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궐님께 제안합니다.
“돌궐님의 리뷰에 대한 저자의 입장”(8/25)에 붙인 댓글(9/21)을 읽고, 답변을 드립니다.
지금까지의 경과를 먼저 정리합니다.
귀하는 첫 번째 글인 마이리뷰(8/9)에서 이 책의 내용 전반을 대체로 부정하셨습니다. 기존학계의 시각과 거의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의 논점들에 반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귀하의 주관적 판단이자 소신의 영역이므로, 저자로서 아쉽긴 해도 존중해 드릴 부분입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이 책의 핵심 주제인 일출담론부터 남의 연구 성과를 훔치기라도 한 양 묘사하는 일방, 개탄과 조롱조의 언사들로 끝없이 저를 할퀴신 일입니다. 구차하지만 몇몇 대목을 인용합니다.
(서두 부분)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야지 함부로 짐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이렇게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비판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1부 ‘햇살신화’ 부분)
“다만 글쓴이가 전개하는 주장의 기본 아이디어가 근래에 강희정이 발표한 몇몇 ‘석굴암 재발견’ 연구에 힘입고 있음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책의 말미에서 잠깐 소개할 뿐이다. 물론 이 경우도 강희정 연구의 내용과 이 책에 끼친 영향에 대한 언급은 없다.”
(2부 ‘석굴암의 20세기’ 부분)
“앞서 밝혔듯이 ---(강희정 교수와의 관련성 반복 강조)---학계에 자기가 영감을 받은 연구가 있다는 건 은근히 감추고 자신이 반대하는 연구(특히 그 연구의 공과 중에서도 과)만 제시하면서 미술사학의 ‘비극’이나 ‘누추함’ 같은 자극적인 용어로 싸잡아서 폄하하는 건 공정하고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며 저자 스스로 말하듯이 강박증 맞는 거 같다. 전혀 학술적인 글이 아니라 소설이다. 학술적 글쓰기는 개연성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고 근거를 가지고 완성되어야 한다.”
“소설에나 어울리는 상황 묘사 글인데, 이런 게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건 사실도 아니고 의견도 아니며 그저 추정에 따른 묘사일 뿐이다.”
“김중업과 김원룡이 ‘일제 때’의 상태가 옳다는 쪽이었다는 게 일제가 복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나마 보수공사 이전의 상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걸 ‘일제 때’라는 말을 붙여서 고의로 반감을 유도하고 있다.”
“‘확언한다’는 말을 이렇게 쉽게 하나? 왜 이렇게 확신에 가득 차 있는지 모르겠다. 자기 의견을 뒷받침한다는 자료들은 간접 자료가 대부분이고, 반대 의견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은 죄다 오독이라고 한다. 햇빛에 개방되면 무조건 일출 담론이다? 난 모르겠다. 모르겠으면 그냥 모른다고 해야지 모든 걸 혼자만 아는 듯 현상을 멋대로 재단하고 해석한다면 거기에서 건전한 토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
“그런데 무슨 논거로 이처럼 ‘단언’을 한단 말인가. 남이 틀리면 자기는 다 맞은 건가? 남이 틀린 이유와 자기가 맞는 이유는 서로 다른 문제다. 아수라가 제자리에 없었다면 저자의 주장에 근본적인 문제가 생기므로 이렇게 우기는 것 같은데, 제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달라. 근거가 없으면 아무 말을 말자. 그게 지식인의 올바른 태도이다.”
(3부 ‘석굴암, 역사의 법정에 서다’ 부분)
“그냥 기존의 해석들은 무조건 다 틀렸다고 하는데, 선학들의 연구가 전실의 일부만 개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지 원형 주실까지 노출되었다고 본 것은 아니다. 전실 전각 철거론은 원형돔 철거론이 아닌데, 마치 선학들이 원형돔(지붕)까지 철거하자고 주장하는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 ‘針小棒大’의 적절한 예가 아닌가 싶다.”
“이 부분은 ‘牽强附會’의 적절한 예가 아닌가 싶다.”
“여태까지 팔부중상과 전각을 연관시켜 설명해 놓고 ‘전혀 별개의 문제’라니? 팔부중상은 석굴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面石에 조각된 상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결국 석굴암 구조의 문제와도 직결됨이 자명한데 어떻게 별개의 문제가 되나?”
“모르는 걸 그냥 모른다고 용감하게 말하는 학자는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엘리트들은 이게 한계다. ─ 마치 자기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태도.”
“저자의 20년 석굴암 연구는 관련 전공자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존중한다. 하지만 왜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것까지 굳이 말해야만 했는지 궁금할 뿐이다. 나 역시 평생에 단 한 권만이라도 책을 쓰고 싶은 사람이지만 이렇게는 아닐 것 같다.”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틀을 정해놓고 거기에다 현상을 끌어 맞추는 태도는 저자가 줄곧 비판하는 바가 아니던가.”
이 문장들이 이를테면 귀하가 저를 향해 날린 화살들입니다.
그렇게 귀하는 저를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글쟁이, 불확실한 근거와 허황된 논리로 기존학계를 매도하는 유아독존형의 교만한 인간으로 만드셨습니다. 덕분에 이 책은 들춰볼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즉시 귀하의 리뷰 전체를 이 코너에 올려놓고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코너가 독자들의 소통공간이라는 점, 제3의 연구자에게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점, 또한 옳든 그르든 볼썽사나운 이전투구로 비칠 우려 등을 놓고 고심 끝에 완곡한 표현으로 ‘저자의 입장’을 작성했던 것입니다.
곧, 강 교수 논문 운운은 학계의 동향을 헤아리지 못한 곡해이며, 나머지 주장들도 대부분 이 책의 진의와 문맥을 오도한 것임을 ‘원형돔 철거설’을 예로 들어 간단히 지적하면서, 정 견해를 달리하신다면 다른 공론의 자리에서 매듭을 짓자는 뜻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귀하의 ‘댓글’은 ‘리뷰’의 논리를 중언부언하는 것으로 일관했습니다.
강 교수의 논문 발표 연도에 대한 오류 한 가지만을 ‘실수’로 인정한 후 또 다시 저를 강 교수의 논문에 옭아매는가 하면, 나머지 부분도 억측과 궤변으로 이 책의 진정성에 거듭 회칠을 가한 것입니다.
“이것은 두 분의 글들 사이의 영향 관계 여부와 관계가 없는, 학술적 글쓰기의 기본적인 절차입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선생님의 의견에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에 관한 ‘좀 더 자세하고 합당한 이유와 근거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또 한 번 저를 글쓰기의 “기본적인 절차”조차 지키지 않고, 합당한 이유와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남을 공격하는 ‘비양심적인 연구자’로 규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제안한 ‘다른 공론의 자리’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으셨습니다.
하여 저는 부득이 이 코너를 빌려 반론을 올리고자 합니다. 귀하가 제기한 모든 의혹을 하나하나 되짚는 방식으로, 귀하의 글들이 학문적 진실을 논하자는 게 아니라 음해성의 독백임을 드러낼 것입니다.
다만, 개인적인 일정상의 제약도 있고, 여러 주제를 뒤섞을 경우 논점이 흐려질 우려가 높기에 쟁점별로 정리해 시차를 두고 올릴 것입니다. 가급적 일주일 단위로 한 편씩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할 생각입니다.
저의 이 옹졸한 결정은,
첫째, 지난 20여년 기존학계와 대척점에서 연구자의 길을 걸어온 저의 짓밟힌 명예를 환수하기 위해, 그리고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작든 크든 이 책의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이 책을 세상에 소개해준 수십 군데의 언론종사자, 이 코너를 포함해 여러 인터넷 서점의 리뷰 란에 애정 어린 독후감을 남겨주신 ‘순수’ 독자, 또 성원을 보내주신 많은 블로거들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귀하의 글대로라면, 그분들 모두가 저의 파렴치함과 교만함에 속아 넘어간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귀하는 ‘리뷰’에서 “관련 전공자의 한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는 귀하의 ‘리뷰’가 일반 독자의 단순한 감상문이 아니라 미술사 전공자의 학술적 견해임을 스스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따라서 귀하의 여러 주장을 검증대 위에 올리는 것이 불합리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재반론 여부는 귀하의 권리입니다.
저는 귀하의 의견에 성의껏 대응할 것입니다. 부적절하긴 하나 이 코너가 건설적인 토론의 장으로 기능해 석굴암과 관련한 수많은 낭설 가운데 ‘진실’의 한 귀퉁이라도 드러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토론의 장에서 한 사람은 실명으로, 다른 사람은 익명으로 공방을 벌이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것은 십분 공감하실 줄 믿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글은 실명으로 임해주시기 바라며, 특히, 전공자라고 하셨으니 그 부분도 정확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귀하 스스로 발언의 신뢰도를 높이는 기본적인 절차일 것입니다. 물론 이 문제 역시 귀하의 선택사항입니다.
생산적인 토론의 장을 고대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2014. 11. 22.
저자 성낙주 올림
(추기1) 경위야 어떻든 자기 책의 ‘서평’ 란에 저자가 직접 나서는 것처럼 볼썽사나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초유의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곳은 올곧은 지식과 정보가 소통되어야 하는 공적 공간입니다. 부정확한 정보 내지 흠집 내기의 언사들까지 용인될 수는 없습니다. 하여 불가피하게 소견을 밝히게 된 것에 대해 다른 독자분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합니다.)
(추기2) 평점을 저자 자신이 올리는 것도 극히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평점을 누르지 않고는 등록이 되지 않아 민망함을 무릅쓰고 돌궐님의 리뷰 이전에 서평을 주신 분들의 평균 평점에 맞추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