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7월 9일 연세대학교 노천강당에서 출발한 고 이한열 군의 장례행렬이 노제를 치르기 위해 서울시청 앞마당에 모였다. 이날 모인 약 백만 명의 군중은 고인의 뜻을 받들어 독재정권을 종식시키고 민주정부를 수립하라고 외쳤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시민들이 몰릴 것을 미리 알고 신문사의 취재나 촬영을 강제로 막았다. 그 결과 관련 사진이나 영상은 매우 드물게 남아있다. 오늘날 전해지는 자료는 대부분 시민들이 찍은 것들이다.
그 날이 오면
<신과 함께>와 더불어 <1987>도 개봉 첫날 보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두 영화 모두 감동적이었다. 완성도 여부를 떠나 실컷 울었기 때문이다. 서울대생 박종철의 고문치사로 촉발된 민주화 운동의 열기는 연세대생 이한열의 죽음으로 최고조에 올랐고 결국 629선언으로 막을 내렸다. 다행인지 불행이지 그 모든 과정을 나는 고스란히 지켜보았고 거의 매일 아스팔트 바닥을 누볐다. 딱히 운동권이어서가 아니다. 거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학정문 앞에는 전경들이 쭉 늘어서 학생들의 가방을 뒤졌다. 학교안에는 학생들이 아니라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영화 <1987>은 그 시대를 생생하게 담아냄으로써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른바 보수 세력이 집권한 최근 9년 동안 비슷한 일을 겪었기에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권력은 검찰을 장악하여 무고한 사랍들을 잡아 넣고 언론은 받아쓰기만 강요받고 친위대를 만들어 친정부 데모를 선동함으로써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다. 촛불이 없었다면 또다시 암울한 시기를 더 오래 견뎌야만 했을 것이다.
<1987>은 숭고하다. 쟁쟁한 배우들이 단역이나 까메오도 마다하지 않고 출연함으로써 자칫 제작이 무너질 뻔한 위기를 극복해냈다. 본의 아니게(?) 악역을 맡은 배우들조차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악랄함을 잘 드러냈다. 특히 김윤석의 느글느글한 평안도 사투리는 빨갱이 사냥에 나선 확신범의 광기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반대편에서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최검사역의 하정우나 기자를 열연한 이희주도 돋보였다. 이밖에 수사반장 역의 박희순, 간수로 나온 유해진이나 조카역의 김태리, 수배자 김정남을 연기한 설경구 모두 그 시절로 빨려들어갈수 있도록 제몫을 다해주었다. 또 한명 박종철로 나온 여진구도 빼놓을 수 없다. 몇 안되는 장면에서도 그는 물고문 당하는 마지막 모습을 열연함으로써 왈칵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지나치게 조각조각 이어붙인듯한 영화라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한열로 나온 강동원은 작위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럼에도 실소 대신 울음이 터져 나온 것은 누구나 경험했을 역사적 부채의식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저 평범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싶은데 마음이 너무 아파. 그래서 힘들어.
그렇다. 우리 모두는 1987에 빚을 지고 있다. 박종철, 이한열 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위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 덕에 간신히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만약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으로 생각했다면 여전히 권력의 눈밖에 날까 숨죽이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