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나서면 딸의 인생이 바뀐다 - 사이가 멀어지지 않고 딸에게 좋은 아빠 되는 법
장경근. 정채기 지음 / 황금부엉이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누가 나서도 딸의 인생은 바뀐다. 90분만에 책장을 덮을 수 있는 책은 많지 않다. 분량이 적거나 내용이 부실하거나 참을 수 없을만큼 지루해져 다음 줄로 다음 장으로 자꾸 눈이 넘어가서 속도가 배가되고 되새김질 같은건 아예 생각도 하지 않은 책이면 가능하다. 200페이지 분량의 <아버지가 나서면 딸의 인생이 바뀐다>는 책에 대한 정보 없이 ‘리뷰 신청 도서’에 이름을 올린 탓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런 아버지는 없다. 비교급이 불가능한 것이 부모이며 관계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무엇과 무엇을 비교한다는 것은 돈의 수치화 계량화 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어떤 딸이냐에 따라서, 아니 어떤 자식이냐에 따라서 훌륭한 아버지의 모습은 다르게 기억될 것이고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소통하고 살아간다.

  이 땅의 딸들은 분명 아들과 다른 모습으로 키워졌고 길들여져 왔으며 출발을 달리했고, 한정된 역할과 능력과 상관없이 규정되어왔던 과거를 지닌 채 현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딸과 아들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문제다. sex라는 생물학적 성의 차이가 아니라 gender라고하는 사회문화적 성역할의 차이를 간과하고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동양적 유교적, 아니 한국적 가부장적 문화가 빚어낸 왜곡된 차별부터 극복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여성부가 설치되고 양성 평등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전시대에 비해 상당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딸에게 뿐만 아니라 아들에게 그리고 아내에게도 중요하다. 특히 딸에게 더 중요하지는 않다고 본다. 물론 아들과는 다를 것이다. 이성 부모의 역할모델에 따라 배우자의 선택에도 결정적 역할을 미칠 것이고 남성 전체에 대한 인식도 다르게 결정될 것이다. 기본적인 생각에 누가 동의하지 않겠는가.

  다만 무언가 읽을 거리의 형식을 취하게 되면 얘기가 좀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유형별로 항목별로 번호를 붙혀 ‘좋은 아버지 10계명’이나 ‘딸과 아버지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법’을 실천하라고 마치 강령처럼 표지 뒤쪽에 조잡한 삽화를 곁들여 부록으로 만들어 놓는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는다. 차라리 실천 사례 중심의 감동을 선물하는 방법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넘쳐나는 방법론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인생을 성공하는 일곱가지 방법’, ‘생산적 책읽기 50가지 방법’, ‘논문 잘 쓰는 방법’에서부터 심지어 ‘합법적으로 세금을 안내는 110가지 방법’에 이르기까지 가히 방법의 천국 속을 헤매고 있다. 읽으면 정말 그렇게 되나 싶다. 나는 여전히 책속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 그 길은 연금술의 비법을 몇 줄의 항목화된 방법으로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 스스로 깨우치고 찾아내야 하는 사색의 길과 방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실제 사례 중심의 감동을 전하거나 차라리 이론적 접근 방법을 제시해서 현실 생활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하도록 해보는 방식은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의 내용이 부적절하거나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과 방법들과 가득하다. 하지만 그게 문제다. 당연한 이야기를 구체화 시킨 것일 뿐.

  모든 아버지는 시간이 없고 바쁘며 근엄해야 한다는 과거의 이미지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깨지고 있다. 주 5일제의 여파로 여유 시간은 넘쳐나고 가족은 삶의 목표이자 희망이며 그 관계는 세대를 뛰어넘어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단위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것이 지나쳐 가족 이기주의로 비쳐질 정도가 되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모의 소유물은 아니다. 그 관계에 있어서도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며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는 부모 스스로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이 책에서 여러번 묻고 있다. ‘자녀가 당신같은 사람이 되기 바랍니까?’, ‘자녀가 당신같은 사람을 만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부모가 되도록 내가 먼저 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직업과 경제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이 달라져도 아이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 순수한 본성이 변하는 것은 부모의 영향이며 사회의 가르침이다. 내 자녀가 아닌 우리 모두의 아이들을 위한 고민도 아울러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나서 딸의 인생을 바꾸기 전에 딸의 인생이 어떠했으면 좋겠는가를 먼저 고민하는 일이 더 어렵고 소중할 것이다. 그것이 결정되면 좋은 관계, 행복한 방법들이 다양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00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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