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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인간 - 전2권 세트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이제 더 이상 특별할 것도 신비로울 것도 없는 이외수의 소설은 하나의 틀로 굳어진 듯 싶다. 그 틀은 1992년 <벽오금학도>이후 굳어졌다. 이후 출판된 1997년 <황금비늘 1, 2>, 2002년 <괴물 1, 2>에 근작 <장외인간 1, 2>에 이르기까지 큰 흐름에서 변화가 없다. 1978년 <꿈꾸는 식물>, 1980년 <겨울나기>, 1981년 <장소하늘소>, <들개>, 1982년 <칼>을 이외수의 전정기로 본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그의 소설은 <칼>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1975년 등단이후 30년간 많은 양의 책들을 쏟아내며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아온 그의 글들은 이제 힘을 잃어가는 것인가.
미스 강원과의 극적인 결혼, 지독한 가난 등 자신의 이야기를 감수성 짙은 문장으로 풀어낸 1985년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를 알게 된 것은 어머니를 통해서다. 올림픽 열리는 해에만 머리를 감고,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 글을 완성할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는 등 그의 숱한 일화와 외모와 일상의 비현실성으로 인해 끊임없이 화제에 올랐던 소설가 이외수는 여전히 가장 대중적인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정통 문학에서 비껴 서 있는듯 수많은 에세이와 우화를 발표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영혼의 세계를 주유하고 싶은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창 밖에 가을이 당도해 있었다’는 문장에서 ‘추적추적’과 어떤 특정 시간과 계절이 ‘당도’해 있다는 표현을 여전히 즐겨 쓰는 작가 이외수는 근작 <장편소설>에서도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문장들과 표현들 비현실적 결말로 주목을 끈다.
닭갈비집 ‘금불알金佛揠’의 주인 이헌수는 시인이다. 동생 이찬수와 동생의 동거녀 제영이와 함께 춘천에서 닭갈비집을 운영하고 있다. 어느날 달빛처럼 스며든 여인 소요를 만난다. 닭갈비집 종업원으로 카운터를 지키던 소요가 사라진 어느날 하늘의 달이 사라져 버린다. 세상사람들은 달을 모르고 헌수는 미칠 것 같다. 월(月)요일이 인(人)요일로 바뀌어 있고 달과 관련된 모든 노래와 풍속들이 사라진 현실을 헌수는 받아 들일 수가 없다. 달을 아는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돈에 눈이 먼, 가슴이 메말라 가는 사람들 때문에 사라진 달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결국 헌수는 정신병원 개방병동에 입원한다. 차차 두통이 사라지고 마음의 안정이 온다. 병원에서 만난 한도사, 문보연, 오대단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많은 방식이 있음을 알게 된다. 환자처럼 보이는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정상으로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프랙탈 예술을 하는 친구 김필도는 누드 모델을 구하려다 모델을 친구와 동거를 시작하고 선배에게 그림을 팔려다가 자신의 여자와 바람난 선배를 폭행해서 감옥에 간다. 병원에서 퇴원한 헌수는 필도를 면회하고 닭갈비집을 정상화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날 명품 중독증에 빠진 동생의 동거녀이자 자신의 후배인 제영이가 인체자연발화 현상으로 사망한다. 정신을 수습할 무렵 모월동(慕月洞)에서 찾아온 소년을 따라 가끔 헌수를 찾아오던 노인을 만나게 되고 달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는 달이 뜬다. 소요의 정체는 달의 주변을 유유히 날고 있는 시조새였다.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과 허무 맹랑해 보이는 이외수의 소설들은 매번 사람들의 가슴들 적셔줄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 무언가는 감성과 낭만이다. 사랑이 사라져버린 시대, 돈과 물질이 눈을 가리고 참다운 인간의 본성을 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 때문에 하늘에 달이 사라져 버렸다고 믿는다. 달은 가장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자연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이외수가 외치는 목소리는 어쩌면 단순하다.
가슴속에서 사라진 것들은 가슴 밖에서도 사라진다. 물질로서의 달은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어도 정서로서의 달은 가슴속에서 사라져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로서의 달도 정서로서의 달도 망실해 버렸다. 기억 속에도 존재하지 않고 가슴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장외인간 1, 163페이지
누가 일부러 가슴에 물기를 걷어내고 스스로 타죽고 싶겠는가. 김영하의 소설에 나온 비과학적인 죽음. 사람의 신체가 스스로 발화하여 타버리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산다는 것이 결국 무덤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모습이라는 비극적 인식이 아니라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본 사람들은 삶의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다만 여전히 밀린 숙제처럼 남아 있는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문제와 만나게 되면 답이 없다. 당연하다. 거기에 무슨 답이 있겠는가. 이외수도 다만 젖은 가슴으로 감성과 낭만을 잃지 말고 사랑이 가득한 ‘관계’를 꿈꾸는 것이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그의 책을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말더듬이의 겨울수’,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감성사전’등의 에세이와 시집 ‘풀꽃, 술잔, 나비’까지 거의 모든 책들을 읽어왔지만 이제 유년시절의 추억과 재미있는 문장만으로 장편 소설 2권의 분량을 채워나가기에는 힘겨워 보인다. 장면 장면 에세이와 재미있는 우화로 풀어낸다면 더 좋았을 것같은 내용들이 많이 눈에 띤다. 소설 본연(?)의 임무가 뭔지 잘 모르겠으나 이제 그만 소설을 놓아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혼탁한 세상에서 깨끗한 영혼을 지키자고 감성과 낭만을 그리고 사랑을 지켜 나가자고 외치는 기인이다. 춘천에 가면 격외선당(格外仙堂)에 살고 있는 찾아보고 싶을 것이다. 가을답지 않게 회색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점령하고 있다.
200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