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7년 9월
절판


프리모 레비 : 미래를 위한 증인

토도로프는 수용소 생존자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수치심'을 실마리로 삼아 레비의 죽음을 고찰하고 있다. 첫째, 기억으로서의 수치심. 자신의 의사에 대한 전면적인 포기와 자기 붕괴에 빠진 희생자의 수치심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흡사 강간당한 여성의 수치심처럼,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것은 강간을 저지른 자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도리어 희생당한 사람이 수치스러워하는 것이다. 둘째, 살아남았다는 수치심. 레비는 만년에도 이렇게 쓰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형을 죽인 카인이라는 의혹, 누구나 자신의 이웃을 밀어내고 그를 대신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의혹이 마음을 갉아들고 구멍을 뚫는다'고. 그리고 셋째, 인간이라는 수치심. '인간이 아우슈비츠를 건설했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죄이다. 저들에게 죄가 있다면 같은 인간인 나 역시 유죄가 아닌가'하는 의식이다.-122쪽

갓산 카나파니 : 팔레스타인의 초상

언제가 되어야 자네는 다른 사람들의 나약함이나 실수를 더이상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구실로 삼지 않을 것인가.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잘못은 다른 사람들의 나약함과 실수가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정당화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129쪽

하라 다미키 : 온몸이 기도가 되어

아내가 발병한 이후 하라의 작품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원폭 피해 뒤에 '여름꽃'을 발표하기까지 소설은 거의 쓰지 않았다. "내 만일 아내와 사별한다면, 딱 1년만 더 살리라. 슬프고도 아름다운 한 권의 시집을 남기기 위하여..."라는 시구는 분명 거짓 없는 심경이었다.-178쪽

김구 : 파란만장한 역사의 파노라마

김구와 안중근 가문의 인연은 임시정부에서 다시 맺어져 해방 후까지 이어졌다. 감옥에 갇힌 아들 안중근에게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리라"고 당부한 조마리아 여사는 상하이 독립운동계의 정신적 대모였으며, 동생 안정근은 연락과 재정 업무를 담당한 임시정부의 핵심으로 해방 후에는 김구의 밀서를 들고 김일성, 김두봉과 만나 남북연석회의를 이끌어냈다. 막내동생 안공근도 김구의 최측근으로 활약했으며, 안정근의 둘째딸 안미생은 김구의 비서로 일하며 훗날 그의 며느리가 되었다. 안공근의 큰아들 안우생 역시 한국청년전위단 등의 핵심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김구의 대외담당비서로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연석회의 참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구 암살 후에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앞장선 안중근 가문은 그러나 5.16 후 군사정권에 의해 반국가사범으로 몰려 안경근이 7년형을, 숙부 안태건의 손자 안민생이 10년형을 선고받는 등 탄압을 받았다.-241쪽

박노해 : 노동의 새벽을 노래한 얼굴 없는 시인

세계를 뒤흔들며 모스크바에서 몰아친 삭풍은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랫소리도 순식간에 떠나보냈다.
(.....)
죽음 같은 자기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 데도 아무 데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뼈아픈 침묵이 내면의 종울림으로 맥놀이쳐갔다.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 그해 겨울나무-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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