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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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의 열기 속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반미 감정 좀 가지면 어때?"라고 말하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고, 한국은 파병을 결정했다. 파병 자체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한국에 관철되는 미국의 힘이었다. 꼭 20년 전 김세진,이재호 두 젊은이가 자기 몸을 불살라가며 반미를 외치던 그 시절과 비교한다면, 반미감정은 엄청나게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 주류의 미국화는 그에 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더욱 심하게 이루어진 듯하다. 냉전이 종식된 뒤 "세계를 단일제국으로 재편한 미국의 질서에 동참하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협박하던 자들은 이미 국제인이 아니라 '제국인(帝國人)'이 되어 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나 한미자유무역협정 문제를 보면,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들 제국인이다. 한국이름을 갖고, 한국에서 대학 나오고, 한국에서 한국인 부인과 살고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국익은 한국의 국익이 아니라 제국의 이익이다. 내선일체를 꿈꾸던 옛날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나 친일파조차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체감을 제국은 이미 이루고 있다. 1980년대에는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그때는 '숭미 사대주의자'라는 말도 쓰고 친미파라고도 부르고, 그냥 친미파라 하면 재미없으니까 '미친파'라고도 하고 그랬지만, 친일파나 친미파는 그래도 한국 사람에게나 붙일 수 있는 말이다. 한국말에 능통한 머리 까만 미국 사람들, 청와대에, 국회에, 정부 각 부처에, 언론사에, 대학에 득시글하면서 한미동맹만이 살길이라 외치는 사람들. 그들의 머릿속에 한국은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리고 반미운동이 당면한 중요한 문제이다.-35쪽

1980년대 이후 한국 근현대사 연구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엄청나게 중요한 분야인데도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합당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분야가 이민사다. 현재 해외에 살고 있는 한민족 구성원은 중국 200만 명, 미국 100만 명, 일본 100만 명, 중앙아시아 등 옛 소련지역 40만 명, 유럽 및 기타 지역 50만 명으로 약 5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남북한 인구 7,000만 명에 500만 명을 더해 한민족을 7,500만 명으로 잡으면 전체의 6.67%에 이른다. 1945년에 해방될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당시 한민족 전체 인구는 3,500만 명이고 해외 거주 인구는 중국 220만 명, 일본 230만 명, 옛 소련 40만 명, 미국 및 기타 지역 10만 명으로 역시 500만 명에 육박해 전체 민족 성원의 14%가량이었다.
한국 근대사에서 해외이민은 조선 말기인 1860년대 초반에 대기근이 들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그러니 1945년 당시에 인구의 14%가 해외에 있었다는 것은 80여 년 만에 인구 일곱 명에 한 명꼴로 해외로 나간 것으 의미하니, 참으로 슬프고도 숨가쁜 '세계화'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한 민족집단의 다수 성원이 짧은 기간에 해외로 나간 것은, 1840년대에 아일랜드의 대기근으로 10년 동안 100만 명이 굶어 죽고 100만 명이 이민을 떠나 800만 인구가 600만 명으로 줄어든 것을 제외하고는,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민족의 이산이었다. 화교가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지만, 1949년에 신중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전 세계에 분포된 화교 수를 대략 1,000만 명으로 잡는 것을 보면, 전체 중국 인구에서 화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우리의 10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151-2쪽

흔히 6월 항쟁 이후 지금까지를 '87년 체제'라고 부르지만, 이 1987년 체제 안에서도 끊임없이 민주화는 진행되었다. 지금 한국이 누리는 절차상의 민주주의는 서방의 선진제국이 부럽지 않을 수준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우리의 정신을 빼놓는 이 모든 '쇼, 쇼, 쇼'가 그동안 민주화되어오며 생긴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에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퇴직직원이 어디 감히 도청 테이프나 녹취록을 들고 나와 정보부를 상대로 협상을 벌이겠다고 꿈이라도 꿀 수 있었겠는가? "고향 땅에서 쟁기질하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 원내 최다선이던 정일형 의원이 국회에서 ?겨나야 했던 유신시절에, 어찌 대통령 탄핵을 꿈꿀 수 있었겠는가? 정부를 비판했다고 언론사 사주가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고 결국은 신문사를 빼앗겨야 했던 저 '겨울 공화국'이었다면, 어찌 지금처럼 대통령에 대해 비판 정도가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언사를 퍼붓고도 무사히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겠는가? '권력의 시녀'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문다"라는 말을 창피한 줄 모르고 기자들에게 퍼붓던 검찰이 법적인 근거도 없는 평검사회의를 들먹이며 대통령에게 대드는 것도 다 민주화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대로 판결한 판사들이 줄줄이 법복을 벗는 것을 본 뒤 공안사건의 경우 공소장의 오자까지 베껴 쓰는 참담함을 묵묵히 견뎌낸 엘리트 법관들은, 이제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되어 사법 전성시대에 최고의 권력과 영광을 누리고 있다. 독재자에게 밉보이면 국제그룹처럼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되기도 하던 재벌들은, 이제 정치자금을 강탈해가지 않는 민주화된 세상에서 신자유주의와 금권 숭배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아직도 군인 아저씨였을지 모르니, 세상 참 많이 좋아졌나 보다.-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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