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의상전교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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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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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의 <삼국유사>를 읽는다는 건 그저 역사를 읽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알에서 난 왕과 닭부리 입술을 하고 태어난 왕비의 신화를 읽는 것이고,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나서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라고 읊었던 애절한 향가를 읽는 것이며, '괴력난신(怪力亂神)'이란 이유로 말해지지 못했던 수많은 기이하고도 재미있는 옛이야기들을 읽는 것이기도 하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바위를 타고 바다를 건넜고, 무왕은 용의 아들, 견훤은 지렁이의 아들이었다.
어떤 왕의 음경은 한 자 다섯 치여서 짝을 찾기 어려웠고, 또 어떤 왕은 수 많은 뱀들과 함께 잤다고 하지.
쥐가 사람의 말로 조언을 하고, 천신은 한밤중에 내려와 석굴암을 완성했단다.
비형은 귀신을 시켜 여우로 둔갑한 길형을 붙잡았고, 문희는 언니 꿈을 산 뒤에 때마침 집에 온 김춘추를 꼬셔서 왕후가 되었다.
화랑 김현은 탑돌이 하다가 처녀로 둔갑한 호랑이와 만나서 원나잇 아니 '조용한 곳으로 가서 정을 통'했다.
대나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나고, 병이 낫고, 가물 때는 비가 내리고, 장마 때는 비가 그쳤다고 하네.
용왕도 탐냈다던, 아니 가는 곳마다 탐냈다던 수로부인의 미모는 도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을 시험했던 스무 살 가량의 아름다운 낭자는 또 어떻고.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나와서 점을 치는 일관(日官)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승려들.
비단천으로 절을 짓고 풀로 오방신상을 만들어 당나라 군대를 물리친 명랑,
법당 지붕을 뚫고 극락왕생한 여자종 욱면, 지팡이를 날려 마을에서 시주를 받았던 양지 스님, 대현과 법해가 겨루었던 기이한 법력 대결, 귀신들이 두려워했던 밀본과 귀신을 부려 마귀를 쫓은 혜통의 이야기는 신기하다.
책에 쓰인 내용에 입각해서 본다면 의상대사는 이른바 '허공답보'를 시전했던 경공술의 대가이며 밀본법사는 '일양지'와 '허공섭물'을 구사할 수 있었던 고수였을 것이다.
이렇듯 <유사>에서는 원광, 자장, 의상과 원효, 진표를 필두로 수많은 승려들의 전기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또 '탑상편'에서는 장인과 승려들이 빚고 지어낸 무수한 불상과 탑들과 그에 얽힌 전설까지 열거되어 있으니 삼국의 종교사나 미술사 연구자에게 절대적인 문헌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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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인상 깊었던 설화 두 가지만 옮겨 본다.
신주편 혜통항룡조를 보면 혜통이 출가한 계기가 이렇게 소개된다.
(승려 혜통이 속인이었을 때) 어느 날 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아 죽이고는 뼈를 동산에 버렸는데 이튿날 아침에 그 뼈가 없어졌다. 그래서 핏자국을 따라갔더니 그 뼈는 옛날에 살던 굴 속으로 들어가 다섯 마리의 새끼를 끌어안고 웅크리고 있었다. 혜통이 그것을 바라보고는 한참 동안 놀라워하고 탄식하며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속세를 버리고 출가하여 이름을 혜통으로 바꿨다. (513)
그리고 저 유명한 탑상편 조신의 꿈 이야기.
사랑하는 것이 곧 고뇌의 시작임을 가르치는 이 슬픈 설화는 유명하다고는 해도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좀 번거롭지만 책에서 전문을 옮겨 본다.
옛날 신라가 서울이었을 때, 세달사의 장원이 명주 날리군에 있었다. 본사에서는 승려 조신을 보내 장원을 맡아 관리하게 했다.
조신은 장원에 이르러 태수 김흔의 딸을 깊이 연모하게 되었다. 여러 번 낙산사의 관음보살 앞에 나가 남몰래 인연을 맺게 해 달라고 빌었으나 몇 년 뒤 그 여자에게 배필이 생겼다. 조신은 다시 관음 앞에 나아가 관음보살이 자기의 뜻을 이루어 주지 않았다고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었다. 그렇게 그리워하다 지쳐 얼마 뒤 선잠이 들었다. 꿈에 갑자기 김 씨의 딸이 기쁜 모습으로 문으로 들어오더니,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일찍이 스님의 얼굴을 본 뒤로 사모하게 되어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의 명을 어기지 못해 억지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지만, 이제 [죽어도] 같은 무덤에 묻힐 벗이 되고 싶어서 왔습니다."
조신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며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40여 년을 살면서 자식 다섯을 두었다. 그러나 집이라곤 네 벽뿐이요 콩잎이나 명아주국 같은 변변한 끼니도 댈 수 없어 마침내 실의에 찬 나머지 가족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10년 동안 초야를 떠돌아다니다 보니 [옷은] 메추라기가 매달린 것처럼 너덜너덜해지고 백 번이나 기워 입어 몸도 가리지 못할 정도였다. 강릉 해현령을 지날 때 열다섯 살 된 큰아들이 굶주려 그만 죽고 말았다. 조신은 통곡하며 길 가에다 묻고, 남은 네 자식을 데리고 우곡현에 도착하여 길가에 띠풀로 엮은 집을 짓고 살았다. 부부가 늙고 병들어 굶주려 일어날 수 없게 되자, 열 살 난 딸아이가 돌아다니며 구걸을 했다. 그러다가 마을의 개에 물려 부모 앞에서 아프다고 울며 드러눕자 부모는 한탄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부인은 눈물을 씻더니 갑자기 말했다.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꽃다운 나이에 옷차림도 깨끗했습니다. 한 가지 맛있는 음식이라도 당신과 나누어 먹었고, 몇 자 되는 따뜻한 옷감이 있으면 당신과 함께 해 입었습니다. [집을] 나와 함께 산 50년 동안 정분은 가까워졌고 은혜와 사랑이 깊었으니 두터운 인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이래로 쇠약해져 병이 날로 더욱 심해지고 굶주림과 추위도 날로 더해오는데, 곁방살이에 하찮은 음식조차 빌어먹지 못하여 이 집 저 집에서 구걸하며 다니는 부끄러움은 산과 같이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려도 돌봐 줄 수가 없는데, 어느 겨를에 사랑의 싹을 틔워 부부의 정을 즐기겠습니까? 젊은 날의 고왔던 얼굴과 아름다운 웃음도 풀잎 위의 이슬이 되었고, 지초와 난초 같은 약속도 회오리바람에 날리는 버들솜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있어서 근심만 쌓이고, 나는 당신 때문에 근심거리만 많아지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옛날의 기쁨이 바로 근심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당신이나 나나 어째서 이 지경이 되었는지요. 여러 마리의 새가 함께 굶주리는 것보다는 짝 잃은 난새가 거울을 보면서 짝을 그리워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힘들면 버리고 편안하면 친해지는 것은 인정상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가고 멈추는 것 역시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헤어지고 만나는 데도 운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에 따라 이만 헤어지기로 합시다.“
조신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여 각기 아이를 둘씩 나누어 데리고 떠나려 하는데 아내가 말했다.
“저는 고향으로 향할 것이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그리하여 조신은 이별을 하고 길을 가다가 꿈에서 깨어났는데 희미한 등불이 어른거리고 밤이 깊어만 가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하얗게 세어 있었다. 조신은 망연자실하여 세상일에 전혀 뜻이 없어졌다. 고달프게 사는 것도 이미 싫어졌고 마치 백 년 동안의 괴로움을 맛본 것 같아 세속을 탐하는 마음도 얼음 녹듯 사라졌다. 그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깊이 참회하는 마음이 끝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해현으로 가서 아이를 묻었던 곳을 파 보았더니 돌미륵이 나왔다. 물로 깨끗이 씻어서 가까운 절에 모시고 서울로 돌아와 장원을 관리하는 직책을 사임하고 개인 재산을 털어 정토사를 짓고서 수행했다. 그 후에 아무도 조신의 종적을 알지 못했다.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이 전을 읽고 나서 책을 덮고 지난 일을 곰곰이 돌이켜 보니, 어찌 반드시 조신의 꿈만 그러하겠는가? 지금 모든 사람이 인간 세상의 즐거움을 알아 기뻐하면서 애를 쓰지만 특별히 깨닫지 못할 뿐이다.” (380-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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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설화들은 그저 단순히 재미난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 고대사와 문학을 다룬 수많은 저서와 논문들에서 이 책은 늘 중요한 문헌으로 구구절절 인용되고 있으며, 또 이 책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역사의 내용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삼국유사>를 읽지 않고 우리 고대 역사와 사상, 문학과 예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특히 승려의 저술인 만큼 불교의 신앙대상과 사상, 종파 등에 관한 자료가 많이 실려 있어서 삼국과 통일신라시대 불교의 여러 단면들을 폭넓게 엿볼 수 있는 사료가 되었다.
이번에 통독한 것으로 그냥 덮어둘 게 아니라 옆에 두고 되풀이하여 읽어야겠다. 그리고 여러 가지 관점과 맥락에 따라 초록과 질문, 논평을 정리해 두어야 다시 활용할 수 있겠다. 이건 책에 밑줄만 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줄거리만 파악하는 게 아니라 자료로써 사용하기 위한 독서야 되어야 한다. 그러니 나는 엊그제 <유사>를 다 읽었지만 사실은 아직도 <유사>를 다 읽은 것이 아니다.
고전이란 게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맛이 난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다른 독서와 체험들이 쌓이고 나면 똑같은 책인데도 그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들이 읽히게 된다.
* 민음사 <삼국유사>가 두 종류가 있는데, 나는 원문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 책으로 읽었다. 굳이 원문을 살필 이유가 없다면 세계문학전집에 있는 <삼국유사>을 읽어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