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피아노의 숲” 독후감을 쓸 때 일이다.
그는 아들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고 자신의 경쟁심을 아들에게 대물림하려 하는 대신,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그 한계를 깨뜨리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쓰고는 멈칫했다. “...대물림하려 하는 대신...”에서, 저 “대신”이란 표현이 적절한가?
저 문장에서 “그는 아들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고 자신의 경쟁심을 아들에게 대물림하려 한다.”를 A,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그 한계를 깨뜨리고자 노력한다.”를 B라 할 때, 나는 “대신”이라는 말을 A를 부정하는 접속사로, 곧 A는 하지 않고, 그 대신 B를 한다는 뜻으로 썼다.
그런데 좀 다르게 읽으면, “그는 아들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고 자신의 경쟁심을 아들에게 대물림하려 하고” 그 대신 “스스로의 한계 때문에 고민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그 한계를 깨뜨리고자 노력한다.”라는 뜻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곧 A도 긍정하고, B도 긍정하는 의미로 읽힐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저 “대신”이라는 말이 쓰이는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밥 먹을게. 대신 너는 고기 먹어.”
“이 책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대신 다음에 다른 책으로 한 권 드리죠.”
“그럼 영화도 보고 연극도 보자. 대신 영화는 내가 고를게.”
여기서는 두 문장 사이에서 “대신”이란 말이 앞뒤 문장을 모두 긍정하는 뜻으로 쓰였다. A를 하지 않고 B를 하는 게 아니라(밥을 안 먹고 고기를 먹는 게 아니라), A도 하고 B도 하자(나는 밥을 먹고 너는 고기를 먹자), 말하자면 서로 원하는 걸 긍정적으로 주고받자는 뜻으로 “대신”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그럼 “대신”이란 말이 앞의 말을 부정하는 경우는 없는가? 아니, 있다.
“나 대신 동생이 가기로 했어.”
“책상은 초록색 대신 파란색으로 칠하자.”
이때는 “대신”이라는 말이 앞의 말을 부정한다. 내가 가지 않고(부정) 동생이 가며(긍정), 초록색으로 칠하지 말고(부정) 파란색으로 칠하자(긍정)는 뜻이다.
그렇다면 명사(나 대명사, 수사) 사이에 “대신”을 쓸 경우에는 앞의 말을 부정하고, 문장 사이에 “대신”을 쓸 경우에는 앞의 말도 긍정한다, 이렇게 정리해도 될까? 그래서 독후감의 저 문장은 이렇게 고쳐 썼다.
아버지는 거만한 권위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한계 때문에 고민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그 한계를 깨뜨리고자 노력하는 선량한 인간이다. 그는 아들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경쟁심을 아들에게 대물림하려 하지도 않는다.
내가 처음에 “대신”이라는 말을 문장 사이의 접속사로 쓴 것은, 영어의 관계대명사 용법을 따라 쓴 것이란 생각이 든다. 번역문체가 자연스럽게 나와버리는 것, 그것이 문제로세. 번역문체로 써서 말하고자 하는 뜻이 더 명확해지면 좋겠으나, 저렇게 뜻이 모호해져버린다면, 쓰지 말아야 할 일이다.