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EBS를 즐겨 보지 않는 터라 모르고 지나갈 뻔하다가, 서재인들께서 알려주셔서 올해는 한번 작정하고 보자 생각했더랬다. 작년에도 어영부영하다가 한 편도 못 보고 넘어갔으니. 그러나 일하고 딴전 피우다 보니 올해도 제대로 본 건 몇 안 된다. 그런데 어젯밤에 월요일에 뭘 보긴 했는데 그게 뭐였더라 한참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뒀다간 본 것도 스르르 잊겠다 싶어 간략히 모아놓는다.

8. 29. (월)
21:35 ~ 23:00 죽음의 제사장 (65') 
중간부터 보았다. 옆지기 말로는 캄보디아에 킬링필드는 두 번 있었다. 널리 알려진 크메르 루주의 대학살, 그리고 그 전에 미군의 융단폭격. 그런데 킬링필드를 이야기할 때 거의 항상 미군의 공격 이야기는 쏙 빼고 크메르 루주의 학살만을 문제 삼는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이다. 당시 크메르 루주의 말단 행동대장이었던 남자는 자기 마을의 많은 사람을 죽인 장본인으로 지목되지만, 크메르 루주가 베트남군의 공격을 받고 몰락한 뒤 마을 사람들은 이 남자를 용서한다. 이후 이 남자는 농사를 짓는 한편,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다. 그도 역시 무지하고 순진한 농민이었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인정할 줄 알아야 용서도 받을 수 있다.

23:00 ~ 23:50 EBS 기획다큐멘터리 : 바이러스와의 인터뷰 (50')
유행성 출혈열이란 무서운 병이구나... 그리고 한탄바이러스를 발견, 백신을 만들어냈다는 이호왕 박사도 팔목에 건강 팔찌를 하고 있었다! ^^

9. 1. (목)
13:30 ~ 14:00 거장이 만난 채플린 : 뤽 다르덴, 장 피에르 다르덴의 <모던 타임즈> (30')
중간부터 보았다. 영화 속 찰리 채플린은 창백하고 왜소한데, 실제 찰리 채플린은 너무 멀쩡한 금발 미국인이라 놀랐다. (영화 속 모습이 더 좋다. -.-) 뤽 다르덴과 장 피에르 다르덴의 말로는, 찰리 채플린은 영화 속에서 늘 고독한 방랑자인데, 이 영화만은 마음 맞는 여자와 함께 길을 떠나는 걸로 끝난다고 한다. 그 여자(배우 폴렛 고다르Paulette Goddard)는 찰리 채플린 영화에서 유일하게 채플린과 대등한 비중을 차지한, 적극적인 캐릭터라고.

9. 4. (일)
15:30 ~ 16:50 진실을 찾아서 : 72년 미대통령 후보, 흑인여성 치솜 (77')
이것도 중간부터... (처음부터 제대로 본 게 없군. -.-) 셜리 치솜, 이런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 놀라운 여성이다. 올 EBS 다큐 축제는 내게 셜리 치솜을 알려준 것, 그 하나만으로도 매우 의미가 깊다. 그는 말한다. “나는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 여성, 흑인 여성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나는 20세기에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애썼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20:40 ~ 22:25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105')
중간부터. 전에 극장에서 보았는데, 다시 보는 기분이 새로웠다.

22:25 ~ 24:40 기적의 칸딜 (133')
“음악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라니, 순수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란 뜻인가? 연출된 다큐멘터리라는 뜻인가? 아프리카에서 정체성을 찾는 브라질 음악인들, 그들이 가난한 마을의 공동체 운동과 결합해서 멋진 음악을 만들어낸다. 잘 모르지만,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들은 쿠바 음악이 역동적이고 민속적이라면, 브라질 음악은 좀더 부드럽고 로맨틱한 것 같다. 젊은이들은 계속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중간중간 지루한 부분도 있지만 음악만은 대단했다.

24:40 ~ 02:40 마지막 왈츠 (117')
자라면서 팝송은 들었어도 남미 음악은 듣질 못했다. 그 탓에 로큰롤은 편안하다. 하지만 줄창 음악 다큐 세 편을 보았더니 나중엔 좀 지겹더라.


죽음의 제사장 / Deacon of Death-Looking for Justice in Today's Cambodia
감독 : Jan van den Berg / Editor : N.A
방송 시간 : Aug 29 / 21:35

어린 시절 폴포트 정권의 극악함을 30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지 못하고 살고 있는 여인 속치는 어느날 감옥에서 그녀를 담당했던 감시관을 우연히 만난다. 그는 그녀의 가족 모두를 살해한 사람이었다. 속치는 그의 범죄를 법정에 세울 계획을 세우지만 아직 캄보디아에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바이러스와의 인터뷰 / An Interview with Virus
감독 : Yeongyu Lee / Editor :
방송 시간 : Aug 29 / 23:00

이 다큐멘터리는 1976년 한국의 과학자 이호왕이 발견한 한탄바이러스가 한국에 들어와 한 연구팀에 의해 정복되기까지 시간을 쫒아가 봤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숙주를 죽이는가' 바이러스의 존재론적 의미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



뤽 다르덴, 장 피에르 다르덴의 <모던 타임즈> / Chaplin Today: Luc & Jean-Pierre Dardenne "Modern Times"
감독 : Serge Toubiana / Editor :
방송 시간 : Sep 1 / 13:30

1999년 <로제타>로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벨기에의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은 <모던 타임즈>를 회고한다. "톱니바퀴 속 떠돌이 찰리의 모습은 카메라 속의 배우와 같다. 즉 이 영화는 영화에 관한 영화이다. 산업화와 기계화에 물든 영화의 연대기를 묘사한 작품이다."

 

72년 미대통령 후보, 흑인여성 치솜 / Chisholm '72 - Unbought & Unbossed
감독 : Shola Lynch / Editor : Sam Pollard, Sikay Tang
방송 시간 : Sep 4 / 15:30

1972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브루클린 국회 위원인 셜리 치솜은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 후보였다. 이 엄청난 사건에는 음모와 술수, 열띤 지지가 뒤엉켜 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 Buena Vista Social Club
감독 : Win Wenders / Editor :
방송 시간 : Sep 4 / 20:40

1996년 쿠바 음악에 심취한 유명한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는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실력은 가장 뛰어난 쿠바의 뮤지션들을 모아 앨범을 녹음했는데 이것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앨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이 앨범의 국제적인 성공을 통해 국내외에서 오랫동안 간과되어 온 베테랑 뮤지션들의 이력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기적의 칸딜 / Miracle of Candeal
감독 : Fernanado Trueba / Editor :
방송 시간 : Sep 4 / 22:25

85세의 쿠바 출신 피아니스트인 베보 발데스는 40년간 스톡홀름에서의 망명 생활 후 아프리카 음악과 종교가 순수한 형식으로 보존되고 있는 브라질의 살바도르 데 바히아를 여행한다. 그곳에서 음악가 마테우스를 만나게 되고 마테우스는 발데스에게 살바도르의 아프로-바히안 마을을 소개한다. 그곳만의 특별한 칸딜은 음악학교이자, 헬스센터이며 사운드 스튜디오이다.



마지막 왈츠 / Last Waltz
감독 : Martin Scorsese / Editor : N.A
방송 시간 : Sep 4 / 24:40

토론토에서 결성되어 1976년 해체한 더 밴드 락 그룹의 마지막 공연 '라스트 왈츠'의 공연 실황과 그 뒷이야기를 담은 마틴 스콜세지의 뮤직비디오다. 밥 딜런, 에릭 클랩튼, 닐 다이아몬드, 닐 영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더 밴드의 마지막 공연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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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9-05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 영화.









벽 / Wall
감독 : Simone Bitton / Editor :
방송 시간 : Aug 29 / 13:50

감독은 유대인이면서 아랍인이라는 이중 정체성을 표방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증오의 벽을 허물고자 시도한다. 작품은 세계적 유적지를 파괴하며 사람들을 갈라놓고 있는 분단선을 독특한 방식으로 접근하여 그려낸다.


시작하는 장면만 보았다. 이스라엘 쪽 벽면에는 마티스의 춤 그림을 변형해서 참 아름답게 그려놓았다. 그 너머 팔레스타인 쪽 벽면은 회색 시멘트뿐이다. 다 보지 못한 게 아쉽다. 지금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는 가자와 요단 강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 군대와 정착촌을 철수케 하는 한편, 이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시멘트벽으로 빙 에워싸고 있다. 어제 KBS 스페셜에서 <가자 철수, 샤론의 도박>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내용을 보니, 이스라엘군에서는 정착촌 주민들이 마을 밖으로 나가도록 한 다음, 공공건물만 빼고 주민들이 살던 집은 다 때려 부순다. 저 집들을 굳이 부술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네가 살던 집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한다. 치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