자 헤쳐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밤에도 잠을 잘 수가 없었어……. 그런데 종일 타인의 문장과 씨름을 하고 있으니…… 아, 그래, 고독이라고 해야 하나? 고독에 거의 짓뭉개질 것 같았어. 그리고 기분 전환 거리는 뭐든 상관없었어. 사고를 완전히 중단할 수만 있으면."

"자식을 키우는, 그런 거?"

"자식을 키우는 건 시행착오의 연속이야."

엄마가 웃었다.

"엄마는 겐타마였어."

"응?"

나는 되물었다.

"겐타마(십자 모양의 손잡이에 끈으로 매달린 나무 공을 탁탁 치며 노는 놀이 기구). 아하하,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에는 심각했어. 엄마가 자주 했잖아, 왜."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면, 엄마의 방 닫힌 문 너머에서 '탁, 탁'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곤 했다.」

 

**

「하지만 나를 만나기 전부터, 인생의 많은 것들이 얽히고설켜 그의 내면에 지속적으로 쌓여 간 피로감을 덜어주는 역할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그 사람 인격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것, 내게는 매력으로 비쳤던 어두운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나는, 만났을 때 이미 전구가 거의 꺼져 가던 그의 마음속 방에 날아든 나비였다. 위로는 되겠지만, 어둠 속에 낮의 반짝거리는 잔상을 끌어들여 그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을 뿐이다.

그래서 꿈에 그가 등장할 때면 언제나, 지금의 내가 옛날의 그를 만나는 설정인 것이리라. 지금의 나라면 조금은 반짝임 이외의 것을 줄 수도, 즐겁고 고요한 시간을 함께 보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그것도 힘든 일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후회하고 있다. 지금의 나로 만나고 싶었다. 마음속 어딘가에는, 그런 생각이 남아 있다. 자신에게 과도한 가치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가노의 어머니가 탈출구를 원했듯이 쇼지에게 여고생 가노, 다카세에게 스이가 그런 역할이었겠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의 삶의 무게만으로도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다음 세대의 극복에 집중한다. "무언가를 은닉한 사람만의 강함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는 듯 보이는" 사키는 심리학을 공부하며 자살 같은 저주에 빠지지 않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뭇사람들과는 어긋나는, 자립해 있는 재능의 자기 충족적인 무언가. 다른 사람과는 절대 공유할 수 없는, 그녀 자신만의 내면의 고뇌 같은 것. 몇몇 사람에게만 통하는 강력한 신호"를 가지고 있는 스이는 관계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아버지처럼 창작 재능이 있는 오토히코는 스이와의 관계가 끝나며 아버지의 그림자와 광기 어린 삶에서 빠져나와 독립적인 작가로 전환할 시기를 맞이한다. 가노는 이들을 통해 쇼지와의 아픈 기억을 극복한다.

***

「"요즘 사람과 얘기를 안 한 탓도 있으려나."

"불 때문일까."

"이 바람 때문인지도 모르지."

"바다 앞에 서면 사람은 마음을 연다고 하잖아."

"아무리 하찮은 일도 좋은 일인 것 같고 말이지."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파도에 실려서 멀리 떠밀려 가고."

"이게 해방감이란 거야."

.

.

.

밤이 깊어 가면서 침묵을 에워싼 파도 소리가 또렷하고 선명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풍경이 마음속에 쌓인 울적한 것들을 말끔하게 쓸어가고 그 자리에 맑은 대기가 차올랐다. 그런데도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는, 빛나는 것은 남아 있었다. 고요했다. 영원히, 이제 세계가 끝나는 듯한, 순결한 밤이었다.

.

.

.

오토히코를 보았다. 눈물에 번진 하늘과 바다와 모래와 흔들리는 불길을 보았다. 아찔한 속도로 한꺼번에 머리에 들어와, 눈앞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아름답다, 모든 것이. 이 여름에 일어난 모든 일이, 미치도록 격렬하고 아름답다.」

 

우리는 매년 여름을 겪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인생의 순간들도 맞는다. 욕망과 꿈 실현 때문에 서로 갈등하고 상처도 주지만 우리는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두 마음속에 여름 같은 열정과 바다 같은 품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작가와 함께 나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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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진다는 것 창비시선 205
나희덕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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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진다’는 것과 ‘어두워지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다르다. ‘어두워진다’는 말이 현재 진행을 보는 관찰의 자세라면 ‘어두워지겠다’는 말은 앞으로의 방향 또는 결의까지 담고 있다. ‘어두워진다는 것’의 의미는 동명의 시도 있지만 이 네 번째 시집에 실린 시인의 자서가 가장 명확한 설명을 담고 있다.

 

 

 

 

양립되어 보이는 두 성질이 사실은 상관 관계이자 본질을 더 밝혀주는 역할이라는 뜻을 전한다. 삶 속에 깃든 명암(明暗)과 들리지 않는 소리까지 집중하며 암전(暗電)을 읽어내겠다는 시인의 방식과 의지는 분열된 자기모멸로 향하지 않고, 쉽사리 초월로 향하지도 않으며, 시간의 흐름처럼 엄격하다. 계절의 순환, 생로병사, 희로애락 속에 있으면서 그 흐름을 단단히 의식하고 있는 시인의 시선을 이렇게 한데 묶으면 그래서 슬픈지 모르겠다. 상처 아닌 것이 없으니 神도 들킬 것만 같다.

 

 

 

 

 

 

 

 

 

 

 

 

 

 

이 세계는 "이만하면 세상을 다 채울 만하다 싶은 꼭 그런 때가 초록에게"(「小滿」) 있고, "제 빛남의 무게 만으로 하늘의 구멍을 막고 있던 별들"(「일곱 살 때의 독서」)도 있으며, "검은 빛으로 빨아들인 몇 개의 풍경"(「음계와 계단」)으로 음을 울리는 피아노도 있어 "여기에 대보고 저기에도 대보지만 참 알 수 없"(「흔적」)는 것 투성이라 나의 찢김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다. 봄도 겨울도 아닌, 행복도 불행도 분간 없이 섞여 있는 것 같은 어지러운 때, 시인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반성의 시간을 마련하는 시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반갑다. "새들은 무슨 힘으로 날아가는지 알 수 없"(「돌로 된 잎사귀」)지만, "흩어지는 잔디씨에도 그림자가 있다"(「그림자」)는 것을 알고, "열매의 자리마다 비어 있는 허공이 열매보다 더 무거울 것"(「사과밭을 지나며」)이라 보는 시인이라 ‘완성’이나 ‘결말’을 안다고 말하지 않아도 겸손하고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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