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볼링 (보급판) - 사회적 커뮤니티의 붕괴와 소생
로버트 D. 퍼트넘 지음, 정승현 옮김 / 페이퍼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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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을 먹고 홀로 영화를 보고 집에서 나만이 술을 즐기는 시대가 되었다. 불과 십년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이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측은함의 대상이었으며 홀로 술을 마시는 것은 알코올 중독자나 마찬가지 대접을 받았다.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이 생길 정도로 홀로족이 늘어났다. 단지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사별이나 여러 사유로 혼자 사는 노인들도 많다. 그 수가 적을 때는 관심의 대상정도에 머물렀지만 다수가 된 지금은 당당히 스스로의 삶을 드러낼 수있게 되었다. 혼자 사는게 뭐 어때서? 실제로 결혼을 포기한 혹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비혼까지 늘어나는 추세다.

 

선진국은 일찌기 홀로 사회를 경험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출산율 저하다. 젊은 부부들이 아예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더라도 한 명만 낳으면서 핵가족이 보편적인 삶이 되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일찌감치 독립하여 혼자 사는데 익숙해졌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일찌감치 버렸다. 홀로 사는 사람들이 늘면서 공동체는 깨지고 사회는 원자들로 이루어진 각개격파 시스템으로 변했다. 모두가 혼자 투쟁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심하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적고 그런 사람들은 늘어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이들은 서로 필요할 때는 잠시 뭉치고 목표가 사라지면 얄짤없이 돌아서는데 익숙해졌다. 대책없는 혼자사회의 결말은 파국밖에 없다고 여져겼다.

 

그러나 반전이 벌어졌다. 혼자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남의 간섭을 덜 받고 스스로의 생각을 키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개인의 문제를 사회와 연결시켜 집단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다. 여럿이 있었다면 남의 눈치를 보느라 참고 말았을 문제도 터뜨리고 보는 것이다. 광장민주주의는 대표적이다. 모두가 개인들이지만 뭉치면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니 나홀로 볼링을 친다고 해서 쯧쯧거리며 보지 마시길. 그는 방금 광장에 나가 민주주의를 외치고 돌아와 집단에서 혼자 떨어져 자신만의 여유를 찾기 위해 볼링골을 굴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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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깎기의 정석 - 장인의 혼이 담긴 연필 깎기의 이론과 실제
데이비드 리스 지음, 정은주 옮김 / 프로파간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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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디지털 시대에 들어섰다고 해도 아놀로그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연필이 대표적이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이고 그 다음은 커피를 끓이고 나서 연필로 하루 할 일을 메모지에 적는 것이다. 연필이 뭉특해져 있으면 파버 카스텔 연필깎기로 심을 다듬는다.

 

<연필 깎기의 정석>은 연필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책이다. 나무에 심을 넣어 만든 원초적인 형태의 연필은 수백년을 거쳐 그 형태가 변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아무리 많은 필기구가 등장했다가 사라져도 연필은 영원불멸인 것이다. 실제로 아무리 휴대폰이나 노트북, 태플릿이 기승을 부려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들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니까. 대신 연필은 언제든 사용이 가능하다.

 

문제는 연필은 깎아야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불편을 덜기 위해 발명된 것이 볼펜이나 샤프펜슬이다. 연필을 깎지 않고 쓸 수 있는 필기도구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연필은 금방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연필을 깎는데는 숭고한 철학이 깃들어 있음을. 연필깎기는 일종의 워밍업으로 특히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마음을 가다듬는 효과가 있다. 굳이 칼로 섬세하게다듬지 않고 연필깎기에 놓고 돌리기만 해도 미음이 차분해진다. 연필 덕후들은 이 마음을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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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부산행
연상호 감독, 김의성 외 출연 / 에프엔씨애드컬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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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기대없이 본 영화가 큰 울림을 전해줄 때가 있다. 내게는 <빅>이 그랬다. 정말 모든 영화가 매진이라 어쩔 수 없이 동생과 시간을 떼울겸 들어간 극장에서 마주한 놀라움이란. <부산행>도 전혀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였다. 공유나 정유미 마동석을 평소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B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A- 급의 배우들을 기용한 여름철 블럭버스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내 얄팍한 밑천은 영화가 시작하자마다 바닥을 드러냈다. 고라니가 차에 치였다 되살아날때부터 손에 땀이 배이더니 서울역에서 열차가 출발하며 신은경이 비틀거리며 뛰어들어올 때는 이미 혼이 절반쯤은 나간 상태였다. 그 다음부터는 익스프레스. 단 한 장면도 놓칠수 없을만큼 빨려들어갔다. 좀비물에 대한 혐오감도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부산행>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도된 좀비물이다. <곡성>에서도 일부 장면이 있었지만 그건 극히 제한적이었다. <부산행>은 좀비가 주인공이다. 실제로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결국에는 좀비로 변하고 마니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밑바탕에 깔려있는 휴머니즘 덕이다. 좀비가 되기 이전 인간들은 제각기 사정이 있게 마련이고 그중에는 이기적인 인간도 이타적인 사람도 때에 따라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들이 벌이는 난투극은 단지 피만 튀는 것이 아니라 인간애가 솟아나기도 하는 것이다.

 

첫 극영화 데뷰작이 이렇게 호평을 받을 수 있을까 싶을만큼 영화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사투를 극적으로 담아냈다. 후속편이 나올지 모르겠으나 단지 스케일만 커진다고 해서 <부산행>과 같은 호응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부산행>에서 채 담지 못한 이야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마치 <부산행>의 프리퀄인 <서울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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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의 미래, 중년파산 - 열심히 일하고도 버림받는 하류중년 보고서
아마미야 가린 외 지음, 류두진 옮김, 오찬호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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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문제는 나이가 반드시 걸맞는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 젊을 때는 조금 고생해도 결혼하면 안정을 찾고 1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면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고 은퇴를 하고 나서는 벌어놓는 돈으로 여유있게 노년을 맞는게 아니다.

 

한국은 1970년대와 80년대 고도성장기를 겪었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은 경제성장은 IMF 위기를 맞아 추락하더니 지금까지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남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경제위축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면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산율을 점점 줄어들고 나이든 사람은 늘어나 실제로 일할 사람도 줄어드는 고령화사회가 시작된 셈이다. 역설적으로 일자리는 젊은이들 위주가 되고 예전에는 60이 넘어 은퇴하던 시기간 50으로 급기야는 40대까지 내려오고 있다. 노후붕괴는 기본이고 이제는 중년파산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의 중년 파산 사태를 대담과 사례위주로 엮었다. 하나하나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도리어 악랄함에서는 한국이 한 수 위다. 갑질 횡포가 대표적인 예이다. 일자리가 없다보니 고용주는 철저히 상전 노릇을 한다. 을은 그저 바닥을 길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도리가 없다. 체념만이 살 길이다. 무의미한 노동에 목숨을 거느니 차라리 신변을 정리하고 깨끗하게 목숨을 버리거나 최소한의 생활비로 우아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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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사는 집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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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한 기억은 제각각이다. 태어나서 살던 한옥집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집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천호동 단독주택일 것이다. 집 장사가 지는 흔하디 흔한 붉은 벽돌. 웃풍이 심하고 마당이라고 할 것도 없는 좁은 앞뜰이 전부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파트먼트로 이사하면서 닭장집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시멘트 블럭에 살다 죽는건 아닐까라는 공포 아닌 공포에 휩싸이던 시절 갑자기 주택 붐이 불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마당도 없이 엘리베이터로 실어나르는 네모 상자가 집일 수는 없으니까. 

 

이 책은 여러 건축가들이 직접 지어 살았던 혹은 살고 있는 집을 소개하고 있다. 이미 전작인 집을 순례하나 나 내 마음의 건축에서 익히 보여준 작가의 따스한 숨결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다소 불편하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집들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모든 집들이 마음에 든 건 아니다. 정직하게 말해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입는 옷을 일상에서 입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건축가가 지은 집은 지나치게 기능적이어서 일상의 편안함을 누리기 어렵다는 말이다. 

 

집이란 평면이 결합체다. 이 결합을 어떻게 하느냐가 집의 형태와 기능을 결정한다. 건축가는 지나치게 섬세하기 때문에 평면을 그냥 두지 못한다. 어떻게 해서든 비비꼬게 마련이다. 건축가의 눈에는 먹지게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 사는 사람에게는 노탱큐다. 편안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카무라의 글솜씨는 빼어났지만 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 집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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