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관찰 노트 -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12가지 방법
마이클 R. 캔필드 엮음, 에드워드 O. 윌슨 외 지음, 김병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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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다시 연필을 깎고 조사노트를 들고 들판으로 나갔다. 그냥 들춰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그리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과학자들은 움직이는 것도 이렇게 잘 그리는데 난 가만히 있는 것들도 제대로 못 그리니 안타깝다.

 

덧.

아래 그림은 이 책 207쪽에 있는 '하마의 움직임을 스케치한 그림과 해부도' 중에서 옮김.

7장 조너선 킹던, 「손으로 직접 그려야만 보이는 것들」에 동물 드로잉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고 실험하게 하는 것이 바로 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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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5-16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는 금손 누구는 막손ㅋㅋ 전 그림은 고사하고 글씨도 악필이라 ㅠㅠㅠㅠ 부럽네요

돌궐 2015-05-16 18:39   좋아요 0 | URL
별다섯에 부러움과 동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ㅠㅠ

cyrus 2015-05-16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마 입 벌린 모습 실감나게 잘 그리셨는데요. ^^

돌궐 2015-05-16 23:10   좋아요 0 | URL
아이쿠,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출처 표기를 해야하는데 쓰다가 급하게 나가느라 미처 못했어요.
저 하마 드로잉은 제가 그린 게 아니라 책에 나오는 삽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문에도 적어놓겠습니다.

페크(pek0501) 2015-05-17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겠는데요.
예전에 연필화 작법 같은 책을 몇 권 사서 그 책을 따라 그려 보곤 했어요.
저는 신발, 양주 병, 접시에 담긴 사과,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잔... 이런 게 재밌었어요.
제가 그린 것 중 비교적 괜찮다 싶은 것은 도화지를 들고 문구점에 가서 코팅을 해 놨어요.
그래야 색깔이 변하지 않고 오래 가요. 먼지도 물걸레로 닦을 수 있고요.

돌궐 2015-05-17 15:50   좋아요 0 | URL
저는 그림이 아직 코팅까지 해둘만한 수준이 못되서요.^^;;
언젠가는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클로저 - 마리아노 리베라 공식 자서전
마리아노 리베라 지음, 한승훈 옮김, 웨인 코피 기고 / 브레인스토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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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 리베라는 1995년부터 2013년까지 19년 동안 미국 MLB 뉴욕 양키스에서만 활약했다. 처음 몇 번을 빼면 대부분 구원투수로, 그 중에서도 경기를 마무리 짓는 역할로 나와 652개의 세이브 기록을 세운 투수이다. 이는 메이저 역사상 가장 많은 세이브 수이며 앞으로 이 기록은 깨지기가 매우 힘들 거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의 별명 ‘Mo’에다가 ‘翁’이라는 존칭을 붙여 ‘모옹’이라고 많이들 부른다.


나는 김병현이 애리조나에서 활약하던 시절 2001년 월드시리즈를 보면서 처음으로 모옹을 알았지만 그 뒤에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진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2013년에 류현진이 LA다저스 선발투수로 나와 뉴욕 양키스와 경기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때 일본인 타자 이치로가 아직까지도 있다는 것(과 류현진에게 홈런을 친 것)도 놀라웠지만, 잊혀졌던 남자 모옹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정말 의외였다.

이 형은 아직까지도 양키스 마무리를 하고 있구나 하면서 참 대단한 투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해 모옹의 마지막 올스타 경기와 은퇴 경기를 직접 시청하면서 어떻게 저 나이에도 최고의 자리에서 저처럼 효율적인 공을 던질 수 있는지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찾아 읽었다. 작년인가 R.A.디키 자서전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리베라 자서전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 모옹이 메이저리그에 자리잡기까지 과정은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 스토리라 부러워하면서 그럭저럭 읽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시합 이야기들이 계속 나와서 조금 지루했다. 뉴욕 양키스나 모옹의 팬이었다면 감격스러운 순간들, 안타까웠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즐겁게 읽었겠지만 나에겐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다만 모옹이 신앙심을 뿌리로 삼아 자기 삶과 직업의 중심을 잡는 모습은 매우 존경스러웠다. 누구든지 삶의 중요한 순간이 닥칠 때 행동과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는 원칙 같은 게 있어야 한다. 스스로 신이 되지 않는 한 타율적인 원리나 규범에 의존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것이 신앙이 될 수도 있고, 도덕적 명분이 될 수도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바탕으로 훌륭한 삶을 살아온 옹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고, 그래서 언뜻 신앙 간증서처럼 보이는 내용들이 반복되는 걸 인정하면서 읽어낼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 마무리 투수(closer)로서 리베라가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경구는 “Keep it Simple”이었다. 이 문장을 책에서는 “심플하게”로 번역했는데, 그 말에는 사실 ‘단순함’ 이상이 담겨 있는 듯하다. 단순함을 유지하라, 단순해져라, 꾸미지 말고, 복잡해지지 말고, 거짓 없이, 순수하고 성실하게 임하라는, 오히려 복잡한 뜻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일화가 있었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모옹은 모르긴 몰라도 학력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어느 시즌 중에 있었던 큰 아들 중학교 졸업식에는 꼭 참석하고 싶었다. 하지만 원정 시합을 위해 다른 지방으로 나가게 되면 참석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모옹은 감독에게 원정길에서 빠지고 싶다고 한다. 어느 한 선수에게만 특별한 사정을 봐주는 게 옳지 않다고 여긴 감독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구단의 허가 여부와 관계없이 가족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통보한 모옹은 이후 마음을 바꾸어 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팀의 원정길에 따라 나선다. 양키스는 그 원정 시합에서 내리 졌기 때문에 모옹은 경기에 출전할 기회조차 없었다. 마무리 투수는 지는 경기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야구고, 이것이 그의 일이었다. 늘 변함 없이 불펜에서 대기하고, 감독이 부르면 나가서 아웃을 잡는 것. 마음이 내키건 내키지 않건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마무리 투수의 소임이었다. 세이브를 따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 준비하고 승리를 위해 대기하는 일도 중요하다. 클로저에겐 결과와 과정이 모두 가치가 있다. 모옹의 이야기는 모든 것을 결과로만 판단하는 풍조에 반박의 근거를 준다.


모옹이 보았던 다른 선수들에 대한 평가도 제법 나온다. 같은 팀에서 활약했던 알렉스 로드리케스와 로빈슨 카노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라고 칭찬을 했지만 그들의 태도나 안일함에 대해서는 은근히 디스를 하더라.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시애틀 매리너스로 팀을 옮긴 로빈슨 카노의 플레이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주자가 2,3루에 있고 1루가 비어 있는 상황에서 볼넷이 나오자 카노가 ‘산책을 하듯’ 홈으로 느긋하게 들어오다가 아웃을 당했다. 그걸 본 해설위원이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느린 홈스틸 시도’였다고 비아냥거렸다. 카노가 양키스에서도 가끔씩 이런 얼빠진 플레이를 했었는지 모옹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천재들은 너무나 ‘느긋한’ 나머지 가끔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할 때가 있는 거 같다.


반면 양키스의 라이벌인 보스톤 레드삭스의 더스틴 페드로이아에게는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모옹은 적을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존경하는 여러 선수가 있지만, 더스틴 페드로이아는 그 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위에 있는 선수다. 그보다 더 열정적으로 뛰고, 팀에 더 많은 것을 주고, 승리를 더 간절히 원하는 선수는 없다. 27개의 아웃카운트, 매 순간 상대를 향해 쉼 없이 덤벼드는 선수다.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 작은 선수를 보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다.
나는 빅리그에서 뛰며 많은 정상급 2루수들을 봤다. 상대를 글러브로도, 빠른 발로도, 타격으로도 무너뜨릴 수 있었던 로베르토 알로마는 야구가 쉬워보이게 만드는, 믿기 어려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로빈슨 카노는 정말 아름다운 스윙 스트로크를 가지고 있었고, 누구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좋은 수비력을 갖춘 선수다. 송구에 어려움을 겪기 전까지는 척 노블락 역시 빠른 발과 근성으로 경기를 장악할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꼭 이겨야 하는 한 경기가 있다면, 내 팀 2루수로 더스틴 페드로이아가 아닌 다른 선수를 고르긴 어려울 것이다. (299)

 

책을 읽고 나서 모옹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가 꽤 ‘똘끼’가 있으며 재미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이구아나 사냥 얘기는 모옹의 정교한 제구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려주는 일화였다.

 

나는 내가 뛰어다니고 활동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축구나 야구를 안 할 때는 농구를 했다. 밀물이 와서 해변이 좁아지면, 우리는 진흙에 무릎까지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변에서 벗어나 엘 타마린도로 옮겨 뛰어놀았다. 어떤 종목을 하든 나는 간절히 이기고 싶었다. 이기고 있던 야구 경기가 질 것 같은 상황이 되면 파나마만에 공을 집어던지고는 ‘무승부’를 선언해버렸다. 페어플레이 상은 못 받겠지만, 완전히 지는 것은 막을 수 있으니 됐다.
밀물이 들어오면, 스포츠 다음으로 내가 좋아했던 이구아나 사냥을 했다. 녹색에 뾰족뾰족한 피부를 가진 6피트 도마뱀들은 나뭇가지에 기대 쉬고, 초목 뒤로 숨는다. 나는 도마뱀을 찾을 수 있는 장소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돌과 오른팔뿐이었다. 이구아나들은 도망가기 시작하면 무척 빠른데다 회복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40피트나 50피트 높이의 나무에서 떨어지고도, 공원 벤치에서 떨어진 것처럼 금세 일어나 달렸다. 대부분 이구아나들은 나뭇가지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머무르기 때문에 쉬운 표적이 된다. 나는 대부분 한 번에 이구아나를 맞혔고, 사냥한 걸 집어들고는 어깨에 둘러 저녁 식사용으로 집에 가져갔다. 이구아나(파나마에서는 ‘나무에 있는 치킨’이라고 부른다)는 코코넛 쌀이나 타말리(tamales)처럼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아니고, ‘이구아나 너깃’과 같은 걸 파는 패스트푸드 음식점도 찾을 수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였다. (31-32)


 

나는 도마뱀을 찾을 수 있는 장소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돌과 오른팔뿐이었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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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5-06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퇴하자마지 자서전이라니 마무리가 빠르네요 ^^

돌궐 2015-05-06 12:07   좋아요 0 | URL
이때 내야 가장 잘 팔리지 않겠어요?ㅎㅎ
1K로 시작했는데 볼넷 하나, 안타 하나 맞고 땅볼 두 개에 1실점 마무리라고 말하고 싶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무리`라는 말보다 저는 이상하게 클로저`라는 용어가듣기 좋습니다. 뭔가 비장하잖아요.

돌궐 2015-05-06 13: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불펜 문이 열리고 뛰쳐 나오는 클로저는 일기토하러 나오는 장수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마무리`란 말은 웬지 뒷정리 또는 뒤치닥거리? 느낌이 들긴 해요.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6 15:57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이거 저만 그 느낌인가 했는데 아니군요.
마무리는 왜 거 뭐냐. 설겆이 같은 느낌. 마무리는 네가 해.. 이런 느낌.
사실 마무리가 무진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블론세이브`가 단순히 1패가 아니라
제가 보게인 3패 정도의 영향을 주는 거 같습니ㅏ. 비장한 맛이 떨어지는데
클로저`는 아, 뭔가 비장해 보입니다. 미국의 야구 원조이다 보니 야구 용어 보면 정말 재미있어요.


금방 생각했는데 < 마무리 > 보다 < 수문장 > 어떻습니까.


수문장 봉중근 선수 마운드에 오릅니다 !



돌궐 2015-05-06 20:37   좋아요 0 | URL
수문장도 괜찮고, `끝판왕`, `끝판대장`, `최종보스`도 유치하긴 해도 좋을 거 같아요.
오승환한테 끝판대장이란 말 자주 썼던 거 같은데...

cyrus 2015-05-06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승환도 자서전을 출간했어요. 지금 예악주문할 수 있어요. 출간 타이밍이 기가 막히는군요. ㅎㅎㅎ

돌궐 2015-05-06 20:39   좋아요 0 | URL
아... 이거이거 잡독은 좀 `마무리`를 하고 싶은데, 이러시면 자꾸 목록만 늘어납니다.ㅋㅋㅋ
 
한국 과학사 이야기 세트 - 전3권 한국 과학사 이야기
신동원 지음, 임익종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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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의 <묵자-사랑과 평화의 철학>을 읽다가 조지프 니덤 책까지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생각난 책이 우리나라 과학사를 소개한 『한국과학사이야기』1-3 세트인데 예전에 써두었던 독후감이 있어서 옮겨온다.

 

#

초등생한테 맞게 나온 과학사 책이라고 하는데, 내용도 꽤 깊이가 있어서 청소년이나 어른이 보기에도 좋다.

 

각 권의 내용 구성을 살펴보자.

먼저 1권과 2권부터 보자(3권은 뒤에 나와서 독후감도 나중에 썼다).

 

먼저 1권에서 <하늘>과 <땅>을 주제로 천문학과 여러 가지 측량과학, 수학, 풍수지리와 지도, 광물지식, 파발과 봉화 등을 얘기하고 있고,

2권에선 <생명>과 <몸>을 주제로 옛날 동물과 식물, 곤충에 관한 주제와 우리나라 의학의 발달사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간단히 말하면 무척 딱딱하고 지루하고 어려운 책일 듯한데, 읽어 보면 매우 재미있다.

물론 정보가 많이 담긴 책이라 한꺼번에 독파하기는 버겁겠지만 군데군데 재미난 이야기와 삽화가 있고, 문헌자료와 고미술품 같은 시각자료도 많이 담고 있어서 책 보는 즐거움이 있다.

좋은 어린이 책을 쓰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음을 알 수 있겠더라. 다만 이런 거 찾아 읽는 애들은 별로 없다는 게 문제긴 하다.

 

글은 선생님이 쉬운 말로 가르쳐주는 형태로 썼고,

어려운 한자말이나 문헌제목들은 따로 풀이를 보여주면서 학생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각 장 끝에는 참고한 책이나 글들을 제시해서 좋았고, 문헌에 나오는 중요한 구절이나 옛이야기들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당시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역법이었던 <칠정산> 내외편에 대한 문헌자료는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1432년 세종은 정인지에게 말씀하셨다.

'고려 때 원나라 수시력을 가지고 들어와 그걸로 예측했다. 조선을 세우고도 일식, 월식, 오성의 궤적을 계산하지 못해서 중국의 수시력을 그대로 썼다. 수학에 밝은 그대가 정초와 더불어 고전을 연구하고, 관측기구를 제작하여 이 문제를 풀도록 하라. 우리가 중국 문명의 수준에 도달했는데, 유독 하늘을 관찰하는 공부와 기구가 부족하구나. 한양에서 본 북극을 기준으로 해서 새 역법을 만들라.'

명령을 받들어 정초, 정흠지, 정인지가 고전을 공부하여 수시력의 수학적 이치를 깨달았다. 또 이천으로 하여금 각종 관측기구를 제작토록 했고, 장영실로 하여금 자격루와 옥루를 제작토록 했다.

마지막으로 이순지, 김담이 명나라에서 새로 들어온 역법과 아라비아 역법을 더 연구하여 마침내 1442년 우리의 역법 <칠정산> 내편과 외편을 만들어 냈다.

이윽고 예측을 했더니 딱 들어맞았다.

  

역법이란 건 결국 달력을 만드는 기술이라고 하겠는데, 달력이 없다면 농사일이고 뭐고 얼마나 불편했겠나.

근데 이 달력을 만들려면 별자리의 이동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수학도 발달해야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학문은 아니다. 그래서 역법과 수학을 제왕학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중국에서 주는 달력을 받아서 쓰다가 <칠정산> 이후에는 조선만의 고유하고 더욱 정확한 달력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고인돌이나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문 지식, 첨성대 이야기, 고려와 조선의 천재지변 기록, 자격루와 혼천시계, 한국 수학의 역사 따위 이야기들이 첫 번째 책 1부 <하늘>편에 실려 있다.

2부 <땅>편은 풍수지리부터 소개되었는데, 풍수지리는 아주 간략하게만 나오고 있고 대부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같은 지도 이야기로 채웠다.

 

2권 1부 <생명>편에서는 암각화에서 시작해서 우리 역사에 보이는 동물과 식물에 대한 연구사를 소개하고 있다.

쌀과 채소, 김치 이야기와 감자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 이야기, 인삼과 후추, 담배, 차 등 식물 분야와 매, 말과 소, 물고기와 곤충학, 옷감의 역사 따위를 소개하였고,

2부 <몸>편에는 삼국시대부터 시작한 우리나라 의학의 역사에 대해 소개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면 중국과 달리 우리만의 '향약'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런 전통이 결국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를 거쳐 <동의보감>을 탄생케 했다고 한다.

잘 몰랐었는데 <의방유취>는 15세기 세계 최대의 의학 백과사전이었고, <동의보감>도 17세기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한 책으로서 한글 약 이름까지 쓰여져서 민중들한테까지 널리 의학을 보급할 수 있었던 저술이었단다.

의녀 이야기와 약방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시치미 뗀다", "산통 깬다", "학을 뗀다"라는 말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나만 몰랐던 건지도 모른다.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온다. 

  

하여튼 두 권 다 유익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학생들에게 조금씩 읽어주면서 역사 지식을 알려주기에도 좋겠다.

초등 고학년이 읽거나 읽어주기 알맞겠고(단 '정액', '성병'이란 낱말이 나오니까 참고),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도 충분히 볼 수 있을 만큼 내용이 충실했다.

 

다음으로 3권을 살펴보자.

 

1부에선 우리나라 문화재에 담긴 과학을 잘 설명하고 있다.

성덕대왕신종, 석굴암, 금속활자, 청자, 한지, 수원 화성, 석빙고, 훈민정음 등이 나온다.

과학적 측면에서 문화재를 설명해 주니까 재미있었다.  

2부는 우리나라 근현대 과학 100년 역사를 다루고 있다.

언뜻 보니까 과학의 업적만 칭송한 게 아니라 통일벼 심기의 어두운 면이나 산업화 시대에 전태일 등 노동자들의 희생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어서 꽤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1부에서 석빙고를 소개할 때 한겨울에 얼음 캐는 빙역으로 고생한 백성들 얘기도 나온다. 

노찾사의 <사계> 가사(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도 소개되어 있더라.

산업화 시대의 우리 과학사를 다룬 8장 마지막 단락은 이렇게 끝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산업화는 과학 기술계의 노력과 발전만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했던 노동자들과 우리 국민들의 눈물과 피땀 어린 노력이 더불어 이루어진 거란다. (344)

 

또 2부 2장 우리 나라 개항과 개화기 시대 과학 기술에 대한 평가를 한 프랑스 학자의 글을 인용하여 평가한 부분도 눈여겨 볼만 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개항과 개화기 시대의 과학 기술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1888년에서 1889년 조선의 내륙 지방을 여행한 프랑스 지리학자이자 민속학자인 바라의 말로 끝을 맺자꾸나. 바라는 다른 서양인 여행자와 달리 자신이 매우 식견 높은 여행자라고 자처한 사람이야. 조선인의 불결과 게으름, 무지와 무능을 비난한 서양인 여행자와 사뭇 다른 견해를 내놓았지. 보통 한양이나 금강산만 보고 떠나는 여행자와 달리 최초로 한양에서 부산으로 여행길을 택한 인물이기도 해. 조선의 내면을 보려는 의도였어. 그는 『조선기행』에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교육열이라고 썼단다.

 

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글을 쓸 줄 아는 이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시되고 있으며, 만약 우리 유럽의 새로운 문물이 제대로 유입되기만 한다면 조선인들이 얼마나 급속도로 발전하게 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또 그는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르는 여정에서 전봇대를 본 자신의 감상을 이렇게 표현했어.

 

바야흐로 우리는 한양에서 부산에 이르는 직통 행로로 접어든 셈이었는데, 놀랍게도 가도에는 일본이나 중국처럼 최근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전봇대들도 몇 개 세워져 있었다. 왠지 이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 발전 도상에서 머지않아 자신들의 이웃 국가를 따라잡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역사적으로 자신들이 가르쳐왔던 일본인들에게 비록 지금은 산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뒤져 있는 조선인들이지만, 윤리적인 우월함 덕분에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그들을 따라잡고 결국엔 저만치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인 특유의 가족 제도와 강한 연대성, 그로 인한 끈질긴 노동력과 지난 몇 년 동안 이룩한 놀랄 만한 발전상을 감안하면 나의 이런 생각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리라. 저 가도에 늘어선 전봇대들이 말해 주듯, 문명의 연결선들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땅덩어리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갈 그날이 그리 멀지많은 않은 것이다.

 

바라는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자존심과 교육열, 가족애와 끈질긴 노동력에 매우 후한 점수를 줬어. 갓 가설된 전봇대를 보면서 말이야.

바라의 글을 보면, 근현대에 벌어진 우리 과학사의 놀라운 발전이 꼭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 다만 늦게 시작했을 뿐, 과학 기술의 급진적인 발전을 일으킬 만한 조선인 고유의 정신적 힘을 지니고 있었다는 거지. (211-213쪽)

 

2부 4장은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 산업과 기술이 발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고, 5장에서 7장까지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이후 우리 과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렇듯 과학의 역사를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되짚어 볼 수 있어서 초등 고학년이나 청소년들이 보기에 괜찮을 거 같고 어른들이 읽기에도 재미있다.

각 장마다 끝부분에 더 읽을거리와 참고문헌도 소개하고 있어서 유용한 책이다.

 

위 3권에서 애써 책 속의 구절들을 인용한 이유는

1.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자기비하에 빠지고 별다른 근거도 없이 스스로 한심한 족속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경우와

2.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 산업화의 성공을 마치 몇몇 얼토당토 않은 인물과 재벌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이다.


왜 어르신들은 스스로 피땀 흘려 일궈낸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박통과 새마을 운동과 재벌 타령만 하는 걸까.
교육열만 봐도 그렇다. 나라에서 교육정책을 제대로 이끌어 준 적이 과연 있기나 한가 말이다.

우리들의 이 '대단한' 교육열은 어찌 보면 조선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는 전통인지도 모른다.

 

교육열 하면 떠오르는 김홍도 그림 하나 덧붙인다.

 

 

<자리짜기>, 김홍도,《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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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2-08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지프 니덤 책은 침만 흘리고 있고 그림으로 보는 중국 과학사만 쟁여 놓고 있습니다. ^^ 한국 과학사도 찔끔식 접하는데 이 책도 마음에 드는군요.

돌궐 2015-02-08 22:58   좋아요 0 | URL
니덤 책이 지금도 시리즈로 나오고 있다지요. 묵자한테 뻑가서 중국과학사를 연구했다는 얘기가 신선했어요.
 
어디서 공을 던지더라도
R. A. 디키, 웨인 코피 지음, 이재석 옮김, 박서연 그림 / 팝프레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류뚱 때문에 메이저리그를 다시 보게 되고, 신수까지 챙겨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다저스의 커쇼와 그레인키, 젠슨 같은 선수들도 응원한다.

 

한 번은 너클볼 던지는 선수 이야기를 다큐로 만든 게 있다고 해서 봤는데, 재미있었다.

거기서 나온 두 투수가 팀 웨이크필드와 R.A. 디키.

웨이크필드는 은퇴를 했고, 디키도 올해 나이가 우리 나이로 마흔이다.

 

이렇게 늙은? 선수가 어떻게 여전히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를 하고 있을까 놀랐다가 MLB.com에서 선수정보를 찾아보고는 더 놀랐다.

 

http://mlb.mlb.com/team/player.jsp?player_id=285079#gameType='R'§ionType=career&statType=2&season=2013&level='ALL'

 

2012년 사이영상???

아니, 38살 너클볼러가 사이영이라니!!!

거기다 그 해에 삼진 1위, 완투,완봉 1위에 이닝 1위???

 

 

 

 

내처 디키의 자서전 번역본을 읽어보았다.

아아,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몰려 오는 폭풍 공감...

마이너리그에서 전전하는 못난 가장으로서 그의 좌절과 고뇌가 절절히 느껴졌다.

(악어가 사는) 골프장 연못에서 골프공 수거해서 팔았다는 얘기에 웃기면서도 안쓰럽고...

 

미주리 강에서 무모한 도전을 하다가 빠져 죽을 뻔한 이후로 디키는 자신이 변했음을 알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가 변한 것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이제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강박감이 사라졌다. 또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는 일도 줄었다. 나는 다음달, 다음해 어느 팀에 가게 될지 걱정하기보다 바로 다음 투구에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진부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엄연한 진실은, 삶에서 중요한 것은 최종 종착지가 아니라 내가 매일 걸어가는 여정이라는 사실이다. (334-335)

 

 

 

자서전 중에는 마이너리그에서 푼돈 벌며 고생할 때 한국에서 입단 제의가 있었단 얘기도 나온다.

30만불이라는 안정된 수입이냐 메이저리거의 꿈이냐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던 삼십대 중반의 비애가 정말 나에게도 절실히 다가왔다.

 

사이영상 수상하자마자 뉴욕메츠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트레이드된 그는 올해는 목덜미 부상으로 작년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운동 선수로서는 매우 늦은 나이임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그가 존경스럽다.

멀리서나마 응원을 보내며, 나 또한 내 앞에 주어진 '다음 투구'에 에너지를 쏟아붓자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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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개정증보판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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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나 개정판까지 나온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책 속에서 되풀이 되어 나오는 낱말이 '프랙털'과 '카오스'인데, 잭슨 폴록의 그림을 프랙탈 이미지로 설명하고 있다.

'프랙털'이란 말은 예일대 수학과 교수였던 브누아 만델브로트가 만든 용어이다.

아무리 작은 스케일에서 들여다보더라도 미세한 부분들이 전체 구조와 유사한 구조를 무한히 되풀이하고 있는 양상은 자연의 패턴들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고 이것을 '프랙털'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한참 전에 시각문화교육 관점에서 쓴 미술교과서에 나온 내용이 기억났는데, 다시 보니 프랙털에 대한 정확한 서술은 아니었던 듯싶다.

어쨌거나 한국 미술에도 프랙털 구조가 있다고 한다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만든 전통 가옥 구조나 사하라 사막의 강풍을 막기 위한 천막 설치 등에서 프랙털 구조가 발견된 것과 같이 전 세계에서 매우 희귀한 사례가 될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은 여섯 다리 건너 다 아는 사이다, 백화점에 창문이 없고 거울이 많은 이유 등과 같은 내용은 익히 들어온 거라 쉽게 느껴졌지만 복잡계 경제 이야기와 금융 공학은 사전 지식이 좀 필요하다 싶은 단락이다.

다행히 지난해 연말에 경제사 책 쉬운 거 하나 읽었으니 망정이지 뭔 말인지 못 알아들을 뻔했다.

 

그리고 '브라질 땅콩 효과'는 정말이지 나도 살면서 직관으로 깨달았던 자연 현상이다.

삽질을 많이 하다 보면 입자가 작은 흙은 아래에 깔리고 굵은 흙이나 자갈이 위로 드러난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런 걸 연구하는 분야가 '알갱이 역학'이란다.

 

 

4악장에서 다루는 소음, 사이보그, 크리스마스(산타), 박수 부분은 좀 어려운 수식들이 등장하여 어려운 느낌이었지만 내용의 대략을 이해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 정도였다.

10년 전 책에는 없을 커튼콜 부분에서는 (박수로 끝내고 커튼콜로 에필로그를 삼는 자의식이 좀 거슬리기는 하지만) 천장이 높은 곳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가 솔깃하다.

나중에 집을 지을 일이 혹시 있다면 참고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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