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헤르만 헤세의 이름을 보자 책갈피에 꽂아둔 오래된 사진처럼 아련했다. 누구나 한 번 쯤 그랬겠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지독한 열병을 앓았던 시절에 나는 헤세와 마주했다. 특히 <수레바퀴 밑에서>와 <知와 사랑>에 대한 기억은 사춘기 시절의 다른 이름이다. 골드문트와 나르치스의 우정과 방황은 며칠 동안 잠 못 이루는 밤을 만들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순수했던 시절의 흑백 사진처럼 선명하다.

1877년에 태어나 1962년 죽은 헤르만 헤세는 사후에 그의 문학적 평가가 어떠하든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작가임에 틀림없다.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은 책과 관련된 글들을 모아놓은 수상집이다. 잡지와 신문에 발표됐든 글이나 전집류에 포함된 글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 책에 처음 소개된 글들도 있다. 책을 주제로 독서와 문학 전반에 관한 단상들이 솔직하고 편안하게 전개된다. 짧은 글들을 모아 놓았지만 책의 내용과 흐름은 ‘독서’라는 맥락으로 연결된다.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넘쳐나지만 주로 100년쯤 전에 쓰여진 헤세의 글들은 시대와 상관없이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왜 책을 읽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한 문장을 읽고 한참 생각했다. 나는 독서라는 행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나름의 기준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한 반성은 때때로 필요하다. 인쇄술과 대량 출판이 이루어지면서 지식의 대중화의 선봉에 섰던 책을 헤세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스스로 만든 세계 문학 전집의 목록과 작품에 대한 간단한 인상 비평 등은 지금 우리 시대의 책읽기에 대한 반성의 잣대가 된다. 지금 그 목록이 유효하다는 말이 아니라 책의 효용을 따지기 이전에 독서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궁극적인 삶에 대한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취미삼아 읽는 독서에 대해 헤세는 “불량독자들이 시나 소설에 끼치는 부당함은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잘못된 독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부당하다. 무가치한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자신에게 하등 중요하지도 않고 그린 금방 잊어버릴 게 뻔한 일에 시력과 정신력을 소모하며, 일절 도움도 안 되고 소화해내지도 못할 온갖 글들로 뇌를 혹사하는 짓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문학을 위주로 한 독서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른 면에서 아쉬운 점도 많다.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절대로 소설을 읽지 않는 독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헤세와 다른 이야기를 하겠지만 일반적인 문학 독자들을 위한 충고와 성찰을 위해서 이 책은 시원한 냉수와 같다. 문장의 곳곳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비판과 충고들은 지적 우월감과는 다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철지난 노래처럼 들리는 부분도 많고 지금 상황에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들도 많다. 하지만 독서에 대한 기본 자세와 독자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종이로 된 책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는 말들과 문학의 종언을 고하는 조사들이 난무하는 시대지만 문학이든 아니든 “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저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수 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독서에 무슨 기술이 있겠는가? 책을 밥벌이의 수단이나 실용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유혹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없다. 다만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독서의 태도와 방법에 대한 점검이 필요할 뿐이다. 헤세는 이 책에서 독서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넘어서는 단상들을 제공한다. 각자 독서의 방법과 자세에 따라 한 마디쯤 새겨둘 말이 있다면 이 책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

작가의 짧은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팔아먹기 위한 편집 능력과 상술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허접하지 않다. 독서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 번 쯤 점검이 필요한 분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바닥에 아무리 멋진 카펫이 깔려 있고 호화로운 벽지와 명화가 온 벽을 뒤덮고 있다 한들, 책이 없다면 가난한 집이다. 또한 책을 알고 소유하고 아끼는 사람만이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도록 도와줄 수 있다. - P. 183


06121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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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11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을 보셨군요. 저도 이 책을 읽었답니다. 많은 정보를 얻게 한 책이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좋은 한주 되시기를......

드팀전 2006-12-11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주에도 수 십에서 수백권이 나오는 책들 중에 무가치한 책들-저자에게는 가치가 있을지몰라도-이 다수지요. 무조건 책읽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대개 좋은 책을 보지도, 많은 시간을 독서에 쓰지도 않는 모습을 봅니다.가끔 직장에서 동료들이 들고 다니는 책을 보면 ^^ ... 쉽게 맛을 내는 조미료에 익숙한 사람들처럼 전부 말랑 말랑한 책들만 봅니다.무언가 고민거리를 던지는 책들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에 다들 눈을 돌려버리는 듯 합니다.그리고 가만 있으면 다행인데 가끔 제가 이상한 책을 한 권 들고 다니면 '이런거 왜봐..취향 독특하네.그런건 대학교때나 한번 보는거 아니야?'라는 식입니다.젊은 세대일 수록 더 하더군요....책을 통한 의식의 성장이나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보입니다. 안타깝지만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니지요. 리뷰 잘 보고 있습니다.

sceptic 2006-12-1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ntaclausly

santaclausly님도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드팀전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독서 취향을 쉽게 바뀌기는 어렵습니다. 독서의 효용에 대한 이해와 독서의 목적도 다르니까요. 안타깝긴 하지만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자기만의 방식을 넓혀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식의 성장이나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독서를 위해 저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marine 2007-01-03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소 지루한 원론적인 책이 아닐까 싶었는데 리뷰를 보니 읽고 싶어집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sceptic 2007-01-05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고 간단한 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