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종 데트르 - 쿨한 남자 김갑수의 종횡무진 독서 오디세이
김갑수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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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쿨하지 않은 남자 김갑수의 쿨한 책읽기. <나의 레종 데트르>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 의한 독서 편력기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지 우리는 ‘나’의 존재의 근원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왜 사는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단순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들. 그것이 삶이 아닌가 싶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가족일 수도 있고 주변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대체로 책 속에서 새로운 만남을 갖는다. 존경할 만한 삶을 살았던 사람부터 괴짜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그래서 책을 읽는다.

  내가 알고 있는 쥐꼬리만한 지식과 세상에 대한 인식의 틀은 모두 책 속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차적으로 나를 키워준 부모님과 내 가족과 학교 교육과정과 직업에서 기인하는 정체성은 표면적으로 사회적 ‘나’를 말해준다. 하지만 나는 책을 통해 인격을 형성하고 세상을 알았으며 삶의 태도와 방법을 배웠고 생의 의미를 깨달았다.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관점을 통해 내 존재 의미를 생각하고 내일을 꿈꾼다. 거창한 꿈을 꾼 적도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돌아보는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그러나 책은 어쩌면 또 다른 욕망의 블랙홀과도 같다. 책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책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고 책 속에서 절망한다. 또 다시 끊임없는 상상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나 스스로를 간서치라고 명명하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책 읽는 인간은 현실을 조금 먼 거리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게 나만의 착각일까. 투명한 유리벽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세상이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도 책은 내 삶의 도구이고 길잡이며 가장 원초적인 욕망의 배설구이다.

  음악 듣고 책 읽는 사람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의 갈피들은 물론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것들이다. 그가 소개하는 수많은 책들을 읽었고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생각들을 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눈빛으로 빛났을 것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그가 분명히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책도 일이 되면 힘들고 지겹기도 할 것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즐거움을 감출 수는 없다.

  이 책은 대체로 태어난 지 10여 년 언저리를 넘나드는 책들과 고전들이 뒤섞여 있는 변주들이다. 하나의 주제 혹은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엮어 책의 내용들을 소개하고 특징을 잡아내며 해석을 보태고 있다. 읽었던 사람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연관된 책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호기심과 관심을 유도한다.

  전체 16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성교로 시작해서 민족주의의 그늘로 끝난다. 시작은 다분히 자극적이지만 소개된 책과 그것을 분석하는 내용은 오히려 슬프다. <카사노바 나의 편력>,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악마>, <나도 때론 포르노그래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 <문학으로 보는 성>, <사랑은 진할수록 아름답다>가 첫 번째 채널에 소개된 책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성에 대한 담론을 중심에 두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돌아본다. 나와 우리를 살펴보는 것은 책을 통한 세상 읽기이다. 솔직하고 돌발적인 발언들이 조심스러움으로 포장되어 있다.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문장이나 적극적이고 계몽적인 표현과 거리가 멀다. 감성적인 인간의 책읽기가 빚어낸 이성적인 글쓰기가 독자들에게 적당한 자극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한 채널에 예닐곱 권이 소개되어 있으니 줄잡아 백여 권이 소개되어 있다. 재미나는 인생, 멜로디를 넘어서, 소설, 고전의 미로, 영혼의 문제, 사람들, 운명 등 특별히 계통성 있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자유롭고 즐거운 책읽기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심각하게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읽은 책은 요약적이거나 교훈적이다. 하지만 그의 책읽기는 목적이 없는 유목이며 공허한 영혼을 달래기 위한 처방전과 같다.

  휴가철이나 방학이 되면 추천도서 목록이 넘친다. 책읽기가 취미라니! 일년에 잠시 여유 시간이 있을 때만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책을 화려한 파티복이나 보석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책읽기는 본질적인 독서의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제부터 책읽기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는 책읽기에 관한 책이나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 한 권을 권하고 싶다.

  무슨 책을 어떻게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은 김갑수식의 종횡무진 책읽기를 권한다. 주제별로 유사한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좌충우돌 읽은 책들의 한줄 꿰기. 만만한 작업도 쉬운 방법도 아니지만 책 자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더디지만 가장 행복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바쁜 세상에 정처 없이 길을 나서는 일이 어디 쉽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이유를 말할 수 없듯이 책을 읽는 이유를 말하기도 어렵다.

  김갑수가 적극 추천했던 아직 못 읽는 책들, 읽었지만 기억 속에 가물거리는 책들이 또 다시 도서목록에 오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이렇게 책 읽기과 사람읽기, 세상읽기의 안내자가 되어준 사람들의 목록을 한번 적어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내게는 그들이 삶의 나침반이고 길잡이며 고마운 스승이다.


090803-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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