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하게만 느껴지만 '2000'이라는 숫자가 쏜살같이 금새 흘러 '2008'이라는 숫자를 온통 눈 앞에 던져놓았다. 새로울 것 없는 해뜨고 해지는 하루하루이겠으나, 그래도 새해라고 하는 신새벽에 뭔가 올해의 화두는 있어야 하지않겠나.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 전에 솔직히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지만, 그 정도로 경직되고 어두운 사회는 이제 아니라고 믿는다. 헌팅턴은 정권교체 두번이면 절차적 민주주의는 갖추어진 사회라고 했다고도 한다. 이제 우리도 그 정도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갖춘 셈이라 위안한다.

다만, 내가 안타까운 것은 뭐든 쌓는 것은 지난하고 어려우나, 뭉개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유신의 암흑같던 세월과 80년대 치열하고 전쟁같던 역사는 87년 단일화 실패로 10년이라는 세월을 더 견뎌서야 정권교체라는 열매를 주었다. 그리고 딱 10년. 97년부터 2007년이 되어서 정권은 다시 넘어갔다. 그러나 그 정권창출이라는 것에 나는 그저 '세속적인 정치적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2007년을 보내면서도 아직도 찜찜한 것은 나의 '근원적인 정치적 관심'조차도 엉망진창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새해아침에 낡은 필름을 뒤적거리다 1996년 신한국당(민정당, 민자당의 후신이며 한나라당의 전신이다)의 노동법 개악에 길거리 시위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본다.



이제는 흔해빠진 말이 되었지만 나는 이때 처음으로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때 백선생님은 많이 늙었던 기억이다. 길에서 듣던 그의 목소리에 가슴이 쩌렁쩌렁 찢어지던 기억으로 뵙다 한겨울에 야윈 모습을 뵈니 마음이 편치않았다. '선생님... 사진 한 장 찍겠습니다.'고 찍은 사진이라 표정도 어색하시기만 하다.



내 카메라는 줌이 되지 않는 50mm. 내가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에서 찍은 단병호 위원장(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사진이다. 더 가까이 가지 못한 이 사진이 오히려 더 그를 경외스럽게 보이게 했다.



민노총과 한국노총의 공동집회에서 권영길씨를 찍은 사진이다. 역시 내가 갈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였다. 그것도 기자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찍은 사진이다.

10년동안 창당도 했고, 국회에도 입성했고, 원내 3당으로 자리도 갖췄지만 나의 '근원적인 정치적 관심'은 올해 처참할 정도로 뭉게졌다. 물론 실망하고 끝낼 일은 더더구나 아니지만, 많은 세월동안 쌓아온 것들이 온전히 다시 서려면 아프지만 되돌아 반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믿는다. 아주 힘들수도 있겠으나, 되돌아 반성해야만 할 것이다. 가는 길이 틀리지 않다면. 

새해아침에 낡은 사진들을 들추며, 새삼스럽게 나는 패배가 참된시작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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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사진은 어려우면서도 참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름휴가에 식구들끼리 놀러갔다 찍은 사진인데, 할아버지와 손자간의 말없는 대화를 담아 보았습니다. 자연스럽기는 하나 주변이 다소 산만한 것이 걸리고, 손자의 표정을 더 살리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순간적인 상황이긴 하나 이럴 경우, 구도를 전체적으로 잡는 것이 좋을지 인물들을 더 부각하는 것이 좋을지 어쭤보고 싶구요. 두 인물의 구도를 현재와 같이 평면적으로 잡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손자의 표정을 더 살리도록 좀 더 오른쪽에서 찍는게 좋았을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본 사진은 필름을 스캔한 사진입니다.)
 
   


곽윤섭 (2007.12.30) : 크기와 사진에서의 비중
   
  어려운 조건이었습니다.
깔고 앉아있는 자리가 은박으로 빛나는 재질이다 보니 빛을 반사시켜서 전체의 노출을 어지럽힙니다. 이럴 경우 얼굴같은 곳이 부족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은 두가지입니다. 분명히 할아버지와 손자를 찍은 사진이지만 주변의 정황도 어느정도는 포함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포함하면 좋겠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이 경우엔 여름 휴가철 야외로 나갔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게 넘치면 인물묘사가 약해진다는 아주 흔한 딜레마와 상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인물들 뒤로 자동차가 보입니다. 오토캠핑장 또는 천막촌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보제공 장치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왼쪽에 벗어둔 신발을 같이 포함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신발이 인물들과 나란히 배치되어 사진의 구성을 더욱 알차게 하는 것이 명백합니다. 오른쪽은 거의 필요없으니 더 잘라도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더 클로즈업해서 찍어도 좋았겠다는 이야깁니다.
두번째 질문은 손자의 표정에 대한 앵글 조절입니다.
할아버지는 몸집이 손자에 비해서 큽니다. 런닝셔츠와 반바지등으로 인물묘사가 시원시원하게 잘 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손자는 덩치가 작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그러므로 약간은 더 오른쪽으로 가서 손자의 얼굴을 잘 보이게 해주는 것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답변은 이 사진을 찍은 질문자의 의도를 읽고 드린 것입니다.

만약 제 삼자가 있어 지금 앵글도 좋고 할아버지를 더 강조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다면 그 것은 그 분의 의도이므로 또한 존중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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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7년 9월
절판


프리모 레비 : 미래를 위한 증인

토도로프는 수용소 생존자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수치심'을 실마리로 삼아 레비의 죽음을 고찰하고 있다. 첫째, 기억으로서의 수치심. 자신의 의사에 대한 전면적인 포기와 자기 붕괴에 빠진 희생자의 수치심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흡사 강간당한 여성의 수치심처럼,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것은 강간을 저지른 자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도리어 희생당한 사람이 수치스러워하는 것이다. 둘째, 살아남았다는 수치심. 레비는 만년에도 이렇게 쓰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형을 죽인 카인이라는 의혹, 누구나 자신의 이웃을 밀어내고 그를 대신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의혹이 마음을 갉아들고 구멍을 뚫는다'고. 그리고 셋째, 인간이라는 수치심. '인간이 아우슈비츠를 건설했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죄이다. 저들에게 죄가 있다면 같은 인간인 나 역시 유죄가 아닌가'하는 의식이다.-122쪽

갓산 카나파니 : 팔레스타인의 초상

언제가 되어야 자네는 다른 사람들의 나약함이나 실수를 더이상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구실로 삼지 않을 것인가.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잘못은 다른 사람들의 나약함과 실수가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정당화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129쪽

하라 다미키 : 온몸이 기도가 되어

아내가 발병한 이후 하라의 작품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원폭 피해 뒤에 '여름꽃'을 발표하기까지 소설은 거의 쓰지 않았다. "내 만일 아내와 사별한다면, 딱 1년만 더 살리라. 슬프고도 아름다운 한 권의 시집을 남기기 위하여..."라는 시구는 분명 거짓 없는 심경이었다.-178쪽

김구 : 파란만장한 역사의 파노라마

김구와 안중근 가문의 인연은 임시정부에서 다시 맺어져 해방 후까지 이어졌다. 감옥에 갇힌 아들 안중근에게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리라"고 당부한 조마리아 여사는 상하이 독립운동계의 정신적 대모였으며, 동생 안정근은 연락과 재정 업무를 담당한 임시정부의 핵심으로 해방 후에는 김구의 밀서를 들고 김일성, 김두봉과 만나 남북연석회의를 이끌어냈다. 막내동생 안공근도 김구의 최측근으로 활약했으며, 안정근의 둘째딸 안미생은 김구의 비서로 일하며 훗날 그의 며느리가 되었다. 안공근의 큰아들 안우생 역시 한국청년전위단 등의 핵심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김구의 대외담당비서로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연석회의 참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구 암살 후에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앞장선 안중근 가문은 그러나 5.16 후 군사정권에 의해 반국가사범으로 몰려 안경근이 7년형을, 숙부 안태건의 손자 안민생이 10년형을 선고받는 등 탄압을 받았다.-241쪽

박노해 : 노동의 새벽을 노래한 얼굴 없는 시인

세계를 뒤흔들며 모스크바에서 몰아친 삭풍은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랫소리도 순식간에 떠나보냈다.
(.....)
죽음 같은 자기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 데도 아무 데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뼈아픈 침묵이 내면의 종울림으로 맥놀이쳐갔다.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 그해 겨울나무-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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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이 보이고, 형제섬이 보입니다. 그리고 억새와 바람.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제주에 억새가 많은 줄 몰랐습니다.
햇볕받은 그 억새마저도 찬 빛깔의 바다처럼 추워보입니다.
지금의 제주는 딱 이런 날씨겠지요.

먼 곳에서 무수한 조각의 단어들을 보내주셨지만, 머리는 내내 둥실 뜬 구름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반가운 사람. 쌀쌀한 날씨, 추운 겨울을 이긴 봄이 올 때까지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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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까지 연달아 일에 치여, 오늘은 도저히 견딜 힘이 없어 일찍 퇴근했다. 며칠째 애꿎은 담배를 조져댔더니 목도 말라붙고 컨디션이 소위 메롱이다.

내 인생에 불꽃같이 화려했던 날은 언제였을까?, 아니 언제일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단 한번도 인생의 불꽃이 뒤에 올 시절의 이야기지 이미 지난 이야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인생의 최고점? 글쎄다. 왜 이런 생각이 들까...

일본에서 처음 배낭여행을 하던 10년전, '니시카타카미'라는 정말 촌동네 마을에 도착했을때 이미 불꽃은 터져 올랐다. 기차에서 뛰어내려 삼각대도 없이, 릴리즈도 없이, 숨을 바짝 참으며 그 묵직했던 FM-2 셔터를 누르고 필름감고...누르고 필름감고..참으로 찍고 싶었던 불꽃놀이 촬영의 첫 순간에 쿵쾅거리며 터지는 불꽃처럼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그러나,
이건 사진이 아니로세. 아니로세...
'그래 찍는 순간에라도 즐거웠으니 됐다'는 자조를 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라, 승질 가라앉히는데 꽤 시간 걸렸다. 순간! 바로 그 순간! 어찌 잡을까!...  



그 뒤에도 나의 도전은 계속 되었지만, 사실 쌀쌀한 밤 날씨 참아가며 이것저것 갖추어 좌판 펼치는게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뭐든 잘 안되면 흥미가 떨어지는 법이지...암.

아, 꽃같은 젊음, 불꽃이여.
언제였던가 싶은 춘삼월은 항상 짧은 법이다.



여러 필름들 속에서 이 사진을 찾아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만족스럽다. 터지는 섬광과 우뢰같은 소리는 사라지고, 고요해진다.

순간같던 젊음을 잡으려 하지마라, 아니 순간같은 인생을 잡으려 하지마라. 즐기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오늘같이 멍한 날, 사진보고 깨치는 것이라도 있으니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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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7-12-04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오랜만이네요~.^^;;
반가와요~.
명심하겠습니당~. 순간을 잡으려하지 않고 즐기겠습니당~.

dalpan 2007-12-05 01:24   좋아요 0 | URL
뒤늦게 찾아와도 반겨주시니, 제가 더 반갑습니다. 건강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