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7년 6월
구판절판


이란은 앞으로 걸었지만, 사진을 들고 있는 그녀의 손은 쉼 없이 떨려왔다. 그녀는 봉투 안에서 가족사진을 꺼내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억눌렀다. 그렇게 애써 자신의 격한 감정을 억누르며 걸었지만, 송범평이 일찍이 위풍당당하게 붉은 깃발을 흔들었던 다리에 다다랐을 즈음 시위 대열이 그녀의 갈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봉투 속의 사진을 꺼내보고 말았다. 첫눈에 송범평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지만 나머지 세 식구의 웃는 얼굴이 들어오기도 전에 그녀는 그만 무너져내렸다. 지난 사흘 동안 힘겹게 견뎌온 슬픔과 고통이 사진 속 생생한 송범평의 웃는 얼굴로 인해 한순간에 그녀를 무너뜨려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뜨린 것이다.-245(1권)쪽

송강은 확실히 바보처럼 그 자리에 선 채로 임홍이 지나칠 때 "저..."라는 한 마디조차 내뱉지 못했고, 임홍이 멀리 사라진 후, 다른 여공들도 모두 멀리 떠나간 후에야 임홍이 자신을 보고도 못 본 척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송강은 그때 별안간 이광두가 임홍이 절대 자신을 좋아할 리가 없다고 한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방금 임홍이 지나칠 때 보인 냉랭한 표정이 그 점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송강은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나무 곁을 떠나 큰길을 따라 돌아올 때는 몸이 제비처럼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어제 일은 한 편의 달콤한 꿈에 불과한 거라고 생각하며 꿈에서 깨어난 듯 송강은 입을 비튼 채 웃었고, 꿈속의 장면을 다시 음미하며 꿈이 현실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비록 상상 속에서의 행복이었지만 얼마나 편안했는가 말이다.-108(2권)쪽

송강은 씁쓸히 웃으며 하역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친 일 하며 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다 폐를 다친 이야기를 했고, 이야기를 들은 이광두는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너. 이 개후레자식. 일자리 구하러 동네방네 다 돌아다녔으면서 나 이광두한테는 안 오구. 너 이 개후레자식. 너 지금 니 꼬라지를 봐라. 허리도 작살나고 폐도 작살나구. 너 이 개후레자식아. 왜 날 안 찾아온거야?"
이광두의 욕설에 송강은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들은 여전히 형제였던 것이다. 송강은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찾아왔잖아."
(중략)
이광두의 입에서 다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런 쪼다 같은 새끼.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뭔데?"
송강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나 편지나 신문 보내는 것 정도고, 다른 일은 못해. 능력이 없어서..."
"이 칠칠치 못한 쪼다새끼야. 임홍이 진짜 눈이 멀었지. 너한테 시집을 가다니."
이광두는 분을 삭이지 못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소리를 질렀다.-67(3권)쪽

그때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송강이 안경을 벗어서 닦은 후 다시 쓰고 보니 태양이 반쯤 저물었고, 열차는 반쯤 지고 있는 태양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일어나 사람의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는 기차에 뭉개질 안경이 아까워 벗어서 방금까지 앉아 있던 돌 위에 얹어두었지만 잘 보이지 않아 웃옷을 벗어 돌 위에 깔고 그 위에 다시 안경을 얹어놓았다. 그러고 나서 깊숙이 사람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셨고, 다시 마스크를 썼다. 그 순간 그는 죽은 자는 호흡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시체 수습을 하러 오는 사람에게 전염될까 봐 걱정했으니 말이다. 그는 앞으로 네 걸음을 걸어 두 팔을 벌린 채 철로 위에 누웠다. 철로 양측에 걸린 겨드랑이가 너무 아파 앞으로 조금 기어가 철로 위에 배를 올려놓았다. 휠씬 편안했다. 다가오는 기차에 철로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고, 그의 몸도 따라 요동쳤다. 그는 또다시 하늘빛이 그리웠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눈앞에 펼쳐진 붉은 장미꽃밭 같은 논을 보았다. 정말 아름다웠다. 바로 그때 갑자기 놀랍게도 갈매기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갈매기는 울고 있었는데, 날갯짓을 하며 멀리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열차의 덜컹대는 소리가 그의 허리를 지나쳤을 때 임종의 눈길에 남은 마지막 정경은 고독한 한 마리 갈매기가 광활한 꽃밭을 날고 있는 모습이었다.-259(3권)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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