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점복어멈이 자리에 눕자 장계향은)
직접 노복들의 처소로 갔다. 지금껏 충효당 안주인이 그곳으로 직접 들어온 적은 없었다. 간혹 노복들이 죄를 지었거나 추궁당할 일이 있을 때, 사랑채의 집사가 그들 처소 앞에 가서 불러내는 것이 전부였다. 특히 여자노비들의 처소는 집사도 가본 적이 없었다.
장계향이 나타나자 노복들은 긴장부터 했다. 점복어멈이 누워있는 방을 물어서 들어섰다. 방문을 여는 순간 악취가 코를 찔렀다. 방안은 어둡고 좁았다. 늙은 노비는 요강을 끌어안고 앉아서 피 묻은 가래를 내뱉고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얼굴엔 피와 가래가 묻어 있었다. 바닥은 차갑진 않았지만 삿자리가 깔렸는데 군데군데 뭉개진 구멍에서 흙먼지가 폴삭거렸다. 늙고, 초라하고, 악취를 풍기는 늙은 노비는 작은 비둘기만 하다는 말이 어울릴 듯했다.
장계향은 몹시 부끄러웠다. (빈민구제로 바쁜) 충효당 안에 이런 곳이 있고,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친정아버지는 대낮에 혼자 길을 갈 때는 그림자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밤에 홀로 잠을 잘 적엔 이불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것은 정녕 부끄러운 일이다. 충효의 고색창연한 위엄과 권위, 존경과 긍지가 깃들어 있다고 믿어온 충효당이 거느리고 있는 식솔치고는 너무 안타깝고 외면된 모습이었다.
당장 안채의 목욕간으로 데려갔다. 점복이가 업었다. 목간물을 끓여 손수 씻기기 시작했다. 그 몸은 마르고 작았다. 저 몸으로 바느질한 옷을 떨쳐 입고 사대부 양반가문 사람으로 대접받고 살았구나 싶으니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낯을 들 수 없도록 미안했다. 머리를 감기자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충효당 작은 마님 장계향의 마음이 전해진 것이다. 한바탕 요란을 떨며 목욕을 마치고 안방으로 데려갔다. 우선 자신의 옷을 입혀놓고 말했다.
“다 내 탓이네. 미안하고, 부끄럽네.”
늙은 노복이 거처하던 방을 서둘러 도배를 하고 새 자리를 깔면서 다른 노복들의 방도 손질을 시켰다. 하룻밤을 장계향과 한방에서 자는 동안 열 번도 넘게 고맙다며 눈물을 보였다. 도식이를 불러 진맥을 했다. 기력이 많이 떨어진데다 폐가 나빠져 있고 위장도 성치 못한 것 같다 했다. 일단 약을 지어오게 하여 장계향이 손수 달여 먹였다. 새로 단장한 방으로 돌아간 뒤에도 하루 두 번은 꼭꼭 약을 달여 들고 가서 챙겨 먹였다. 그리고 새로운 처방 하나를 손수 내어서 약을 만들었다.
누렁이를 삶아 먹여 기운을 북돋우는 처방이었다. 먼저 누렁이한테 누런 닭 한 마리를 먹여 닷새를 지냈다. 엿새째되는 날 그 개를 잡는다. 뼈를 발라 버리고 고기를 여러 번 물에 씻었다. 그런 다음 진하지 않은 간장 한 사발과 참기름 다섯 홉을 타서 개고기와 함께 작은 항아리에다 담았다. 항아리의 아가리를 김이 새나가지 않게 잘 봉하여 중탕을 시작했다. 저녁 으스름 때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삶았다. 충분히 삶기면 초간장에 파를 넣고 완성시킨 보약이었다.
열흘 뒤 점복어멈은 기운을 회복했다. 충효당의 남녀 노비들이 안채로 찾아와서 큰절을 올렸다. 장계향은 겨울에 입을 옷 한 벌씩을 선물로 주면서 말했다.
“이 모든 것이 다 내 탓이었네. 미안하고 부끄럽네. 용서들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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