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로설>의 한 장면. 우리 기준으로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지다보니 화끈하지 못하고 모든게 어설프다. 그러나 그게 바로 선덴스의 매력이다.

 

부수다 만 영화

 

하도 욕을 해대길래 정말 마음을 비우고 보았다. 일단 소감은 황당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웅다웅하던 남사친 여사친이 앙금을 풀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실물 괴물로 빙의되어 대리전을 벌인다는 설정자체가 웃겼다. 문제는 하필이면 그 장소가 한국이었다는 것. 사실은 일본을 염두에 두었다고 했는데 보기좋게 퇴짜. 할 수 없이 서울로 방향을 틀었는데 이게 웬일 정작 로케장소는 부천. 한강은 그저 배경정도로만 스쳐지나가고. 아깝다. 기왕 때려부술 거 제대로 하지 이게 뭐야. 이해한다. 이건 메이저 회사가 배급한 영화가 아니다. 선덴스 출품용이다. 온갖 이상하고 조잡하지만 뭔가가 있는 독립작품들이 출품되는. 실제로 주인공을 맡은 앤 해세웨이가 제작도 하고 직접 홍보도 할 정도였다니. 작품성에 대해 욕하는 건 상관없지만 왜 한국, 그것도 서울로 가장한 부천이 파괴의 현장이 되어야하느냐며 볼멘 소리는 하지 말자. 그건 제작비가 부족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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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7월 9일 연세대학교 노천강당에서 출발한 고 이한열 군의 장례행렬이 노제를 치르기 위해 서울시청 앞마당에 모였다. 이날 모인 약 백만 명의 군중은 고인의 뜻을 받들어 독재정권을 종식시키고 민주정부를 수립하라고 외쳤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시민들이 몰릴 것을 미리 알고 신문사의 취재나 촬영을 강제로 막았다. 그 결과 관련 사진이나 영상은 매우 드물게 남아있다. 오늘날 전해지는 자료는 대부분 시민들이 찍은 것들이다.    

 

 

그 날이 오면

 

 

<신과 함께>와 더불어 <1987>도 개봉 첫날 보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두 영화 모두 감동적이었다. 완성도 여부를 떠나 실컷 울었기 때문이다. 서울대생 박종철의 고문치사로 촉발된 민주화 운동의 열기는 연세대생 이한열의 죽음으로 최고조에 올랐고 결국 629선언으로 막을 내렸다. 다행인지 불행이지 그 모든 과정을 나는 고스란히 지켜보았고 거의 매일 아스팔트 바닥을 누볐다. 딱히 운동권이어서가 아니다. 거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학정문 앞에는 전경들이 쭉 늘어서 학생들의 가방을 뒤졌다. 학교안에는 학생들이 아니라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영화 <1987>은 그 시대를 생생하게 담아냄으로써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른바 보수 세력이 집권한 최근 9년 동안 비슷한 일을 겪었기에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권력은 검찰을 장악하여 무고한 사랍들을 잡아 넣고 언론은 받아쓰기만 강요받고 친위대를 만들어 친정부 데모를 선동함으로써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다. 촛불이 없었다면 또다시 암울한 시기를 더 오래 견뎌야만 했을 것이다.

 

<1987>은 숭고하다. 쟁쟁한 배우들이 단역이나 까메오도 마다하지 않고 출연함으로써 자칫 제작이 무너질 뻔한 위기를 극복해냈다. 본의 아니게(?) 악역을 맡은 배우들조차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악랄함을 잘 드러냈다. 특히 김윤석의 느글느글한 평안도 사투리는 빨갱이 사냥에 나선 확신범의 광기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반대편에서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최검사역의 하정우나 기자를 열연한 이희주도 돋보였다. 이밖에 수사반장 역의 박희순, 간수로 나온 유해진이나 조카역의 김태리, 수배자 김정남을 연기한 설경구 모두 그 시절로 빨려들어갈수 있도록 제몫을 다해주었다. 또 한명 박종철로 나온 여진구도 빼놓을 수 없다. 몇 안되는 장면에서도 그는 물고문 당하는 마지막 모습을 열연함으로써 왈칵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지나치게 조각조각 이어붙인듯한 영화라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한열로 나온 강동원은 작위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럼에도 실소 대신 울음이 터져 나온 것은 누구나 경험했을 역사적 부채의식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저 평범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싶은데 마음이 너무 아파. 그래서 힘들어.

 

그렇다. 우리 모두는 1987에 빚을 지고 있다. 박종철, 이한열 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위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 덕에 간신히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만약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으로 생각했다면 여전히 권력의 눈밖에 날까 숨죽이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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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8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이지 2017-12-28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급한 마음에 초고를 그대로 올렸네요. 님께서 지적해주신 내용 포함하여 전체를 고쳐 다시 올렸습니다. 행복한 연말되세요.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법자 설명충으로 나온 김성철. 주인공 제혁도 매력적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빛나는 별은 그다. 낯선 교도소 생활을 소개하는 일종의 나레이터 역할을 하면서 극에 대한 몰입도를 한껏 끌어 올린다.

 

제2의 류준열로 불리며

기로운 감빵생활을 이끄는 김성철, 흥해라!

 

금기에 대한 욕망은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살아서 경험하는 지옥이 있다면 그곳은 감옥일 것이다. 실제로 형량에 상관없이 교도소를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에 충격을 받아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결과 암묵적이든 아니든 마치 없는 시설처럼 여기곤 했다. 고작 뉴스에나 잠깐 스쳐지나가듯 정문만 등장할 뿐이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한국 드라마의 오랜 터부를 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것도 교도소 생활을 제대로 보여주었다는 측면에서. 잘나가는 프로야구 선수 제혁. 여동생의 집에 들렀다가 성폭행범을 발견하고 격투를 벌이다 그만 중상을 입히고 만다.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집행유예를 받아 마땅한데 실형을 선고받는다. 자, 이제부터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기 시작되는구나.

 

감옥하면 프리즌 브레이크를 떠올리며 치고받는 격투씬이 장렬하게 벌어지겠다고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쫌스럽고 구차하고 서로에게 심한 말을 해대지만 실제로는 주먹 휘두르기를 주저하는 쫌뺑이들이 나오니까. 그러나 그래서 더욱 실감이 난다. 왜냐하면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그리고 그들은 여하튼 죄인이니까.

 

티브이앤은 신인을 발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제혁을 연기한 박해수는 맞춤옷을 입은듯 자연스럽고 다른 감빵 친구(?)들도 얼굴이 낯설어서인지 진짜 재소자처럼 보일 정도다. 푸근한 교도관인 것 같던 성동일의 연기 변신도 놀랍다. 16부작이니 이제 절반 정도를 넘었다. 과연 어떤 또다른 변수가 등장하여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킬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제혁이 무사히(?) 퇴소하기를 바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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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새로운 전설을 예고했지만 디즈니와 결합하며서 가벼운 활극으로 전락한 느낌이 든다.

 

아무리 스케일이 크고 화려해도

 

스타워즈를 보며 함께 자라 세대가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리즈가 제작되고 있다는 건 그만큼 팬층이 두텁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인기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데 과연 그 이유는 뭘까? 물론 300백만 명을 넘기게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천만은 되어야 대히트작이라는 등식이 성립디니까. 일단 편견을 떠나 보고 판단해보자.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재미있는 영화다. 기존 작품을 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많다. 그 유명한 우주선 추격신이나 광성검 싸움은 관객을 흥분시킨다. 게다가 추억의 레이나 공주와 해리슨 포드까지. 존 윌리엄스의 웅장한 음악도 여전하다.

 

그러나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들도 만만치 않게 많다. 우선 거대한 서사가 부담스럽다. 우주 전쟁이라란 완벽한 상상의 산물이기에 비교 대상이 없다. <왕좌의 게임>이 판타지임에도 중세라는 경험이 녹아 있기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데 반해 <스타워즈>는 전혀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다. 둘째 신파가 약하다. 우리 관객은 극적인 긴장감이나 카타르시스를 해소하지 못하면 고추가루가 빠진 설렁탕을 먹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스케일이 크고 화려해도 내 이야기같지 않으면 외면한다. 셋째,  에스에프는 아이들용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차라리 인터스텔라처럼 진중한 과학이야기라면 호기심에서라도 볼 텐데 스타워즈는 어떤 영화가 나와도 거기서 거기일것이라는 지레짐작을 하게 된다. 그 결과 마니아들만 즐기는 장르가 되고 말았다.

 

깨어난 포스에 이어 라스트 제다이가 개봉되었다. 역시 예상대로 우리나라에서의 반응은 뜨뜨미지근하다. 딱히 안타까운 건 아니지만 조금 더 분발했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 디즈니가 지나치게 스타워즈를 가볍게 대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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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7-12-2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두 영화 다 재밌게 봤어요. 하지만 말씀하신 것에 동의합니다.

카이지 2017-12-27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감사합니다 저도 재미는 인정 해리슨 포드 레이나는 사족
같았지만요
 

 

 

영화 <버드 케이지>의 한 장면. 더 멋진 스틸도 많았지만 왠지 이 사진에 끌렸다. 다정함을 감추고 괜히 서먹하게 보이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제목인 <새장>이 떠올라 안쓰러웠다. 제한된 공간에서 그것도 잠긴 곳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성소수자들만이겠는가?

 

 

난 밤새도록 춤을 출 수 있어요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마련이다. 심지어 죽고 나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새 시대를 열었다면 제대로 대접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과소평가된 사람가운에 대표적인 인물은 홍석천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 동성애를 최초로 사회로 끄집어냈으며 그 대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 요식업으로 성공을 거두고 다시 방송에 나오게 되었다고 해서 그가 받은 고통이 상쇄되지는 않는다. 언젠가 홍석천을 모델로 하는 영화나 다큐가 나올 것으로 믿는다.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버드 케이지>는 동성애 영화다. 플로리다에서 퀴어들을 출연시키는 바를 운영하는 알먼드. 그에게는 알버트라는 연인이 있다. 그는 혹은 그녀는 쇼 무대에서 없어서는 안될 주인공이다. 그렇게 별 탈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안착해 평화롭게 살아가던 어느날 아들이 폭탄선언을 한다. 결혼할 여자가 생겼다고. 게다가 장인이 될 사람은 보수 꼴통 상원위원. 도저히 맺어질 수 없을 것 같은 관계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알먼드는 아들을 위해 잠시 남자행색을 하기로 한다. 곧 상견례때까지는 정상적인(?) 사람처럼 굴기로.

 

그러나 작전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우여곡절 끝에 사실은 드러나지만 중년 호모의 아들과 극우 정당 리더의 딸은 결혼을 하게 된다. 사실 결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무리 개방된 미국이라고 해도 성소수자는 을의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으니. 한가지 위안은 예술적 가치에서만큼은 언제나 소수가 맨꼭대기에 올라있다는 것. 이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 진리다. 만약 그들이 다수가 된다면 사정은 달라지겠지만.

 

참고로 호모 클럽 사장을 연기한 로빈 윌리엄스와 그의 애인으로 나온 네이슨 레인의 호흡은 기가 막히다. 둘이 진짜 동성연애아임은 물론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모를 정도로 죽이 척척 맞는다. 상원의원을 연기한 진 핵크먼도 적역을 맡아 능력의 최대치를 보여주었고 부인 역의 다이앤 위스토 두말하면 잔 소리. 진지하면서도 흐뭇하게 그리고 음악이 곁들어져 즐겁게 볼 수 있는 신나는 호모 가족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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