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글로써 업을 쌓았습니다
성낙주 선생님께 드립니다.
2월 23일에 올려주신 글 '돌궐님의 비판에 대한 반론(4)' http://blog.aladin.co.kr/704498193/7392528 은 잘 보았습니다. 이 글을 포함, 그간 주신 반론글에 대한 답변 삼아 몇 말씀 올리겠습니다.
1.
우선 선생님 글 가운데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일전에 제가 쓴 '제가 글로써 업을 쌓았습니다' http://blog.aladin.co.kr/dolkwol/7319984 에서 선생님께서 ‘이에 의하면’을 제외한 뒤 인용했다고 지적했던 문장은 선생님 저서의 본문 288쪽에 단 주(註), 그러니까 399쪽의 주 11)번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 드렸던 것은 선생님께서 주신 '돌궐님의 비판에 대한 반론(1)' http://blog.aladin.co.kr/704498193/7234347 에서 파란 글씨로 인용하셨던 글입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이에 의하면'이 빠져 있습니다. 저는 그 글 속에서 전개된 논지와 잘못된 인용 방식을 문제 삼은 것이지 저서의 미주에 실린 인용문을 얘기한 게 아닙니다.
선생님께선 '반론(1)'에서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윗 글에서 붉은 색으로 밑줄 친 문장에서는 분명히 '이에 의하면'이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앞의 내용도 전혀 언급되지 않아서 강희정 선생이 그저 석굴암에 목조 가구는 없었다고 단정한 것처럼 읽힙니다. 저는 이걸 지적한 것이죠.
선생님 저서의 미주에 '이에 의하면'이 있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체로 인용하면 읽는 이가 '이에 의하면'의 '이'가 무엇인가 의구심이 들 수 있기 때문에 '반론(1)'에서 일부러 빼신 게 아니냐는 얘기였습니다.
어찌 됐건 이 사단이 벌어진 건 제가 미숙한 문장으로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탓이겠지요.
그 결과로 선생님의 오해를 사게 되었지만 저는 분명히 제 글 해당 단락 서두에서 '반론글'이라는 전제를 하고 썼습니다.
실수도 착각도 아니고 모략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리고 설마 제가 책만 펼쳐도 버젓이 드러나는 사실을 '모략'을 위해 거짓으로 꾸며 글을 쓰겠습니까?
저는 선생님은 물론, 제 서재에 방문하는 이웃들과 수많은 알라딘 독자들을 그런 식으로 속여 넘기는 게 가능하다는 발상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만만하신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알라딘 독자들도 마찬가지구요.
'반론(4)' 글을 쓰시면서 선생님의 억측에 대한 의심 같은 건 정말 하나도 없으셨는지요. 잠깐만이라도 돌이켜보고 검토하면 제 글이 선생님께서 '반론(1)'에서 인용한 글을 지칭한다는 걸 아셨을 텐데요. 무척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2.
되도 않는 글 몇 줄 쓴 것 때문에 이렇게 저자에게 변명이나 늘어놓고 있으려니 저도 참 구차합니다.
하지만 저도 한 번 되묻고 싶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냥 당연하다고 묻어두는 게 아니라 그걸 일반화하고 논리로 증명하는 것, 상식이 상식이어야 함을 밝혀내는 것, 그게 학문 아닌가요? 그러니까 식민사관은 식민사관이며 예불공간은 예불공간이었다고 논증하는 것 말입니다. 저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상대성 이론이란 게 지금은 상식 수준이 됐지만 과거엔 가설이었고 아인슈타인의 철저한 논증을 거쳐 겨우 상식이 된 것 아닙니까? 처음부터 상식인 지식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석굴암을 보는 시선에 식민사관이 있다고(그리고 그걸 청산하자고) 주장한 분이 강 선생님과 성낙주 선생님 말고 그 전에 누가 계셨나요? 제가 아는 한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적어도 '식민사관'에 관한 한 강희정 선생님의 저서는 그런 식으로 간단하게 선생님 저서 결론 부분에서 언급되고 넘어갈 연구가 아니다 라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발가락이 닮았고’, ‘터럭만 같아도 전체가 같다’고 제가 억지주장을 한다 하셨는데요, 정말 발가락만 닮은 건지, 터럭만 같은 건지는 그런 미사여구가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실체적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않고 화려한 수사로만 남을 설득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얼마나 닮은 건지는 두 책을 나란히 읽어보고 독자들이 직접 판단할 일입니다.
제가 인용 문제에 너무 집착하는 거 아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존 연구 성과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정당한 인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에 앞서서 선행 연구들은 먼저 충분히 인용·검토하고, 결론 부분에서는 남의 연구를 될 수 있으면 인용하지 않고 자기만의 논지를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배워왔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리지만 저는 강희정 선생님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며,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그 분의 공적을 옹호하는 것뿐입니다. 선생님 저서가 강희정 선생님 저서의 논지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행된 것임을 선생님께서 여러 차례 거듭 주장하시니 그 점은 저도 인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에 대한 의심은 철저하게 지워버리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선생님도 밝히셨듯이 고의가 아니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제가 처음에 썼던 서평 중에 선생님께서 기존 연구 성과를 '은근히 감췄다'고 했던 문장은 삭제하겠습니다. 그것은 제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연구가 서로 영향 관계 없이 별도로 진행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수 있습니다. 발표하고 났더니 같은 논지의 논문이 어디 다른 곳에서 거의 시차 없이 발표된 일도 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경우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선생님께선 저서 원고를 블로그 등에 미리 작성해 놓으셨다가 출판 시기를 미루셨다고 하셨으니 강희정 선생님의 책을 나중에 보셨더라도 기존 원고에 편입시켜 서술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결론 부분에서나마 짦게 강 선생님 저서를 언급하셨던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제가 이해하기엔 그렇습니다.
다만 이제 와서야 겨우 알게된 이런 전후사정을 모르는 상태로, 더구나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두 분의 저서를 접한 저로서는 두 책의 비슷한 논지와 그 전후/영향 관계에 대해서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었다는 것만은 선생님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저는 선생님의 의견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좀더 확실한 근거를 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근거는 자료만 나열한다고 성립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적절히 배열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성립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석굴암 사진 전시회를 열 정도면 충분한 근거가 제시되었지 않느냐고 하셨지만(저는 전시회는 보지 못했고, 도록만 보았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 저서가 사전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료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의 '선택'과 '해석'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자료 해석에 큰 무리가 있다고 누차 주장했던 것이고, 개정판이 나올 경우 이를 더욱 완전한 논거로 보완하기를 바라며 좀 매몰차게 서평을 썼습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제 알라딘 서재에 있는 과거 서평들을 훑어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전국역사교사모임이나 유명 소설가가 쓴 책에 대해 선생님 저서에 대해 쓴 것보다도 더 지독한 혹평을 쓴 적도 있습니다.
저는 절대 선생님만을 저격해서 '음해'를 할 이유와 명분이 없습니다. 선생님께 반대하는 모든 주장이 죄다 음모라고 생각지는 말아 주십시오. 저는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들이 얼마나 어려운 자리에 있는 것인가를 이번에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드립니다.
3.
제가 했던 비판들과 별개로 저는 선생님 저서의 주장, 특히 제1장에서 말씀하신 '햇살 신화'에 관한 논의는 충분히 경청할 만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햇살'에 너무 얽매이신 게 아닌가하는 지적(만병통치약 님 서평)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햇살 신화'가 있었다고 해석하신 것도 나름 존중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부분에 관한 비판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강희정 선생님 주장과 다른 선생님만의 독창적인 논리라고 지난 글에서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크게 오해하고 계신 게 하나 있는데요, 제 첫 글을 다시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선생님께서 강 선생님 저서를 '베껴쓰거나' '표절했다'고 말한 건 아닙니다. 다만 다른 학자들은 본문에서 그렇게도 몰아치듯 논박하시면서 강희정 선생의 업적은 왜 같은 비중으로 상세히 다루지 않으셨느냐고 불평을 한 겁니다. 그게 공정한 건 아니잖습니까. 선생님 논조에 따르면 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터무니없는 주장만 할 거라고 생각하니 관련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앞으로 미술사, 그중에서도 석굴암에 대해 학계에 '누추한' 저서나 논문이라도 나오면 선생님 책에 나오는 날선 비판부터 떠올리면서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될 텐데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저도 선생님 저서의 장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도 없이 넘어가고, 단점에 대해서만 냉혹하게 비판을 했습니다. 그런 주제에 선생님한테는 기존 학계의 공과 중에서 왜 과만 드러내느냐고 항의할 자격은 없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생각해 주실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힘들게 공부하는 전공자들의 입장 같은 거 말입니다.
제가 선생님 책에 대해 좋지 못한 평가를 내려서 언짢게 해드린 것은 거듭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생님도 제가 제기했던 문제들을 모두 '악의적인 모략'과 '저열한 비방' '음해성 독백' 등으로 규정하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이러한 판단과 표현들이 매우 부당하다고 여기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따로 반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 제가 함부로 글을 싸지른 업보라고 생각하고 감내하겠습니다.
다만 이 말씀만은 드리고 싶습니다. 제 글들을 편견 없이 읽어주십시오.
이 글을 쓰면서 도대체 선생님 입장은 어떠셨을 것인가 조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선생님도 조금만 제 입장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동의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어떻든 저는 선생님 저서에 대해 <일체의 선의 없이 완벽한 악의만을 가지고> 비판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 그렇다면 오늘 이렇게 다시는 언급하지 않겠다던 선생님 저서에 대해 또 다시 번거로운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바쁜 시간 내셔서 글들을 적어주셨는데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해서 몇 자 적었습니다.
텍스트 사이의 유사성 외에 각각의 차이점이나 독창성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정당하게 평가하라는 말씀은 잘 새겨듣겠습니다.
2015. 2. 24.
돌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