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 역사 모노드라마
하워드 진 지음, 윤길순 옮김 / 당대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역사에서 가정법을 사용하는 일이 가장 바보스러울지 모르지만, 그 상상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일상에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을 돌아보며 아쉬움과 후회를 남긴다. 결정적 시기와 사건에 대해 후회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쉽게 떨치지 못한다. 인류 역사의 변혁 과정에서 그 가정법을 사용하는 일은 문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심각하지 않은 얼굴로 과거를 재생하고 현재화하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촘스키와 더불어 미국의 지성이라 일컬을 만한 지식인 하워드 진의 역사 모노드라마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marx in soho>는 즐거운 상상력이 빚어놓은 재미있는 희곡이다. 실제로 공연이 되었다고 하지만 레제드라마lese drama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배우의 연기로 각인되기 보다는 마르크스라는 인물이 빚어내는 독특한 분위기와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하며 읽기 위한 희곡으로 더 어울린다.

  뉴욕은 현재 지구상의 존재하는 모든 자본의 총본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 ․ 11테러로 더 잘 알려진 세계무역센터가 있는 도시 뉴욕에 마르크스가 시대를 뛰어넘어 나타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며 우리에게 어떤 말들을 전해줄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다.

  엥겔스와 더불어 세계를 뒤흔든 선언으로 기억되는 ‘공산당선언(1848년)’을 발표한 마르크스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엥겔스는 그보다 두 살 어린 스물여덟이었다. 이후 유럽 파리와 벨기에를 거쳐 영국에 망명한 마르크스는 불세출의 걸작 ‘자본(Das Capital)'을 출간한다. 아내 예니와 세 딸들은 극도의 빈곤과 가난 속에서 엥겔스의 도움으로 겨우 의식주를 해결하는 수준의 생활을 영위했다. 평생 마르크스를 괴롭힌 엉덩이의 종기만큼 가난은 그에게 버릴 수 없는 생의 동반자였다.

  아내 예니와 막내딸 엘레아노르는 가족의 울타리를 그를 감쌌고 또한 사상의 동반자였다. 이 책에서 프루동과 바쿠닌을 등장시켜 관객을 즐겁게 한다. 특히 바쿠닌과의 신랄한 비판과 언쟁은 극적 재미를 더해준다. 엥겔스와의 관계가 오히려 마르크스의 입을 통해서만 제시되어 소홀하게 다루어진 면이 있다. 어떤가, 어차피 마르크스라는 인물을 통해 그의 생애를 들여다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모노드라마라는 사실만으로도 재미있는데.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항변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반증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고했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철학자다. 우리 인류 역사에 그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면서 소홀하게 다루어지거나 일정한 거리감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임에 틀림없다. 하워드 진은 그런 인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다.

  희곡이라는 형식을 통해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한 모노드라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인물을 대하게 된다. 물론 실존 인물에 대한 고증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담감이 없을 수 없겠지만, 상상력의 폭은 넓어지고 인물은 재창조된다. 살아있는 마르크스, 얼마나 흥미로운 주제인가.

  하워드 진은 그 인물을 영국의 소호가 아닌 뉴욕의 소호로 불러 냈으며 그에게 실컷 자신에 대해 항변하고 왜곡된 자신에 대해 사람들에게 속시원히 말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물론 한 인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법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공연에서 얼마나 성공을 거두었는지도 알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희곡은 공연을 관람하는 것보다 읽는 것으로 만족스러울 듯 싶다.

  뉴욕이라는 상징적 도시에 나타난 마르크스의 행보가 뚜렷한 인관관계를 형성하며 극을 이끌어 나가지 못하고 현재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 정도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좀더 세밀하고 깊이있는 대사와 뉴욕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최대한 활용한 내용으로 극이 전개됐다면 하는 아쉬움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서울에 나타난 마르크스였다면 즐겁게 읽지 못하고 우울하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의 나라 불구경하듯 현실과 동떨어진 사실이 아님에도 한다리 건너편에 세워 놓고 상상하는 즐거움을 놓쳤을 테니까 말이다. 짧지만 즐거운 상상을 통해 마르크스와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200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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