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키가미 2 - 출정 전야
마세 모토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지난 리뷰 옮기기 >

    작성일 : 2007년 3월 19일

 

 

     "당신의 사망예고장을 배달하러 왔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늘 일상과 똑같은 날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 
    아니, '어쩌면 나일지도 몰라' 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1%라는 확률은 누구에게나
    '나한테 올리가 없어' 라는 근거없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으므로 '왜 나야?' 라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이키가미(사망예고증)를 내미는 배달원을 쳐다보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반응.
    (*이키가미 : 이쿠(죽다) + 가미(종이) 의 합성어)

 

    일본 정부는 [국가번영법] 이라는 이름 하에 매년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아이들에게 예방 접종을 하는
    주사 속에 1,000명의 1명꼴로 '어른이 되기 전에 죽는 죽음의 씨앗'을 심는다.
    누가 그 '씨앗'을 받았는지도 모른채 아이들은 자라게 되고. 평균 18세~24세 사이에,
    사망하기 24시간 전에 이키가미는 배달되어 그 사람의 죽음을 알린다.

    "생명의 가치"를 알려 범죄 예방을 줄이자라는 차원에서 시행되었다는 이키가미.

    그 '大를 위해 小'를 희생하여 '생명이, 인생이 얼마나 중한지 깨닫게 해주는 극약 처방'의 가엾은
    희생자들의 몸속에는 나노캡슐이 혈관을 유유히 떠돌다가 심장에 다다르고 처음에 '죽는 날'로
    정해진 일시가 되면 캡슐이 파열하여 심장이 터져 죽는 것이다.
    하나같이 희생자들이 갑자기 정지된 로봇처럼 뚝-하고 멈춘 채 쓰러지는 것이 고통은 없는가보다.
    그것은 국가의 1mm도 안되는 아주 얇은 배려심인가. 

    자신에게 앞으로도 수십년 이상의 시간과 삶이 있을 것이라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살고 있었던
    희생자들은 자신이 앞으로 24시간 안에 죽는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남은 시간중 몇시간을 백지 상태로 멍하니 있기도 하고, 방 안의 가구들을 다 부수는데
    쓰기도 하고,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짐 정리하는 등 쓸데없는 곳에 아까운 시간을 써버린다.

    영화나 드라마라면 주인공이 미쳐 발광을 하거나 세상에 멋진 일을 남기거나 하는 등 -
    '저 상황이면 이럴거야.' '마지막인데 멋지게 죽고 싶지 않을까?' 라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생각을
    반영이라도 하듯 꾸미는게 '정석'같겠지만, 현실속의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덤덤하다. 

    그러다 정신차리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진정이 되면 -
    그들은 남은 시간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하고 움직이게 되는데.
    자신을 괴롭혔던 과거의 사람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들이대는 폭주형도 있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꿈을 향한 모습을 고집하며, 뜨기 시작하는 신인 스타의 코러스 대신
    자신이 정말 원했던 노래를 라디오 생방에서 멋지게 부르고 쓰러져버리는 이상가형도 있고,
    눈이 보이지 않는 여동생에게 자신의 각막을 죽기전에 기증하는 희생형도 있다.
    자신은 몇시간 후면 죽을 운명인데도, 자신이 돌보던 요양원의 할머니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신없이 찾으러 다니는 그는 남은 시간을 남을 위해 다 써버리기도 한다.

    억지로 멋있게 꾸미지도, 지나치게 어둡고 우울한 모습을 그리지도, 죽음을 앞둔 자들의 머릿속에서
    삶과 죽음의 철학적인 멘트를 끄집어 내는 것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인
    늘 일상과 같은 날을 보내는 사람들을 그린 것이 오히려 눈물을 떨어트리게 만들었다는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국가번영과 범죄 예방을 통한 생명의 가치 인식' 이라는 그럴싸한 제목으로 국민들의 생명을
    너무나 쉽게 '희생의 단두대'에 올려버리는 그 독선적임이 마치 영화 [배틀로얄]을 보는 것 같았다.
    섬에 어느 중학교 한 반의 학생들을 가두고 '혼자 살아남을 때까지 동료를 죽여라' 라고 무서운
    '생존법칙 교육' 속에 어린 학생들이 총과 칼로 무장한 채 서로를 죽이는 소재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배틀로얄]이 '한 사람'을 위해 나머지가 희생하는 것이라면, [이키가미]는 '소수의 사람'이 '다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다를 뿐, 억울하게 죽는 것은 같다.


    그 죽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든 악당이든 상관없이 죽음을 선택받는 것은 '공평하다'. 

    이 세상 그 어떤 인간도 다른 생물을 심판하고 죽일 권리는 없다.
    단순히, 먹고 먹히는 생태계의 최고봉에 위치해 있는 생물로서 다른 생물을 양식으로 삼기 위해
    살생을 하는 것과, 같은 인간 혹은 다른 생물을 재미 목적이나 어떤 사상에 의해서 죽이는 것은
    허락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과거나 지금이나 '좀 더 잘난 생물'로써 그 자만심을 구역질나게 되풀이하고 있다.

     어쨌든, '앞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뿐' 이라는 독특하고 신선한 소재로 다가온 [이키가미].
    그것은 누구에게나 언제 어느 때든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의 존재를 알리는 것과 동시에 -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귀하고 의미있고 보람되게 보낼 수 있도록 자극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생 때 친구들과 종종 이런 질문을 던져보곤 했다.

    "만약 하루밖에 못 산다면 뭐할거야?"

    대답들은 가지각색이다.  맛있는 것을 실컷 먹는다든가. 멋진 곳을 여행한다던가.
    평소 못했던 것을 해본다던가. 가족과 함께 있는다는 등등.
    나 역시, 이 만화책을 통해 다시 한번 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우숩게도 곧바로 생각나는게 없다.
    좋아하던 공원을 너무 사랑하는 개와 산책하면서 종일 '남은 시간동안 뭐하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죽어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에 '난 어떤 사람이지?' 라고 생각하게 되어 조금 우울하다.

 

    옥상에 올라가 세상을 보았다.
    오늘도 '매일 똑같은 하루'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들.
    그 위로 즐거운 듯 두 마리의 까치가 날라다니며 전선에 앉고.
    목 뒤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햇볕.
    이제 막 푸르기 시작한 작은 산들의 연두색 양탄자들.
    적당하고 조용한 오전의 소음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앞으로 수십년은 더 살면서 온갖 일을 겪을 사람들,
    자연과 동물과 사람을 위해 끊임없이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죽이고 더 많이 피해를 줄까 하고 적의 괴멸만을 고민하는 사람들.
    주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충성스런 개들, 주인을 물어죽이는 매정한 동물들.

    시끄럽다.

    시끄러워.

    세상은 너무 시끄럽고 복잡한 것들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오늘 보이는 오전의 세상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화롭기만 하다.
    마치, 사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아주 정신없고 다양한 세계가 펼쳐지지지만
    멀리서 쳐다보는 바다와 하늘은 그저 평화로워 보이는 것처럼 -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울 수 없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오는 죽음이지만 닥치기 전까지 늘 잊고 사는 것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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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최고의 라이벌은, 바로 내 자신
    from Spaceman, since 1979 2010-03-11 20:11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낸 음악가,     최고의 작품을 써낸 작가,     그들이 제일 고민하는 것이 무엇일까.     본인이 의식하든 못 하든 바로 최고의 라이벌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만큼 무서운 것, 그리고 귀찮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탐정학원 Q 13
아마기 세이마루.사토 후미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지난 리뷰 옮기기 >

    작성일 : 2007년 3월 12일

 

 

     유난히 동료들과 팀웍이 잘 되어 있는 인물들이 누구냐고 한다면
    『탐정학원 Q』 에 나오는 녀석들이라고 하고 싶다.
    일본은 개인주의 사회이다.  그러다보니 '끈끈한 우정' '생명을 바치는 사랑' '깨지지 않는
    동료애' 등이 만화에서 유난히 강조되어 나오는 것은 실제로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의 목마름을
    대리만족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은 아닐까. 
    다른 만화에서도 언제나 '동료' 들이 나오지만, 그들은 인간이므로 서로 성격이 안 맞아 삐그덕
    하기도 하고, 오해가 생겨 등을 돌렸다가 나중에 다시 화해하기도 하고, 자신보다 뛰어난 자를
   질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만화에서의 다섯 멍 - 큐, 류, 메구, 킨다, 카즈마는 절대적이라 할 만큼
   서로를 신용하고  의지하고 부러울만큼의 팀웍을 자랑하는데 그게 또 현실감이 없어서 조금 아쉽다.

    그러나 뱀에 물려 죽을지도 모르는 친구를 위해 병원에서 혈청과 의사를 등에 메고 올 정도로
    무식한 킨다의 우정이나,
    칼을 들이대는 적에게 친구를 감싸다가 맞아서 정신을 잃어버리는 그 용기라든가,
    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등에 업고 어두운 산속 길 폭풍 속에 몇시간이나 뛰어가는 계산없는 우정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어느 만화에서나 인물들간의 지나치리만치 뜨거운 우정이나 동료애, 심지어 모르는 사람과 함께
    어떤 일을 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친구 이상의 끈끈함이 싹튼다는 일본 만화의 따뜻한 설정은
    메마른 사회에서 자라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
    인간의 내면은 사실, 차가운 껍질에 쌓여 있는 뜨끈뜨끈한 것이라고 -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포근한 인간 관계만이 있는 사회를 희망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이 그 차가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에 도달하여 따뜻한 씨앗을 뿌릴  생각이나 용기는 없고,
    누군가 먼저 자신의 섬에 와주기를 바라는  게름뱅이 천지가 현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거나, 좀 더 행동력있는 사람들은 그 만화 주인공처럼 꾸며서
    더 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대다수이지만 -
    그 중 간혹가다, 만화 속 인물과 같은 사람들을 실제로 볼 때마다 "아, 정말 멋지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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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쿨루스 4
야마모토 히데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 지난 리뷰 옮기기>

    작성일 : 2007년 3월 9일

 

 

    어릴 때, 상상했던 바다는 -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멋지고 근사하고 약간은 쓸쓸한 기분이 드는 그런 곳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어릴 때, 처음으로 만난 바다는 너무 뜨거운 모래와 너무 짠 소금물이라는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 첫 경험이었다.
    어릴 때, "바다의 물은 짜다." 라는 지식을 배웠음에도 "짜봤자지." 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나에게 바다는 "어떠냐?" 라고 하듯 엄청난 -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 짜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나이 또래 누구나 그랬듯,  모래 두꺼비집도 짓고 모래성.......은 기술 부족으로 못해서 간단한
    모양의 댐 같은 것을 만들며 무언가 만들어냈다 라는 성취감에 좋아하고 있었을 때
    심술쟁이 파도가 홀라당 쓸어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오기가 발동.  파도가 못 올거라고 생각하는 지점까지 물러나서 다시 짓고 있는데 아까보다 더 큰
    파도가 또 쓸어가 버려 내가 열심히 만든 모래집 같은 것들이 좌르륵 무너졌다.
    어랏, 어째서 파도는 내가 점점 뒤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의 모래성을 부술까.
    그 때는 바다의 물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자꾸만 나의 모래성을 부수는
    바다가 미웠다.

 

    [호문쿨루스] 3,4권에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것 - "나는 누구지?" 라는 대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온 몸이 모래로 구성되어 있는 소녀가 나온다. 사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모래 알겡이가 아니라
    수 많은 언어와 단어와 숫자, 기호들로 만들어진 '먼지'들이다.
    자신의 본질적인 '나'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것을 부모와 주변 사람들, 사회에서 정해주는
    "이래야만 돼." 라는 메뉴얼만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는 길 잃은 소녀.
    그 무형체의 소녀의 호문쿨루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이토' 는 투명해서 보이지
    않는 호문쿨루스를 가지고 있다.  '모래 소녀' 보다 '투명한 형체 안에서 무언가 끓고 있는' 이토가
    더 신경쓰이는 '나코시' .
    '이토'의 그것은 흡사, 영화 [할로우맨] 에 나오는 투명인간과 같은 성질이었다.

 

    인간의 심층 깊은 곳 - 무의식의 상처받고 두려워하고 숨기고 싶은 '본질적 자아'를 의식으로
    끌여 올려 '성불' 시켜야 된다고 말하는 '이토'의 물렁물렁 투명한 형체를 볼 때마다 왜 나는
    찔금거리게 되고, 좌절할 때마다 무너지는 소녀의 먼지들을 볼 때마다 왜 나는 흠칫하게 되는걸까. 

    나는 나를 짓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짓고 있었던 것은 내가 아니라 '수 많은 거짓'과 '환상' 이였다.
    그래서 나는 속이 텅빈  모래성이 부서져 색도 없고 형체도 없는 그것이 나올까 두려워 하면서도
    내 안에서 살고 있는 두 마리의 벌레가 혁명을 일으켜 나를 '성불'시켜 주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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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따뚜이 - 할인행사
브래드 버드 감독, 피터 오툴 외 목소리 / 브에나비스타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 지난 리뷰 옮기기 >

    작성일 : 2008년 1월 12일

 

 

       " 까하하하하하하하 ~ "
    멀쩡한 소파 놔두고 그 앞에, 바닥에 앉아서 낸 나의 웃음 소리다.
    보통은 두 다리를 소파 위에 올려놓고 편하게 앉아서 보는데, 가끔은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화면에 몸을 좀 더 가까이 한 채  볼 때가 있는데, 기분이 좋으면 두 발을 비비 꼬기도 한다.
    별 기대를 안 하고 보았는데 다 보고 나서의 흡족한 표정과 함께 내 머리속에선 이 애니의 DVD 를
    구입 예정 리스트에 담고 있었다. (웃음)

   



    나는 만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게다가 동물도 좋아해서 만화/애니 + 동물의 조합이라도 있다면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며 좋아 죽는다.
    내게는 쥐도 사랑스러움의 대상이지만, 흔히들 세상에서 말하는 '가장 더럽고 가장 미천한 존재인' 쥐를
    가장 깨끗해야 할 주방에서 요리사로 변신 시킨 이 애니의 그 설정이 정말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보아 온 3D 애니메이션 중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퀄리티의 섬세함은 흡사
    사진과 실사 영화를 합쳐 놓은 듯 했다. 그만큼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이 진보했다는 거겠지.
    내가 3D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한게 <TOY STORY> 였었는데 이젠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도 '영화' 라는
    장르 중 하나로 어엿히 자리매김한 듯 싶다.

    특히, 물은 어찌나 실감나게 표현했는지, 그 촉감이 느껴지는 듯 했다.

   

    (좀 더 사실적이고 멋진 물의 표현이 많은데, 아쉽게도 첨부할 사진은 지금 이것 뿐이다 =_=)

 

    냄새만으로 모든 음식은 물론, 쥐약이 타 들어가 있는지 없는지도 감별해내는 절대후각의 지존 '애미'는
    파리 시내 외곽의 어느 마을에서 음식을 먹을 때 '까탈쟁이'라고 가족,친구들의 조롱을 받으며 사는 평범한 쥐였다.
    그가 다른 쥐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쓰레기가 아닌 주방에 놓인 신선한 음식을 몰래 훔쳐먹던 집에서 TV로 통해
    본 '구스타프' 명요리사를 동경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집 주인 할머니가 그들 쥐를 보고 코끼리라도 잡을 정도의 위력이 대단한 장총으로 잡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쥐 일가족들은 시내물에 배를 띄어놓고 탈출하는데, 자신이 동경하는 '구스타프'의 요리책을 챙기다가 그만
    혼자만 하수구의 거친 물살에 떠내려가 혼자가 되어 버린다.

    외로움과 배고픔에 지친 그가 하수구에서 벗어나 윗 세상으로 올라가 보게 된 것은, 아름다운 파리 -
    그를 요리사로, '꼬마 주방장'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는 '맛의 성지' 파리였었다.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더러운 쓰레기를 먹고, 음침하고 그늘진 곳이나 하수구에서 살며 세상 모든 인간들에게서 언제 어느 때라도 죽임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게 운명인 생쥐가 프랑스 파리 최고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인간 파트너 '앤서니'와 함께 모두를
    감동 시키는 요리를 만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것은 작은 깨달음과 교훈을 주는 영상 동화다.
    요리사의 꿈을 가지고 있는 자들, 그리고 각자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있지만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거나 아직 실천하지
    못하는 환경에 놓인 자들에게 희망과 격려의 메세지를 주고 싶어하는 그런 기특한 동화.
    과거의 동화들이 이쁘거나 익살맞은 그림과 함께 한 책에 실렸다면, 현대는 이렇게 애니메이션을 통해 만들어지는
    시대로 변한 것 뿐 아닐까. (웃음)

    늘 자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부주방장과 사정을 모르는 다른 요리사들에 의해 몇 번이나 죽을 뻔 하기도 하고,
    인간과 어울리지 말라는 가족의 반대도 부딪혀 보고, 파트너와 트러블도 생기는 등 갖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아 행복한 결말을 맺는 이 단순한 스토리에서 기분이 좋았던 것은 두 가지 때문이었다.

   



    " 모두가 요리할 수 있다 "

    라는 신조를 내세운 전 주방장이자 레스토랑의 주인이었던 '구스타프'의 말이 너무 멋졌기 때문이다.
    신분의 귀천을 떠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공평히 기회를 주는 것,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세상의 진기한 재료로 온갖 기술과 멋을 낸 '럭셔리 음식'이 아닌 '라따뚜이'라는 평범한 음식에 정성을 넣어
    잔인하게 혹평만 하던 귀신같은 비평가를 감동시켜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준 부분은,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나는 언제나 사랑은 대물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이런 내용을 접할 때면 마냥 기분이 좋다.^^

    게다가 어벙하고 왕 소심한 성격 때문에 늘 무시만 받고 살던 '앤서니'가 '애미'로 인해 조금씩 밝은 성격이 되고
    나중에 자신만의 가게까지 차리는 모습에서,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는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는데 단지 그 기회를
    못 만났을 뿐 모두가 훌륭해질 수 있다는 여운을 남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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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 올마이티 - 아웃케이스 없음
톰 새디악 감독, 모건 프리먼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 지난 리뷰 옮기기 >

    작성일 : 2007년 10월 5일

 

 

     " 왜 하필 저에요? 왜 방주를 지으라고 하냐고요."
    "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나? 난 그 기회를 주는거야."

    



    어느 날 갑자기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마법사 할아버지처럼 수염이 계속 자라고, 동물들은 짝을 지어 자신만을
    ?아다니는 바람에 일상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진 에반이 눈 앞에 있는 신에게 원망을 하자, 신이 응답한 내용이다.

    잘 나가는 뉴스 앵커에서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승승장구 성공의 인생을 걷는 그는 선거 당시
    " 세상을 바꾸자 " 라는 슬로건대로 새 집에서의 첫날 밤 기도를 한다.
    그러니까 신은 그 기도를 들어준 것 뿐이라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미칠 지경인거다.
    신을 믿는 자들은 영화의 에반처럼 진짜로 '나 신이다'라고 말하는 이가 나타나면 오히려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무슨 웃긴 아이러니인가.
    신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은 눈 앞에 신이 나타났어도 '상식 밖' 이라며 그 존재를 처음부터 순수하게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뭘 믿고 있는 것일까.
    눈 앞에 보이는 것, 자신이 인간 사회에서 학습한 '상식적인 것들'이 아니면 믿지 않는 사람이 믿는 그것은 진짜로
    신인가 아니면 종교인가?
    차라리 솔직하게 '신이라는 증거를 보여주세요' 라고 말을 한다면 낫지, 무조건 미친사람 취급한다는게 문제이다.

   
    (에반의 모습이 변하기 전, 자신의 의원실에서)

    그렇다면 에반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좀 더 살기 위한 도시 개발 계획?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잘 사는 유토피아?
    물질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국립자연공원을 없애고 개발하자는 상원 의원의 법의안에 지지하겠다고 나서는,
    그것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에반이 말하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란 이런 것이었던가.

    신은 말한다.

    " 방관하지 않고 아낌없이 사랑해주는 것 "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란다.

   



    알다시피, 이 영화에서의 신은(모간 프리먼)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Bruce Almighty)'에서도 신으로 나왔던 아저씨다.
    그 때도 지금도 올 화이트로 옷을 입고 부드럽지만 카리스마 있는 분위기 풀풀~ 풍기고 다니는 흑인 아저씨,
    이젠 헐리우드에서 '신' 역할로 자리매김했나 보다. (웃음)
    '에반 올마이티(Evan Almighty)'는 '부르스 올마이티'의 속편이라더라. 어쩐지 신이 같더라니.

   
    (브루스 올마이티 중에서 1)


   
    (부르스 올마이티 중에서 2)




    갑자기 옛날 옷을 입고 머리와 수염은 산발인채 '노아의 방주'를 짓겠다고, 홍수가 날거라고 하는 남편을 미쳤다고
    생각하며 아들 셋을 데리고 집을 나가있던 아내의 앞에 다정한 흑인 아저씨는 또 한번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 사람들은 신에게 기도를 하지. 용기를 달라고. 하지만 정말 신이 용기를 바로 주는걸까?
      신은 그 사람이 용기를 부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거야.

      사람들은 행복하게 해달라고, 가족과 더욱 더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지.
      신은 그 사람에게 당장 사랑을 주지 않아. 사랑할 기회를 주는거야."

    



    예전에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오프라가 자신의 옛 이야기를 풀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에 너무 출연하고 싶었는데, 자신이 너무 뚱뚱하고 못생겨서 캐스팅이 안될거라고
    생각했었단다. 그래서 운동장을 죽어라 뛰며 울면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바이블송을 부르면서. 땀과 눈물이 뒤범벅되어 '그 영화에 출연하게 해주세요, 해주세요' 하고
    울면서 몇시간을 기도했다고 하는데. 나중에 전화가 오더란다.

    " 오프라, 당신이 그 영화에 여주연으로 캐스팅되었어요!! 그런데 지금 운동을 하나요?
      아니, 그게 왠말입니까!! 만약 당신이 살을 뺀다면 우리는 다른 여배우를 찾아야만 한다구요!"

    그녀는 그게 자신의 진심을 담아 기도를 한 덕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도를 할 때는 구체적으로, 진심으로' 하라고
    시청자들에게 충고해주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게 아닌 것 같다.
    그녀는 전부터 그 영화에 관심을 갖었었고, 마음속으로 계속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신은 기회를 주었는데, 그녀는 만족스럽지 못한 오디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잡고 싶어서 죽어라
    운동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꼭 해야겠다는 열정으로 부딪힌 그녀의 의지가 이미 그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 많은 기회를 접하고 산다.
    그것이 신이 내려준 기회이든, 인생이 주는 기회이든간에 우리는 그것을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기 위한 수단임을
    자각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놓치고 만다.
    나 역시 그렇다.
    늘 용기를 달라고 마음으로 기도를 하지만, 정작 용기를 부릴 기회를 만들 생각조차 안하거나 용기를 부릴 의지를
    만들어내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니 용기라는 것이 표면 밖으로 나올 턱이 있겠는가.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러나 눈과 마음을 꾹 담고 있는데, 스스로를 사랑해주지 않는데 어찌 행복할 수 있겠는가.

   



    갑자기 기회에 얽힌 우스개 소리 하나가 생각난다.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는 열심히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구명 보트가 그를 구하러 왔는데, 그는 극구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 전 하느님이 구해주실거에요!! 괜찮아요. 하느님이 구해주실거라요!! "

    그 사람의 고집이 너무 완고해서 구명 보트가 그냥 갈 수밖에 없었고, 그는 비바람 속에서 계속 기도를 했다.
    잠시 후 두 번째 구명 보트가 와서 그를 또 구하러 왔지만 그는 또 사양하며 자신의 믿음을 자부했다.
    그러나 거친 폭퐁우 속에서 배는 침몰했고 그는 죽었다.
    하느님 앞에 간 그는 원망을 하며 따졌다. 왜 자신을 구하러 와주지 않았냐고. 그러자 우리의 하느님 하시는 말,

    " 아, 그래서 구명 보트를 두 번이나 보내줬잖아 !! "





    혹시 지금도, 나는 수 많은 기회들을 -
    과거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는 것들을 위한 기회들을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에반이 먹고 있는 빵을 달라고 조르고 있는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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