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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 88만원 세대에게 전하는 한기호의 자기 생존 솔루션
한기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책은 나름의 기능을 가진다. 한 시대를 정리하고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은 몇 권의 책을 통해 얻을 수 없는 특별한 혜안이다. 재밌고 즐거운 책읽기, 예술적 감동을 얻는 책읽기, 지식과 정보를 얻는 책읽기, 배움을 위한 책읽기, 시간을 보내기 위한 책읽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책읽기 등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 하지만 책읽기를 통해 삶을 변화시키고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근본적으로 생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일이 책을 통해서 가능할까?
중세의 봉건적 가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꿈꿔보기도 전에 제국주의에 유린당한 한반도는 해방이후 60여 년간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정치, 사회적으로는 물론 경제, 문화적으로도 급격한 변화가 이어졌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지식인의 책무일 것이다. 사르트르가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역설했듯이 스스로 변화의 주체와 민중들을 위한 안내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권력을 이용하고 안일하게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이념을 넘어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는 파렴치한 행위이다. 지식인의 범주와 역할에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기성세대 혹은 어른이라고 불리는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최소한의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한기호는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를 통해 대한민국 20대의 현실을 정확히 짚어냈고 현실적 대안은 물론 미래 사회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는 우리 사회의 경제현실과 젊은이들의 삶에 대해 수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이 책도 어떻게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승자독식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자기계발서 틈바구니에서 20대의 손에 반드시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 아니 그보다 곧 20대가 되는 10대에게 먼저 읽혀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은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한 마리 애벌레들은 모두 소중한 나비가 될 준비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 내몰려 있다. 일제고사와 수능 성적 공개는 누구를 위해 왜 필요한 것일까? 동물들의 생태계처럼 인간 사회에서도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원칙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경쟁 논리로 풀어내는 것이 과연 합당하고 가능한가? 공정한 경쟁 체제는 차치하고라도 삶의 목적과 방향을 가늠하지도 못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교재와 학습 내용을 가지고 그들의 능력을 한줄로 세우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조금만 더 멀리 내다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누구든 금방 알 수 있는데도 아이들을 끝없이 국영수 경쟁체제로만 내모는 교육에는 희망이 없다.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지능 이론을 통해 인간의 지능과 능력을 다양하게 분석했다. 우리 인간은 다양한 흥미와 소질과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동일한 잣대와 기준으로 모두를 재단하는 방법은 문제가 있고 하나를 위해 모두가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일은 공멸의 지름길이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면서도 그대로 방치한다면 명백한 기성세대의 직무유기다. 결국 10대와 20대가 가장 피해자가 되고 희생자가 될 것이다. 한번뿐인 인생에서 그들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미래 사회의 가치를 안내하는 것은 어른들의 당연한 책임이다.
모든 애벌레는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교육은 불가능할까? 한기호는 그 대안으로 책읽기를 제시한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 보이지만 현실에 대한 적확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의 근거를 갖추고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종횡무진 분야를 가리지 않고 넘나드는 책읽기와 정확한 분석능력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출판계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무서울 정도의 독서력은 그의 혜안을 뒷받침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에서 인용하고 저자들의 이야기를 소화해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칼날처럼 예리하다. 그가 인용한 대부분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프지는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20대의 비정규직화는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대학 입학에 동시에 어지간한 중산층 가정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등록금 부채가 시작된다. 85%라는 OECD 최고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사회구조도 문제지만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없는 현실을 무한 경쟁체제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두가 애벌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한 마리 나비가 되기위해 자신의 ‘컨셉력’을 갖춰야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에서는 앉아서 코풀기 위해 우수학생 유치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대학은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다양한 선발 방식을 통해 선발하고 그들을 제대로 교육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한기호는 이 책에서 대학 4년 동안 1주일에 한권씩 200권의 책을 읽으라고 주문한다. 인문학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분야의 교양을 통해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고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컨셉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형화된 취업 5종세트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자신의 스펙관리만 잘 한다고 해서 정규직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정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이 책은 세상을 읽고 분석하고, 생존의 솔루션을 찾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컨셉력’을 갈고 닦으라고 주문한다. 그 중심에는 책읽기가 놓여 있다. 시대가 달라지고 세상이 변해도 근본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책읽기다. 책만 읽으면 문제가 해결되겠냐는 반론은 차후의 문제다. 수능성적으로 평생이 좌우되고 승자독식의 경쟁체제와 경제적 능력만이 유일신이 된 세상에서 책읽기는 과연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은 인터넷 검색만으로 얻을 수가 없다. 진지한 책읽기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혜안에서 비롯된다. 관계와 소통을 통해 미래 사회의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20대를 기대하려면 바로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고민하는 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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