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점복어멈이 자리에 눕자 장계향은)

직접 노복들의 처소로 갔다. 지금껏 충효당 안주인이 그곳으로 직접 들어온 적은 없었다. 간혹 노복들이 죄를 지었거나 추궁당할 일이 있을 때, 사랑채의 집사가 그들 처소 앞에 가서 불러내는 것이 전부였다. 특히 여자노비들의 처소는 집사도 가본 적이 없었다.

 

장계향이 나타나자 노복들은 긴장부터 했다. 점복어멈이 누워있는 방을 물어서 들어섰다. 방문을 여는 순간 악취가 코를 찔렀다. 방안은 어둡고 좁았다. 늙은 노비는 요강을 끌어안고 앉아서 피 묻은 가래를 내뱉고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얼굴엔 피와 가래가 묻어 있었다. 바닥은 차갑진 않았지만 삿자리가 깔렸는데 군데군데 뭉개진 구멍에서 흙먼지가 폴삭거렸다. 늙고, 초라하고, 악취를 풍기는 늙은 노비는 작은 비둘기만 하다는 말이 어울릴 듯했다.

장계향은 몹시 부끄러웠다. (빈민구제로 바쁜) 충효당 안에 이런 곳이 있고,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친정아버지는 대낮에 혼자 길을 갈 때는 그림자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밤에 홀로 잠을 잘 적엔 이불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것은 정녕 부끄러운 일이다. 충효의 고색창연한 위엄과 권위, 존경과 긍지가 깃들어 있다고 믿어온 충효당이 거느리고 있는 식솔치고는 너무 안타깝고 외면된 모습이었다.

당장 안채의 목욕간으로 데려갔다. 점복이가 업었다. 목간물을 끓여 손수 씻기기 시작했다. 그 몸은 마르고 작았다. 저 몸으로 바느질한 옷을 떨쳐 입고 사대부 양반가문 사람으로 대접받고 살았구나 싶으니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낯을 들 수 없도록 미안했다. 머리를 감기자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충효당 작은 마님 장계향의 마음이 전해진 것이다. 한바탕 요란을 떨며 목욕을 마치고 안방으로 데려갔다. 우선 자신의 옷을 입혀놓고 말했다.

“다 내 탓이네. 미안하고, 부끄럽네.”


늙은 노복이 거처하던 방을 서둘러 도배를 하고 새 자리를 깔면서 다른 노복들의 방도 손질을 시켰다. 하룻밤을 장계향과 한방에서 자는 동안 열 번도 넘게 고맙다며 눈물을 보였다. 도식이를 불러 진맥을 했다. 기력이 많이 떨어진데다 폐가 나빠져 있고 위장도 성치 못한 것 같다 했다. 일단 약을 지어오게 하여 장계향이 손수 달여 먹였다. 새로 단장한 방으로 돌아간 뒤에도 하루 두 번은 꼭꼭 약을 달여 들고 가서 챙겨 먹였다. 그리고 새로운 처방 하나를 손수 내어서 약을 만들었다.

누렁이를 삶아 먹여 기운을 북돋우는 처방이었다. 먼저 누렁이한테 누런 닭 한 마리를 먹여 닷새를 지냈다. 엿새째되는 날 그 개를 잡는다. 뼈를 발라 버리고 고기를 여러 번 물에 씻었다. 그런 다음 진하지 않은 간장 한 사발과 참기름 다섯 홉을 타서 개고기와 함께 작은 항아리에다 담았다. 항아리의 아가리를 김이 새나가지 않게 잘 봉하여 중탕을 시작했다. 저녁 으스름 때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삶았다. 충분히 삶기면 초간장에 파를 넣고 완성시킨 보약이었다.

열흘 뒤 점복어멈은 기운을 회복했다. 충효당의 남녀 노비들이 안채로 찾아와서 큰절을 올렸다. 장계향은 겨울에 입을 옷 한 벌씩을 선물로 주면서 말했다.

“이 모든 것이 다 내 탓이었네. 미안하고 부끄럽네. 용서들 하시게.”

(363-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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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
    from 突厥閣 2015-01-12 00:42 
    조선 중기(17세기)라는 시대와, 사대부의 철학(성리학)의 일면을 이해하기에 괜찮은 책이다. 장계향의 일생을 사건만 나열하여 연대기식으로 서술한 소설이 아니라 치밀하게 서술된 인물 평전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장계향 시대의 문화와 역사까지도 필요할 경우에는 지나치더라도 매우 꼼꼼이 언급하고 지나간다. 따라서 중간중간 따로 설명하는 철학이나 문학 설명에서는 지루해지면서 흐름이 끊기는 면은 있는데 그건 정말 잠깐일 뿐, 이내 파란만장한 삶과 긴박감 넘치
 
 
cyrus 2015-01-1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땅콩 사장님과 그 사장님의 동생은 아직까지 본인들이 욕먹는 이유가 남 탓으로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정말 갑질하는 리더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감동적인 일화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돌궐 2015-01-11 20:51   좋아요 0 | URL
돈 좀 있다고 거들먹거리고 남들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돈이 권력인 시대여서 그런가 봅니다.

가넷 2015-01-1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갑질을 은연중에 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요즘에 유명해진 모모씨의 갑질을 보면서 말이죠. 대민업무를 보다 보면서 쌓이는 스트레스에 이제는 제가 어디를 가서 갑질은 안하고 있는지 계속 점검하고 있지만 자신은 없네요.

돈이 없다고 갑질 안하는게 아니니까요...

돌궐 2015-01-12 00:57   좋아요 0 | URL
저도 항상 제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럭키언니 2015-01-1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살펴보겠습니다.
 

 

 

 

 

 

 

 

 

 

 

 

도대체 호랑이가 북곽 선생에게 뭐라고 했길래 '虎叱'인가 했더니, 과연 이런 말을 했더라.

 

우리는 풀과 나무를 먹지 않고, 벌레나 물고기도 먹지 않고, 술과 같이 좋지 않은 것을 즐기지 않는다. 산에 들어가면 사슴을 사냥하고, 들에 나오면 말과 소를 사냥하지만 먹는 것을 가지고 서로 해치거나 싸우는 일이 없다. 그런데 너희들은 우리가 사슴을 잡아먹을 때는 아무 상관 하지 않으면서 소나 말을 잡아먹으면 원수로 알더구나. 그것은 사슴과 달리 말과 소가 너희들에게 쓸모가 있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너희들은 말과 소가 날마다 태워 주고 일해 주는 공로는 아랑곳없이 푸줏간이 미어지도록 잡아 죽이고 심지어 뿔이나 갈기까지도 남겨 두지 않더구나. 그러고도 모자라서 산과 들에 있는 사슴까지 마구잡이로 잡아들여서 우리를 굶주리게 한다. 그러니 하늘의 뜻에 따라 공평하게 한다면 우리가 너희를 잡아먹어야겠느냐, 잡아먹지 말아야겠느냐?

너희들은 밤낮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함부로 남의 것을 훔치고 빼앗으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지. 그러고서도 인륜의 도리를 논할 수 있겠느냐? 그뿐이냐. 메뚜기한테서 밥을 빼앗고, 누에한테서 옷을 빼앗고, 벌한테서 꿀을 빼앗아 먹지. 또 걸핏하면 하늘의 뜻이 어쩌고 하는데, 진정 하늘의 뜻으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 똑같은 목숨이요, 메뚜기나 누에, 벌도 마찬가지가 아니냐. 그런데 너희들은 버젓이 남의 밥을 훔치고, 옷을 빼앗고, 집을 부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더구나. 그러니 그 잔인하고 야박한 짓거리가 너희들보다 심할 수 있겠느냐? 더욱이 범이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 것은 차마 같은 종족을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허구한 날 전쟁을 일삼으며 같은 사람을 서로 죽이지 않느냐?

또 우리는 발톱과 어금니 외에는 어떤 무기도 쓰지 않으며 하루에 한 번 사냥해서 까마귀와 솔개, 개미와 함께 나누어 먹고, 아첨하는 자와 병 있는 자, 상복을 입은 자는 잡아먹지 않는다. 그러니 그 어질고 의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너희들은 함정을 파는 것도 부족해서 그물을 친다, 창을 던진다, 통발을 놓는다, 덫을 놓는다, 총을 쏜다, 온갖 무기를 다 쓰더구나. 거기다 대포를 한 번 쏘면 소리가 산을 울리고 불이 뿜어져 나와 천둥보다 더 사납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성난 마음을 다 풀어내지 못한다. 그뿐이냐. 그것도 모자라서 글자를 가지고 서로 헐뜯고 모함하고 다치게 하기를 밥 먹듯 하니, 그 가혹함이 어찌 너희들보다 더할 수 있겠느냐?

- 박지원·이옥, <양반전 외>(재미있다 우리고전 10), 창비, 68-69.

 

 

 

 

 

 

 

 

 

 

아까 영화 매트릭스를 OCN에서 해주던데, 거기서 스미스 요원은 붙잡힌 모피어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I'd like to share a revelation that I've had during my time here. It came to me when I tried to classify your species. I realized that you're not actually mammals. Every mammal on this planet instinctively develops a natural equilibrium with the surrounding environment, but you humans do not. You move to an area, and you multiply, and multiply, until every natural resource is consumed. The only way you can survive is to spread to another area. There is another organism on this planet that follows the same pattern. A virus. Human beings are a disease, a cancer of this planet, you are a plague, and we are the cure.

 

대충 요약하면

스미스 요원: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모피어스를 바라보며) "내가 알아보니까 말이지, 너희 인간들은 포유류가 아니었어. 포유류는 자연과 잘 어울리면서 살아. 하지만 너희들은 그러지 않지. 너희들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번식하고 또 번식하면서 모든 자원들을 고갈시켜. 너희들이 살아나가려면 또 다른 곳으로 퍼져나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생존방식을 가진 똑같은 것들이 또 있어. 그게 뭔지 아나? 바로 바이러스야. 인간은 질병이야, 지구의 암세포지. 너희들이 전염병이면, 우리는 그 치료제야."

 

어째 <호질>에 나오는 호랑이 말과 너무 비슷한 거 아닌가 싶다.

스미스 요원은 모르긴몰라도 박지원 책에 나온 호랑이를 모델로 만든 백신 프로그램임이 분명하다. 

 

그냥 애들이나 읽고 말 책이 아니라 어른들도 곁에 두고 뜻을 되새겨봐야 할 얘기다.

하긴 책을 읽기는 커녕 시험에 나온다니까 "박지원의 <열하일기>, <양반전>, <호질>"이라고 줄줄 외우고만 말겠지.

학교 국어 시간에 우리 고전 문학에 대해 내용을 천천히 감상해 가면서 배워 본 기억이 없다.

낱말 풀이만 대충 하고 넘어가던 과목 고전문학은 나에게 '제3외국어'였다.

도대체 학교에선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 요즘 애들은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은지도 모르겠다.

 

외국에선 전통 문학을 소재로 교실에서 연극까지 한다던데... 고전 소설로 대본 만들고 (되도않는) 연극 같은 거 했었다면 얼마나 재미있었겠나. 그러면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이런 촌철살인의 호랑이 대사를 줄줄 외웠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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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1981 녹음) - The Glenn Gould Edition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작곡, 굴드 (Glenn Gould) 연주 / SONY CLASSICAL / 1997년 3월
평점 :
품절


차에도 있고, 집에도 있고, 스마트폰에도 있으며, 노트북에도 있다. 나에겐 `글렌굴드골드베르크`는 고유명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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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주 선생님께 드립니다.

선생님의 제안과 반론글 잘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께서 제게 주신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돌궐님의 리뷰에 대한 저자의 입장 (2014.8.25) http://blog.aladin.co.kr/704498193/7118752

2. 돌궐님께 제안합니다 (2014.11.22.) http://blog.aladin.co.kr/704498193/7214063

3. 돌궐님의 비판에 대한 반론(1) (2014.11.29.) http://blog.aladin.co.kr/704498193/7234347

* 이하 선생님의 위 글들은 차례대로 ‘입장글’, ‘제안글’, ‘반론글’로 지칭하겠습니다.

  

위 2,3번 글에 대해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저는 석굴암에 관한 기존 학설에 대한 선생님의 불공정한 평가(축소·과장의 두 측면에서)가 그 어떠한 검증도 없이 독단적으로 개진된 점에 대해 나름대로 항의를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기존 학계의 의견을 모두 지지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선생님의 글에서 보이는 억측과 논리적 비약, 그리고 논거의 부족 등을 지적한 것이지 무조건 기존 설들을 옹호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선생님 저서의 ‘진의와 문맥을 오도’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책에서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석굴암에 대한 일제의 식민사관 때문에 학자들과 일반인들이 석굴암의 제 모습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이제는 그것을 되찾아야 할 때라는 것, 그리고 1960년대의 석굴암 복원공사는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으며 지금까지 석굴암이 보존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 또한 학계에서 주장하는 ‘전실 개방구조설’은 석굴의 보존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 이런 내용들이 선생님 주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걸 제가 모른다고 오해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다만 저는 선생님께서 그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논거가 부족하다거나 증거를 편향적으로 선택했거나, 비약이 있는 부분 등을 지적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제안글’에서 인용하신 제 글들은 그중 일부인데, 이 문장들을 거두절미하고 본다면 선생님 말씀처럼 ‘조롱조의 언사로 할퀴고’, 저자를 향해 날린 ‘화살’로 인식될 수도 있겠지요.

그 문장들이 저자이신 선생님께는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리라는 점은 저도 인정합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질문과 반박을 적어뒀다가 한꺼번에 옮겨 쓴 것이라 다소 거친 표현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좀 더 정제된 표현을 쓰지 못한 점은 저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첫 서평(2014.8.9., http://blog.aladin.co.kr/dolkwol/7101680) 을 쓸 때는 감히 이렇게 저자와 맞대고 필담을 주고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으며(이럴 줄 알았다면 저는 리뷰를 절대 쓰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남들처럼 칭찬과 동의로만 점철된 서평을 굳이 온라인 서재에 덧붙일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더욱 냉정하게 반박한 면도 없진 않습니다. 그러니 제 글들이 선생님께는 ‘음해성의 독백’으로까지 비췄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인용하신 제 글들을 원문의 문맥 속에서 직접 살펴본다면 얘기가 또 다릅니다. 앞뒤 다 생략하고 비판조로 쓴 문장의 부분만 인용해서는 제 글의 본의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저는 원문에서 인용문들의 앞뒤에다 선생님의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던 이유와 논거들을 거의 빠짐없이 적었습니다. 그런 앞뒤의 문맥들은 생략한 채 선생님께서 불편하셨던 문장만 뽑아서 나열하신 것은 상당히 정치적이며 논점의 핵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조작입니다.

  

제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던 주요 논점들은 그저 ‘귀하의 주관적 판단이자 소신의 영역이므로, 저자로서 아쉽긴 해도 존중해 드릴 부분’(제안글)이라며 넘어가시고, 논점들과는 별 상관도 없는 표현의 문제들만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내용을 얘기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제 글의 어투를 문제 삼은 것이죠. 이것은 명백한 논점일탈입니다.

  

 

 

 

 

 

 

 

 

 

 

 

 

 

 

2.

저는 강교수님의 저서에 나오는 내용과 선생님께서 주장하시는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선 ‘반론글’에서 강 교수님 저서 『나라의 정화, 조선의 표상』(2012)에는 ‘일출신화이니 햇살담론, 아마테라스 오미가미, 그리고 식민사관 같은 어휘는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일출신화-햇살담론-아마테라스 오미가미는 서로 같은 맥락으로 연결됩니다.

그 맥락이란 것은 결국 일본인들이 석굴암에서 동해(일본해)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자기네 나라를 숭배하고 찬양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러한 일본인들의 시각이 한국인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고요.  

 

선생님께선

저들은 ‘일본해’에서 솟구치는 야마토의 태양을 영접하도록, 아침 햇살이 석굴암 본존불을 비추는 정경을 과장되게 묘사해 조선인을 ‘유인’한 것이다. (56-57쪽)

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런데 강 교수님의 책에도

(일본인들의 경주 여행) 안내문 중에 토함산에 올라 석굴암에서 바라보면 ‘일본해’가 보인다고 적은 것과 석굴암 본존불을 ‘신라 조각 중 유수의 것으로 重寶’라고 높이 평가한 것이 있어 주목된다. 동해가 보인다는 것은 석굴암을 통해 이른바 일본과 조선이 같은 뿌리라는 ‘일선동조’의 사상을 강조하고 일본과의 관련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일본인들이 심심찮게 언급했던 것이다. (230-231)

라고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햇살’ 또는 ‘일출’이란 단어는 아니지만 석굴암에서 바라보는 ‘일본해’에 대한 저들의 인식은 강 교수의 저서에서도 분명히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햇살’이나 ‘일출’이란 낱말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얘기라고 보아야 할까요? 방점을 둔 곳은 다르지만 토함산에 올라 동해를 바라본 ‘일본인의 시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결국 같은 얘기입니다.

식민사관을 다루면서 선생님께선 ‘햇살신화’에 집중하여 매우 상징적이고 함축적으로 설명하셨다고 한다면, 강희정 선생은 일제 식민사관의 배경과 그 과정, 그리고 한국인들이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과정까지 종합적이고 실증적으로 다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 문제는 다음입니다.

선생님께선 “식민사관이란 낱말이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뭔가 착오가 있으셨던 거 같습니다.

강교수의 저서 뒷쪽의 <찾아보기> 307쪽만 보셔도 이 ‘식민사관’이란 말이 31쪽, 32쪽, 94쪽, 189쪽, 202쪽, 220쪽, 225쪽에 거듭하여 나온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꼭 ‘식민사관’이란 말이 아니어도 ‘식민지’, ‘식민지배’, ‘오리엔탈리즘’ 등등 식민사관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말들은 강 교수님의 저서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단어들입니다.

  

아래에 강 교수님의 저서에서 몇몇 선생님 저서에 나오는 주장과 유사한 맥락의 대목들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밑줄로 제가 강조한 부분은 선생님 저서의 논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입니다.

  

문화유산 석굴암은 일본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할 식민지 조선의 미술로 ‘재발견’됨으로써 조선 사람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로 다가서게 되었다. 하지만 ‘재발견’된 석굴암은 김대성이 처음 건축했을 때의 종교적 맥락을 잃어버린 채, 감상의 대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문화유산으로 인식되었다. 이때 문화유산의 개념과 내용 역시 ‘국가’, ‘민족’이라는 근대적 개념과 함께 서구로부터 일본을 거쳐 조선으로 이식되었다. (19-20)

  

(일본의) 공식적인 고적조사가 조선 강점 이후인 1916년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이 단지 ‘식민사관의 증명 및 이의 정당화’에 있다고 본다면 지나친 단순화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32)

  

이 책의 목적은 석굴암 연구의 전제가 되었던 ‘인식’ 내지 생각의 틀, 이른바 ‘석굴암 패러다임’이 존재한다고 보고 이를 정면으로 검토하는 데 있다. (61)

  

일제가 조선을 병탄하기 이전에 식민지 경영의 전초로서 조선 곳곳의 유적과 지리·물산을 조사했던 일본인에 의해 석굴암은 다시 발견되었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석굴암에 관한 인식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일본인에 의한 재발견이라는 전제조건이야말로 석굴암에 대해 그들이 개념을 부여하고 성격을 규정하게 만든 원인이다. (88)

  

… 몇몇 묵객을 제외하면 아무도 석굴암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선의 선비들도 단지 ‘석굴에 올랐다’, ‘장관이다’라는 정도의 간단한 언급을 남긴 정도에 불과하다. 역사 속에, 미술사 속에 석굴암을 위치지은 것은 일본인이다. 석굴암에 관한 기본적인 인식은 일본인에 의해 형성되었고, 조선인은 이미 그들에 의해 형성된 ‘석굴암관’을 교육받았던 것이다.

… 어떤 의미로든 일제의 식민정책과 관련된 석굴암의 재발견은 조선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조선문화의 성격에 대한 규정이 자생적으로, 스스로의 힘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것임을 의미한다. 이때 외부가 식민 본국, 즉 제국 일본이라는 사실은 석굴암을 바라보는 관점이 정치적인 시선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88-89)

  

서구의 타자였던 일본에게 타자가 되었던 것은 식민지 조선이었다. 그러므로 일본은 조선의 미술을 전근대적 성격을 의미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용어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성숙하지 못한 아동으로 치부하거나 여성에 비유하는 것이었다. 식민지와 그 문화를 아동이나 여성에 비유하는 것은 대표적인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이다. 이들은 약자로서 스스로의 판단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성인’이며 ‘남성’인 제국주의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 (일본인이 석굴암 십일면관음을 여성에 비유한 내용) 석굴암의 보살상들을 여성에 비유하여 나약하고, 자립할 힘이 없는 이미지로 부각시킨 것은 식민지의 전근대적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오리엔탈리즘의 언설에 불과하다. (126)

  

일제강점기에 주입된 조선미술사의 가치관과 역사관은 개별 유물과 유적이 원래 제작되고, 자리매김되었던 맥락에서 벗어나 탈맥락화·재맥락화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석굴암은 그 자체로서 존재했고, 그 물질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주의가 주체가 되어 만들어낸 인식틀은 마치 창건 당시부터 지속된 고정불변의 것인 양 ‘상상’되었다. 독립 이후 60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석굴암에 대한 우리 인식의 일부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패러다임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식의 기본 틀은 당시 일본이 어떤 개념에서, 어떤 식으로 사고의 틀을 형성하려고 노력했는가를 통해 확인할 수 있고, 이로써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인식의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33-134)

  

… (하마다 고사쿠가 석굴암을) 당의 장인이 만들었다는 말 자체가 야나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타율적인 역사를 강조하는 식민사관의 일환이며, 그와 마찬가지로 시라토리의 제자였던 하마다 고사쿠가 타율적인 석굴암 건축론에 동의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필자가 이 대목을 식민사관이라고 강조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당에서 온 장인이 당이 아니라 신라의 마음과 미를 표현했다는 모순된 기술이 반복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기만 하다. 이 점은 식민지 조선에 대한 식민사관의 타율성을 강조하려는 이성과 신라 미술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성적 찬탄 사이에서 이들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220-221)

  

야나기가 발표한 석굴암론은 상세하게 논의되지 않고 그대로 후대까지 지속되었다. 당시 구축된 일본미술사의 연장선상에서 석굴암을 우리 미술의 정점으로, 조선시대 미술을 쇠락한 것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오카쿠라 덴신이 일본미술사를 전개한 방식과 상통하며, ‘東洋’의 창안자이자 식민사관의 이론가였던 시라토리 구라키치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225)

  

이렇듯 강교수의 저서에는 ‘식민사관’이란 말의 기본 개념, 그리고 그것이 석굴암 등에 적용되는 과정과 그 주체, 또한 식민사관의 연원이 되었던 일본인 학맥까지 매우 상세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이런 엄연한 사실과 다르게 '식민사관'이란 낱말이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선생님께선 제가 책도 제대로 안 읽고 왜곡을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왜곡하고 있는 분은 오히려 선생님 아닌가요?


저는 이 시점에서 문득 선생님께선 『나라의 정화, 조선의 표상』의 일부분만 발췌해서 보신 게 아닌가, 그리하여 선생님께서 ‘식민사관’이란 말이 여러 차례 거듭하여 나오는 강희정 선생의 책을 고의로 인용하지 않은 게 아니라 (식민사관을 다루고 있는 내용을 읽지 못하셨기 때문에) 인용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처음에 선생님께서 고의로 이 책을 인용하지 않았다고 단정한 것은 확실하지 않은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저는 책을 모두 읽은 사람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강 교수님 저서의 마지막 장 결론 부분을 보면

축조된 이후 거의 1200여 년 동안 석굴암은 나라를 상징하거나, 또는 조선을 표상하거나, 또는 어떤 의미 있는 기념비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요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때로는 경전을 읽고 절을 하는 예배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을 뿐이다. 달리 무엇이 있었겠는가? 바로 이것이 근대 이전, 일본에 의해 조선미술사의 한 장을 차지하게 되기 전, 문화재로 복원·수리되어 보호되기 이전 석굴암의 원래 맥락이다. 일제강점기에 탈맥락화된 이후, 석굴암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예배 공간으로서의 역할, 성스러운 종교의 현장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시되어야 할 석굴암의 원래 맥락(original context)이었다. (288)

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부분은 그대로 선생님 저서로 옮겨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문장입니다. 선생님 역시 저서에서 석굴암의 예불과 참배 기능을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강 교수의 이러한 논지는 2011년에 학술지『미술사와 시각문화』142-165쪽에 발표된 논문 「예경과 선업을 위하여: 요잡을 위한 탑과 상」에서도 이미 개진된 바 있습니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하여 저는

두 분의 저서가 석굴암에 관한 일제시대의 ‘식민사관’을 다루고 있으며 이제는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논리까지도 유사하므로 둘 중에서 뒤에 출판된 선생님의 저서에서는 반드시 선행 연구를 언급하고 넘어가야 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께는 그렇게도 모욕적 발언이 되는 건가요? 선생님 연구의 독자성을 음해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선행 연구를 인용한다고 해서 후행 연구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친절한 안내에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선 '반론글'에서 전실 전각에 대한 두 분의 입장 차이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강 교수의 저서에서 전실 전각의 유무 문제는 매우 지엽적인 사항입니다.

  

『나라의 정화, 조선의 표상』에는

(1737년 임필대의 글에서) 고개를 넘어가니 작은 암자가 나온다. 정오에 석굴을 보기 시작했다. 목조건물의 형체를 갖추지 않은 것으로 돌을 쌓아 굴을 이루었다.”라고 써서 역시 암자에서 석굴까지 얼마간 거리가 있었으며 그가 양자를 별개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이에 의하면 석굴암 앞에 오늘날과 같은 목조가구는 없었고 굴은 노출되었던 상태라고 생각한다. (139)

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글에서 강 교수는 임필대의 글에 따르면 당시에 석굴이 노출되었던 상태라고 본 것이지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전실이 계속 노출된 상태라고 단정한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께선 왜 제가 밑줄 친 ‘이에 의하면’을 빼고 인용하셨는지요?

앞뒤 문맥 빼고 편의대로 인용하고 해석하는 것은 인용 중에서도 원문의 본의를 왜곡하는 잘못된 인용 방식입니다.

무엇보다도, 강 교수의 책에서 전실전각 유무의 문제는 주요 논의의 전개와 크게 관계가 없는 사항입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강 교수님은 전실이 개방되었건 그렇지 않았건 어쨌든 식민사관은 있었다는 취지이고, 선생님의 주장은 전실 개방설 자체가 식민사관이라는 취지입니다.   

선생님께선 일제의 식민사관의 핵심이 ‘햇살담론’과 ‘일출신화’에 담겨 있다고 설명하셨기 때문에 (햇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전실의 개방과 전각의 유무 문제가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였지만, 강 교수님은 식민사관을 얘기할 때 반드시 ‘햇빛’과 연결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두 분 주장의 차이점입니다. 그렇지만 똑같이 ‘식민사관’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결국 일맥상통한다고 보았고. 저는 리뷰에서 이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강 교수님 책에서 전실의 밀폐형/개방형 논란은 주요 사안이 아닌 부차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주장의 핵심 논거는 석굴암 전실 형태에서 오는 것인데, 저는 그게 확실한 건 아니지 않은가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제가 계속 중언부언한다고 하신다면, 더 이상 저는 할 얘기가 없습니다.

  

3.

제가 선생님 저서에 대해 비판한 내용을 모두 떠나서, 저는 선생님의 석굴암에 대한 시각을 또 하나의 해석, 그리고 역사적 가치 평가로서 인정합니다. 무시하거나 폄하하지 않습니다. 무시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쓸 이유와 여력이 저는 없습니다.

다만 선생님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가지려면 제가 지적했던 부분에 대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근거들을 제시하셔야 합니다. 말의 어조로만 주장하지 마시고, 실질적 근거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선 ‘제안글’에서 제 실명과 전공을 확실히 하고 논의에 임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요구에 따를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 생각과 달리 실명과 간판이 발언의 신뢰도가 높이는 게 아니라 글에 담아내는 논리가 신뢰도를 높인다고 생각합니다.

익명이 보장된 인터넷 공간에서 실명과 전공부터 밝히라는 말씀은 대단히 권위적이며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 정보까지 밝히면서 개인 블로그에서 소모적인 논의를 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선생님의 저서에 대해 개인 공간에 서평을 썼으니 선생님의 실명이 공개된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며, 이는 선생님뿐만 아니라 알라딘에서 판매되는 책의 모든 저자들이 공통으로 감내해야 할 일입니다.

개인의 의견을 쓰는 사적 공간에서 제가 읽은 책에 대해 칭찬을 하든, 비판을 하든 그건 제 자유입니다.

독자들은 그렇게 이해관계 없이 자유롭게 쓴 리뷰를 보고 나름대로 구매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실명을 밝히지 않아서 정 신뢰가 안되신다면, 그냥 무시하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는 알라딘에서 영향력 있는 리뷰어도 아닙니다.

제가 실명과 전공 등을 선생님께 알리는 순간 이것은 순수한 학술 논의와는 상관 없는 또 다른 방향으로 이용될 것이 자명하므로 앞으로도 저는 이 자리에서뿐만 아니라 선생님께 개인적으로라도 제 실명 등을 밝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 글은 선생님께 드리는 제 마지막 글입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제 답변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이곳은 선생님 말씀처럼 '올곧은 지식과 정보가 소통되어야 하는 공적 공간'(제안글)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사견을 올릴 수 있는 사적 공간이며, 그 공간이 알라딘 독자들에게 노출되는 것뿐입니다.

하실 말씀이 있다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학계에서 하십시오. 저도 앞으로는 그리 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 글 이후에 더 이상 선생님의 저서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합당한 이유와 근거를 대면서 글을 쓰더라도 그것이 선생님께는 죄다 ‘조롱조의 비판, 모략, 악의적인 음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선생님 저서에 대해 리뷰를 쓴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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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낙주 선생님의 반론에 대한 답변
    from 突厥閣 2015-02-24 10:24 
    성낙주 선생님께 드립니다. 2월 23일에 올려주신 글 '돌궐님의 비판에 대한 반론(4)' http://blog.aladin.co.kr/704498193/7392528 은 잘 보았습니다. 이 글을 포함, 그간 주신 반론글에 대한 답변 삼아 몇 말씀 올리겠습니다. 1. 우선 선생님 글 가운데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일전에 제가 쓴 '제가 글로써 업을 쌓았습니다' http://blog.aladin.co.kr/dolkwol/7319984
 
 
만병통치약 2015-01-06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람되지만 재미있네요. 앞뒤로 돌려가면서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 다른 관점에서 석굴암의 동쪽지향성에 대해서 생각했었는데 책 읽고 다시 검토해봐야겠습니다. (석굴암의 동쪽지향은 그 당시 환경과 관계있다고 추측했었습니다. )

돌궐 2015-01-06 17:29   좋아요 0 | URL
네, 만병통치약 님 반갑습니다. 환경과 석굴암의 관계에 대해 고견 기대해 보겠습니다.
성낙주 선생님 저서가 대단한 역작임은 분명하지만,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 공부 삼아서 정리해본 거였는데... 걷잡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
다른 분들 책에 대해 별점을 주고, 리뷰를 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요. ㅠㅠ
그리고 만병통치약님 서재에서 좋은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nana35 2015-01-06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이 차곡차곡 담긴 글이로군요.

돌궐 2015-01-07 07:59   좋아요 0 | URL
저자께서 두 책의 대목을 비교해 달라고 하셔서 애써 찾아봤습니다.
도발이 아니라 정성으로 비췄다면 다행입니다.

2015-01-07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7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병통치약 2015-01-0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굴암 본존상이 석가모니불이라는게 반론의 여지가 없는 대세인가요? 비로자나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ㅋㅋ 그래야 제 얼치기 논리가 부드러워져요.

돌궐 2015-01-08 13:54   좋아요 0 | URL
항마촉지인이란 수인이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석가모니불이라는 의견이 많기는 하지만 화엄주존인 비로자나불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상의 존명이나 명칭을 확정해서 말하는 것은 피하려구요. 종교상이야말로 누가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화엄신앙에서는 비로자나불이고, 법화신앙에선 석가모니불이겠죠.

2015-01-21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1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1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2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2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말랑말랑한 해피엔딩이나 인과응보, 이러저러 해야한다는 뻔한 교훈 같은 걸 기대한다면 책을 덮어야겠지.

인디언이 미국인들이 만든 보호구역 속에서 얼마나 열악하게 살아가는지를 한 소년의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물론 인디언 생활 보고서는 아니다. 청소년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위트가 솔직함이 넘치는 문장이다. 웃음 속에 슬픔이 교차되며 즐겁다가도 절망적이다.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이처럼 유쾌한 문장으로 써낼 수 있다니! 언론과 독자들의 엄청난 찬사와 수많은 타이틀을 따낸 이유를 알 것 같다.

주인공 아놀드는 인디언 아이들이 모여서 매너리즘에 빠진 선생들 밑에서 공부하는 학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이웃 마을의 백인들만이 다니는 리어던 고등학교로 전학 보내달라고 한다.

아버지는 기름값이 없어서 아들을 그 먼 학교까지 태워다주지 못하는 날도 많았지만 아놀드는 새벽에 일어나서 걸어서라도 간다.

지긋지긋하고 앞날이 안보이는 웰피닛 고등학교에서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이 웰피닛 고등학교 같은 곳은 사실 우리나라 도처에 깔려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끝내주게 쌔끈한 페넬로페를 만나고, 자기를 인정해주는 친구들을 만난다.

하지만 인디언 마을의 절친이었던 로디와는 전학을 가면서 곧바로 원수가 된다.

이들은 각각 리어던 고등학교의 농구부원(아놀드)과 웰피닛 고등학교 농구부원(로디)으로서 코트에서 맞붙는다.

처음에 웰피닛으로 원정 간 아놀드가 로디에게 얻어 터져서 실려나가고,

리어던으로 원정 온 로디가 아놀드에게 공중 인터셉트에 이은 3점슛을 허용하며 굴욕을 당한다(아놀드는 마이클 조던의 혀내밀기 신공까지 시전). 장군멍군이다.

농구 좋아하는 나에겐 가장 흥미진진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세 명의 죽음이 있었다. 아놀드가 사랑하고, 큰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죽음은 아놀드에게 큰 고뇌를 안겨주지만, 그럼에도 아놀드는 꿋꿋이 자기 길을 걸어간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무슨 특별한 결말을 기대했다면 허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 모두의 인생은 이처럼 미완성이 아니던가.

로맨스 소설을 몰래 숨겨놓고 읽는 누나에 대해.
Well, that is a big difference between my sister and me. I hide the magazines filled with photos of naked women; my sister hides her tender romance novels that tell stories about naked women (and man). (39)

포커 잘 치는 인디언 남자와 눈 맞아서 결혼하여 집 나간 누나에 대해.
My sister married a guy for a damn silly reason. But I suppose people often get married for damn silly reason. (90)

집 나간 누나와 학교를 옮긴 자신에 대해.
They thought my sister and I were going absolutely crazy.
But I thought we were being warriors, you know?
And a worrior isn`t afraid of confrontation. (91)

리어던 고등학교에서 만난 책벌레 골디가 글(소설) 읽기 대해 한 말.
"You have to read a book three times before you know it. The first time you read it for the story. The plot. The movement from scene to scene that gives the book its momentum, its rhythm. It`s like riding a raft down a river. You`re just paying attention to the currents. Do you understand that?"
"The second time you read a book, you read it for its history. For its knowledge of history. You think about the meaning of each word, and where that word came from. I mean, you read a novel that has the word `spam` in it, and you know where that word comes from, right?" (94-95)

역시 고디가 한 말 - 고디는 애가 맞나 싶다.
"The world, even the smallest parts of it, is filled with things you don`t know." (97)

아놀드의 아빠가 농구를 할까말까 망설이는 아놀드에게
"You have to dream big to get big." (136)

아빠는 이어서 (이제 알 거 다 아는 아놀드에게) 이런 얘길 한다.
"Well, you know, your mother helped me get a drink from the water fountain last night, if you know what I mean."

리어던 고등학교에 기꺼이 보내준 부모님에 대해.
Ever since I`ve been at Reardan, and seen how great parents do their great parenting, I realize that my folks are pretty good. Sure, my dad has a drinking problem and my mom can be a little eccentric, but they make sacrifices for me. They worry about me. They talk to me. And best of all, they listen to me.
I`ve learned that the worst thing a parent can do is ignore their chidren. (153)

장례식에 대해서
Each funeral was a funeral for all of us.
We lived and died together. (166)

아놀드와 화해한 로디의 말.
"You`re an old-time nomad."
"You`re going to keep moving all over the world in search of food and water and grazing land. That`s pretty cool."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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