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ipped (Paperback, 미국판) - 영화 '플립' 원작 소설
Van Draanen, Wendelin / Ember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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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아이의 이야기와 여자 아이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구조인데, 단순하고 말초적인 밀땅이나 묘사되는 로맨스는 아니었다.

줄리아나는 브라이스를 처음 만난 순간 그 파란 눈에 홀딱 반한다. 하지만 브라이스에게 줄리는 그저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그런 브라이스에게 줄리가 남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은 외할아버지 덕분이다.

외할아버지는 브라이스에게 플라타너스 나무를 지키기 위해 나무 위에서 버텼던 줄리의 기사를 건네주면서 편견없이 한 번 읽어보라고 한다. 기사에서 줄리는 이런 말을 했다.

"To be held above the earth and brushed by the wind," "it's like your heart has been kissed by beauty." (98)

 

이 신문기사를 나중에 꺼내어 읽으면서 브라이스는 줄리의 다른 면을 깨닫는다.

그리고 점점 줄리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플라타너스 나무 꼭대기에서 먼곳을 바라보는 줄리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브라이스에겐 그 전에 알던 줄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브라이스가 나무 위 줄리 사진을 꿰뚫고 본 '푼크툼'이겠지. 그리고 그것은 줄리가 아빠가 그려준 플라타너스 나무 그림을 꿰뚫고 본 것과 같은 것이다. 줄리아빠는 줄리에게 말한다.

"Proper lighting is everything, Julianna." (34)

 

그리고 그림은 부분을 모두 합한 것 이상이라고 설명한다.

"A painting is more than the sum of its parts," he would tell me, and then go on to explain how the cow by itself is just a cow, and the meadow by itself is just grass and flowers, and the sun peeking through the trees is just a beam of light, but put them all together and you're got magic. (34)

 

브라이스 외할아버지 쳇은 줄리에게 다른 이야기도 해준다. 

He wanted to know about the sycamore tree and seemed to understand exactly what I meant when I told about the whole being greater than the sum of its parts. "It's that way with people, too," he said, "only with people it's sometimes that the whole is less than the sum of the parts." (110)

 

그렇다. 전체가 부분을 합한 것 이상일 수도 있고,

전체가 부분을 합한 것 이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줄리와 브라이스는 딱 이런 아이들이었던 거다.

평범하지만 그 속에는 아름다운 내면을 가진 소녀와,

겉모습(부분)은 아름답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소년.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둘은 이제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브라이스는 줄리의 모든 것을 꿰뚫어 여자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되었고,

줄리는 브라이스의 파란 눈빛을 넘어서서 냉정한 마음으로 남자를 평가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다.

브라이스는 더 이상 예전의 브라이스가 아니었다.

 

외할아버지가 브라이스에게 이런 말을 한다.

"Some of us get dipped in flat, some in satin, some in gloss...." He turned to me.

"But every once in a while you find someone who's iridescent, and when you do, nothing will ever compare." (96)

"어떤 사람들은 집에, 어떤 사람들은 옷에, 어떤 사람은 겉치장에 몰두하지...."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무지개 빛깔을 내는 사람이 있단다.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게 되지." (번역본, 128)

 

 

그밖에 밑줄 친 문장들.

 

Maybe it was all how you looked at it. Maybe there were things I saw as ugly that other people thought were beautiful. (142) - 줄리가 셸리 스톨이 하는 짓이나 외모를 디스하면서.

Mysery loves company. (173) - 브라이스가 '바구니 소년' 경매에 오르기 전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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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 제4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수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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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보고 표지와 제목 글꼴이 독특해서 찍어뒀던 책인데 마침 도서관에 있길래 빌려 읽었다. 뒤표지 안쪽에는 취향존중스티커 15개도 있는데 대출했던 사람들이 모두 착했던지 아무도 스티커를 떼지 않았더라.

 

소개글에 보니까 ‘자진모리장단처럼 숨 가쁘게 휘몰아치는 익살맞은 문장’이라던데, 문장도 문장이지만 나오는 각종 루저들의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매우 우의적이랄까, 뭔가 헛웃음도 나왔다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감도 되었다가 연민도 느껴졌다. 그런데 또 이 루저들이 벌인 일은 자못 통쾌하고 짜릿하다. 루저는 졸지에 영웅이 된다.

 

장면과 캐릭터들의 과거가 교차되면서 그들이 왜 ‘안티 버틀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하나씩 하나씩 밝혀지는 게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는 것 같았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비슷한 스타일로 천명관의 <고래>가 떠올랐다. 그저 킬링타임용 통속 소설은 아니고 나름 묵직한 메시지도 있다. 취향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는 거, 내 취향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거. 여기서 ‘취향’은 또 다른 낱말들로도 바꿀 수 있겠지. 

 

 

책에서

 

* 김B가 한에게 ‘안티버틀러’를 소개하면서 하는 말.

“자신들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근거가, 그들이 고양이를 ‘이해’하기 때문이란 거죠. 그와 더불어 그들이 고양이와 ‘소통’하는 것이 자신들의 교감 능력이 뛰어나서라고 얘기합니다. 이것들이 무슨 얘기냐면, 고양이 비애호가들을 이해력과 교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본다는 얘기예요. 어딘가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한다는 얘기죠. 단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

(중략)

“무엇보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러니까 고양이 비애호가들이 실제로 이해력과 교감 능력이 떨어진다면, 버틀러들도 싫어할 이유가 없겠죠. 그러나 한 씨도 아시다시피, 그런 건 사람마다 다른 거잖아요. 무엇을 좋아하는 것과는 상관없이요.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왜 그들이 인간 객체마다 본연히 다른 그것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뭉뚱그려 비하하는지에 대해 말입니다.”

(중략)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이 고양이 비애호가를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하는 까닭은, 그게 그들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러나 얄팍한 수작이죠.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실제로 빛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폄하하고 깎아내리면서 자신의 반짝임을 주장할 필요가 없다고요. 보통 자신의 특별함을 간단히 추구하려는 사람일수록 상대방을 짓밟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아주 간단히 특별함을 공고하게 해버리죠. 그렇지도 않으면서요.” (84-85)

 

 

* 안티 버틀러의 마지막 유튜브 동영상 대사 중에서

“저희는 ‘안티 버틀러’, 이 세상의 모든 버틀러에 반대합니다. 여기서 버틀러란, ‘집사’라는 의미로 일부 고양이 애호가를 지칭하는 데서 출발하였지만 그들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취향에 근거해 타인을 차별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 자신의 취향을 숭배하기 때문에 타인의 취향을 낮잡아 보는 모든 이를 뜻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취향이란 무엇일까요? 이 시대에 취향이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지표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에 매혹되어 있는지는 우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정체성을 드러내는 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뿐일까요? 우리는 그 뒤에서 일종의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변 애호가 중 배타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을 만나본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이른바 저희가 버틀러라고 부르는 이들이죠. 그들은 주로 소수의 무리였을 겁니다. 다수에 의해 이해받지 못하는 데 염증을 느끼고 공통의 취향을 가진 이들끼리 뭉치게 되었을 테니까요. 그게 그들이 배타적이 된 역사적 배경이었죠. 긍정적인 결과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취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다른 취향을 가진 이들보다 더 깊은 수준의 연구와 학습을 하는 경향을 보였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너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는 자의식이 싹텄지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결코 긍정적이라고 볼 순 없었지만 그들이 소수인 이상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버틀러들의 위험성이 두각을 드러낸 것은 그들이 다수가 되었을 경우의 일이었습니다.“ (325-326)

“이러한 연유로 저희는 장국태 의원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궁극적 목적은 특정 취향에 지배되는 세상을 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취향은 동일한 만큼의 가치를 지닙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우열이 가려질 수는 없습니다. 호불호가 외압에 의해 결정될 수 없는 것은 취향이란 것이 그만큼 순수하단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의 취향이 소중하다면 타인의 취향 또한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모든 이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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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 3 :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이오덕 일기 3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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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이오덕 일기>가 들어와 있는 걸 보고 한 권 집어들었다. 한때 이오덕 선생이 쓰신 <우리글 바로쓰기>를 정독하며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이 책을 보게 될 가능성도 줄었을 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일기를 정리한 3권을 빼내어 잠깐 훑어만 보려고 했다. 내 어리고, 치기로 가득했던 젊은 시절에 이오덕 선생은 어떻게 사셨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데군데 읽어 본 글들이 너무나 울림이 커서 결국 빌려와서 읽고 있다.

 

87년 민주화 운동 때 선생을 비롯해서 문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이 일기를 통해 마치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간 듯했고, 김지하가 '저주의 굿판을 집어치워라'고 했을 때 이오덕 선생과 문인들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그 내막이 드러나 있다. 일기에 따르면 당시 고은 시인이 회장으로 있던 작가회의에서는 김지하 시인의 제명까지 결의했다고 나온다.

반면에 3권에서 이오덕 선생이 칭찬하고 좋게 본 작가들은 김유정, 김남주, 리영희, 백석, 그리고 권정생 선생 등이다.

 

한 사람의 일기가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문헌이 되는지는 잘은 모르지만, 잠깐 살펴본 이 일기 몇 줄만으로도 한 시대를 뚜렷한 방향과 사상으로 살아갔던 인물의 기록은 엄청난 무게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한가하다면 이 다섯 권 일기를 경건한 마음으로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 정독하고 싶다. 

 

 

초록

 

1987년 6월 20일 토요일

......

오후에는 종로 2가에서 송현 씨를 만나려고 현실문제연구소에 갔더니 송현 씨가 민음사 앞에 있다고 해서 그 사무실에 있는 젊은이 한 분과 그쪽으로 가는데, 조금 전에 왔던 수협 건물 앞에서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었다. 나와 같이 가던 젊은이가 박수를 쳤는데 나는 한 손에 우산을 짚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 아이들의 그 씩씩한 모습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화락 쏟아지려고 하는 것을 참았다. 아, 이 젊은이들이 있어 우리 겨레가 살아 있는 것 아닌가. (91)

 

1987년 6월 26일 금요일

......

... 이쪽저쪽 인도에서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지켜보면서 박수를 치고, 함께 구호를 외친다. 겨우 빠져나가는 버스 안에서 승객들이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든다. 아, 이 광경, 이 역사적인 광경. 나는 최루탄 가스의 눈물이 아니고 진짜 눈물이 났다. 나도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었다. 좀 더 많은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길을 메우고, 교통을 차단시켜 아주 마음껏 외치고 뛰고 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안 된 것은 오늘 관공서고 기업체고 모조리 직원들의 발을 묶어 놓고 있는 데다 대회장에 못 들어오도록 전경들을 이중 삼중으로 배치하고 전철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97)

 

1987년 11월 6일 금요일

......

차숙이는 오늘 그 지역 일대에 정전이 되는 바람에 공장이 쉬게 되었단다. 오늘 쉬는 대신 모레 일요일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공장의 시설, 관리자들의 횡포 같은 것을 들으니 너무 기가 막혔다. 노동자들이 얼마나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이따금이라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떤 종교인이고 문인이고 정치인이고 그는 인간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위험하니 노태우를 찍어 줘야 한다고 말한다니, 이 사회가 얼마나 인간을 노예근성으로 길들여 놓았는가 알 수 있다. 노예사회가 결코 옛날 얘기가 아니다. 오늘날의 도시는 거대한 노예 도시로 노예국가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129)

 

1987년 12월 18일 금요일

......

지하도를 지나는데 내 옆을 가던 어떤 여자가 "선거가 잘됐는데, 학생들이 무슨 재미로 또 데모를 하노"해서 내가 "선거가 잘됐다고요? 모르고 그런 말 마시오!" 했다. 그런데 내 뒤 어디에서 또 여자 목소리가 났다. "미친 것들 또 데모를 하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니 거리 곳곳에 전경들이 무리지어 서 있었다. 오늘 시청 앞에 사람들이 모인다고 했지만, 거기엔 아침부터 철통같이 경비를 한 모양이다.

집에 와서도 아무것도 손에 걸리지 않아 오랫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134)

 

1988년 3월 24일 목요일 맑음

뜻밖에 오늘은 아침에 한길사 사장이 전화를 걸어 왔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나를 단재상 수상자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축하한다고 했다. 나는 놀랐다. 내가 무슨 단재상을 받다니, 당치도 않은 일이다. 단재상을 어떤 사람에게 주는지 알지 못하지만 내가 도대체 무슨 상 받을 일을 했는가? 그리고 나는 단재의 책을 한 권도 읽은 바가 없다. 전집을 사 놓고도 못 읽었다. 어떻게 내가 그 상을 받겠는가? (149-150)

 

1988년 5월 22일 일요일 비

온종일 쉬어 가면서 교단 일기를 옮겨 썼더니, 밤 9시 반이 되어 드디어 한 권 분량(약 1,300장)을 마쳤다.

이 일기를 옮겨 쓰면서 생각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몇십 년 옛날에 써 둔 것을 읽으니, 잊어버리고 있었던 온갖 일들이 되살아난다. 참 이런 일도 그때 있었구나, 이건 이렇게 했던 게로구나, 하고 여러 가지를 깨닫고 알게 된다. 사람의 머리로 기억해 둔 것은 너무나 빈약하고, 모호하고, 잘못되어 있기도 하다. 일기를 적어 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알게 되었다.

둘째, 그 옛날의 삶을 기억만으로 회상할 때는 즐겁게 달콤하기도 한데, 일기를 읽어 보니 참으로 괴롭게 살았구나 싶다. 나는, 지금 내가 다시 젊어진다고 해도 내 지난날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만큼 내 과거의 교직 생활은 고뇌에 가득 차 있다.

셋째, 그러나 그 옛날의 일기를 하루하루 읽으면서 옮겨 쓰면서, 지금의 삶과도 비교해 보고, 마치 그때로 다시 돌아가 내가 살고 있는 듯한 심정도 들어, 그것이 그처럼 괴롭지만 그 괴로움을 단지 마음으로 되씹는다는 것이 어떤 즐거움이기도 하다고 느낀다. 말하자면 나는 일기를 읽으면서 과거와 현재의 두 시간을 한꺼번에 체험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도 일기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일기를 옮겨 쓰는 것을 귀찮은 일거리로 생각하지 않고 즐거운 일로 여기면서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지금의 일기를 쓰는 것도 즐거움으로 여겨야겠다. (165-166)

 

1989년 6월 8일 목요일 비

아침에 셔츠를 빨았다. 비누를 묻혀서 자꾸 치대면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렇게 무엇을 생각하면서 손으로 치대는 것이 참 즐겁다는 생각을 했다. 빨래를 다 마치고 그것을 걸어 둘 때도 즐겁지만, 다 마른 것을 거두는 것도 기쁘고 깨끗이 빤 옷을 입는 것도 기쁘다. 그래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여자들이 오래 사는 것은 바로 빨래를 하기 때문이라고. 참 엉뚱한 생각이지만 이건 재미있는 시적인 생각이라, 시를 한 편 써 보고 싶었다. '빨래'란 제목으로. (219)

 

1990년 1월 5일 금요일 흐림

......

권정생 선생 집에 도착한 것이 오후 5시 좀 지났다. 강아지 뺑덕이가 훌쩍훌쩍 뛰어 반겼다. 권 선생은 몇 달 전부터 간에 대한 약을 먹고 있는데, 전에는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잠시 누구와 앉아 이야기하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요즘은 그렇잖다고 했다. 일직 장터까지 나갔다가 오는 것도 된다고 했다. 단지 갔다 오면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오고 손가락 끝이 저리다고 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겠지. 아무튼 간이 회복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렇게 간이 나빠진 것을 모르고 지금까지 있었으니! 20몇 면 동안 계속해서 결핵 약을 먹었으니 그 약의 해독이 이렇게 사람을 못쓰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린다는 약이 도리어 사람을 잡는 독이 되어 있는 것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권 선생은 저녁밥을 해 왔는데, 간고등어 구운 것이 그렇게 맛있었다. (245)

 

1990년 4월 6일 금요일 맑음

......

... 공 박사는 여전히 기계화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한참 동안 열변을 토했다. 그러면서 나한테 "타자기는 무얼 씁니까?" 했다. 아직 안 배웠다고 했더니 그래서 안 된다면서 다시 또 한참 열변을 이었다. 공 박사 말이 끝날 것 같지 않아 내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박사님 말씀 모두 옳습니다. 그런데 제가 타자기 안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박사님 기계화 자꾸 말씀하시지만, 기계화만 된다고 사회가 구제되는 것 아니라요. 책방에 가면 책이 산으로 쌓였는데, 저는 이제 글 쓰는 사람들 제발 글 좀 조심해서 적게 썼으면 싶어요. 원고지 한 달에 천 장 쓰던 사람은 백 장 쯤 줄였으면 싶어요. 활자 공해, 인쇄물 공해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저 자신도 이제 글을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62-263)

 

1990년 5월 5일 토요일 맑음

.....

아침에 권정생 선생한테 전화를 걸어 풍금을 탈 수 있는가 물어보았다. 악보 보고 가락만 탈 줄 안다고 하면 내가 샀던 것과 같은 악기를 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에 언젠가 일직교회 갔을 때 풍금 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가락을 대강 탄다면서 그렇잖아도 풍금을 하나 샀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이번 한겨레신문사에서 책이 나오면 내가 가진 것과 같은 것을 하나 사 줘야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사람은 악기라도 탈 수 있도록 해야 덜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269)

 

1991년 1월 17일 목요일 맑음

......

중동에 전쟁이 기어코 터졌다는 소식이다. 미국 놈들이 어째서 그곳까지 가서 전쟁을 하나? 참으로 용서 못 할 일이다. 그런데 노태우 정권은 전쟁을 일으킨 것을 축하하면서 군대를 보낸다고 한다. 기가 막힐 일이다. (291)

 

1991년 3월 19일 화요일 맑음

아침에 목욕을 하고 빨래를 했다.

오늘은 21일 한길문학에 가서 강의할 준비로 소설 문장 보기글을 고르고 그것을 옮겨 쓰느라고 온종일 걸렸다.

저녁에 헌책방 앞에 가서 신문을 사고, 오는 길에 찰떡을 2천 원어치 사서, 그중 천 원어치를 먹었더니 배가 불러서 애를 먹었다.

밤에는 《백석 시집》을 읽었다. 이 시가 좋은 줄을 이제 새삼 알겠다. 이런 시를 지금의 청소년들도 좀 읽을 수 있어야겠는데, 참 이런 우리 정서가 아주 끊어졌으니 답답하다. 그래도 몇 편쯤 골라서 아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298-299)

 

1991년 5월 5일 일요일 맑음

......

<조선일보>는, 이 김지하 씨의 글 옆에 또 운동권 학생과 인사들을 비판하는 사설과 글을 실어 놓았다. 더러운 신문이다.

김지하란 사람은 이제 그 본질이 드러났다. 이 사람은 본래 노동을 하면서 자라난 사람이 아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어도 그렇다. 이상한 신비주의와 영웅 심리 같은 것이 뒤섞인 성장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이 한때 그처럼 영웅이 된 것은 재주 때문이다. 그가 쓴 시는 삶의 바탕이 없고, 그저 막연한 영웅적 울분과 감정의 배설 뿐이다. 그의 산문은 관념과 추상의 신기루다. 그런 심리들 속에 영웅으로 떠받들어진 자신이 괴로워(그렇게 살아갈 도리가 없기에) 이제 고백이니 참회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제자리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노동자와 농민과 학생들을 그처럼 악의에 넘친 말로 욕할 것은 뭔가? 역사 속에 매장되어야 할 사람이다.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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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 -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보는 법 너머학교 열린교실 8
김남시 지음, 강전희 그림 / 너머학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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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과 ‘아는 것’의 관계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본다는 것은 그 사물을 우리가 경험이나 교육을 통해 알고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해석’하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해석은 나만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또 망원경과 현미경, 사진, 스마트폰 등 다양한 시각 도구들이 ‘보는 것’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제기를 하며 마치고 있다. 본다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 행위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는 관음증과 노출증 같은 병리적 현상들, 그리고 그렇게 사진이나 동영상을 노출하고 공개하는 행위와 그에 동조하며 열광하는 반응들은 마치 나치가 유태인을 핍박하고 모욕하면서 이를 대중과 함께 공유했던 행태와 다를 바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와중에도 포털과 언론 누리집에는 여배우와 걸그룹 가슴골을 ‘함께 보자’고 번쩍이는 기사와 이미지 배너들이 판을 치고 있고, 블로거들은 어제 산 명품과 속옷만 착용한 직찍 사진을 올려놓고 자뻑하고 있으니 오늘날 우리들의 공동체 시선이 가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과연 알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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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의 수수께끼 - 제3회 창비청소년도서상 교양 기획 부문 대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9
안소정 지음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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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에 <세한도> 얘길 조금 끄적였는데, 마침 도서관에 들어왔길래 재빨리 읽었다.
몇 년 전에 완당 세한도에 숨겨진 수학적 비례에 대해 나온 논문(이수미, <세한도>에 내재된 조형 의식과 장황 구성의 변화, 2007)을 읽고 정말 유물을 옆에 두고 보고 또 보면서 분석하고 연구하면 이런 글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유물을 보고, 분석하는 것에 시간과 정성을 쏟고도 잘된 논문을 쓰지 못한다면, 결론이 나올 수가 없는 논증에 집착했거나 아니면 재능이 없는 거라고 봐야겠지.

 

책 제목을 봤을 때 그 논문에서 나온 얘기들을 참고해서 쓴 책이겠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세한도>의 경물들이 1:√2의 금강비에 입각하여 배치되었다는 결론은 무척 재미있었다. 그 이후 다른 연구글을 본 적은 없으니 이것이 수학을 전공한 저자가 직접 내린 결론인지 아니면 다른 논문이나 책에서 참고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추리소설처럼 주인공들(미술 좋아하는 학생과 수학 샘)이 박물관에서 은밀하게 없어진 유물들과 <세한도>에 얽힌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어제중화척과 도량형, 구고현의 정리와 피타고라스의 정리, 근의 공식, 마방진 등 문화유산과 수학에 관한 지식들이 퍼즐처럼 펼쳐진다.


내가 수학 컴플렉스가 있어서 그런지 『주비산경』에 나온다는 저 그림은 신기하기만 하다. 구고현의 정리가 피타고라스의 정리보다 5백 년 먼저 나왔다고 하는데, 도대체 나는 왜 이런 걸 학교에서는 배운 적(기억?)이 없는 것일까.

 

줄거리는 처음부터 아주 강렬한 시작은 아니지만 중반 이후로는 매우 긴박하게 진행된다. 수학 지식들이 정말 정교하게 미스테리에 짜맞추어져 있는 게 조금 부자연스러운 감이 있긴 하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아주 잘 쓴 수학 소설이다. 이차방정식과 근의 공식 정도는 알고 수학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책에서 마방진 만드는 법을 배웠으니 애들한테 잘난 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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