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춘이 두 차사와 함께 망자 김자홍을 데리고 죽음의 강을 건너고 있다.

 

눈물나는 삶, 착하게 살아야 겠다

 

개봉일에 맞추어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본 기억은 대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편제>를 단성사에서 첫날 첫시간에 보고 울고 또 울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용과 상관없이 이미 눈물 흘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판소리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영화 속에 흘러나오는 가락이나 소리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신과 함께, 죄와 벌>을 보았다. 궃은 날씨에도 약 450석의 메가박스 2관은 관객들로 꽉 들어찼다. 큰 스크린으로 제대로 강상하고 싶은 열의가 끓어넘쳤다. 그중에는 이미 만화로 내용을 알고 있는 분들도 아니면 만화는 보지 못하고 영화로 접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정확히 두번 울었다. 소방관인 큰 아들의 사고사에 이어 작은 아들마저 군대 내 총기사고로 잃은 벙어리 어머니가 환몽에서 말을 하는 장면에서 그리고  덕춘이가 울며 불며 김자홍을 변호하는 에피소드에서. 내내 스펙터클로 흘러 언제끔 관객들의 눈물샘을 터뜨리게할까 살짝 걱정했는데 역시나. 일부 네티즌은 씨지와 신파의 결합이라고 하는데 그게 뭐 어떤까? 만약 작위적이라고 욕하는 감동씬이 없었다면 중국의 황당한 고대 무협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럼에도 아쉬움은 있다. 원작의 감동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영화는 스토리를 단순하고 분명하게 끌고 가야 하지만 단순히 지옥의 단계별로 이야기를 전개시킨 것은 안이한 설정이었다. 마치 판타지 게임의 단계별 레벨 싸움을 보는 듯했다. 도리어 만화가 곳곳에 극적 장치를 설치하여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연기도 모두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강림 역을 맡은 하정우는 중간에서 무게중심을 잡고 영화를 잘 끌어 나가고 있지만 이젠 좀 진부한 느낌이 들 정도로 톤이 일률적이다. 도리어 해원맥을 연기한 주지훈가 놀라웠다. 내가 알던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능청스럽고 냉정한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물론 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나 역시 압권은 김향기가 아닌가 싶다.  만화와의 싱크로율을 따진다면 압도적으로 1위다. 컷에서 당장 뛰여나온 것처럼 생생하다. 만화의 감동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녀의 연기는 큰 선물이었다. 자홍의 동생 수홍 역의 김동욱, 어머니로 분한 예수정도 적역을 맡아 탄탄한 솜씨를 보여준다.

 

반면 실망스러운 배우들도 있다. 우선 주인공 격인 자홍 역의 차태현. 착하고 성실한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어 자홍의 이중적인 면모를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중간중간 씨지를 배경으로 연기한 티가 나는 장면들도 무더기로 나온다. 그밖의 주연급 조연들도 왠지 임펙트가 약하고 곁가지로 떠도는 느낌이다. 특히 염라대왕을 연기한 이정재는 비중있는 역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카메오처럼 보인다. 이 영화를 위해 특별하게 준비한 것 없이 예전의 말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도 거슬렸다.  

 

동양의 지옥이 서양과 다른 점은 마구 괴롭히기만 하는게 아니라 살아 생전 자신이 저지를 죄를 스스로 보게 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단계마다 업경을 등장시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아마도 진짜 벌을 받는 것보다 죄를 지켜보어야 하는 것자체가 더욱 괴로운 일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결국 지옥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왜 착하게 살아야하는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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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랫집>의 배경이자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둔천동 주공아파트.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처음에는 시멘트 덩어리라고 욕먹던 외관도 시간이 흐르니 동간 간격도 널찍하고 남향이라 햇볕도 잘 들고 아름드리 나무들도 많은 쾌적한 단지로 변했다. 게다가 마지막 가는 길을 영상으로 남길 수 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소설이든 영화든 단편은 여러 이야기를 섞으면 초점이 흐려진다. 단 단서를 심어놓으면 연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드면 에이라는 글에서 마무리 못한 스토리를 비에서 이어가는 식이다. 제이티비씨 전체관람가에서 방영한 <아랫집>도 이 부류에 속한다(2017. 12. 17).

 

이경미 감독은 이른바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괴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 <미쓰 홍당무>는 여자가 주인공이면 예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께고, 물론 주연을 맡은 공효진씨는 미인이지만, 흥분하면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이상한 말을 마구 내뱉는다. 누군가는 신선하다고 좋아하겠지만 기존 문법에 익숙한 이들은 거부감이 들게 마련이다.

 

<아랫집>에서도 이런 특징이 고스란이 드러났다. 10분 남짓 짧은 영화에 다영한 변주를 구겨넣어 스토리가 매끈하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문제를 다양한 키워드로 해부하는 솜씨는 빼어나다. 겉으로는 아파트먼트에 사는 윗집과 아랫집 간의 분쟁같지만 사실은 담배를 끊지 못하는 금단증세와 이단종교에 사로잡힌 여인, 아이를 잃은 젊은 엄마의 강박이 한데 아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영애의 캐스팅으로 방송전부터 화제가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그녀의 연기는 <친절한 금자씨>의 아줌마편인 것 같아 다소 아쉬웠다. 물론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했지만 억척같이 살아가는 여인네의 느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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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가 빠진 캐리비언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캐리비언의 해적이 처음 상영되었을 때 누구나 시리즈로 계속 이어지리라고 생각했다. 소재 자체가 매력적일 뿐 아니라 잭 스페로우를 연기한 조니 뎁의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한스 짐머의 테마 음악까지. 누가 만들어도 흥행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만하다.

 

그러나 드디어 브레이크가 걸렸다. 계속 연작을 연출하던 고어 버빈스키가 물러나고 요아킴 뢰닝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과연 감독 교체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관객들은 기대반 우려반이었는데. 내 소감은 선방하느라 자신만의 칼러를 보여주는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곧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영화의 매력을 잃지 않기 위해 볼거리는 많았지만 비슷한 패턴을 반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확실한 건 후속이 나온다는 점. 크레디트가 다 올라간 후 히든 트랙이 나오니까. 문제는 조니 뎁이 다음 편도 주연을 할지 걱정이다. 이번 영화도 심한 밀당이 있었다고 하던데 만약 조니가 빠진 캐리비언은 상상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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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슬레이트>의 표지. 갱이 카드마법을 만났다. 원맨쇼에 가까운 내용이라 감정이입이 안된다. 주인공 또한 딱히 매력적이지 않다.

 

You are Dealt

 

미국 엘에이에 간 적이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산책이라도 할 생각으로 한국처럼 대충 차려입고 호텔을 나섰다. 대로를 벗어나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무렵 앗차 싶었다. 단지 길가에 사람들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뭐하 말하기 힘든 서늘한 기운이 곳곳에 내려앉아 있었다. 급하게 발길을 돌리면 표적이 될까 싶어 최대한 자연스레 오던 길로 천천히 걸어 돌아왔다. 초긴장 상태로. 결국 숙소로 돌아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서야 겨우 휴하고 한숨이 흘러나왔다. 곁에 있던 흑인부녀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처음엔 다 그래 라는 표정으로.

 

영화 <슬레이트>는 갱과 마술을 결합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범죄집단에 합류한 주인공.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배신자의 손목을 다르는 등 잔혹한 세계에 서서히 젖어들어간다. 그러나 이내 잘못된 일임을 깨닫고 벗어나려 하지만 어디 그게 쉽나? 다행히(?) 그에게는 마술이라는 능력이 있었으니 결국 멋지게 복수하고 탈출한다. 딱히 평가할만큼 돋보이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보는 내내 엘에에이가 생각나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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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깡패가 다는 아니다.

조인성, 정우성, 류준열의 어색한 조화

 

한국영화는 1990년대 들어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았다. 구매력있는 젊은 세대가 등장하고 이른바 해외파 고학력자들이 영화판에 유입도면서부터다. 그러나 진정한 전성기는 2천년대 이후라고 봐야 한다. 주제 자체에 대한 금기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곧 과거같으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소재로 요령껏 재단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더 킹>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자유로운 국가에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비록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이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고 했지만 민주화라는 기관차를 돌려버릴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창작의 자유를 제한받은 것은 사실. 한동안 기를 펴지 못했던 정치권력 드마마가 박근혜의 몰락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이는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정부, 사법, 의회의 삼권분립이 기본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흔히 민주에 치중한 나머지 공화국의 참뜻을 잘 모른다. 곧 민주화는 국민권력을 공화국은 대의체제를 상징한다. 정부와 의회는 서로간에 한 배를 탄 정치공동체인 반면 사법은 독립체이면서 두 기관의 향배에 매우 민감하게 작동한다. 1987년 이후 대통령 5년 단임제 이후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검찰권력이 순식간에 교체되기 때문이다.

 

흙수저이지만 깡 하나로 검사가 된 박태수. 정의감도 있고 권력에 대한 갈망도 큰 그는 결국 후자를 선택한다. 수사 하나를 덮어주고 중수부로 진출  한강식 부장 검사와 한 팀이 되어 출세가도를 달린다. 그러나 고향친구 최두일이 조폭이 되고 승승장구하면서 일은 꼬이게 되는데.  

 

이 영화의 재미는 우리가 잘 아는 인물이나 사건이 실명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전두환 이후 역대 대통령은 물론 삼품백화점 붕괴처럼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사고도 마치 중요한 배경처럼 화면에 나온다. 그럼에도 선뜻 와닿지 않는 이유는 깊이가 없기 때문이다. 박태수의 양심선언이나 한강식의 몰락은 느와르를 권선징악 드라마로 전락시키고 있다. 또한 워낙 잘생긴 배우들이 결합했으니 본전을 뽑자는 의도는 있었겠으나 극전개상 불필요한 장면, 이를 테면 댄스신, 들이 많아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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