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월 한국은 선진국이 되었다. 구체적으로 유엔개발기구에서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 지위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한 것이다. 사실 공식 명칭은 아니다. A그룹에서 B로 옮겼을 뿐이다. 그럼에도 의의가 큰 이유는 소위 개도국에서 이처럼 지위가 달라진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B그룹에는 31개 국가가 소속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말타, 안도라도 포함한다.


정직하게 말해 내 나이 또래 사람들에게는 감개무량하다. 말이 좋아 발전도상국이지 한국은 후진국이었다. 도시락으로 혼분식을 먹었고 교실에는 연탄난로가 있었고 옷은 하복동복이 전부였다. 잘사는 나라가 된다는 건 꿈에서나 가능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국가다. 지디피나 수출이나 기술, 생산성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게다가 최근에는 여기에 문화라는 날개까지 날았다. 속된 말로 살아생전에 이런 조국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실은 여전히 어렵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이고 양극화는 고착되었으며 무엇보다 젊은 세대에게 희망이 없다. 못살아도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과거는 이제 추억으로 남았다. 과연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절망의 세대에게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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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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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은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다. 차로 5분이며 바로 서울로 갈 수 있는 거리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하다. 지방은 일이나 여행으로 잠깐 들를 뿐이다. 가장 오래 서울을 벗어난 건 군대에 있을 때인데, 그 때도 근무지는 고양이었다. 휴가 때면 부대 앞에서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바로 올 수 있었다. 이런 환경이 상당히 운이 좋았음을 깨달은 건 한참 지나서였다. 물론 여전히 서울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 일단 너무 시끄럽고 정신이 없다. 게다가 공기도 나쁘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머리가 아프다. 그럼에도 근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도시가 주는 혜택이 불이익보다 많기 때문이다.


<메트로폴리스>는 대도시의 마력을 파헤치고 있다. 숱한 비난과 오명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건재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특히 파리는 인상적이다. 누구에게나 동경의 대상이지만 실제로는 더럽고 지저분해 심지어 병까지 옮기는 도시. 특이한 건 이런 비위생적인 환경을 타파하기 위해 새로운 시설을 설치하기보다 파리에서 펼쳐지는 공연에 몰두하고 도시가 주는 드라마에 심취한다. 우리가 서울을 욕하고 비판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진입하고 싶은 건 본질적인 욕망 때문이 아닐까? 기껏 시멘트 덩어리에 불과한 아파트먼트의 평당 가격이 1억 원을 넘기는 현실을 보라. 문제는 이런 욕구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정부다. 규제에 규제를 더하니 욕망은 더욱 치솟아 올라 이제 서울은 그냥 특별시가 아니라 금단의 땅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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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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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언젠가 반드시 멸망한다. 헛된 망상이 아니다. 확인된 사실이다. 이미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는 살아남는다. 이 또한 과학적으로 옳다. 단 조건이 있다. 태양계가 버티고 있는 한. 사실 물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혹은 조금이라고 알게 되면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이 덧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라질 건데. 차라리 외면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굳이 허망한 일에 몰두할 필요가 있을까? 브러이언 그린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확신에 찬 과학자가 아니다. 늘 회의적이다. 과연 이게 맞는 일일까? 역설적으로 그의 회피적인 태도 덕에 우리는 방대한 지식을 쉽게 얻게 되었다. 자기주장만 고집하지 않고 여러 의견을 두루두루 알려주기 때문이다. 브라이언의 주 전공이 된 통일장 이론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근본적인 의문을 달고 산다.


통일장이론과 우주론에 깊이 빠졌다가도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항상 마음이 무거웠고, 그럴 때마다 시간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그는 시간이야말로 물리학의 핵심 개념임을 알고 있었다. 인간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끝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이 시간은 우리가 떠올리는 시계가 아니다. 우주의 시작과 마지막을 알리는 개념이다. 문제는 개인의 죽음은 훨씬 가까이 다가오지만 지구 혹은 우주의 멸망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진다. 브라이언은 후자에 속해 있었지만 연극 관람 후 토론회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멸망은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그저 사라지면 그만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만약 내가 사망선고를 받게 되면 무수한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병원을 다닐까 아니면 삶을 내려놓고 정리할까? 갑자기 돌아가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은 가족들이 내 장기를 기증할까? 아니면 거부할까? 이처럼 지구나 우주가 경험하지 못할 무수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게 개인이다. 우리는 시간의 황혼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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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 인간의 시계로부터 벗어난 무한한 시공간으로의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보희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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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창이나 어린 시절 이후 처음 방문한 동네를 대할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반면 거의 멈춰 있는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군 입영 통지서를 받고 보충대에 들어간 첫 날 밤이 그랬다. 마치 시계가 멈춰버린 듯 한 적막감에 다들 한숨을 삼켰다. 정말 시간은 어떨 때는 빨리 다른 경우는 느리게 가는가? 정답은 맞다이다. 다시 말해 시간은 상대적이다. 당장 무슨 말도 안 되냐고 반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시계는 왜 있는가? 그건 편의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우리가 그저 정의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지금과 같은 초단위 시계는 산업사회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혹은 순간이 영원히 이어지다면? 이런 말같지 않는 소리를 하는 과학자가 있다. 주인공은 카를로 로벨리. 그는 과학은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 세상과 동떨어진 전문 용어가 아니라 실생활과 밀접하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시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곧 어제와 오늘, 내일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통속에 들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속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사라진다. 오로지 입자들만이 서로 부딪칠 뿐이다. 이 세계가 바로 양자역학이다. 아,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어. 이해한다. 과학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깰 때 비로소 문을 열어준다.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은 이 길을 함께 할 유용한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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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 일주 네버랜드 클래식 37
쥘 베른 지음, 김주경 옮김, 레옹 베넷 외 그림 / 시공주니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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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어린 시절은 늘 추억의 대상이다. 희한하게도 그 때 일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른바 성인이 되고나서는 시간이 로켓처럼 흐를 뿐 딱히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지 않는다. 이 말은 어렸을 때 풍성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경제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다양한 경험이 자산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다.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 이런 호사를 누린 이들은 극히 드물다. 독서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무던히도 많은 책들을 읽었다. 특히 방학 때는 밀린 숙제를 하듯 쌓아놓고 독파했다. 그 때의 습관은 아직도 남아 여전히 책을 곁에 두고 있다. 물론 옛날처럼 많이 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아주 가끔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보고 싶을 때가 있다. 80일간의 세계일주도 그렇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영화도 보았고 만화로도 보았다. 그만큼 인상적이었다는 건데 뜻밖에도 완연복은 읽지 못했다. 


다시 찾아보니 만약 아이였다면 꽤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무엇보다 길고 책이 하드카버라 무겁다. 반대로 어른에게는 딱이다. 특히 포그에 대한 자세한 사전 설명이 마음에 든다. 그거 왜 무모한 세계여행을 계획했는지 초등학생 때는 잘 몰랐다. 그러나 나아가 들어 제대로 알아보니 꽉 짜인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임을 알았다. 다만 그답게 시간에 맞춰. 어쩌면 포그는 삶에 찌든 어른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약간의 활극과 로맨스를 결들여.


덧붙이는 말



지금까지 나온 판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다. 일단 완역이고 초판본의 삽화까지 곁들여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또한 하드카버라 소장가치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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