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벚꽃
김탁환 지음 / 민음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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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만에 만나 눈물부터 쏟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눈물이 흐르는 뺨을 들어 보이며 숙이 말했다.
"미안! 나 조금만 울게. 무릎을 빌려 주면 좋겠거든."
공주에 도착할 때까지 숙은 울고 또 울었다. 눈물이 바지를 적셨다. 허벅지가 축축하고 불편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슬픔에 빠져들 때도 있는 법이다. (중략) 혀가 단어를 만들기도 전에 목구멍에서 어떤 고통과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 짐승 울음소리를 만드는 것을 예전에도 몇 번 목격한 적이 있다.-30~31쪽

열셋, 열여덟, 서른둘에 어떤 사람을, 그것도 여자를 띄엄띄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정성을 쏟을 일도 아니었다.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서야만 빛나는 만남도 있고 멀리 두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문득 그리운 만남도 있는 법이다.-47~48쪽

책임을 진다는 것, 목숨을 건다는 것, 시간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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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구판절판


우리의 정신 속에는 원본능, 자아, 초자아의 세 영역이 있습니다. 원본능은 오직 쾌락원칙만을 추구하고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욕망 충족을 향해 내달립니다. 자아는 현실 원칙을 참조하여 원본능을 사회적으로 수용될 만한 수준에서 만족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초자아는 바로 그 자아가 하는 일을 감독하는 기관입니다. 초자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자아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고, 단지 자아를 감시하고 통제할 뿐입니다.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아가 약하다는 점입니다. 초자아가 너무 무섭게 자아를 노려보고 있어 죄의식이나 불안감에 시달리거나, 원본능의 충동에 밀려 공격성이나 성적 욕망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심리 치료가 가장 먼저 제공하는 것은 자아를 강화시켜 주는 일입니다.-31p쪽

정신분석 현장에서 행해지는 문제 해결의 과정은 '내가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단계, 치료 동맹 속에서 자아를 강화하는 단계, 전이를 통해 내면에 억압된 감정을 알아차리는 단계, 유아기적 생존법인 방어기제를 자각하는 단계 등으로 이어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방어가 해체되면서 내면에 억압되어 있던 감정들이 언어로, 행동으로 표출됩니다. 그것을 '전이 행동화'라고 합니다.-53p쪽

우리의 내면에는 생존 욕망과 죽음 욕망, 자기 보존 욕구와 자기 파괴 욕구, 현실 원칙을 따르는 본응과 쾌락 원칙을 따르는 본능 등의 상반된 힘이 공존합니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학에서는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의 어두운 측면이 밝은 측면과 짝을 이룬다고 해서 '양가감정'이라 일컫습니다. 융 학파 정신분석학에서는 그런 측면을 밝은 의식의 반대편에 있는 어두운 면이라는 뜻에서 '그림자'라고 부릅니다. (중략) 이제는 바로 그 못나고 추악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면의 어두운 측면들을 하나씩 꺼내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보살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59p쪽

내면에 억압해둔 어둡고 위험한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밝고 건강한 의식 속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양가감정을 통합한다'고 일컫습니다. 양가감정을 통합하면 자아가 강해집니다. 내면을 억압하는데 쏟던 에너지를 거두어 자아가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양가감정을 통합하면 또한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이 됩니다. 억압하고 외면해둔 내면에는 엄청난 지혜와 창조성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존엄하고 사랑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게 되며, 그때 진정한 마음의 치료가 이루어집니다.-63p쪽

부부 사이에는 갈등을 조절하고 욕구를 협상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혼 초기의 부부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것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함께 사는 방법을 찾고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기 위한 과정입니다. 싸우는 부부가 건강하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전혀 갈등이 없다면 그것은 부부 중 한쪽이 희생하고 있거나, 제3자를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는 뜻입니다.-94p쪽

현대 정신분석학은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이전의 부모가 권위적이고 엄격하고 지도하는 양육 방식을 취했던 것에 반해, 현대의 부모는 자녀와 친밀한 정서적 관계를 나누는 것이 더 나은 부모 역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훌륭한 부모는 좋은 친구입니다.-101p쪽

황홀기가 지나면 상대에 대한 미화된 이미지가 깨지면서 사랑의 환상이 걷히는 시기가 옵니다. 이 단계에서는 서로의 구체적 성격을 점검하고 현실적인 태도들을 측정합니다. 실망이나 좌절이 있어도 사랑이 분노보다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관계를 이끌어갑니다. 협상과 양보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면서 자아가 강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갈등기를 무사히 넘기면 그 다음에는 안정기로 접어듭니다. 최조의 절정감이나 도취의 느낌과는 다르지만 충만하고 편안하며 만족스러운 느낌은 유지됩니다. 그 과정으로 진입하면 사랑의 항상성이 확보되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169p쪽

정신분석은 "사랑 앞에서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문"이라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그 사랑에는 애착의 감정뿐 아니라 성적 욕망이라는 요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태생부터 성적 욕망과 공격성을 타고나는 존재이며, 두 가지는 서로 한 몸입니다.-216p쪽

제 윗세대 선배 중에는 남편이 출장 갈 때 콘돔을 챙겨준다는 분이 있습니다. 어차피 외도할 건데, 안전하게 하는 게 낫다는 거지요. 같은 세대의 선배 한 사람은 남편에게 이렇게 다짐한답니다. "세 가지만 약속해. 내가 알지 못하도록 하는 것. 나한테 병을 옮기지 않는 것. 아이를 낳아서 데려오지 않는 것." (중략) 이 여성들의 공통점은 현실을 직시하는 눈을 가졌고, 그 현실에 적응하며 살기 위해 노력하며,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234p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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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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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모 주석의 말씀이 계셨다. 모 주석께서는 매일 담화 같은 것을 발표하셨는데, "말과 글로써 투쟁해야지 무기를 들고 투쟁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을 하신 뒤로는 사람들이 손에 들었던 칼이나 곤봉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모 주석께서 "학습을 재개하고 혁명을 지속시키자."라는 말씀을 하시자 일락, 이락, 삼락이가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게 되었다. 학교에서 다시 수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모 주석께서 "혁명을 견지하면서 생산을 촉진시키자."라는 말씀을 하시자 허삼관은 공장에 다시 출근을 했고, 허옥란은 매일 새벽 꽈배기를 튀기러 나갔다.

(중략)

세월이 좀 흐른 뒤 모 주석께서 천안문 성루에 모습을 나타내시어, 오른손을 들어 서쪽을 향해 흔드신 후 수천 수백만의 학생들에게 말씀하셨다. "지식 청년들은 농촌으로 가서 빈농과 하층 중농으로부터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일락이는 요와 이불을 말아 등에 지고, 보온병과 세숫대야를 손에 들고 붉은 깃발을 따르는 대오를 따라 길을 나서게 되었다.-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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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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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의 열기 속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반미 감정 좀 가지면 어때?"라고 말하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고, 한국은 파병을 결정했다. 파병 자체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한국에 관철되는 미국의 힘이었다. 꼭 20년 전 김세진,이재호 두 젊은이가 자기 몸을 불살라가며 반미를 외치던 그 시절과 비교한다면, 반미감정은 엄청나게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 주류의 미국화는 그에 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더욱 심하게 이루어진 듯하다. 냉전이 종식된 뒤 "세계를 단일제국으로 재편한 미국의 질서에 동참하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협박하던 자들은 이미 국제인이 아니라 '제국인(帝國人)'이 되어 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나 한미자유무역협정 문제를 보면,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들 제국인이다. 한국이름을 갖고, 한국에서 대학 나오고, 한국에서 한국인 부인과 살고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국익은 한국의 국익이 아니라 제국의 이익이다. 내선일체를 꿈꾸던 옛날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나 친일파조차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체감을 제국은 이미 이루고 있다. 1980년대에는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그때는 '숭미 사대주의자'라는 말도 쓰고 친미파라고도 부르고, 그냥 친미파라 하면 재미없으니까 '미친파'라고도 하고 그랬지만, 친일파나 친미파는 그래도 한국 사람에게나 붙일 수 있는 말이다. 한국말에 능통한 머리 까만 미국 사람들, 청와대에, 국회에, 정부 각 부처에, 언론사에, 대학에 득시글하면서 한미동맹만이 살길이라 외치는 사람들. 그들의 머릿속에 한국은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리고 반미운동이 당면한 중요한 문제이다.-35쪽

1980년대 이후 한국 근현대사 연구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엄청나게 중요한 분야인데도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합당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분야가 이민사다. 현재 해외에 살고 있는 한민족 구성원은 중국 200만 명, 미국 100만 명, 일본 100만 명, 중앙아시아 등 옛 소련지역 40만 명, 유럽 및 기타 지역 50만 명으로 약 5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남북한 인구 7,000만 명에 500만 명을 더해 한민족을 7,500만 명으로 잡으면 전체의 6.67%에 이른다. 1945년에 해방될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당시 한민족 전체 인구는 3,500만 명이고 해외 거주 인구는 중국 220만 명, 일본 230만 명, 옛 소련 40만 명, 미국 및 기타 지역 10만 명으로 역시 500만 명에 육박해 전체 민족 성원의 14%가량이었다.
한국 근대사에서 해외이민은 조선 말기인 1860년대 초반에 대기근이 들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그러니 1945년 당시에 인구의 14%가 해외에 있었다는 것은 80여 년 만에 인구 일곱 명에 한 명꼴로 해외로 나간 것으 의미하니, 참으로 슬프고도 숨가쁜 '세계화'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한 민족집단의 다수 성원이 짧은 기간에 해외로 나간 것은, 1840년대에 아일랜드의 대기근으로 10년 동안 100만 명이 굶어 죽고 100만 명이 이민을 떠나 800만 인구가 600만 명으로 줄어든 것을 제외하고는,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민족의 이산이었다. 화교가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지만, 1949년에 신중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전 세계에 분포된 화교 수를 대략 1,000만 명으로 잡는 것을 보면, 전체 중국 인구에서 화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우리의 10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151-2쪽

흔히 6월 항쟁 이후 지금까지를 '87년 체제'라고 부르지만, 이 1987년 체제 안에서도 끊임없이 민주화는 진행되었다. 지금 한국이 누리는 절차상의 민주주의는 서방의 선진제국이 부럽지 않을 수준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우리의 정신을 빼놓는 이 모든 '쇼, 쇼, 쇼'가 그동안 민주화되어오며 생긴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에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퇴직직원이 어디 감히 도청 테이프나 녹취록을 들고 나와 정보부를 상대로 협상을 벌이겠다고 꿈이라도 꿀 수 있었겠는가? "고향 땅에서 쟁기질하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 원내 최다선이던 정일형 의원이 국회에서 ?겨나야 했던 유신시절에, 어찌 대통령 탄핵을 꿈꿀 수 있었겠는가? 정부를 비판했다고 언론사 사주가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고 결국은 신문사를 빼앗겨야 했던 저 '겨울 공화국'이었다면, 어찌 지금처럼 대통령에 대해 비판 정도가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언사를 퍼붓고도 무사히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겠는가? '권력의 시녀'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문다"라는 말을 창피한 줄 모르고 기자들에게 퍼붓던 검찰이 법적인 근거도 없는 평검사회의를 들먹이며 대통령에게 대드는 것도 다 민주화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대로 판결한 판사들이 줄줄이 법복을 벗는 것을 본 뒤 공안사건의 경우 공소장의 오자까지 베껴 쓰는 참담함을 묵묵히 견뎌낸 엘리트 법관들은, 이제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되어 사법 전성시대에 최고의 권력과 영광을 누리고 있다. 독재자에게 밉보이면 국제그룹처럼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되기도 하던 재벌들은, 이제 정치자금을 강탈해가지 않는 민주화된 세상에서 신자유주의와 금권 숭배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아직도 군인 아저씨였을지 모르니, 세상 참 많이 좋아졌나 보다.-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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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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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를 괴롭히고 있는 것도 역시 '생활'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형의 존재가 단순히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좀더 근원적인 의미에서 '저주스러운 짐짝'이 아닐 리 없다. 현세적인 가치관에 대한 순수한 저항을 관철하기 위해서도 의식주 따위 현세적인 뒷받침은 필요하다. (고흐의 경우는 화구까지도. 그것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이 단순한 모순이야말로 옛날옛적부터 창조자,구도자,혁명가를 괴롭혀왔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에게 채찍질을 해대지만, 그런 행위는 그 채찍의 의미를 이해하는 자까지도 함께 쓰러뜨리고 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자에 대해서도 창조자,구도자,혁명가이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창조자,구도자,혁명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해자들이 그 채찍의 아픔을 참고 견뎌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짐짝'인 것이다.
그러므로 '슬픔과 고독'은 고흐에게뿐 아니라 테오에게도 있었다. 그것을 처절한 색채감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형의 역할이었고, 그것을 말없이 감수하는 일이 아우의 몫이었다.

- '거친 하늘과 밭' (고흐) -69쪽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아니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奔流)가 되지만 대개는 맥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희생은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 희생이 가져다주는 열매는 흔히 낯두꺼운 구세력(舊勢力)에게 뺏겨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런 희생 없이는 애당초 어떠한 열매도 맺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
이 사실을 정말로 이해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쁘라도 미술관이 내 마음을 암담하게 만드는 것은, 벨라스께스나 고야를 바라보고 있는 중에 이 간단치 않은 이해를 무조건 강요받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략)

'검은 그림' 씨리즈 속에 한 점의 이색적인 개 그림이 있다. '물살을 거스르는 개' 또는 '모래에 묻히는 개'라고 불린다. 보기에 따라서 급류를 허겁지겁 헤엄쳐 건너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유사(流砂)의 개미 지옥에 삼켜져 구제불능의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개는 고야 자신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 개는 나라고 생각했다.

- '모래에 묻히는 개' (고야)-108쪽

두 형이 모두 출옥함으로써 우리 일가를 짓누르고 있던 운명은 하나의 구획을 지은 셈인데, 돌이켜보건대 잃은 것은 너무나 많고 또한 조국의 분단상태를 비롯하여 이러한 운명을 초래한 구도의 근본이 아직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우리들이 아직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게 차라리 당연하다 하겠다.
지나간 20년의 세월에 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희망이라는 것의 공허함일지도 모르겠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도리어 쉽게 절망하는 것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도 있다. 그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역사 앞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이행할 뿐이다.

- 에필로그 중-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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