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 제4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수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서점에서 보고 표지와 제목 글꼴이 독특해서 찍어뒀던 책인데 마침 도서관에 있길래 빌려 읽었다. 뒤표지 안쪽에는 취향존중스티커 15개도 있는데 대출했던 사람들이 모두 착했던지 아무도 스티커를 떼지 않았더라.

 

소개글에 보니까 ‘자진모리장단처럼 숨 가쁘게 휘몰아치는 익살맞은 문장’이라던데, 문장도 문장이지만 나오는 각종 루저들의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매우 우의적이랄까, 뭔가 헛웃음도 나왔다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감도 되었다가 연민도 느껴졌다. 그런데 또 이 루저들이 벌인 일은 자못 통쾌하고 짜릿하다. 루저는 졸지에 영웅이 된다.

 

장면과 캐릭터들의 과거가 교차되면서 그들이 왜 ‘안티 버틀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하나씩 하나씩 밝혀지는 게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는 것 같았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비슷한 스타일로 천명관의 <고래>가 떠올랐다. 그저 킬링타임용 통속 소설은 아니고 나름 묵직한 메시지도 있다. 취향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는 거, 내 취향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거. 여기서 ‘취향’은 또 다른 낱말들로도 바꿀 수 있겠지. 

 

 

책에서

 

* 김B가 한에게 ‘안티버틀러’를 소개하면서 하는 말.

“자신들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근거가, 그들이 고양이를 ‘이해’하기 때문이란 거죠. 그와 더불어 그들이 고양이와 ‘소통’하는 것이 자신들의 교감 능력이 뛰어나서라고 얘기합니다. 이것들이 무슨 얘기냐면, 고양이 비애호가들을 이해력과 교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본다는 얘기예요. 어딘가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한다는 얘기죠. 단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

(중략)

“무엇보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러니까 고양이 비애호가들이 실제로 이해력과 교감 능력이 떨어진다면, 버틀러들도 싫어할 이유가 없겠죠. 그러나 한 씨도 아시다시피, 그런 건 사람마다 다른 거잖아요. 무엇을 좋아하는 것과는 상관없이요.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왜 그들이 인간 객체마다 본연히 다른 그것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뭉뚱그려 비하하는지에 대해 말입니다.”

(중략)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이 고양이 비애호가를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하는 까닭은, 그게 그들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러나 얄팍한 수작이죠.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실제로 빛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폄하하고 깎아내리면서 자신의 반짝임을 주장할 필요가 없다고요. 보통 자신의 특별함을 간단히 추구하려는 사람일수록 상대방을 짓밟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아주 간단히 특별함을 공고하게 해버리죠. 그렇지도 않으면서요.” (84-85)

 

 

* 안티 버틀러의 마지막 유튜브 동영상 대사 중에서

“저희는 ‘안티 버틀러’, 이 세상의 모든 버틀러에 반대합니다. 여기서 버틀러란, ‘집사’라는 의미로 일부 고양이 애호가를 지칭하는 데서 출발하였지만 그들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취향에 근거해 타인을 차별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 자신의 취향을 숭배하기 때문에 타인의 취향을 낮잡아 보는 모든 이를 뜻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취향이란 무엇일까요? 이 시대에 취향이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지표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에 매혹되어 있는지는 우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정체성을 드러내는 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뿐일까요? 우리는 그 뒤에서 일종의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변 애호가 중 배타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을 만나본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이른바 저희가 버틀러라고 부르는 이들이죠. 그들은 주로 소수의 무리였을 겁니다. 다수에 의해 이해받지 못하는 데 염증을 느끼고 공통의 취향을 가진 이들끼리 뭉치게 되었을 테니까요. 그게 그들이 배타적이 된 역사적 배경이었죠. 긍정적인 결과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취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다른 취향을 가진 이들보다 더 깊은 수준의 연구와 학습을 하는 경향을 보였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너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는 자의식이 싹텄지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결코 긍정적이라고 볼 순 없었지만 그들이 소수인 이상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버틀러들의 위험성이 두각을 드러낸 것은 그들이 다수가 되었을 경우의 일이었습니다.“ (325-326)

“이러한 연유로 저희는 장국태 의원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궁극적 목적은 특정 취향에 지배되는 세상을 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취향은 동일한 만큼의 가치를 지닙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우열이 가려질 수는 없습니다. 호불호가 외압에 의해 결정될 수 없는 것은 취향이란 것이 그만큼 순수하단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의 취향이 소중하다면 타인의 취향 또한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모든 이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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