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잘못 쓰는 우리말을 지적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이 말은 사투리이니 쓰지 말고, 이건 잘못된 발음이니 저렇게 발음해야 하고... 하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한번 살펴볼까?
갈매기살은 표준말이다. “돼지의 가로막 부위에 있는 살”을 뜻한다. 처음 이 말을 들으면 갈매기 고기인 줄 알기 십상이다. 원래는 횡경막과 간 사이를 막고 있는 살이라 하여 “간막이살” “가로막살”이라 했는데, 그 발음이 변해 갈매기살이 되었다 한다. 내 짐작으로는,

간막이살 → 간매기살 → 갈매기살

아니면

가로막살 → 가로막이살 → 갈막이살 → 갈매기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갈매기살도 원래 “간막이살”이나 “가로막살”의 잘못된 발음 아니었겠는가? 잘못된 발음이 돌고 돌아 표준말로 된 것이다.

그리고 외국어의 일본식 발음이라 하여 잘못되었다고 하는 말도 있다. 얼마 전 국립국어원과 동아일보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http://www.malteo.net/)에서, 영어 ‘플루크(fluke)’에서 유래한 フロック, 곧 후루꾸, 후로꾸, 뽀로꾸, 뽀록 등을 대체할 우리말을 공모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다른 경우는 그렇다 해도, “뽀록났다” 정도는 이미 우리말에 포섭되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고구마”도 일본말에서 오지 않았나 말이다.

식민지 경험 탓에, 일본어는 풍요롭고도 아름다운 우리말을 많이 해쳤다. 그래서 뜻이 또렷이 전달되면서 발음도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되살리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세 이전 한국어에 중국어가 큰 영향을 미쳤듯이(“김치”도 침채沈菜라는 중국 한자어에서 온 말이다), 현대 한국어에 일본어가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말끝에 다, 나, 까가 붙는 것, 그것도 일본어의 영향이다. 국어 시간에 배운 옛 글 중에 -다, -나, -까로 끝나는 말이 어디 있었는가? (혹시 제가 잘못 아는 거라면 지적해주세요.) -다, -나, -까로 끝나는 말투는 일제 강점기 현대 소설에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오늘날 -다, -나, -까로 끝나지 않는 문장을 생각할 수 있을까? (간혹 “-오”나 “-요”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은 외부의 영향을 받아, 또 세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또 때로는 외래어의 발음이 원어에 충실하지 않다고 해서 틀렸다고도 한다. 사실 한 언어의 발음 체계는 다른 언어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원어에 가깝게 표기한다 해도 정확히 재현할 수는 없다. radio를 ‘뢰이디오우’라 쓰고 그대로 읽는다 해도, 억양과 혀놀림을 영어식으로 하지 않으면 우리말을 모르는 미국이나 영국 사람은 우리가 radio를 말하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일일이 뢰이디오우라고 쓰고 말하려면 얼마나 번거롭겠는가? 그래서 radio는 영어이고, 라디오는 한국말이다. 외래어는 외국 사람과 소통할 때 쓰는 말이 아니라,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Munchen(뮌헨)을 영어에서는 자기네 식대로 Munich(뮤닉)이라고 읽고 쓰듯이, ramp가 “남포”가 되고 tobacco가 “담배”가 되고 no touch가 “노다지”로 되었듯이, 나는 can을 말할 때 캔보다는 “깡통”이, gang을 말할 때 갱보다는 “깡패”가, partizan을 말할 때 파르티잔보다는 “빨치산”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다. 외래어는 같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이 듣고 말하기 편하게, 해당 언어의 발음체계에 맞게 쓰면 그만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carol을 왜 꼭 “캐럴”이라 써야 하는지(“캐롤”이 더 친숙한데), chocolate을 꼭 “초콜릿”이라고 해야 하는지(“초코렛”이 더 말하기 쉬운데)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말인데, 방송에서 “‘바래요’라 하지 말고 ‘바라요’라고 하세요.” “‘개발새발’이라고 하지 말고 ‘괴발개발’이라고 하세요.” 같은 소리나 하지 말고, 코미디나 쇼 프로그램에서 마구 쏟아내는, 한국말 같지 않은 말이나 잡아주면 좋겠다. 심지어 뉴스에서 아나운서들이 버젓이 말하는 “회의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같은 말. 회의를 어떻게 가지냐 말이다. 회의는 하거나 열거나 개최하거나 하는 것이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have a meeting을 번역해서 그렇게 쓰는 모양인데, 그냥 모여서 의논하기로 했다고 하면 뜻도 분명하고 더 알아듣기도 쉬운데 왜 굳이 외국어를 번역해서 말할까? 그리고 이제는 보통 사람들도 다 쓰게 된 말, “업됐다.” 이제는 널리 쓰여 곧 국어사전에도 올라갈지 모르지만, 나는 처음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는 참 어색했다. 기분이 좋아졌어요, 흥분했어요, 들떴어요, 날아갈 것 같아요, 등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을 up, 이 한마디로 끝내버린다. 글자로 쓸 때야 쉽지만, 말로 하기에는 발음도 별로 편치 않은데(업뙈따, 업뙈서, 업뙈써요 등등), 왜 굳이 저런 말을 쓸까? 저 순간을 표현할 수 있는 한국말 표현이 없어서? 

글이 길어졌네. -.-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언어가 풍부하고 다양해지는 건 좋아 좋아, 단순화 표본화는 싫어 싫어. (그렇다고 맞춤법이나 외래어표기법이 필요없다 생각하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발음이 조금씩 다르듯이 글도 다 다르게 쓴다면 글 읽는 사람끼리 소통하기 어려울 테니. 단지 사람마다 지방마다 다를 수 있는 사소한 발음 차이에 집착하지 말고, 그보다는 우리말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나타나는 더 큰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달라 이 말씀!)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5-09-08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일본어에 한정해서 말하는 거...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열등감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화는 중국을 통해 들어와 한자표시로 되었고 텔레비전은 일본을 통해 들어와 테레비가 되었다고 하는데 전화도 엄밀히 따지면 우리가 만든 말도 아니고 우리가 발명한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것은 좋은 것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진짜 우리 것이 지금 얼마나 되겠어요. 담배도 안되고 빵도 안되고... 그런데 노다지는 왜 가만두나 몰라요...

숨은아이 2005-09-08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제로 이식된 것이 워낙에 뿌리 깊게 박혀 있으니까요... 쩝.

릴케 현상 2005-09-08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수록 숨은아이님이 전문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데요^^

숨은아이 2005-09-08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뭐 그냥 평소 생각입니다.

릴케 현상 2005-09-0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 전문가^^

숨은아이 2005-09-09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쑥스럽습니다. ^^
새벽별님/앗, 왜, 왜요? 늘 저를 응원해주시는 새벽별님 만세~!

chika 2005-09-09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추천을 안한거 같아요!

숨은아이 2005-09-09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헤헤, 감사!!
 

죽갓, 죽신, 죽치.
이건 무슨 말일까? 대나무로 만든 물건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다.
죽갓은 “막 만들어 여러 죽씩 헐값으로 파는 갓”이고,
이란 “옷, 그릇 따위의 열 벌을 묶어 이르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죽신은 “아무렇게나 대량으로 만들어서 여러 죽씩 헐값으로 파는 신”이고,
죽치는 죽갓이나 죽신처럼 “날림으로 여러 죽씩 만들어 내다 파는 물건”을 말한다.
그러니까 그다지 공들이지 않고 만들어,
열 개 스무 개씩 묶음으로 내다파는 물건을 죽치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치라는 말에서는 싸구려 불량품 냄새가 난다.
갓이나 신이나 하나씩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짓고,
꼭 맞는 사람에게 하나씩 파는 것이라야 죽치가 아니겠다.
그런데 요새는 회사에서 하나씩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만들려 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구박을 받는다.
장인을 키우지 않는 세상이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과 표준국어대사전을 보고 쓴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진주 2005-09-08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그럼 대충 쓴 리뷰는 <죽리뷰>
아무렇게나 쓴 페이퍼도 <죽페이퍼>
장인 정신이 필요한 게야, 리뷰에도 페이퍼에도......끙..

물만두 2005-09-08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이 단위였군요^^;;;

숨은아이 2005-09-0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하하, 리뷰를 열 개씩 대충 날려 쓰고 한꺼번에 주르륵 올린다면 죽리뷰라고 할 수 있겠네요. ^^
만두 언니/단위 이름 중에서도 모르게 참 많아요. 그죠? ^^

미설 2005-09-0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회사분위기가 그렇군요..헐.. 얼마전 조선인님 회사 분위기에도 갸우뚱 한적이 있었는데요. 아마 다시 사회에 복귀(뭔 군인이 일반인 되는 느낌^^;)하면 적응하는데 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선인 2005-09-08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우리 회사 분위기가 유독 요상한 거에요.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한답니다.
뭐, 군대문화 만연이 심각하긴 하죠. -.-;;

숨은아이 2005-09-08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설님/제가 아는 회사들이 그렇다는 거죠... 제가 섣불리 일반화했군요. ^^
조선인님/"대한민국은 군대다"라나요. ( ")(.. )

숨은아이 2005-09-08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새 댓글 다신 새벽별님/으하하! 그것도 다 재주가 있어야... 전 못 해요. ㅠ.ㅠ

미설 2005-09-0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일반화로 느낀건 아니여요.. 어쨌든.. 들리는 소리들이 다 비슷한듯도 하여 저런 생각이 들었어요.

숨은아이 2005-09-09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설님/"장인을 키우지 않는 세상"이란 제 말이 그렇네요. 회사 몇 군데에서 장인정신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하여 세상 전체가 그렇다고 했으니 말여요. 조선인님이 회사에서 들으셨다는 말은, ㅎㅎ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일 가지고 너무 열심히 하면 본인 몸과 마음만 힘들다는 뜻이겠지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995년에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신문에서 이 책에 관해 짤막하게 소개한 걸 보고 호기심이 당겼지만, 미처 책을 사지도 읽지도 못하는 사이에 잊고 말았다. 그러다 10년 만에 다른 제목으로 탈바꿈한 책을 만난 걸 보니, 책도 윤회하는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든다.

읽기 전에, 연애의 전 과정을 예리하고 발랄하면서도 철학적으로 이르집은 책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과연 그러했다. 다만 생각보다 신랄하지 않았는데, 바로 그랬기 때문에 그냥 즐겁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지 않나 한다. 해답이 없는 부분은 가볍게 넘어가고(이를테면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적 순간”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럼에도 곧 후회하고 화해하는 이유는 파고들지 않았다.), 이기적인 욕망은 가볍게 긍정하며, 권태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즐겁고 유쾌하고, 그걸로 끝나나 했는데, 섬광처럼 빛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165쪽에서 176쪽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정체성이 관계에 따라 변한다는 걸 깨닫게 해준 대목이다. 이 책에선 “사랑”만 가지고 이야기하지만, 반드시 애인 사이일 필요는 없다. 애인이나 부부가 아니라면 그 친밀성이나 독점욕은 덜하겠지만, 서로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고받는 건 마찬가지다. 클로이는 혼자만의 시간을 찾아 사막으로 떠났다. 사막에는 클로이라는 사람을 비춰주는 거울(곧 한 사람의 행동이나 태도를 비춰주는 다른 사람의 반응)이 없었고, 거울이 없으니 “상상력은 우리의 얼굴에 베인 상처나 점을 자기 마음대로 꾸며내게 된다.” “그러자 그녀의 상상력이 그녀를 장악하여, 그녀를 괴물 같은 존재로 부풀려버렸다.”

우리는 스스로를 볼 수 없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나 자신을 온전히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사람이 된다. 직장에서 궁합이 맞지 않는 상사와 함께 있을 때의 나, 그리고 자유 시간에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있는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똑같은 일을 보고 전혀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싫어하는 상사가 열심히 일하는 내 자리 바로 앞에서 큰 소리로 전화 통화하면 내 일을 방해하는 무례한 행동이라 생각하고 성질을 내지만, 좋아하는 친구가 거리에서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나는 때로 신경질적이고 편협한 사람이 되었다가, 순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곤 한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진심이기 때문에, 그걸 내숭이나 위선이라고 한다면 마음이 괴로울 것이다. “어떤 눈도 우리의 ‘나’를 완전히 담을 수는 없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딱 이거다. 그렇다고 난 왜 나를 모를까 뒹굴지 말고,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 이러이러한 사람이야, 하고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나름대로 귀여운 생물이라는 걸 받아들임이 어떨까.

(참, 그 "마르크스주의적인 사랑"에 왜 "마르크스주의"란 꼬리표를 붙였는지 잘 이해 안 된다. 그리고 아마 원서엔 romantic이라고 되어 있었을 부분을 다 "낭만적"이라고 옮긴 것도 좀... 이때의 romantic은 romance에 대한, 곧 연애에 관한 것일 텐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원제 Essays in Love  (1993)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지은이), 정영목 (옮긴이) | 청미래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09-05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09-06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결론이 '타타타'로 귀결되는군요. 하여간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나간 사랑 스토리들을 떠올리며 어쩜 그리도 정확히 짚어내는지 감탄했던 기억이.... 근데 이게 십이년 전에 나온 책이군요!!

로드무비 2005-09-06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사람이 된다.
맞아요, 맞아.
그러고 보면 사랑도 우정도 상대적이죠.
그런데 또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죠.
(문제인가, 다행인가? 어떻게 생각하세요?^^)

숨은아이 2005-09-06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공감 고마워요. 번역가가 번역을 잘하신 것 같아요. 글이 잘 읽혀요.
마태님/아, 그 노래 제목이 "타타타"로군요! 기억이 안 났어요. ^^
로드무비님/서로 다른 사람이 되면서도 변하지 않는 줄기도 있고... 변하지 않는 줄기에 비추어 자신을 반성하며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수 있으니까 다행인 것도 같고... 아, 모르겠어요. ^^

내가없는 이 안 2005-09-13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어쩜 이렇게 귀여운 생물처럼 리뷰를 쓰셨어요? ^^ 전 주위에 아주 독특한 사람이 하나 있는데요, 꼭 이 리뷰에 걸맞는 사람이에요. 전혀 모르는 시각으로 보면 천방지축 싸움꾼이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주책쟁이인데, 알고 보면 정말 보들보들한 카스테라 같은 사람이거든요. 리뷰를 읽다 보니깐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사람'에 관한 한 전적으로 동감이어요! ^^

숨은아이 2005-09-13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귀엽다구요? ㅎㅎ 좋아라~
 

얼마 전에 “피아노의 숲” 독후감을 쓸 때 일이다.

그는 아들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고 자신의 경쟁심을 아들에게 대물림하려 하는 대신,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그 한계를 깨뜨리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쓰고는 멈칫했다. “...대물림하려 하는 대신...”에서, 저 “대신”이란 표현이 적절한가?

저 문장에서 “그는 아들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고 자신의 경쟁심을 아들에게 대물림하려 한다.”를 A,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그 한계를 깨뜨리고자 노력한다.”를 B라 할 때, 나는 “대신”이라는 말을 A를 부정하는 접속사로, 곧 A는 하지 않고, 그 대신 B를 한다는 뜻으로 썼다.

그런데 좀 다르게 읽으면, “그는 아들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고 자신의 경쟁심을 아들에게 대물림하려 하고” 그 대신 “스스로의 한계 때문에 고민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그 한계를 깨뜨리고자 노력한다.”라는 뜻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곧 A도 긍정하고, B도 긍정하는 의미로 읽힐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저 “대신”이라는 말이 쓰이는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밥 먹을게. 대신 너는 고기 먹어.”
“이 책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대신 다음에 다른 책으로 한 권 드리죠.”
“그럼 영화도 보고 연극도 보자. 대신 영화는 내가 고를게.”

여기서는 두 문장 사이에서 “대신”이란 말이 앞뒤 문장을 모두 긍정하는 뜻으로 쓰였다. A를 하지 않고 B를 하는 게 아니라(밥을 안 먹고 고기를 먹는 게 아니라), A도 하고 B도 하자(나는 밥을 먹고 너는 고기를 먹자), 말하자면 서로 원하는 걸 긍정적으로 주고받자는 뜻으로 “대신”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그럼 “대신”이란 말이 앞의 말을 부정하는 경우는 없는가? 아니, 있다.

“나 대신 동생이 가기로 했어.”
“책상은 초록색 대신 파란색으로 칠하자.”

이때는 “대신”이라는 말이 앞의 말을 부정한다. 내가 가지 않고(부정) 동생이 가며(긍정), 초록색으로 칠하지 말고(부정) 파란색으로 칠하자(긍정)는 뜻이다.

그렇다면 명사(나 대명사, 수사) 사이에 “대신”을 쓸 경우에는 앞의 말을 부정하고, 문장 사이에 “대신”을 쓸 경우에는 앞의 말도 긍정한다, 이렇게 정리해도 될까? 그래서 독후감의 저 문장은 이렇게 고쳐 썼다.

아버지는 거만한 권위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한계 때문에 고민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그 한계를 깨뜨리고자 노력하는 선량한 인간이다. 그는 아들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경쟁심을 아들에게 대물림하려 하지도 않는다.

내가 처음에 “대신”이라는 말을 문장 사이의 접속사로 쓴 것은, 영어의 관계대명사 용법을 따라 쓴 것이란 생각이 든다. 번역문체가 자연스럽게 나와버리는 것, 그것이 문제로세. 번역문체로 써서 말하고자 하는 뜻이 더 명확해지면 좋겠으나, 저렇게 뜻이 모호해져버린다면, 쓰지 말아야 할 일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호랑녀 2005-09-05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문가께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__) ^^

숨은아이 2005-09-05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존경까지... 모르는 거 틀리는 거 많습니다. ^^;;; 그리고 속삭이신 님, 잘됐네요. ^^

마태우스 2005-09-05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저한테 고마워하실 건 없습니다. 다 서로 돕는 거 아니겠습니까
호랑녀님/존경씩이나..부끄럽습니다. 전 그냥 평범한 범녀일 뿐입니다
숨은아이님/잘됐다니 다행입니다.

숨은아이 2005-09-05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푸핫! 마태님이 "범녀"이신 줄은 몰랐어요!

진주 2005-09-05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은 범녀 아니시고....馬女.

숨은아이 2005-09-0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으아, 그렇겠군요! >ㅂ<
 

평소 EBS를 즐겨 보지 않는 터라 모르고 지나갈 뻔하다가, 서재인들께서 알려주셔서 올해는 한번 작정하고 보자 생각했더랬다. 작년에도 어영부영하다가 한 편도 못 보고 넘어갔으니. 그러나 일하고 딴전 피우다 보니 올해도 제대로 본 건 몇 안 된다. 그런데 어젯밤에 월요일에 뭘 보긴 했는데 그게 뭐였더라 한참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뒀다간 본 것도 스르르 잊겠다 싶어 간략히 모아놓는다.

8. 29. (월)
21:35 ~ 23:00 죽음의 제사장 (65') 
중간부터 보았다. 옆지기 말로는 캄보디아에 킬링필드는 두 번 있었다. 널리 알려진 크메르 루주의 대학살, 그리고 그 전에 미군의 융단폭격. 그런데 킬링필드를 이야기할 때 거의 항상 미군의 공격 이야기는 쏙 빼고 크메르 루주의 학살만을 문제 삼는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이다. 당시 크메르 루주의 말단 행동대장이었던 남자는 자기 마을의 많은 사람을 죽인 장본인으로 지목되지만, 크메르 루주가 베트남군의 공격을 받고 몰락한 뒤 마을 사람들은 이 남자를 용서한다. 이후 이 남자는 농사를 짓는 한편,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다. 그도 역시 무지하고 순진한 농민이었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인정할 줄 알아야 용서도 받을 수 있다.

23:00 ~ 23:50 EBS 기획다큐멘터리 : 바이러스와의 인터뷰 (50')
유행성 출혈열이란 무서운 병이구나... 그리고 한탄바이러스를 발견, 백신을 만들어냈다는 이호왕 박사도 팔목에 건강 팔찌를 하고 있었다! ^^

9. 1. (목)
13:30 ~ 14:00 거장이 만난 채플린 : 뤽 다르덴, 장 피에르 다르덴의 <모던 타임즈> (30')
중간부터 보았다. 영화 속 찰리 채플린은 창백하고 왜소한데, 실제 찰리 채플린은 너무 멀쩡한 금발 미국인이라 놀랐다. (영화 속 모습이 더 좋다. -.-) 뤽 다르덴과 장 피에르 다르덴의 말로는, 찰리 채플린은 영화 속에서 늘 고독한 방랑자인데, 이 영화만은 마음 맞는 여자와 함께 길을 떠나는 걸로 끝난다고 한다. 그 여자(배우 폴렛 고다르Paulette Goddard)는 찰리 채플린 영화에서 유일하게 채플린과 대등한 비중을 차지한, 적극적인 캐릭터라고.

9. 4. (일)
15:30 ~ 16:50 진실을 찾아서 : 72년 미대통령 후보, 흑인여성 치솜 (77')
이것도 중간부터... (처음부터 제대로 본 게 없군. -.-) 셜리 치솜, 이런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 놀라운 여성이다. 올 EBS 다큐 축제는 내게 셜리 치솜을 알려준 것, 그 하나만으로도 매우 의미가 깊다. 그는 말한다. “나는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 여성, 흑인 여성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나는 20세기에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애썼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20:40 ~ 22:25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105')
중간부터. 전에 극장에서 보았는데, 다시 보는 기분이 새로웠다.

22:25 ~ 24:40 기적의 칸딜 (133')
“음악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라니, 순수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란 뜻인가? 연출된 다큐멘터리라는 뜻인가? 아프리카에서 정체성을 찾는 브라질 음악인들, 그들이 가난한 마을의 공동체 운동과 결합해서 멋진 음악을 만들어낸다. 잘 모르지만,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들은 쿠바 음악이 역동적이고 민속적이라면, 브라질 음악은 좀더 부드럽고 로맨틱한 것 같다. 젊은이들은 계속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중간중간 지루한 부분도 있지만 음악만은 대단했다.

24:40 ~ 02:40 마지막 왈츠 (117')
자라면서 팝송은 들었어도 남미 음악은 듣질 못했다. 그 탓에 로큰롤은 편안하다. 하지만 줄창 음악 다큐 세 편을 보았더니 나중엔 좀 지겹더라.


죽음의 제사장 / Deacon of Death-Looking for Justice in Today's Cambodia
감독 : Jan van den Berg / Editor : N.A
방송 시간 : Aug 29 / 21:35

어린 시절 폴포트 정권의 극악함을 30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지 못하고 살고 있는 여인 속치는 어느날 감옥에서 그녀를 담당했던 감시관을 우연히 만난다. 그는 그녀의 가족 모두를 살해한 사람이었다. 속치는 그의 범죄를 법정에 세울 계획을 세우지만 아직 캄보디아에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바이러스와의 인터뷰 / An Interview with Virus
감독 : Yeongyu Lee / Editor :
방송 시간 : Aug 29 / 23:00

이 다큐멘터리는 1976년 한국의 과학자 이호왕이 발견한 한탄바이러스가 한국에 들어와 한 연구팀에 의해 정복되기까지 시간을 쫒아가 봤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숙주를 죽이는가' 바이러스의 존재론적 의미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



뤽 다르덴, 장 피에르 다르덴의 <모던 타임즈> / Chaplin Today: Luc & Jean-Pierre Dardenne "Modern Times"
감독 : Serge Toubiana / Editor :
방송 시간 : Sep 1 / 13:30

1999년 <로제타>로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벨기에의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은 <모던 타임즈>를 회고한다. "톱니바퀴 속 떠돌이 찰리의 모습은 카메라 속의 배우와 같다. 즉 이 영화는 영화에 관한 영화이다. 산업화와 기계화에 물든 영화의 연대기를 묘사한 작품이다."

 

72년 미대통령 후보, 흑인여성 치솜 / Chisholm '72 - Unbought & Unbossed
감독 : Shola Lynch / Editor : Sam Pollard, Sikay Tang
방송 시간 : Sep 4 / 15:30

1972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브루클린 국회 위원인 셜리 치솜은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 후보였다. 이 엄청난 사건에는 음모와 술수, 열띤 지지가 뒤엉켜 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 Buena Vista Social Club
감독 : Win Wenders / Editor :
방송 시간 : Sep 4 / 20:40

1996년 쿠바 음악에 심취한 유명한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는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실력은 가장 뛰어난 쿠바의 뮤지션들을 모아 앨범을 녹음했는데 이것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앨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이 앨범의 국제적인 성공을 통해 국내외에서 오랫동안 간과되어 온 베테랑 뮤지션들의 이력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기적의 칸딜 / Miracle of Candeal
감독 : Fernanado Trueba / Editor :
방송 시간 : Sep 4 / 22:25

85세의 쿠바 출신 피아니스트인 베보 발데스는 40년간 스톡홀름에서의 망명 생활 후 아프리카 음악과 종교가 순수한 형식으로 보존되고 있는 브라질의 살바도르 데 바히아를 여행한다. 그곳에서 음악가 마테우스를 만나게 되고 마테우스는 발데스에게 살바도르의 아프로-바히안 마을을 소개한다. 그곳만의 특별한 칸딜은 음악학교이자, 헬스센터이며 사운드 스튜디오이다.



마지막 왈츠 / Last Waltz
감독 : Martin Scorsese / Editor : N.A
방송 시간 : Sep 4 / 24:40

토론토에서 결성되어 1976년 해체한 더 밴드 락 그룹의 마지막 공연 '라스트 왈츠'의 공연 실황과 그 뒷이야기를 담은 마틴 스콜세지의 뮤직비디오다. 밥 딜런, 에릭 클랩튼, 닐 다이아몬드, 닐 영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더 밴드의 마지막 공연에 참여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숨은아이 2005-09-05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 영화.









벽 / Wall
감독 : Simone Bitton / Editor :
방송 시간 : Aug 29 / 13:50

감독은 유대인이면서 아랍인이라는 이중 정체성을 표방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증오의 벽을 허물고자 시도한다. 작품은 세계적 유적지를 파괴하며 사람들을 갈라놓고 있는 분단선을 독특한 방식으로 접근하여 그려낸다.


시작하는 장면만 보았다. 이스라엘 쪽 벽면에는 마티스의 춤 그림을 변형해서 참 아름답게 그려놓았다. 그 너머 팔레스타인 쪽 벽면은 회색 시멘트뿐이다. 다 보지 못한 게 아쉽다. 지금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는 가자와 요단 강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 군대와 정착촌을 철수케 하는 한편, 이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시멘트벽으로 빙 에워싸고 있다. 어제 KBS 스페셜에서 <가자 철수, 샤론의 도박>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내용을 보니, 이스라엘군에서는 정착촌 주민들이 마을 밖으로 나가도록 한 다음, 공공건물만 빼고 주민들이 살던 집은 다 때려 부순다. 저 집들을 굳이 부술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네가 살던 집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한다. 치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