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사생활 창비시선 270
이병률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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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밀면 한 장의 먼지 낀 내 유리창이 밀리고
그 밀린 유리창을 조금 더 밀면 닦이지 않던 물자국이 밀리고

……

밀리고 밀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이름이 아니라
그저 무늬처럼 얼룩처럼 덮였다 놓였다 풀어지는 손길임을

갸륵한 시간임을 여태 내 손끝으로 밀어보지 못한 시간임을
- ‘무늬들’ 중에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감각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일종의 마술이다. 그래서 난 시인들을 마술사라고 부른다. 그리움의 두께와 무게를 유리창에 낀 먼지로 보여준다. 밀어내도 잘 밀리지 않는 미련과 아쉬움을 시인은 물자국으로 표현한다. 손끝으로 만져보지 못한 내밀한 시간을 견뎌본 사람들은 안다.

이병률의 시집 <바람의 사생활>은 손을 베일만큼 날선 감수성으로 벼려져 있다. 생활 속에서 만져지는 모든 감각들이 살아나고 시간의 두께를 벗어난 언어들은 살아 숨쉰다. 우리들 마음이 가 닿는 곳과 가 닿지 않는 곳을 보여주고 보여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에 대한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신(神)과의 약속을 발설할 것 같지 않던 당신은
지금 그 시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백스물 아흔 여든두 살 쭈글쭈글한 얼굴로 돌아가자 말했다
허나 내가 지켜야 할 약속은
검고 고요한 저 소실점을 향해 가는 일
- ‘봉인된 지도’ 중에서

그때 오래전부터 당신이 나를 미워했다는 사실이 자꾸 목에 걸립니다

혼자이다가 내 전생이다가 저 너머인 당신은

찬찬히 풀어놓을 법도 한 근황 대신 한 손으로 나를 막고 자꾸 밥을 떠넣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 ‘저녁의 습격’ 중에서


시집을 읽다가 문득 눈길을 멈추고 심호흡을 가다듬는 구절이 나오면 사방은 정막하다. 시인의 보여주는 소실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목구멍으로 밥을 떠넣는 모습이 보인다. 현실 속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시간들과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들이 어떻게 비춰지는 것일까? 시인의 눈에 투영된 모습들은 ‘낯설게 하기’가 아니라 ‘아프게 하기’이다.

언어에 대한 감각적 유희와 다른 언어를 통한 사유와 사고의 확장은 시인의 손을 떠나 독자의 몫이 된다. 해박한 이론과 관념적 이해가 아닌 호흡과 숨결을 만나게 된다면 행복하다. 어떤 독자라도 웃으며 그 시와 손을 잡을 수 있으면 된다. 이병률의 시는 바로 그런 시가 아닐까?

아무것도 그 무엇으로도

눈은 내가 사람들에게 함부로 했던 시절 위로 내리는지 모른다

어느 겨울밤처럼 눈도 막막했는지 모른다

어디엔가 눈을 받아두기 위해 바닥을 까부수거나 내 몸 끝 어딘가를 오므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피를 돌게 하는 것은 오로지 흰 풍경뿐이어서 그토록 창가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애써 뒷모습을 보이느라 사랑이 희기만 한 눈들, 참을 수 없이 막막한 것들이 잔인해지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비명으로 세상을 저리 밀어버리는 것도 모르는 저 눈발

손가락을 끊어서 끊어서 으스러뜨려서 내가 알거나 본 모든 배후를 비비고 또 비벼서 아무것도 아니며 그 무엇이 되겠다는 듯 쌓이는 저 눈 풍경 고백 같다, 고백 같다

아무것도 그 무엇으로도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면서 쉽게 규정될 수 없을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다. 눈발을 통해 비명 소리가 재워지고 뒷모습이 희미해지며 들리지 않게 고백하고 만다. 하얀 눈으로 뒤덮힌 아침, 창밖의 나뭇가지에 쌓인 흰 눈의 무게만큼만 무거워지고 싶은 나의 이기심을 돌아본다. 그 시절 위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일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배후를 알고 싶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하는 일에 대한 시인의 선언은 ‘봄날은 간다’이다.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당신’이라고 명명된 존재는 봄날과 함께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당신이 건설한 제국에 대한 두려움으로 읽히는 이 시 너머에 오롯이 앉아 있는 너의 모습을 본다.

당신이라는 제국

이 계절 몇사람이 온몸으로 헤어졌다고 하여 무덤을 차려야 하는 게 아니듯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찔렀다고 천막을 걷어치우고 끝내자는 것은 아닌데

봄날은 간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인 나를 잊는다 하여 불이 꺼질까 아슬아슬해할 것도, 피의 사발을 비우고 다 말라갈 일만도 아니다 별이 몇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삭고 그러는 것과 무관하지 못하고 봄날은 간다

상현은 하연에게 담을 넘자고 약속된 방향으로 가자 한다 말을 빼앗고 듣기를 빼앗고 소리를 빼앗으며 온몸을 숙여 하이면 기억으로 기억으로 봄날은 간다

당신이, 달빛의 여운이 걷히는 사이 흥이 나고 흥이 나 노래를 부르게 되고, 그러다 춤을 추고, 또 결국엔 울게 된다는 술을 마시게 되더라도, 간곡하게

봄날은 간다

이웃집 물 트는 소리가 누가 가는 소리만 같다 종일 그 슬픔으로 흙은 곱고 중력은 햇빛을 받겠지만 남쪽으로 서른세 걸음 봄날은 간다


06121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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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8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의 시와 님의 글이 잘 어울렸어요.
또 한편의 시를 읽는 느낌이에요.

sceptic 2006-12-19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러운 멘트를...-_-
 
개념어 사전
남경태 지음 / 들녘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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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념이 없다. 군대나 사회에서 개념이 없다는 말은 욕이다. 어떤 일의 순서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헤매거나 엉뚱한 짓거리를 일삼는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는 보통 ‘개념 없는 놈’이라고 욕을 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런 개념은 일반성, 정상성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진짜 개념이 없는 것인가는 따져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일반적인 잣대로 말하자면 남경태의 <개념어 사전>에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 논리학에 따르면 개념이란 ‘한 무리의 개개(個個)의 것에서 공통적인 성질을 빼내어 새로 만든 관념(觀念).’이라고 정의한다. 언어의 추상성이 바탕이 된 공통 분모가 개념이다. 그러나 국어 사전의 정의는 좀 다르다.

개념 [槪念]
[명사]
1 어떤 사물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2 <사회> 사회 과학 분야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사실들에서 귀납하여 일반화한 추상적인 사람들의 생각. 예를 들어 사람들이 많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을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때,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된다.
3 <철학>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된 요소를 뽑아내어 종합하여서 얻은 하나의 보편적인 관념. 언어로 표현되며, 일반적으로 판단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나 판단을 성립시키기도 한다.


‘종횡무진’시리즈로 잘 알려진 남경태의 <개념어 사전>은 과연 진짜 ‘개념 없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에는 상식도 정보도 없다. 다만 저자가 나름대로 공부하고 이해하고 정리한 개념들이 넘쳐난다. ‘사전’이라는 제목을 붙이기 위험할 정도로 ‘주관적’인 시각과 접근 방법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책에 대한 판단과 감상도 지극히 주관적이겠지만 장정일의 <공부>를 통해 우리 모두가 각자 이런 ‘개념어 사전’ 한 권씩을 만들 수 있다면 제대로 공부했다고 할 수 있다. 힘들겠지만 나만의 ‘개념어 사전’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만드는 책이다.

국어 사전적 의미로 보면 이 책은 ‘어떤 사물 현상에 대한 지식’과 ‘사회 과학 분야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사실들에서 귀납하여 일반화한 추상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설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다만 애써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내 멋대로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쓴 개념어 사전’이 이 책의 원제목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는다. 주관과 객관에 대해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그 기준은 모호하며 이해 방식과 설명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면 이 책이 주관적이라는 데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세상에 넘쳐나는 사전과 인터넷 정보들을 놔두고 누가 이런 종류의 개념어 사전을 찾아 볼 것인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인문학 용어에 대한 개괄적인 접근과 이해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나처럼 잡다한 지식들로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개념이 없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남경태는 스스로 편향적이며 주관적인 용어 정리라고 말하지만 읽는 사람들은 다 걸러서 본다. 거름장치는 독자들의 몫이다. 둘째, 감수성 위주의 문학작품이나 실용적 독서에 뭔가 염증을 느낀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인문학은 사람과 관련된 학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사는 사회와 그 사람들이 걸어온 역사 그리고 그들의 생각인 철학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의 독자로 적합하다.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주관적 용어 정리에 거부감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또 하나의 <개념어 사전>을 기대해 본다. 이런 생산적(?) 논쟁과 모호했던 개념들에 대한 관심과 정의는 사람들의 인식 틀을 확고하게 해 줄 수 있으며 사고의 폭을 넓혀 줄 수 있다. 하나의 대상과 현상에 대한 모호했던 관념들을 확인하고 스스로 재정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 바탕 위에서 한 사람의 세계관이 확립되고 수정되며 발전하고 개선된다. 그 개념들이 어떠한 것이든 그래서 우리에겐 끊임없는 정진 자세가 요구된다. 우리가 아니라 나에게만 해당되는 건가?

과학 용어처럼 분명하고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원랙 복합적인 의미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인문학 용어에 대해 저자는 “개념의 의미를 사전적으로 정의하는 대신 그 이미지를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밝히고 있다. 하나의 분명한 지식과 확고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독자들은 가라. 하나의 용어와 개념이 탄생하기까지의 복잡하고 역사적인 배경들과 그 주변적 지식들을 통해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오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모호했던 경계와 이미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무지를 확인하고 보다 적극적고 능동적인 인문학 공부를 위해 꼭 한 번쯤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어쨌든 사전인데 이렇게 성의 없는 제본과 표지는 들녘이 반성해야겠다. 시집도 아니고 얇은 겉표지는 두 번 이상 뒤적이면 본책과 분리되고 찢어지거나 더러워져 검은 속 표지의 제목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된다.


061216-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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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6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으로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리뷰를 읽어보니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짱꿀라 2006-12-17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 읽어보니 금방이라도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놓고 읽지를 못해서.....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이잘코군 2006-12-17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전문가들 평이 별로더라구요. 너무 주관적이고 맞지 않는 해석이 많다구. 저도 살까 하다가 말았어요. 출판사서 너무 띄우는거 같던데.

sceptic 2006-12-17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 santaclausly님 즐거운 책읽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프락사스님 개인적으로 전 전문가들을 믿지 않습니다..^^ 보수적인 전문가들이 이 책을 제대로 평가할 리 없다고 봅니다. 출판사도 먹고 살아야죠. 그렇다고 제가 들녘에서 받아먹은건 없습니다.

비로그인 2006-12-18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을때 전문가들의 평을 들여다보게 되겠죠.
때로는 자기와 생각이 비슷할 수도 있고 아님 다를 수도 있고..
중요한건 책을 읽고 난 후 본인의 느낌일거에요.
님이 쓰신 리뷰는 님 만의 분위기가 있어요.

sceptic 2006-12-1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독서라는 행위가 1차적으로 극히 주관적이라고 생각해서 2차적으로 객관적, 사회적 의미를 찾거나 효용을 따지거나 하니까요. 지멋대로 책읽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marine 2007-01-03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 말이 옳은지 제가 직접 읽어 보고 싶네요 ^^
종횡무진 시리즈를 재밌게 읽어서 저자에게 호감이 갑니다

sceptic 2007-01-05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만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평갑니다...괜찮던데요...^^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조원규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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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지와 디자인

하드 커버의 책은 두 종류다. 적은 분량을 벌충하거나 선물용으로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서. 또 하나는 두고두고 오래 볼 수 있는 소장 가치가 있거나 두꺼운 분량을 잘 지탱하기 위한 방법일 수 있다. 엘리아스 카네티의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는 전자에 해당된다. 황금빛 햇살이 눈부신 사막과 낙타, 사람들의 모습이 음영으로 처리된 감각적인 사진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낙타의 길게 늘어진 목을 연상시키는 제목의 제자도 멋스럽다.  제목이 <성자가 된 청소부>를 떠올리게 하지만 무관한 책이다.

2. 주관적 평가

그러나 돈을 주고 이런 책을 사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나는 절대 사지 않겠다.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사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이 없다. 누군가 그렇게 표현했듯이 ‘나무에 대한 예의’가 없는 책이다. 구매 등급 ★★

3. 내용과 의미

노벨상을 탔다고 해서 책을 사보거나 경외감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 모든 문학상이 그렇듯이 노벨상이 주는 권위와 객관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거부한 작가들에 대한 생각도 일조한다. 노벨상을 수상한 엘리아스 카네티가 쓴 모로코의 마라케시에 기행 수필 정도로 볼 수 있는 책이다. 아주 오래된 도시의 이국적 풍경들에 대한 감상과 작가 특유의 사유가 나타나 있다.

영화 촬영을 위해 1954년에 모로코를 찾은 작가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그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공감이라기보다 이국적인 것들에 대한 관찰에 치중하고 있다.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카네티도 주머니에 돈을 들고 다니며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관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철저하게 여행객, 혹은 관광객의 입장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문화적 우월감으로까지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진지한 성찰과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내용에 공감할 수 없다. 모로코에의 낯선 풍경, 특히 낙타와 관련된 일화로 시작되지만 그것 이상은 얻지 못했다. 문명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그들의 삶이 단순히 희망적이지도 강한 생명에 대한 애착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번역된 문장이 전해주는 아름다운 울림도 없다. 극히 주관적인 것이 책에 대한 인상 비평들이겠지만 적어도 내겐 메마르고 서걱이는 불협화음으로만 들린다. 특히 1968년의 책을 2002년에 다시 출판할 정도의 의미를 찾는 것은 더더욱 힘들었다.

어떤 문화든 그들 고유의 삶에 방식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그들 나름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있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많다. 현재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세상에 대한 고정된 눈을 점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문명에서 조금 벗어나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있는 그대로를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경건함으로 다가온다. 현대인의 삶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의 눈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아련한 시선이다. 그 시선을 거꾸려 돌려 문명 밖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책은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해 반성하게 한다. 우리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일 뿐이다.


06121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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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벨상 수상하면 주가가 올라가는 건 사실이에요.
저같은 사람들이 눈여겨 보기 때문이겠죠.

짱꿀라 2006-12-15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책 아주 괜찮은 책입니다. 인식의 힘의 리뷰도 정말로 멋지구요. 감사합니다. 저는 그냥 책만 읽고 덥어 두었는데 다시 한 번 책을 보고 리뷰를 써야 할 듯 하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고요.

sceptic 2006-12-16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 노벨상이 주는 의미가 크지는 않은거죠?

santaclausly님 저는 이 책의 내용도 의미도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별 감동없는 책이었습니다. 님도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비로그인 2006-12-18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벨상은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을 화재의 인물로 만들고 상금도 주잖아요.
시선이 집중된다는 것만큼 의미도 크겠죠.
노벨상 받은 작품이 다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요.
 
禁止를 금지하라 - 지승호의 열 번째 인터뷰집
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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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다’는 말은 무엇을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사람의 본질은 그대로 드러나는 법이 없다. 사회적 가면에 의해 가려진 모습들과 본능적 자아의 모습 사이에는 언제나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때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평가는 낯설기만 하다. 한 사람을 규정짓고 판단하는 것만큼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은 없다. 말이나 글을 통해 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도 켤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다면적인 인간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기초는 대화에서 비롯된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식 중에 지승호는 질문을 선택했다. 어떤 사람이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독자는 읽는다면 독자는 수동적 수용자가 된다. 게다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더욱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이해하고 싶은 욕망은 해결할 방법이 없어진다. 하지만 인터뷰라는 독특한 대화 방식을 통해 독자들의 궁금증은 실마리를 풀어간다. 인터뷰어가 누구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독자들의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물론 궁금한 사람의 선정에서부터 궁금한 내용까지 독자들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인터뷰의 능력과 시각에 따라 인터뷰이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승호의 인터뷰가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든다.

벌써 열 번째라는 사실에 놀랬다. 지승호의 <禁止를 금지하라>는 무르익은 지승호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대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깊으며 공격적이거나 피상적인 질문이 없다. 질문의 핵심이 뚜렷하고 칭찬 일색의 인터뷰와도 다르다. 인터뷰이의 주장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이나 이야기를 제시할 때도 차분하고 논리적이다. 다양한 시각들을 전달하고 깊이있게 대화를 끌어갈 수 있는 능력은 물론 철저한 준비와 지승호만의 노력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인터뷰 대상과 방식과 내용이 모두 마음에 든다.

인터뷰어라는 직업이 있는지 모르지만 전문 분야로 삼고 매진하는 그의 모습은 아름답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독자들의 격려와 스스로가 찾아낸 자신의 역할일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조용한 응원의 박수를 보내야 한다. <禁止를 금지하라>는 지승호와 네 번째 만남이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지승호 자신의 셀프 인터뷰가 압권이라고 생각한다. 셀카도 아니고 셀프 인터뷰라니? 전무했던 방식이 아닌가? 재밌고 즐겁게 읽었다. 앞선 책에서 보여줬던 그의 인터뷰들과 저간의 심정들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고 솔직하고 대담한 방식으로 가슴속의 먼지들을 털어내는 모습들이 독자 입장에서는 그의 책을 더욱 친근하게 만든다. 솔직한 사람이 가장 무섭다.

이번 책에는 박원순, 조정래, 마광수, 문정현, 정태인, 이상호, 최승호 등 7명과 지승호 자신까지 포함해서 8명을 인터뷰 한 내용이 담겨있다. 최근 2년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문제들의 직, 간접 당사자들이나 꾸준히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 혹은 왼쪽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다. 자유는 끊임없는 감시의 대가라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이데올로기를 넘어 시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게 된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다. 지승호의 말대로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뭔가 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7인7색>도 그랬지만 제각각 다른 인물들을 통해 하나의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지승호의 메시지는 그 인터뷰의 행간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인터뷰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책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것들은 항상 독자의 몫이 아닐까 싶다. 인터뷰이가 맘에 들지 않아 책을 사지도 않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 사람들이 좋아 책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류에 편입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과 정당하지 못한 방법들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편에 어떤 방식으로 서 있든, 아니 어정쩡한 자세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강제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지향점이 어디든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아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이 갖는 최소한의 의미이다.

<7인 7색>을 읽고 쓴 리뷰에 지승호씨가 직접 댓글을 달아 준 적이 다.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인터뷰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위한 방편이라고 믿는다. 어느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말했지만 그 섬에 갈 수 없어도 거리를 좁히는 방법들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승호의 어렵지만 의미있는 작업들이 스스로의 즐거움이길 바라며 그의 말대로 선비의 기질과 양아치의 기질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비슷한 성격의 많은 독자들이 웃음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쓰레기 댓글들에 더 이상 신경 쓰며 분노하지 않으시기를...


06121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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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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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이름을 보자 책갈피에 꽂아둔 오래된 사진처럼 아련했다. 누구나 한 번 쯤 그랬겠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지독한 열병을 앓았던 시절에 나는 헤세와 마주했다. 특히 <수레바퀴 밑에서>와 <知와 사랑>에 대한 기억은 사춘기 시절의 다른 이름이다. 골드문트와 나르치스의 우정과 방황은 며칠 동안 잠 못 이루는 밤을 만들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순수했던 시절의 흑백 사진처럼 선명하다.

1877년에 태어나 1962년 죽은 헤르만 헤세는 사후에 그의 문학적 평가가 어떠하든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작가임에 틀림없다.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은 책과 관련된 글들을 모아놓은 수상집이다. 잡지와 신문에 발표됐든 글이나 전집류에 포함된 글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 책에 처음 소개된 글들도 있다. 책을 주제로 독서와 문학 전반에 관한 단상들이 솔직하고 편안하게 전개된다. 짧은 글들을 모아 놓았지만 책의 내용과 흐름은 ‘독서’라는 맥락으로 연결된다.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넘쳐나지만 주로 100년쯤 전에 쓰여진 헤세의 글들은 시대와 상관없이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왜 책을 읽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한 문장을 읽고 한참 생각했다. 나는 독서라는 행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나름의 기준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한 반성은 때때로 필요하다. 인쇄술과 대량 출판이 이루어지면서 지식의 대중화의 선봉에 섰던 책을 헤세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스스로 만든 세계 문학 전집의 목록과 작품에 대한 간단한 인상 비평 등은 지금 우리 시대의 책읽기에 대한 반성의 잣대가 된다. 지금 그 목록이 유효하다는 말이 아니라 책의 효용을 따지기 이전에 독서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궁극적인 삶에 대한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취미삼아 읽는 독서에 대해 헤세는 “불량독자들이 시나 소설에 끼치는 부당함은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잘못된 독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부당하다. 무가치한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자신에게 하등 중요하지도 않고 그린 금방 잊어버릴 게 뻔한 일에 시력과 정신력을 소모하며, 일절 도움도 안 되고 소화해내지도 못할 온갖 글들로 뇌를 혹사하는 짓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문학을 위주로 한 독서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른 면에서 아쉬운 점도 많다.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절대로 소설을 읽지 않는 독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헤세와 다른 이야기를 하겠지만 일반적인 문학 독자들을 위한 충고와 성찰을 위해서 이 책은 시원한 냉수와 같다. 문장의 곳곳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비판과 충고들은 지적 우월감과는 다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철지난 노래처럼 들리는 부분도 많고 지금 상황에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들도 많다. 하지만 독서에 대한 기본 자세와 독자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종이로 된 책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는 말들과 문학의 종언을 고하는 조사들이 난무하는 시대지만 문학이든 아니든 “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저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수 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독서에 무슨 기술이 있겠는가? 책을 밥벌이의 수단이나 실용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유혹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없다. 다만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독서의 태도와 방법에 대한 점검이 필요할 뿐이다. 헤세는 이 책에서 독서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넘어서는 단상들을 제공한다. 각자 독서의 방법과 자세에 따라 한 마디쯤 새겨둘 말이 있다면 이 책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

작가의 짧은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팔아먹기 위한 편집 능력과 상술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허접하지 않다. 독서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 번 쯤 점검이 필요한 분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바닥에 아무리 멋진 카펫이 깔려 있고 호화로운 벽지와 명화가 온 벽을 뒤덮고 있다 한들, 책이 없다면 가난한 집이다. 또한 책을 알고 소유하고 아끼는 사람만이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도록 도와줄 수 있다. - P. 183


06121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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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11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을 보셨군요. 저도 이 책을 읽었답니다. 많은 정보를 얻게 한 책이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좋은 한주 되시기를......

드팀전 2006-12-11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주에도 수 십에서 수백권이 나오는 책들 중에 무가치한 책들-저자에게는 가치가 있을지몰라도-이 다수지요. 무조건 책읽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대개 좋은 책을 보지도, 많은 시간을 독서에 쓰지도 않는 모습을 봅니다.가끔 직장에서 동료들이 들고 다니는 책을 보면 ^^ ... 쉽게 맛을 내는 조미료에 익숙한 사람들처럼 전부 말랑 말랑한 책들만 봅니다.무언가 고민거리를 던지는 책들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에 다들 눈을 돌려버리는 듯 합니다.그리고 가만 있으면 다행인데 가끔 제가 이상한 책을 한 권 들고 다니면 '이런거 왜봐..취향 독특하네.그런건 대학교때나 한번 보는거 아니야?'라는 식입니다.젊은 세대일 수록 더 하더군요....책을 통한 의식의 성장이나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보입니다. 안타깝지만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니지요. 리뷰 잘 보고 있습니다.

sceptic 2006-12-1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ntaclausly

santaclausly님도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드팀전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독서 취향을 쉽게 바뀌기는 어렵습니다. 독서의 효용에 대한 이해와 독서의 목적도 다르니까요. 안타깝긴 하지만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자기만의 방식을 넓혀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식의 성장이나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독서를 위해 저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marine 2007-01-03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소 지루한 원론적인 책이 아닐까 싶었는데 리뷰를 보니 읽고 싶어집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sceptic 2007-01-05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고 간단한 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