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 88만원 세대에게 전하는 한기호의 자기 생존 솔루션
한기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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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은 나름의 기능을 가진다. 한 시대를 정리하고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은 몇 권의 책을 통해 얻을 수 없는 특별한 혜안이다. 재밌고 즐거운 책읽기, 예술적 감동을 얻는 책읽기, 지식과 정보를 얻는 책읽기, 배움을 위한 책읽기, 시간을 보내기 위한 책읽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책읽기 등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 하지만 책읽기를 통해 삶을 변화시키고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근본적으로 생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일이 책을 통해서 가능할까?

  중세의 봉건적 가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꿈꿔보기도 전에 제국주의에 유린당한 한반도는 해방이후 60여 년간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정치, 사회적으로는 물론 경제, 문화적으로도 급격한 변화가 이어졌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지식인의 책무일 것이다. 사르트르가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역설했듯이 스스로 변화의 주체와 민중들을 위한 안내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권력을 이용하고 안일하게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이념을 넘어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는 파렴치한 행위이다. 지식인의 범주와 역할에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기성세대 혹은 어른이라고 불리는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최소한의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한기호는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를 통해 대한민국 20대의 현실을 정확히 짚어냈고 현실적 대안은 물론 미래 사회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는 우리 사회의 경제현실과 젊은이들의 삶에 대해 수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이 책도 어떻게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승자독식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자기계발서 틈바구니에서 20대의 손에 반드시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 아니 그보다 곧 20대가 되는 10대에게 먼저 읽혀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은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한 마리 애벌레들은 모두 소중한 나비가 될 준비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 내몰려 있다. 일제고사와 수능 성적 공개는 누구를 위해 왜 필요한 것일까? 동물들의 생태계처럼 인간 사회에서도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원칙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경쟁 논리로 풀어내는 것이 과연 합당하고 가능한가? 공정한 경쟁 체제는 차치하고라도 삶의 목적과 방향을 가늠하지도 못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교재와 학습 내용을 가지고 그들의 능력을 한줄로 세우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조금만 더 멀리 내다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누구든 금방 알 수 있는데도 아이들을 끝없이 국영수 경쟁체제로만 내모는 교육에는 희망이 없다.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지능 이론을 통해 인간의 지능과 능력을 다양하게 분석했다. 우리 인간은 다양한 흥미와 소질과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동일한 잣대와 기준으로 모두를 재단하는 방법은 문제가 있고 하나를 위해 모두가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일은 공멸의 지름길이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면서도 그대로 방치한다면 명백한 기성세대의 직무유기다. 결국 10대와 20대가 가장 피해자가 되고 희생자가 될 것이다. 한번뿐인 인생에서 그들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미래 사회의 가치를 안내하는 것은 어른들의 당연한 책임이다.

  모든 애벌레는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교육은 불가능할까? 한기호는 그 대안으로 책읽기를 제시한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 보이지만 현실에 대한 적확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의 근거를 갖추고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종횡무진 분야를 가리지 않고 넘나드는 책읽기와 정확한 분석능력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출판계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무서울 정도의 독서력은 그의 혜안을 뒷받침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에서 인용하고 저자들의 이야기를 소화해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칼날처럼 예리하다. 그가 인용한 대부분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프지는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20대의 비정규직화는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대학 입학에 동시에 어지간한 중산층 가정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등록금 부채가 시작된다. 85%라는 OECD 최고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사회구조도 문제지만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없는 현실을 무한 경쟁체제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두가 애벌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한 마리 나비가 되기위해 자신의 ‘컨셉력’을 갖춰야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에서는 앉아서 코풀기 위해 우수학생 유치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대학은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다양한 선발 방식을 통해 선발하고 그들을 제대로 교육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한기호는 이 책에서 대학 4년 동안 1주일에 한권씩 200권의 책을 읽으라고 주문한다. 인문학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분야의 교양을 통해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고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컨셉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형화된 취업 5종세트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자신의 스펙관리만 잘 한다고 해서 정규직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정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이 책은 세상을 읽고 분석하고, 생존의 솔루션을 찾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컨셉력’을 갈고 닦으라고 주문한다. 그 중심에는 책읽기가 놓여 있다. 시대가 달라지고 세상이 변해도 근본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책읽기다. 책만 읽으면 문제가 해결되겠냐는 반론은 차후의 문제다. 수능성적으로 평생이 좌우되고 승자독식의 경쟁체제와 경제적 능력만이 유일신이 된 세상에서 책읽기는 과연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은 인터넷 검색만으로 얻을 수가 없다. 진지한 책읽기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혜안에서 비롯된다. 관계와 소통을 통해 미래 사회의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20대를 기대하려면 바로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고민하는 힘이 필요한 시점이다. 


091018-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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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보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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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화로운 삶이란 무엇인가? 넓고 전망 좋은 아파트, 안전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 고급 승용차, 억대 연봉이 조화를 이루면 되는 걸까? 늘어놓고 보니 돈만 있으면 가능한 삶이다. 시니컬하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이런 삶이 대부분 사람들의 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능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사실 이런 현실을 거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고 느낄까? 욕망의 크기 때문인가? 아니면 삶의 목적과 방법 때문인가?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는 우리는 늘 자신을 돌아보며 미래를 설계하고 과거를 성찰한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작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아무도 불행해지기를 원하지 않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바늘 하나 꽂을 곳이 없는 틀에 박힌 일상에서 한낱 공상에 불과한 생각들로 머리만 복잡하다. 이건 아닌데 싶지만 전혀 다른 삶을 꿈꿀 수도 없다. 현실과 상황은 만만치 않으니 그만 오늘과 타협하고 만다. 견고한 사회 구조 안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다. 함께 꿈꾸고 같이 걷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삶이다.

  헬렌과 스코트 니어링이 버몬트 숲 속에서 살았던 20년간의 기록을 적은 <조화로운 삶>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머나먼 미국에서 대공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1932년, 두 사람은 뉴욕에서 버몬트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외부적인 조건이 두 사람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지만 대학 교수였던 스코트 니어링과 그의 제자에서 아내가 된 헬렌 니어링이 전혀 다른 삶에 도전하는 과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스코트 니어링은 1883년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나 펜실베니아 대학 교수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친다. 아동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 해직되고, 톨레도 대학에서 정치학 교수와 예술대학장을 맡았으나,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 대전을 일으킨 것에 반대하다가 또다시 해직된다. 아내 헬렌 니어링은 1904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바이올린을 공부했으며, 명상과 우주의 질서에 관심이 많았다. 한때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었으며 스물네 살에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삶의 길을 바꾸게 됐다. 마흔 다섯 살의 스코트 니어링은 헬렌보다 스물한 살이 많았다. 두 사람은 가난한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농장을 일궈냈다. 스코트는 1983년 세상을 떠났고, 헬렌은 그로부터 8년 뒤에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썼으며, 1995년 헬렌도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조용한 청교도적 삶을 살아가는 듯한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인생이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엉뚱하지만 조금씩만 욕심을 덜어내고 생의 조건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을 조금만 더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상적인 꿈이라고 비웃을 수 있지만 불가능한 꿈조차 없다면 현실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지 전혀 신경 쓰지 말라. 우리는 서로 잡아먹을 듯이 경쟁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우선 이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도록 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이나 더욱 슬기롭고 사람다워질 미래에는 더욱 냉철하고, 규모 있고, 쓸모 있게, 사회를 생각하면서 살리라.”
이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우리가 지금 이러저러하게 살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현재를 이어받아 미래의 모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 P. 199


  누구의 말을 인용했는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터무니없는 이 말을 믿고 산다. 현재는 미래의 거울이다. 우리의 지금을 살펴보자. 버몬트에서 직접 집을 짓고 채식을 하며 공동체를 꾸리던 부부는 개발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훗날 메인으로 보금자리를 옮긴다.

  사회를 등지고 살자는 말이 아니라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 열심히 산 사람들이 더욱 성숙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으로서(이것은 인생의 여러 단계에 대한 동양 사람들의 생각과 같은데, 그 사람들은 한 집안의 가장 노릇을 마치고 나면 다음 단계는 성인이나 은둔자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일과 취미 생활을 동시에 하면서 슬기롭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부부의 말은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저 특별한 20세기 미국인 부부의 삶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은가. 21세기에도 사람이 산다는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깊은 밤 이 부부기 20년간 버몬트 생활을 마무리 하는 말을 되새겨 본다.

우리는 할 수 있다면 가장 품위 있고 친절하고 올바르고 질서 있고 짜임새 있게 살아야 한다. 어떤 처지에서도 사람은 옳게도 그르게도 행동할 수 있다. 어떤 환경이 주어지든, 미워하고 공격하고 부수고 무시하고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 두는 것 따위의 더욱 해로운 행동을 하기보다는, 사랑하고 창조하고 건설하며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대도시 한가운데보다는 산업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시골 마을에서 더 훌륭하게 조화로운 삶을 꾸려 갈 수 있다고 믿었다. - P. 201


090903-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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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를 던지다 - 왕들의 살인과 다산의 탕론까지 고전과 함께 하는 세상 읽기
강명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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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탁오는 어떤 진리도 스스로 자신만이 진리라고 주장할 때 그 진리는 더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통렬하게 지적한 것이다. - P. 76

  ‘진리’를 논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세상에 객관이 존재하지 않듯이 진리는 현실밖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신념과 진리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밖에 없으며 어떤 사람도 그것을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시대에 비추어 보아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다수결과 다르다. 잘못된 법과 제도가 통용된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이 전근대 사회에서는 자연스런 사회 현상이었지만 그것을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폭넓은 안목과 미래지향적인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최선의 가치일 수 없듯이 자유경쟁과 자본의 논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고 해서 미래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강명관의 <시비를 던지다>는 조선 사회를 통해 21세기 한국사회를 조망하고 있다. 한학자인 저자는 조선시대를 학문적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밝혀보지 않는다면 지식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처한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만족스럽게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위해 역사가 필요하고 선인들의 글을 도구로 삼았다. 이 책은 그렇게 저자의 학문적 열정을 통해 바라본 21세기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 먼저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다. 저자가 선별하여 제공하는 글이지만 오늘에 되새겨 볼 만한 글을 읽다보면 책은 우리에게 영원한 길잡이며 삶의 교훈과 미래에 대한 지혜를 알려준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전체 4부로 나누어 노비와 비정규직을 비교하고 역대 왕들의 행적을 돌아보며, 학문적 진리를 논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선조들의 고민을 살펴본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는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매일 일어나 숨 쉬고 살아가는 일상이 편리해졌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은 변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도 과거제도가 공평하게 치러지지 않았고 21세기 수능도 공평한 경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의 폐단을 지적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권력에 의해 억압되었으며 탐관오리와 지방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지배층의 백성 훈육과 입시에 짓눌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여전히 유토피아를 꿈꾼다.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몸부림치고 있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며 내일을 꿈꾼다. 하지만 소통과 어울림은 요원하기만하다. 그들만의 세상은 계속되고 있으며 백성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국민이란 명사를 들을 때면, 백성이란 명사가 떠오른다. 백성이 사실상 멸시받는 ‘상것’의 현실을 덮고 있는 호사스런 말이었던 것처럼, 국민이란 명사는 다른 어떤 명사를 그 속에 덮고 있는가. - P. 93

분명한 것은 돈과 권력, 학벌과 인척관계로 결합한 극소수 귀족층의 한국 사회 지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는지, 외국 국적을 가진 자녀를 두고 있는지, 왜 특정 대학 출신들인지 묻는 것조차 이제는 어리석다. 이런 속성의 ‘고소영’과 ‘강부자’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21세기 대한민국은 정확하게 19세기 조선의 연장이다. 세상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 P. 118

“일제고사 좋아하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산의 <하일대주(夏日對酒)>의 한 구절이 또렷이 떠올랐다. “그들만이 재상이 되고, 그들만이 판서와 감사가 되고, 그들만이 승자가 되고 그들만이 헌관(憲官)이 되네.” - P. 274

  부정적 시각과 비판적 안목은 구별되어야 한다.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 무모함이 영원할 수는 없다. 국민과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먼 안목으로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삶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꿈일 수도 있다. 겸손하지 못하고 오만과 독단으로 결정된 일들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아이들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놓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념과 정쟁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뼈아픈 충고와 자기반성의 시간을 촉구한다. 멀지않은 과거였던 조선시대를 통해 오늘의 우리를 비춰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수많은 고민들은 어쩌면 얼마 전 선조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발짝만 비껴서서 스스로를 돌아보자. 나의 믿음과 진리에 시비를 걸어볼 시간이다.


09090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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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레종 데트르 - 쿨한 남자 김갑수의 종횡무진 독서 오디세이
김갑수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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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쿨하지 않은 남자 김갑수의 쿨한 책읽기. <나의 레종 데트르>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 의한 독서 편력기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지 우리는 ‘나’의 존재의 근원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왜 사는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단순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들. 그것이 삶이 아닌가 싶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가족일 수도 있고 주변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대체로 책 속에서 새로운 만남을 갖는다. 존경할 만한 삶을 살았던 사람부터 괴짜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그래서 책을 읽는다.

  내가 알고 있는 쥐꼬리만한 지식과 세상에 대한 인식의 틀은 모두 책 속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차적으로 나를 키워준 부모님과 내 가족과 학교 교육과정과 직업에서 기인하는 정체성은 표면적으로 사회적 ‘나’를 말해준다. 하지만 나는 책을 통해 인격을 형성하고 세상을 알았으며 삶의 태도와 방법을 배웠고 생의 의미를 깨달았다.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관점을 통해 내 존재 의미를 생각하고 내일을 꿈꾼다. 거창한 꿈을 꾼 적도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돌아보는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그러나 책은 어쩌면 또 다른 욕망의 블랙홀과도 같다. 책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책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고 책 속에서 절망한다. 또 다시 끊임없는 상상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나 스스로를 간서치라고 명명하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책 읽는 인간은 현실을 조금 먼 거리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게 나만의 착각일까. 투명한 유리벽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세상이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도 책은 내 삶의 도구이고 길잡이며 가장 원초적인 욕망의 배설구이다.

  음악 듣고 책 읽는 사람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의 갈피들은 물론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것들이다. 그가 소개하는 수많은 책들을 읽었고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생각들을 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눈빛으로 빛났을 것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그가 분명히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책도 일이 되면 힘들고 지겹기도 할 것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즐거움을 감출 수는 없다.

  이 책은 대체로 태어난 지 10여 년 언저리를 넘나드는 책들과 고전들이 뒤섞여 있는 변주들이다. 하나의 주제 혹은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엮어 책의 내용들을 소개하고 특징을 잡아내며 해석을 보태고 있다. 읽었던 사람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연관된 책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호기심과 관심을 유도한다.

  전체 16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성교로 시작해서 민족주의의 그늘로 끝난다. 시작은 다분히 자극적이지만 소개된 책과 그것을 분석하는 내용은 오히려 슬프다. <카사노바 나의 편력>,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악마>, <나도 때론 포르노그래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 <문학으로 보는 성>, <사랑은 진할수록 아름답다>가 첫 번째 채널에 소개된 책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성에 대한 담론을 중심에 두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돌아본다. 나와 우리를 살펴보는 것은 책을 통한 세상 읽기이다. 솔직하고 돌발적인 발언들이 조심스러움으로 포장되어 있다.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문장이나 적극적이고 계몽적인 표현과 거리가 멀다. 감성적인 인간의 책읽기가 빚어낸 이성적인 글쓰기가 독자들에게 적당한 자극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한 채널에 예닐곱 권이 소개되어 있으니 줄잡아 백여 권이 소개되어 있다. 재미나는 인생, 멜로디를 넘어서, 소설, 고전의 미로, 영혼의 문제, 사람들, 운명 등 특별히 계통성 있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자유롭고 즐거운 책읽기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심각하게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읽은 책은 요약적이거나 교훈적이다. 하지만 그의 책읽기는 목적이 없는 유목이며 공허한 영혼을 달래기 위한 처방전과 같다.

  휴가철이나 방학이 되면 추천도서 목록이 넘친다. 책읽기가 취미라니! 일년에 잠시 여유 시간이 있을 때만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책을 화려한 파티복이나 보석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책읽기는 본질적인 독서의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제부터 책읽기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는 책읽기에 관한 책이나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 한 권을 권하고 싶다.

  무슨 책을 어떻게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은 김갑수식의 종횡무진 책읽기를 권한다. 주제별로 유사한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좌충우돌 읽은 책들의 한줄 꿰기. 만만한 작업도 쉬운 방법도 아니지만 책 자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더디지만 가장 행복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바쁜 세상에 정처 없이 길을 나서는 일이 어디 쉽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이유를 말할 수 없듯이 책을 읽는 이유를 말하기도 어렵다.

  김갑수가 적극 추천했던 아직 못 읽는 책들, 읽었지만 기억 속에 가물거리는 책들이 또 다시 도서목록에 오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이렇게 책 읽기과 사람읽기, 세상읽기의 안내자가 되어준 사람들의 목록을 한번 적어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내게는 그들이 삶의 나침반이고 길잡이며 고마운 스승이다.


090803-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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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인 9색 청소년에게 말걸기 - 생각하라 경험하라 반응하라
김용규 외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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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이라 명명된 나이의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일은 힘들다. 단순한 나이 차이 때문이 아니라 생각의 차이 때문이다. 상황과 입장이 다르고 성장과정과 경험의 차이 때문이다. 세대 간 소통은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다.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에게 항상 희망을 건다고 말한다. 그들이 우리들의 미래이기 때문이지만 기대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기성세대들은 미래의 주역이라고 추켜세우지만 정작 그들의 밝은 미래를 제공하지는 못하고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는다.

  반면에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대부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길들여지고 있으며 국영수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를 깨뜨리기 힘들다. 일단 대학에 입학하거나 졸업 후에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거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너무 늦다. 나 자신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세상을 알아가며 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내가 살아가야할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9인 9색 청소년에게 말걸기>는 여러모로 얄팍하지만 필요한 책이다. 우선 두께가 얄팍하고 내용과 깊이가 얄팍하다. 반면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재미와 무관한 내용이기 때문임을 감안할 때 적당하다고 볼 수도 있다. 어른보다 바쁜 청소년들에게 잠시 짬을 내어 읽어보도록 권할 만큼 적당한 분량이다. 이렇게 작은 시도들이 거듭되고 한두 번씩 고민의 단초를 제공하고 생각을 자극하는 일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거론되는 인사들의 이름도 중요했으리라 짐작된다. 검증된 저자들을 통해 안전하게 기획되었고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지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읽힐지 모르겠다. 당장의 점수도 중요하다. 대입제도 개선 없이는 초중고의 공교육은 개선될 수 없고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구조적인 변화 없이는 공염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거나 끊임없는 경쟁 구도 속에 아이들을 마냥 밀어 넣을 수만은 없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런 종류의 책들은 청소년들에게 자꾸 읽혀야겠다.

  철학, 인권, 과학, 고전, 가치관, 환경, 독서, 여성, 문화라는 아홉 가지 주제를 김용규, 박홍규, 김동광, 정민, 안철수, 안철환, 이권우, 권인숙, 김동식이 풀어냈다. 다양한 분야에서 나름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고 뚜렷한 신념을 지니고 있는 저자들은 해당 분야에 관해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쉬운 말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왜 필요한지 무엇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 책은 입문서에 불과하다. 지독하게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고민에서 비롯된 책으로 보인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이나 읽는다 해도 소설 이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아이들에게 권해줄 만한 책이다. 길쭉한 판형과 간단한 삽화로 지루함을 덜고자 애쓴 흔적이 보인다. 고육지책이라도 좋으니 이런 시도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고 기성세대들도 필요성을 절식하게 인식했으면 좋겠다.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 미래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손놓고 현실주의자로만 살아갈 수도 없다. 보다 나은 미래와 희망을 제시하고 다양성 속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다.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들의 거울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행태와 생각을 보고 배운대로 자신들의 행동과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청소년들이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사회, 자연 환경은 고스란히 미래의 후손들에게 돌아간다. 반성적 차원에서 기성세대의 고백도 필요하고 그들이 알아야 할 과거도 소개해야 한다.

  어른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충고와 조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시대에 청소년들에게 스승이나 선배로서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자. 주체적 인간으로 가치관을 세우고 지혜를 쌓는 일이 지식의 양을 늘리는 일보다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우리는 그들을 대입 중심의 교육제도 안에 통조림처럼 밀어 넣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의 인생을 깎고 다듬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그들의 꿈과 분노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일이 우선이다. 시행착오를 통한 경험을 들려주고 삶의 지혜를 후배들에게 전해 주는 일, 그것이 선배들의 의무이자 역할이다. 올바른 가치관과 비판 정신을 소유한 어른들을 소개해 주는 일이라고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모쪼록 훌륭한 아홉 명의 인생 선배들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고 생각의 화두를 하나씩 얻어갈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 청소년들은 그들에게서 보다 넓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받고 넓은 세상에 대한 관심과 생각의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길들이기’가 왜 위험한 것인지 그것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반성도 해보고 비판도 해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끝없는 보살핌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생각을 재단하고 하나의 틀 속에 가두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어른들부터 반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른들부터 읽고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실천하지 않으면서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080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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