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적인 풍경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더워서 고생을 심하게 했는데 사진으로보니 모두 좋은 경험처럼 느껴진다.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을 다녀왔다. 첫 방문이었다. 워낙 많이 이야기를 듣고 평소 관심도 있었기 때문에 기대도 컸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정직하게 말해 규모만 보면 거대하다고 할 수 없지만 한 개인이 일구기에는 넓디넓었다. 개인적으로는 선녀탕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하필 찾은 날이 올여름 가장 더운 날씨였다. 혹시 하고 수영복과 관련 도구를 챙겨갔다. 계속 가물었음에도 물이 가슴까지 차서 물장구를 칠만했다. 물론 시국이 시국인지라 한 십 분 정도 물에 몸을 담드는 정도로만 놀았다. 역시 선전문구대로 여름엔 계곡이었다. 식물이나 꽃에 문외한이라 일일이 설명을 드리기는 어렵지만 서양식 정원에서 느끼는 인공감 대신 자연스러움이 전해지는 조경이었다. 늦가을쯤 다시 한 번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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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서 좋은 직업 - 두 언어로 살아가는 번역가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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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관련된 직업의 선호도는 아무래도 여성이 더 높다. 왠지 우아하고 폼이 나 보이기 때문이다. 아주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반은 맞고 나머지는 틀린 말이다. 그 중에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떼돈을 모은 이들도 있고, 글쓰기를 위한 취재를 하느라 온갖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권남희는 재치 있는 역자 후기로 유명한(?) 번역가다. 그 끼를 남의 글을 옮기는 데만 쓰는 게 아쉽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에세이집을 냈다. 번역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있지만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이야깃거리도 함께 담았다. 딱히 깊이가 있지는 않지만, 물론 내 주관이다, 책이 꼭 무게를 잡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요즘처럼 덮고 지칠 때 선풍기 바람을 쐬며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기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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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 창밖을 보니 평소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빗질하는 경비원 아저씨와 출근을 서두르는 직장인, 그리고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의 입언저리가 훤히 보인다. 다들 마스크를 벗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혹시 꿈을 꾸는 건 아닌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지만 모두의 입가를 덮고 있던 보호막은 어디에도 없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죄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세상이 더 그로테스크했는데.


상상이다. 꽤 달콤하고 근사한. 한여름이 되면 바이러스가 죽고, 올해 2분기 안에 4천 만 명분의 백신이 들어오고 끊임없이 2주 만을 외치고 곧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되뇌던 대통령의 말은 헛소리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40퍼센트 가까이 지지를 받는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진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데. 그나저나 과연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웃고 떠들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까?


그럼에도 여름은 어김없이 또다시 찾아왔다. 기온이 오르는 것도 느껴지지만 역시 여름을 알리는 전령은 매미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정확하게 2021년 7월 21일 아침부터 장쾌한 매미 울음을 들었다. 속사정을 알고 나면 꽤 슬프지만 여하튼 실감이 나기는 한다. 동시에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이 벌써부터 아쉽다. 언제부턴가 여름이 무척 기다려진다. 집에 에어컨도 없고 진짜 더울 때는 만사가 귀찮고 짜증스럽지만 생명의 절정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여름이 끝나가고 살짝 찬바람이 불면서 겨울로 가는 기나긴 기차를 올라타야 할 무렵에는 마음까지 무거워진다. 매미야, 올 여름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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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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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편견이나 선입견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남녀가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순간은 찰라이고 시험문제가 헷갈릴 때 처음 찍은 답이 맞을 확률은 90퍼센트를 넘는다. 척보면 압니다랄까? 괴물작가라는 소문을 뒤늦게 접하고 처음부터 제대로 보자는 생각에 회색인간을 펼쳤다. 그러나 첫 문장부터 소문난 잔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소설에 인간이니 존재라는 단어를 쓰다니 흠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래 참아보자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이런, 에게 있어라는 표현을 쓰다니. 작가는 우리 말 어법에도 없는 일본어 직역임을 알고 있는가? 게다가 그들이라니? 두루뭉술한 대명사는 소설의 적인데. 게다가 것은 또 뭔가? 안정효 선생이 보셨으면 통탄한 일이다. 것, 것, 것의 남발이야말로 글 읽기를 방해한다.


바로 접었다. 죄송하지만 빠이빠이. 지금까지 이렇게 중단하고 다시 책을 드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 김동식의 0.5초의 궁금증을 원작으로 한 짧은 동영상을 보고 매료되었다. 혹시 이 작가는 진짜 몬스터일지도 몰라. 이 책에 실린 디지털 고려장은 그의 마력을 마음껏 펼쳐내고 있다. 가까운 미래, 죽음에 이르게 된 노인은 기억으로 박제되고 자녀들은 업데이트를 하여 가상공간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뜬구름 같은 소리가 아니다. 오늘날의 메타버스를 보라. 문제는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빈부차이는 있는 법, 아니 더 늘어난다. 새 데이터를 바로바로 올리지 못하는 가족들로 인해 디지털세상 안에서 노인은 더욱 소외되는데. 과연? 


한국에서 이처럼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한 작가가 있을까? 더욱 놀라운 건 카이스트니 뭐니 하면서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고 그야말로 매일매일 성실하게 글을 써나간다는 사실이다. 공장노동자였다는 배경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뭐래도 계속 앞으로 전진한다는 게 중요하다. 뒤늦게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문법 따위 개나 줘버리라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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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사직을 내려놓아야 함은 물론이고 향후 2년의 형을 다 마친 이후에도 5년 동안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정치인으로서는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다. 관련된 방송을 듣다가 허업이라는 말을 들었다. 뜻은 대충 알아듣겠지만 생전 처음 듣는 단어였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덧없는 일쯤 되겠다. 패널은 정치만큼 허업이 없다고 했다. 고 김종필 총리가 한 말이란다. 옮고 그름을 떠나 곰곰 생각에 빠지게 하는 내용이었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 삼기 어려운 두 가지 일을 들었다. 하나는 정치, 다른 하나는 공부. 이 둘은 운이 매우 크게 작용하고 소명에 가까운 업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야 그렇다고 해도 공부는? 순간 깨달음이 왔다. 흔히 공부가 천직인 사람을 교수라고 하는데 그 세계만큼 정치발이 강한 곳도 드물다. 오죽했으면 막스 베버 스스로도 실력은 있는데 임용이 되지 못하는 예비 학자들 걱정을 했겠는가? 어쩌면 이 두 직업이 상대적으로 쓸데없이 높은 지위를 유지하는 건 역설적으로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정직하게 말해 이 사회에 허업이 어디 이 둘 뿐이겠는가? 제 딴에는 다들 의미를 부여하지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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