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비가 쏟아졌다. 장마철도 아닌데, 우리나라도 아열대 기후가 되어가나. 다행히 우산을 준비하고 집을 나섰기에 급한 대로 펼쳐보았다. 소용없었다. 바람까지 몰아쳤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나 난처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비를 걸쳐 입은 직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손에 큰 노란 골프용 우산을 든 그들은 고개 한 명 한 명을 주차장까지 안내했다. 인근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에게는 무상으로 우산을 나누어주었다.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여기는 상류사회구나. 내가 속한 세상과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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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설렁탕 국물맛이라는 평이 딱 맞는 국수


진한 육향, 내 취향은 아닌 걸로 


냉면 추종자들이 들으면 질색을 할지 모르겠지만 냉면은 간단한 음식이다. 육수에 면을 담그면 그만이다. 고명이야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어렵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식당마다 맛이 다 다른 걸 보면 말이다.


봉밀가에 다녀왔다. 내가 방문한 곳은 강남구청점이다. 나름 유명하고 꽤 알려진 냉면집이다. 미슐랭에 선정되기도 했고. 일부러 조금 늦은 시간에 갔다. 점심때는 늘 웨이팅이 있다고 해서. 오후 2시쯤 도착해 대표 메뉴인 물냉면을 시켰다. 정식 명칭은 평양메밀물국수. 굳이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직접 먹어보면 안다. 주문 즉시 면을 삶는지 꽤 오래 걸렸다. 


이윽고 놋그릇에 담긴 냉면 육수부터 들이키는데 순간 이건 냉면이 아니구나. 물 국수가 맞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 자세한 이유는 일단 면부터 먹고 나서. 면은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메일이 지배하고 있었다. 메밀을 80프로, 고구마를 20프로 섞어 쓴다고 하는데 덕분에 이가 좋지 않은 나도 쉽게 끊어 먹을 수 있었다. 결국 한 그릇 가뿐하게 비워내기는 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무엇보다 육향이 강해 깔끔한 냉면 육수를 선호하는 분들께는 추천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기름기까지 남아 있어 다 먹고 나서도 입안에서 향이 가시지 않았다. 물론 이런 두터운 느낌을 좋아하시는 이들도 있다. 전적으로 취향의 차이다.


그럼에도 다시 찾기가 꺼려지는 이유는 냉면뿐만 아니라 설렁탕과 다른 메뉴도 함께 산보이고 있어서다. 아니 다양하게 여러 요리를 먹어보는 게 데 낫지 않아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국물 베이스를 함께 쓴다는데 있다. 곧 설렁탕과 냉면의 국물이 같다. 물론 조절은 하겠지만 기본은 동일하다. 이렇게 되면 어떤 경우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다. 냉면집이 설렁탕을 하지 않고 반대로 설렁탕집이 냉면을 취급하지 않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게다가 우동까지.


마지막으로 명함도 투머치다. 가게이름 밑에 이런 글을 적어놓았다. 봉밀가의 정성담긴 음식은 입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시간’과 진심이 담긴 ‘손’으로 만듭니다. 진심이 담긴 요리사. 언뜻 보면 대다한 장인 같아 보이지만 거의 모든 식당이 이런 심정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게 정상 아닌가? 마치 다른 음식점을 사이비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다. 물론 재료 대부분이 국산이고 새벽부터 열심히 육수를 우려낸다는 건 알지만, 이 또한 식당 안 여기저기 붙어 있는 글귀를 보고 깨달았다. 굳이 자화자찬식의 글귀는 쓸데없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출처 : 봉밀가 평양냉면. (강남구청 역, 삼성동)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이 글은 해당 업체를 포함한 어떠한 단체나 기관의 후원 없이 썼습니다. 직접 제 돈을 내서 먹어보고 정보차원에서 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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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예찬


어렸을 때 서예를 배웠다. 정식 학원은 아니고 학교에서 별도로 가르쳤다. 귀찮았다. 벼루에 먹을 갈고 화선지를 펴고 흐물흐물한 붓으로 충이니 효니 바른 생활이니 하는 하나마마한 말을 써야 했으니. 당연히 관심이 멀어졌고 한두 번 숙제로 제출한 걸 제외하곤 기억도 나지 않는다. 괜히 재료값만 버렸네.


국민의 힘 신임 대표인 이준석 씨는 당황했으리라. 휴대폰이나 태블릿에 익숙한 그에게 방명록은 외계문명 같았을 것이다. 게다가 손 글씨까지 써야 했으니. 그의 글씨체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다. 대표답지 않은 유치한(?) 글 모양을 지적하는 내용에서 손 글씨 자체가 없어진다는 구조적인 문제까지.


정직하게 말해 이건 시대의 흐름이다. 요즘 누가 손 글씨를 쓰나? 기껏해야 영수증 싸인 정도다. 그럼에도 아쉬운 건 글씨만의 매력마저 사라지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 때문이다. 일단 손 글씨는 개성이 잘 드러난다. 편지는 대표적인 예이다. 짧게나마 손 글씨로 쓰인 카드를 받으면 여전히 반갑다. 아무리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여러 글씨체를 활용하더라도 그건 어차피 규격화된 것이다. 


보다 중요한 가치는 글씨를 쓰는 과정이다. 현 세대에게 손 글씨는 과거 내가 서예를 했을 때만큼 복잡하고 지루한 일일 것이다. 일단 필기구를 꺼내야하고 종이도 있어야 한다. 쓰다가 고치거나 지우기도 어렵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야 한다. 그냥 카톡으로 날리면 그만인걸. 그러나 장점도 있다. 글을 쓰다보면 사고도 다음어지고 마음까지 정갈해진다. 이제야 서예를 정신수양이라고 했던 게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억지로 글을 쓸 필요는 없다. 괜히 부담만 커진다. 이럴 때 필요한 게 필사다. 평소 읽어보고 좋았거나 도전해 보고 싶은 글을 배껴 쓰는 거다. 미루고 미루다 오늘부터 시작했다. 언제 다 옮겨쓰나 싶어 지레 겁을 먹었는데 뭐 그냥 하다가 싫증나면 그만하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책 제목은 모비 딕이며 원서다.


관련 기사/사진 출처 : 

'이준석 방명록'으로 돌아 본 손 글씨 상실의 시대 (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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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


21세기 자본을 다시 읽고 있다. 처음 접했을 때는 무지막지한 책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화제성 여부를 떠나 너무 두꺼웠다. 뭘 이렇게 장황하게 써, 그냥 수식 하나로 다 해결 가능한 거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경제학 교수도 있다. 전적으로 동감하는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 부담스럽다면 혹은 피케티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싶다면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자본수익률은 성장률보다 높다. 늘 언제나 그랬듯이.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포함된다. 여하튼 우리나라는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자본수익 증가는 결과이지 동력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아파트먼트 바닥에 금을 바른 것도 아닌데 하루아침에 수천만 원씩 오른다. 도대체 왜? 공급부족, 저금리, 정책실패가 큰 몫을 한 건 맞지만 결정적인 한방은 결국 자본수익률이다. 곧 일해서 버는 돈보다 자본이 끌어들인 이익이 훨씬 크다. 가령 예를 들어 박근혜 시절 무리해서 서울에 아파트먼트를 산 사람과 계속 전세에 머물고 있던 이간의 자산 격차는 어마무시하게 벌어졌을 것이다. 단지 순간의 선택이 이처럼 큰 격차를 벌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는 그래서 위대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온갖 일을 순식간에 해치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소외되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이들 간의 갈등은 폭발단계에 이른다. 과연 막스가 말한 대로 자산을 둘러싼 계급투쟁이 벌어질까? 글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도리어 기득권간의 분쟁이 멸망을 부추긴다. 가진 이들은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악을 쓴다. 이념과는 전혀 상관 없이.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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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빵, 중국집의 대표 디저트


왜 우리 동네에는 이런 중국식당이 없지?


중국집이 없는 동네를 찾기는 힘들다. 문제는 다 맛집은 아니다. 내가 사는 지역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먹을 만한 식당이 있었는데 죄다 없어졌다. 혹시 하고 다시 찾아간 곳은 주방장이 바뀌었는지 엉망이었다. 오죽하면 탕수육을 다 먹지 못하고 데워달라고까지 했겠는가? 참고로 나는 직접 방문해서 먹는걸 좋아한다. 집에서 배달해서 먹으면 중국집 특유의 불 맛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중국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어제가 그랬다. 압구정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 맛집을 검색해보았다. 여러 후보가운데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가담을 찾았다. 꽤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고 하는데 왜 나는 몰랐지? 아무튼 점심세트가 있어 주문했다. 참고로 식당에서는 가담정식이라고 부른다. 탕수육은 기본이고 다른 메뉴는 그 때 그 때 바뀐다고 한다. 


내가 간 날을 양장피에 식사로 짜장, 짬뽕, 마파두부덮밥, 냉면 중 선택이 가능했다. 2인 이상 주문이 가능하고 일인당 만 육천 원이다. 강남인 걸 감안하면 비싼 건 아니다. 맛만 좋다면야. 우선 단무지나 양파 외에 짜사이가 반찬으로 나온다, 쟈스민 차와 더불어. 양장피부터 먹었는데 살짝 놀랐다. 흔히 찬 음식이라고 여겼는데 따뜻한 재료도 함께 섞어 있어 속이 편안했다. 겨자는 따로 조절하지는 못하게 아예 무쳐 나왔는데 아랫부분만 그러니 과하다 싶으면 덜어내고 섞으면 된다. 탕수육은 일품이었다. 함께 간 이가 일부 중국식당에서는 부스러기 고기로 조리한다고 하는데 이곳은 살이 다 두툼했다. 자, 이제 남은 건 짜장, 사실 이게 먹고 싶었다. 제대로 된 짜장면을 얼마나 먹고 싶어 했던가? 합격이다. 고소하고 불향이 은은하게 퍼져나온다. 마파덮밥도 함께 먹어 보았는데 의외로 맵다. 맛있는 매운 맛이라고 할까? 중국 특유의 고추기름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이곳은 혀에 뒷맛이 오래 남지 않게 산뜻한 맛이었다. 또 한가지 입맛을 당긴건 함께 나온 계란탕. 단순하다면 단순하지만 제대로 맛을 내기 힘든데 일품이었다. 디저트는 찹쌀 튀김빵. 옛 생각이 절로 났다. 


모두 좋았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중국음식은 먹고 나면 맛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왠지 속이 부대끼는데 가담은 그런 증상이 없었다. 맛도 맛이지만 정직한 재료로 성실하게 요리한 덕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음식점이 왜 우리 동네엔 없지?


사진 출처 : [존맛][압구정 맛집] 중식당 가담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이 글은 해당 업체를 포함한 어떠한 단체나 기관의 후원 없이 썼습니다. 직접 제 돈을 내서 먹어보고 정보차원에서 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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