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설정기능부터 꺼두세요


가끔 업데이트가 문제를 일으켜 문제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있다. 오늘(2021년 3월 23일) 오전에도 그랬다. 안드로이드의 자동업데이트로 인해 일부 앱들이 실행되지 못했다. 곧바로 대책이 나왔지만 연세가 있는 분들은 자신의 휴대전화가 고장이 난 게 아닌가 싶어 대리점을 찾았다. 


우리는 흔히 업데이트가 좋은 것인 줄 안다. 뭔가 새롭고 혁신적인 느낌을 주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업데이트는 데이터를 잡아먹고 충돌을 일으킨다. 물론 해킹이나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수시로 업데이트해야 할 때도 있지만. 문제는 자동기능을 해두면 이 둘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개통할 때부터 자동업데이트 기능이 있는 채로 받는다. 곧 쓸데없는 업데이트도 수시로 받게 된다. 


나는 업데이트에 대해서는 엄격한 편이다. 잘 쓰고 있는 노트북 윈도우 체제가 지멋대로 업데이트 하는 바람에 파일을 날린 경험이 있어서다. 이후 자동 기능을 끄고 업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알림 설정을 해놓았다.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꼭 필요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는 게 더 낫다. 그럼에도 내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동으로 업데이트되어 익숙했던 기능을 새로 익히는 불편을 겪곤 한다. 아주, 지긋지긋하다. 다행히(?) 내 휴대전화는 이번에 업데이트 재난을 피했는데, 그것 또한 마찬가지로 개통하자마자 자동기능을 끄고 모두 수동으로 돌린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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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라


살다보면 억울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이를 테면 내 잘못도 아닌데 직상 상사에게 혼이 나 고개를 조아릴 때, 친구와 사소한 말다툼 끝에 관계가 틀어지고 나서 그가 내 뒷담화를 하고 다닐 때,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 옛날 일을 끄집어 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나를 우스갯소리로 삼을 때 우리는 마음 한구석이 돌을 얹은 듯 무거워진다. 화도 아니고 울분도 아닌 이상한 감정에 잠 못 이룬다. 정답은 없지만 나름의 해결책은 있다. 회피하는 것이다. 그럴 처지에 놓이는 것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런가?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하듯 만나기 싫은 사람도 만나야 한다. 그럴 땐 결심을 해야 한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라. 상대가 받아들일지 말지는 상관이 없다. 어차피 그와의 관계는 더 나빠질 것이 없으니까. 중요한 건 당신의 자존감이 상처받지 않게 하는 거다. 자신이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는가? 그만 억울해하시라.


덧붙이는 말


이 글을 쓸 이유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학폭 폭로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작용도 있지만. 기억의 왜곡도 생길 테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등. 사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얼마나 많은 학교폭력이 있었겠는가? 직접적인 폭행은 물론이고 간접적인 따돌림까지. 성인이 되고 보면 우스꽝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폭력이 우습다는 게 아니라 그 짓거리를 하는 애들이 무섭고 두려워 피해 다녔다는 게 말이다. 다시 내가 그 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적어도 과거와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피해자 처지에서 학창시절의 폭행을 털어놓은 사람은 이미 절반의 억울함을 덜었을 것이다. 법적인 처분은 둘째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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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결심을 했다.


흔히 갑질하면 손님을 떠올리지만 가게 주인이나 점원이 하기도 한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기사거리가 안되니 보도하지 않을 뿐이다. 손님은 약자가 아니니까. 오늘 쇼핑센터 직원의 갑질을 당했다. 상세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중요한건 그냥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소리를 지르거나 대표를 부르라고 고함을 치지는 않았다. 자초지종을 충분히 이야기했는데도 태도에 변화가 없어 이름을 물었다. 그리곤 바로 고객센터로 향했다. 내가 당한 부당함을 토로하고 책임져줄 사람과 3자 대면을 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셋이 만났다. 해당 직원은 여전히 짜증과 화가 얼굴에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 고객을 개처럼 대하는 사람이 오죽하겠는가? 회사를 대표해서 나온 사람은 직원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좋게 좋게 마무리하기를 바랬다. 이 또한 예상했다. 참고로 직원은 협력사에서 파견 나온 사람이었다. 내가 조금만 실수를 해도 진상 고객으로 몰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그 순간 나는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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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그래미상의 최대 관심은 비티에스의 수상여부였다. 적어도 아미와 우리나라에서는. 결과는 불발. 이런 저런 말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 주는 사람 마음이다. 곧 투표권을 가진 미국 음반 제작사들의 취향이 반영된 결론이다. 다만 빌보드 1위를 차지한 점과 세계적인 인기를 고려하여 라이브 스테이지를 마련한 점은 고무적이다. 그것도 순서를 바꿔가며 맨 마지막 피날레에. 


만약 비티에스의 기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언젠가 그래미도 두 손을 들 것이다. 그 때는 피처링이나 퍼포먼스와 같은 기타 상이 아니라 이른바 메인 상인 올해의 노래나 앨범으로 정상에 우뚝 설 것이다. 실제로 실력이면 실력, 인기면 인기 뭐 하나 빠질 것 없던 테일러 스위프트도 상을 받지 못해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그러나 한번 탑에 오르고 나니 대중적 인기가 다소 떨어져도 계속 본상을 받고 있다. 물론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에게 더 기쁜 소식은 리처드 용재 오닐이다. 물론 그의 국적이 미국이며 한국말을 거의 못하지만 이런 불리함(?)을 뛰어넘는 게 바로 비올라 실력이다. 비올라는 오랫동안 푸대접을 받은 악기다. 심지어 바이올린에 실패한 이들이 택하는 대체악기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실제로 엘리엇 가드너도 이 과정을 거쳤다. 결국 그의 최종 목적지는 지휘였다. 그의 수상은 비올라의 위상을 높였다는 점에서도 큰 성과다. 그렇다면 리처드가 받은 수상 항목은 무엇일까? 정확하게는 베스트 클래시컬 인스트루멘털 솔로다. 놀라운 점은 세 번째 도전 끝에 받은 성과였다. 곧 그래미는 일종의 공로상 성격이 강하다. 한번 반짝 성공해서는 자격이 없는 셈이다. 노벨상도 마찬가지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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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이 아니라면서 언론자유를 외치다니


비판과 부정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줄곧. 그러나 이 둘 사이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비판을 오래하다보면 부정적이 되기 마련이다. 평소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이 있었다. 일본 뉴스 방송을 번역하여 보여주는데 늘 그들의 속내를 비꼬곤 했다. 예를 들어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자 그 의미보다 한국의 지하방을 소개하는 것에 혀를 차는 식이다. 제 눈의 티는 보지 못하고 항상 한국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일본 방송 태도에 나 또한 화가 났다. 문제는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그런 뉴스들만 접하다보니 슬슬 짜증이 났다. 내가 즐겨 보는 야후재팬의 한국 소식과는 사뭇 논조가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작권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식 항의가 들어오자 그 후부터는 방송 전체를 내보내지 못하고 부분 편집으로 대체하고 있다. 


한 때 김어준의 라디오방송을 즐겨 듣곤 했다. 거리낌 없이 썰을 푸는 맛에 중독되어서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집권 세력을 수호하는 방패막이로 돌변했다. 항상 까기만 하던 사람이 이제는 방어만 한다. 그것도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골라 내세우면서. 개인 유튜브 방송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가지만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에서까지 그런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두 경우는 언론의 기본 기능을 망각한 탈선이다.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사실에 근거해 비평을 가해야 한다는. 물론 그들 스스로가 자신이 언론인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언론자유라는 미명아래 편향된 말을 하고 있지 않는가?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언론인이 아니라면서 언론자유를 외치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말은 자기들 끼리나 해라, 공공장소에서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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