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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법정에 서다 - 신화와 환상에 가려진 석굴암의 맨얼굴을 찾아서
성낙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6월
평점 :
돌궐님의 리뷰에 대한 저자의 입장
먼저 <석굴암, 법정에 서다>에 대한 돌궐님의 깊은 관심과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리뷰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릇 책에 대한 평가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으며, 설령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혹평이라고 해도 응당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인의 기본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실관계에 기초하지 않거나 책의 논지를 굴절시킨 것이라면 바로잡고자 노력을 기울이는 것 또한 책임 있는 저자가 취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하며, 이 점은 돌궐님도 동의하실 줄로 믿습니다.
돌궐님의 리뷰를 접하고 검토한 결과, 돌궐님의 글이 일반 독자의 통상적인 독후감의 범주를 넘어 과도한 비판의식 아래 작성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돌궐님의 연락처를 알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순수독자들의 소통 공간인 ‘알라딘’ 리뷰 란에 저자가 직접 나서는 것이 적절한 일인지의 여부, 그리고 돌궐님이 언급하신 제3의 연구자에게 본의 아니는 아니지만 혹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문제 등을 두고 여러 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늦게나마 본인의 입장을 밝히기로 한 것은, 만약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경우 돌궐님의 지적 사항들을 저자인 본인이 사실로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높고, 그러한 상황은 이 책의 출간 이후 많은 매체에서 보여준 과분할 정도의 서평, 그리고 독자들의 성원과 지지에 대해 저자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제3자의 연구성과에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그 사실을 애써 감추었다는 식의 대목들입니다.
“다만 글쓴이가 전개하는 주장의 기본 아이디어가 근래에 강희정이 발표한 몇몇 ‘석굴암 재발견’ 연구에 힘입고 있음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책의 말미에서 잠깐 소개할 뿐이다. 물론 이 경우도 강희정 연구의 내용과 이 책에 끼친 영향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앞서 밝혔듯이 1부의 ‘햇살 신화론’이나 위 부분의 아이디어는 결국 강희정이 90년대 말부터 이어 온 ‘석굴암 재발견’ 관련 몇몇 연구에 커다란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그렇게도 비판하고 있는 ‘기존 학계’의 일원으로 볼 수 있는 강희정의 연구는 왜 본문에서 단 한 번도 다루지 않고 말미(거두는 글, 386쪽)에만 제목 포함 단 3줄로 짧게 언급하는가. 학계에 자기가 영감을 받은 연구가 있다는 건 은근히 감추고 자신이 반대하는 연구(특히 그 연구의 공과 중에서도 과)만 제시하면서 미술사학의 ‘비극’이나 ‘누추함’ 같은 자극적인 용어로 싸잡아서 폄하하는 건 공정하고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강희정 교수님이 199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발표해 온 석굴암 ‘재발견’ 글에 빚을 지고 있음에도 저자인 본인이 ‘기존학계’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였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돌궐님의 지적은 학계의 동향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첫째,
강교수님의 1990년대 석굴암 관련 논고는 확인되지 않으며, 그 분의 저서에는 2007년에 처음 발표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결국 ‘90년대 말부터’라는 연대부터 사실로 인정하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혹여 본인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 있을 수 있으므로, 구체적으로 명시해 주었다면 이런 오해는 없었을 것입니다.)
둘째,
본인과 강교수님의 석굴암 관련 작업은 같은 시대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각자 나름의 지향점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진행되어 온 것으로, 그 결과 주제며 내용이 같지 않습니다.
먼저 강교수님의 작업에 대해 말하자면, 일본 학자들이 ‘조선미술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석굴암이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정착되는 과정을 밀도 있게 재구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는 강교수님의 『나라의 정화, 조선의 표상』의 목차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반면, 본인의 작업은 우리의 석굴암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일출신화가 일제 강점기에 탄생한 일제의 달콤한 문화식민사관이며, 해방 후 우리 학계가 그것을 청산하지 않고 도리어 이른바 ‘원형논쟁’ 과정에서 확대재생산함으로써 심대한 혼란이 초래되었음을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셋째,
본인은 그동안 강교수님의 작업을 높이 평가해 왔으며, 강교수님의 논문이 발표되는 학회에 지정토론자로 참여하여 그 점을 천명한 바도 있습니다.(필요하다면 관련 자료를 공개할 수도 있습니다)
덧붙이면, 본인은 지난 2009년, 수년 동안의 준비를 거친 석굴암 사진전 <석굴암, 백년의 빛>을 불교중앙박물관에서 73일 동안 개최한 바, 그때 이미 이번 책의 핵심 주제인 일출신화가 일제의 식민사관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바 있습니다. 이는 당시 펴낸 도록 『석굴암, 백년의 빛』(동국대출판부, 2009)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또한 2010년에는 포항MBC와 손잡고 역시 같은 주제의 다큐멘터리《경술국치 백년, 석굴암 백년의 진실》을 제작 방영하였으며, 또한 저자의 블러그(‘성낙주의 석굴암미학연구소’)에 본서의 초고가 되는 원고(<석굴암, 역사의 법정에 서다>)를 2010년 12월 26일부터 분재를 시작해 2011년 2월 23일에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이유로, 이 문제에 관한 한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식의 평가는 성립될 수 없으며, 굳이 연관성을 따지자면 양쪽의 작업이 상보관계에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한 진단일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이 책의 ‘거두는 글’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학계에서 거둔 학술적 성과로 강교수님의 저서 단 한 권만을 소개한 것은 강교수님의 노고에 대한 최고의 극찬으로, 그 자체로 본인의 공정한 시각을 드러내는 대목일 것입니다.
요컨대 일출신화와 거기서 파생된 이 책의 여러 주제들이 마치 강교수의 작업에서 비롯된 듯이 소개한 돌궐님의 지적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일반 독자로 하여금 본인의 학문적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하고, 더 나아가 본인의 명예를 손상시킨 잘못된 접근입니다.(물론 강교수님의 논고에는 당연히 일출신화나 광창설, 석조신전설 같은 문제들은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부분 이상으로, 본인이 또한 우려하는 것은 이 책의 진의나 문맥을 굴절시킨 경우들입니다. 한 가지만 예로 들면, ‘원형돔’ 철거 문제가 있습니다.
“(저자는) 그냥 기존의 해석들은 무조건 다 틀렸다고 하는데, 선학들의 연구가 전실의 일부만 개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지 원형 주실까지 노출되었다고 본 것은 아니다. 전실 전각 철거론은 원형돔 철거론이 아닌데, 마치 선학들이 원형돔(지붕)까지 철거하자고 주장하는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 ‘針小棒大’의 적절한 예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본인은 그동안 단 한 번도 기존학계가 원형돔(지붕)을 철거하자고 주장한다고 생각한 적도 말한 적도 없으며, 이번 책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침소봉대 운운하는 표현 역시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밖의 지적 사항들도 대부분 같은 양상인데, 그 같은 태도가 글쓰기의 금도는 아닐 것입니다.
본인은 『석굴암, 법정에 서다』에서, 20세기 후반 우리 학계와 사회의 큰 이슈로 떠오른 이른바 원형논쟁의 허실을 드러내고, 앞으로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개인 사견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공인으로서의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돌궐님은 견해를 달리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말씀드린 것들을 포함해 돌궐님의 지적 사항 모두를 다른 공론의 장에서라도 다루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본인은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돌궐님이 동의하신다면 어떤 형식이든 그런 자리를 마련할 의향도 있습니다.
돌궐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2014. 8. 25.
<석굴암, 법정에 서다>의 저자 성낙주 배상
(본서의 평점은 돌궐님의 평점대로 별 둘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