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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노래 - 이마 이치코 걸작 단편집 4
이마 이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이마 이치코 걸작 단편집 4권, [해변의 노래]에는 연작이라고 볼 수 있는 만화 세 편이 실렸습니다. 지인이 빌려준 이 책을 읽고, 마침내 대원씨아이에서 나온 이 작가의 “걸작 단편집” 네 권을 다 사기로 했습니다. 이마 이치코란 작가가 내 안에 들어오고야 말았어요.
때는 (언제일까?) 중세 중국? 사람들 눈에 도깨비가 보이던 시대입니다. 최근 이 작가가 인기리에 발표하고 있는 [백귀야행] 연작에선 인간 사이에 섞여드는 요마가 조금은 무서운 존재이지요. 그런데 이 작품에선 사람들이 도깨비를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눈 마주치지 마. 건드리지 않으면 해코지를 하지 않아.” 또 이렇게도 말하지요. “예전엔 도깨비와 사람이 서로 돕고 살았지.”
이 사람들이 입은 옷은 청나라 때와 비슷한 듯... 후기에서 작가는 “역사극풍 엉터리 판타지”라고 말합니다. “엉터리니까 시대 배경도 필요 없고, 판타지니까 뭐든지 다 있고...”
아무튼 옛날 옛적, 사람들이 농사를 짓거나 칼을 쓰며 살아가던 시절, 가뭄이 혹심해지자 마을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젊은(어린?) 여자 한 명을 멀리 산 너머 사막 건너에 있는 ‘취호’로 보냅니다. 취호에는 물의 신인 하백(아시지요? 우리 고구려 신화에서 주몽의 어머니가 하백의 딸인 유화잖아요. 하백河伯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물의 신이지요.)이 산다 합니다. 그러나 기우제는 기록에만 나올 뿐, 실제 제례를 지내는 방식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마을을 위해 기우제를 지내러 가는 여자는 그 먼 길을 한 발 한 발 걸어서 갑니다. 도중에 말이나 배를 타서도 안 되고, 오로지 스스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가야만 합니다. 연작 세 편, “해변의 노래” “예언” “얼음의 손톱, 돌의 눈동자”는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마 이치코는 여러 작품에서 “보통 규율과 체제에 맞춰 정해진 길을 따라 사는 인간”이 아닌, 뭔가 다른 존재들, 배척되기도 하고, 혹은 뭔가 모자란 듯 여겨지는 존재들을 아름답게 그려내는군요. “예언”에서 왼손잡이들을 등장시킨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하면, 비약인가요? “농부는 왕이 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란 대사는 그런 맥락에서 나온 거라고...
그런데 왜 이토록 매혹적인 [해변의 노래] 연작은 세 편으로 끝났단 말인가? 후기에서 보니 [코믹 아이즈]란 잡지에 2회까지 발표하고 3회도 싣기도 예정했는데, 그만 그 [코믹 아이즈]가 휴간되고 말았답니다. 이런이런! 장편 연재를 해달라! 슬리자가 열여덟 살이 되어 엔의 청혼을 받는 것까지 보고 싶단 말이다! 그리고 진파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단 말이다!
일본에선 2002년 발표. 한국의 대원씨아이에선 2003년 1월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